서울 지하철 5호선 우장산역 3번 출구로 나와 조금 걷다 보면, 오른편에 뼈대만 세운 건물이 보인다.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은성교회의 새 예배당이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서울 지하철 5호선 우장산역 3번 출구로 나와 200미터 정도를 걷다 보면, 공사용 펜스 너머 8층짜리 골조 건물이 우뚝 솟아 있다. 수년째 공사가 중단되어 방치된 건물이다. 뼈대만 있어 다소 흉물스러워 보이는 이 건물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은성교회(정봉규 목사)의 새 예배당이다.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은성교회는 80년대 후반부터 10여 년간 매주 목요일에 열었던 경배와 찬양 집회로 당시 많은 청년에게 알려진 교회였다. 전도사였던 1979년 교회를 개척한 정봉규 목사는 은성교회를 한때 등록 교인 1만여 명의 대형 교회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은퇴를 앞두고 시작한 예배당 건축으로 교회는 심각한 재정 위기에 처하게 됐다. 현재 2000여 명으로 줄어든 교인들은 짓다 만 예배당 건물 지하 주차장에서 예배하고 있다.

주거지 재건축에 편승, 580억 예배당 공사 시작

"앞으로 우리 교회 주위가 개발되어 수천 세대의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많은 사람이 이주해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올해도 내적으로 전도에 총력을 다하는 부흥의 해로 나아갑시다." 은성교회 홈페이지에 소개된 정봉규 목사의 메시지 중 일부다. 교회가 있는 화곡동은 90년대 중반부터 대규모 주택 단지 조성을 위한 재건축이 계획됐고, 현재도 재건축 공사를 하고 있다.

2006년 3월 17일, 정봉규 목사와 당회는 예배당 건축만을 전담하는 건축위원회를 따로 구성하고 전직 세무사 출신인 김 아무개 장로를 건축위원장으로 세웠다. 당시 교회가 가지고 있던 돈은 20억이었고, 예배당 공사 예산은 580억이었다.

건축위원회는 2006년 6월 23일 예배당 부지를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교회 맞은편에 있는 다인빌딩을 340억 원에 매입했다. 공사 기간에 임시로 지낼 예배 처소를 마련한다는 명목이었다.

은성교회 새 예배당 조감도. ⓒ뉴스앤조이 한경민

정봉규 목사와 건축위원회는 다인빌딩을 매입하고 2007년 1월 9일 예배당 건축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대출 릴레이가 시작됐다. 우리은행과 농협, 저축은행 등에서 예배당 부지와 다인빌딩을 담보로 총 25회에 걸쳐 합계 900억 이상의 돈을 대출했다. 여기에 교회 적금 20억, 건축 및 일반 헌금 141억, 교인 집 담보대출금 80억 등 합계 241억 원을 추가로 조달했다. 한 달 평균 10억 원의 대출 이자가 발생했지만, 다인빌딩 담보대출과 건물 임대 수익, 교회 헌금 등으로 감당했다.

은성교회는 2008년 6월 19일 예배당 공사의 시공사였던 다인종합건설(다인건설)에 다인빌딩을 700억 원에 매각했다. 하지만 교회가 실제로 받은 돈은 없었다. 공사 대금을 현금으로 지급하기 어려웠던 교회가 다인건설에 다인빌딩을 팔고, 그 매각 대금 중 일부를 다인건설에 지급해야 할 공사 대금과 맞바꾸는 방식으로 예배당 공사를 추진한 것이다.

계약 당일 계약금 50억 원은 교회가 다인건설에 지급해야 할 공사 대금으로, 중도금 356억 원은 다인건설이 교회의 채무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갈음했다. 나머지 금액은 예배당 공사가 완성될 때까지 교회가 다인건설에 지급해야 할 공사 대금으로 대신하기로 합의했다. 다인빌딩을 매입한 다인건설은 건물을 담보로 공사 대금을 조달했다.

이후에도 은성교회와 다인건설은 계속 한배를 탔다. 교회는 다인건설이 다인빌딩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때 연대보증을 섰고, 2012년에는 경영권을 인수했다. 현재 다인건설의 대표와 이사는 모두 은성교회 장로들이다.

다인빌딩 두고 재건축 조합과 소송…교회 파산 위기

대규모 주택 단지 조성을 위해 화곡3주구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이 2002년 설립됐다. 조합은 2007년 11월 3일 재건축 사업 지역에 다인빌딩을 포함하기로 했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한편, 재건축 사업을 위해 2002년에 설립된 '화곡3주구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화곡3주구조합·이흥규 조합장)'은 2007년 11월 3일 재건축 지역에 다인빌딩을 포함시켰다. 비슷한 시기 다인빌딩을 매입한 다인건설은 건물 처분에 관해 조합과 협상을 시작했다. 서로 원하는 금액의 차이가 커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다인건설은 700억 이상을 요구했고, 조합은 450억을 제시했다.

협상이 결렬되자 화곡3주구조합은 2008년 9월 25일 다인빌딩에 대한 매도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매도청구소송은 재건축 조합이 재건축 사업에 동의하지 않는 소유자에 대해 토지 및 건축물에 대한 소유권을 매도할 것을 청구하는 소송을 말한다. 보통 조합이 매도청구소송에서 승소하면 소유자의 승낙 없이도 시가에 의한 매매계약이 성립되어 재건축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서울고등법원 2011년 4월 22일 622억 원에 다인빌딩을 조합에 인도하라고 판결했다. (자료 제공 화곡3주구조합)

법원은 1심에서 조합의 매도 청구를 기각했지만, 2심에서는 조합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등법원은 2011년 4월 22일 622억 원에 다인빌딩을 조합에 인도하라고 판결했다. 현재 이 사건은 항소심이 진행되어 2년이 넘도록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소송이 장기화되면서 은성교회 예배당 공사는 중단됐다. 다인빌딩을 두고 소송에 휘말린 다인건설이 건물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은성교회 상황도 덩달아 악화되어 예배당 공사 부지마저 경매로 처분됐다. 다인빌딩을 매각하면서 임대 수익이 사라져 대출 이자를 갚지 못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지난 5월에는 임시 처소로 있던 다인빌딩에서도 쫓겨났다. 화곡3주구조합이 강서구청으로부터 다인빌딩에 대한 관리처분 인가를 받아 건물을 철거했기 때문이다. 재건축 사업에서 조합이 관리처분 인가를 받으면 재건축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조합은 6월 초 건물을 철거하고 재건축 공사를 시작했다. 오갈 데 없어진 은성교회는 예배당 건물 지하 주차장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정봉규 목사, "대법원 승소만 하면…"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봉규 목사는 모든 책임을 화곡3주구조합에 전가하고 있다. 조합이 교회가 매입한 다인빌딩을 헐값에 처분하라고 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는 대법원에서 승소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다인빌딩이 시가로 1160억 원이며, 그 돈을 받으면 교회의 부채를 해결하고 남은 공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은성교회 재정부장인 김 아무개 장로도 서울고등법원에서 감정한 다인빌딩의 시가 622억 원은 재건축에 따른 개발 이익과 다인건설이 700억에 매입한 거래 사례가 반영되지 않은 가격이라고 했다. 김 장로는 다인빌딩의 시가는 평당 7000만 원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재건축으로 조성될 주택 단지 안에 다른 상가 건물이 평당 7000~7500만 원으로 평가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1500평인 다인빌딩은 1000억 원이 넘는다는 계산이다. 실제 2008년 10월 감정평가 법인인 '건일에셋'으로부터 1160억 원이라는 감정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보다 정확한 시가를 확인하기 위해 인근 부동산에 문의했다. 한 공인중개사는 "이미 철거된 건물이라 시가를 평가할 수 없다. 법원에서 감정한 시가가 622억 원이라고 들었다. 현재로서는 그것이 시가다"라고 했다. 서울고등법원도 재판 중 '나라감정평가법인'에게 의뢰한 결과 다인빌딩은 시가 622억 원이라고 밝혔다.

교회가 대법원에서 승소해 1160억의 돈을 받는다고 해도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현재 교회 부채는 871억 원이다. 예배당 부지는 188억에 다른 이에게 넘어가 되찾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돈이 필요하다. 여기에 교인들에게 빌린 80억을 갚으면 공사를 진행할 여유 자금은 거의 남지 않는다. 이마저도 대법원에서 승소하고 교회가 원하는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가정에서다.

반면, 화곡3주구조합도 대법원 승소 판결을 확신하고 있다. 대법원이 2년이 넘도록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있지만, 이미 2심 판결에서 승소했기 때문이다. 조합 조 아무개 총무는 대법원이 은성교회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

시간이 갈수록 집을 담보로 교회에 돈을 빌려 준 교인들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교회에 3억 1000만 원을 빌려 준 박 아무개 집사는 은행으로부터 언제 재산이 압류될지 몰라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지금까지 교회가 대출이자를 내고 있지만, 교회가 점점 어려워져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면 집이 압류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심각한 가정불화를 겪고 있는 이들도 많다고 했다. 박 집사는 정봉규 목사가 8월 말까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매번 약속을 지키지 않아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 정면에서 본 은성교회의 새 예배당. 수년째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됐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짓다 만 예배당 건물 지하에 임시 처소를 만들었다. 교회 본당으로 가는 입구 ⓒ뉴스앤조이 한경민
▲ 은성교회는 매주 2000여 명의 교인이 출석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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