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일마다 교회를 찾는 노인들이 있다. 평균 4~5개 교회를 돌고 1만 원 정도 받는다. 돈보다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찾는 이도 있다. 김순례 씨(사진 오른쪽)는 돈도 받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교회를 찾는다. 김 씨가 일행과 함께 교회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 ⓒ뉴스앤조이 이용필

영등포에 사는 김순례 씨(75)의 지난 삶은 종교와는 거리가 멀다. 먹고사느라 바쁜 그의 인생에 종교가 비집고 들어갈 틈새는 없었다. 특정 종교에 귀의해 본 기억은 없다. 누구나 한 번쯤 가 본 교회의 문턱도 밟은 적이 없다. 허공에 떠 있는 빨간 십자가는 교회를 상징할 뿐, 그 의미는 알지 못했다. 그런 김 씨가 4년 전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누군가로부터 "교회에 가면 용돈을 준다"는 입소문을 들었다. 처음엔 망설였지만 '용돈' 앞에 마음을 굳혔다. 현재 일요일에만 평균 4개 교회를 찾는다. 지난 8월 4일 김 씨를 따라 나섰다.

새벽 5시, 김 씨는 잠에서 깼다. 6시까지 신림에 가야 한다. 지난밤 더위와 씨름하던 남편은 늦게 잠든 듯했다. 자는 남편을 뒤로한 채 집을 나섰다. 영등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신림동에 있는 한 교회로 향했다. 예배에 참석하고, 아침밥을 얻어먹었다. 식사를 마친 김 씨는 곧장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오전 8시 30분, 화곡역 3번 출구 앞에 긴 행렬이 보였다. 노란 봉고차를 기다리는 노인들이었다. 신월 1동에 있는 A교회는 노인들을 위해 화곡역까지 차량을 운행한다.

A교회 주일 오전 9시 예배에는 평균 120여 명의 노인이 출석한다. 인근 지역보다 외지에서 온 사람이 더 많다. 남녀 비율은 4:6 정도로 여자가 많다. A교회는 6년 전부터 65세 이상 노인에게 효도비 명목으로 한 달에 1만 5000원씩 지급해 오고 있다. 항상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번 빠지면 1만 1000원, 2번 이상 빠지면 받을 수 없다. 김 씨는 2번 빠지면 '무(無)'가 된다고 했다.

▲ 신월동에 있는 A교회는 6년 전부터 65세 이상 노인에게 효도비 명목으로 한 달에 1만 5000원씩 지급해 오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예배에 임하는 노인들의 자세는 부자연스럽다. 몸을 틀어 창밖을 바라보거나 예배 시작 전부터 조는 이들도 있다. 설교 시간, 노인들은 성경 속 인물 사무엘보다 전직 대통령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목사가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세금 추징을 언급하자 예배당은 술렁였다. 목사가 따라 하라고 소리쳤다. "싹 뒤져라", "몽땅 털어라", "우리 돈이다". 노인들은 한목소리로 외쳤다. 복지에 쓸 돈을 대통령이 가져갔다는 말에 노인들은 "맞다"며 동의했다. 김 씨도 "맞아요"라고 외쳤다. 그 시간 예배당 바깥은 간식 준비로 분주했다. 이날 간식은 떠먹는 요구르트였다. 여자 집사 2명이 떠먹는 요구르트를 낱개로 분류해 조별 바구니에 담았다.

설교가 끝나자 흩어져 있던 노인들이 조별로 뭉쳤다. 1~7조까지 있다. 각 조 담당자가 이름을 불러 가며 출석을 확인했다. 새로 나온 이들은 등록 후 흰 봉투를 받았다. 첫 출석 당일에는 1만 5000원을 바로 받는다. 출석 확인이 끝난 노인들은 떠먹는 요구르트와 흰 봉투를 챙겨 서둘러 예배당을 빠져나갔다.

배고픈 노인…"빵이나 줄 것이지"

오전 10시 10분. A교회를 나온 노인들이 2~3명씩 짝을 지어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채 결정을 내리지 못한 이들은 상호 동선을 확인하느라 바빴다. 홀로 이동하는 이도 있었다. 박용운(가명‧80) 씨는 걸음을 옮기면서 간식으로 받은 떠먹는 요구르트를 만지작거렸다. 낡고 두꺼운 손톱이 포장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얇은 포장지가 뜯겼다. 박 씨의 느릿한 발걸음도 멈췄다. 제자리에 선 채 내용물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박 씨 옆으로 김 씨가 잰걸음으로 스쳐 지나갔다. "안 가요?" "아니, 빵이나 줄 것이지…." 배고픈 박 씨의 입에서는 대답 대신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산한 재래시장을 막 통과한 김 씨가 뒤를 돌아봤다. 일행을 찾는 듯했다. "다른 길로 갔을까?" 김 씨가 두리번거리며 혼잣말을 했다. 다음 행선지를 묻자 "저기 작은 교회 있어"라는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김 씨는 교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교회 위치와 분위기 정도만 기억했다. 이번에 가는 교회는 작고 어두운 지하라고 했다.

▲ 용돈과 간식을 받은 노인들이 예배당을 벗어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작고 어두운 지하로 가는 길은 멀고 고되었다. 김 씨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직진을 택했다. 교통신호는 지키지 않는다. 경적을 울리는 차량도 무시한다. 잰걸음으로 걷는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덥고 습한 날씨다. 김 씨는 "바람이 많이 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인도가 없는 2차선으로 된 고가도로를 넘을 때는 거친 숨을 내뱉었다. 뒤편에서 경적이 울렸다. 할머니 두 명이 차선을 가로막은 채 오르고 있었다. B교회에 함께 다니는 일행이었다. 차량은 고가도로를 오르는 김 씨 일행을 피해 곡예 운전을 했다. 김 씨는 이동 중 몇몇 교회를 가리키며 "여기도, 저기도 (용돈을) 준다"고 설명했다. 모두 상가에 위치한 작은 교회들이었다.

김 씨가 대뜸 큰 교회는 싫다고 했다. 교회가 클수록 일절 용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줄라믄 다 주고 안 줄라믄 확 금지해 버려야 허요. 이렇게 다니기도 피곤허요.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노인들은 되기만 허요." 흥분한 김 씨 입에서 전라도 사투리가 흘러나왔다. 빛고을 광주 출신이다. 40여 년 전 남편과 함께 서울로 상경했다. 6남매를 낳고 길렀지만, 자식들의 왕래는 드물다. "밥 벌어 먹고산다고 오도 가도 안 허요." 김 씨와 남편은 직업이 없다. 평일에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 화요일에만 무료 급식에 나간다.

30여 분을 쉬지 않고 걸어 B교회에 도착했다. 상가 단지 안에 있는 B교회는 작았지만, 어두운 지하가 아닌 지상 1층에 있었다. 교회 주위가 어두워 지하에 있는 줄 알았다고 김 씨는 웃으며 말했다.

십일조 500원 내면 5000원 돌려받아…점심은 컵라면과 신 김치

▲ 김 씨가 좁고 어두운 교회로 향하고 있다. 김 씨가 세 번째로 찾은 B교회는 지난해부터 65세 이상의 노인에게 용돈을 지급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B교회에 들어선 김 씨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십일조 봉투부터 찾았다. 얇은 봉투에 500원짜리 동전을 넣었다. 예배가 끝나면 봉투 안에는 5000원이 들어 있을 것이다. 김 씨는 기자에게도 새 봉투를 건네며 500원을 넣으라고 권유했다.

20평 남짓한 예배당은 냉방장치가 뿜어낸 찬 공기로 서늘했다. B교회 주일예배에는 교인을 포함해 30명 정도 참석한다. 이 중 20여 명은 김 씨와 같은 노인들이다. 남녀 따로 앉는다. 김 씨는 일행이 있는 왼편 의자에 앉았다. 오른편 의자에 앉은 장광배(가명‧83) 씨는 B교회 교인이다. 다른 노인처럼 여러 교회를 돌아다니다 2년 전 정착(?)했다. 교인이지만 헌금은 내지 않는다. 장 씨는 교회에 돈을 내고 다녀야 하는데 받으러 다니는 자신이 우습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장 씨는 노인들이 교회를 돌아다니는 이유는 할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교회가 주는 1000~2000원은 실제로 큰 도움은 안 된다. 장 씨는 "하나님을 빨리 영접해서 천당에 가야 하는데…좋은 것 바쳐야 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된다"고 했다.

점심시간에는 컵라면과 신 김치, 밥이 나왔다. 김 씨 일행은 밑반찬을 따로 싸왔다. 인스턴트 김과 짠지, 오이지가 의자 위에 올랐다. 식사는 조용한 의식처럼 치러졌다. 이따금 '후루룩'하는 소리만 들렸다. 점심 식사 이후 노인들은 예배당에서 낮잠을 자거나, 바람을 쐬러 나갔다. 2시 예배가 끝난 뒤 용돈을 주기 때문에 다시 돌아와야 한다. 시장 구경에 나선 김 씨가 10분도 안 돼 돌아왔다. 날씨가 무더웠다. 예배당 의자에 다리를 편 채 바지를 무릎 위로 올렸다. 양 무릎에는 일자로 된 수술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관절염을 앓다가 3년 전 수술했다. 오래 걸으면 무릎이 시큰거린다. 그래도 무료한 것보다 조금 아픈 게 낫다. 김 씨는 교회에서 쉴 때 시간이 금방 가서 좋다고 했다. 하지만 예배가 시작되면 시간은 좀처럼 가지 않는다고 했다. 김 씨는 "지루하다"고 말했다.

지루한 오후 예배가 끝났다. 목사는 노인들에게 십일조 봉투를 손수 나눠 줬다. 봉투를 받은 김 씨는 재빠르게 5000원을 꺼냈다. 이어 봉투를 자신의 이름이 박힌 봉투꽂이 함에 밀어 넣었다. B교회는 지난해부터 65세 이상의 노인에게 용돈을 지급하고 있다.

▲ 십일조 봉투에 500원을 넣고 헌금하면, 5000원이 돼 돌아온다. 김 씨는 4500원을 받는 셈이라고 했다. 사진은 B교회의 십일조 봉투함. ⓒ뉴스앤조이 이용필

신림에서 노원까지…교회 4~5곳 돌면 1만 원 남짓 받아

오후 3시 30분. 교회 밖은 여전히 더웠다. 김 씨 일행은 다음 행선지를 정해 놓은 듯했다. 김 씨와 이름이 비슷한 김순자 씨(77)는 상계와 노원에 있는 교회에 간다고 했다. 교회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다. 집은 장승배기역 부근인데, 돌아오면 밤 10시가 넘을 것이라고 했다. 보통 일요일에 4~5개 교회를 돈다고 했다. 평균 1만 2000원 정도 손에 떨어진다. 이 돈으로 반찬도 사고 생활비에 보탠다. 김 씨와 일행은 버스 정류장에서 헤어졌다.

김 씨는 마지막으로 목동에 있는 C교회로 향했다. 이번에는 버스를 타야 한다. 김 씨를 언니라고 부르는 전영자(가명‧71) 씨가 동행했다. 버스가 멈추자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무임승차했다. 운전기사가 법이 바뀌었으니 돈을 내야 한다고 소리쳤다. 두 노인은 아무 말 없이 좌석에 앉았다. 여섯 정거장을 지나 버스에서 내렸다. 교회까지 걸어서 20분 정도 걸렸다.

오후 4시 10분. C교회 앞에 선 김 씨가 아쉬운 듯 말했다. "전에 있던 아저씨가 좋았어. 2000원, 계란 2개, 때로는 빵도 줬어." 아저씨는 C교회의 전임 목사를 뜻했다. 지금은 1000원만 준다. 계란은 안 준다. 교회 입구 앞에서 교인들이 뜨거운 보리차를 나눠 줬다. 보리차 두 잔을 내리 마신 김 씨가 예배당으로 향했다.

"나이 먹고 할 일 없는 사람이 다니는 곳"

이순이(가명‧77) 씨는 따로 다니는 교회가 있지만, 주일 오후 4시가 되면 C교회를 찾는다. 더위를 피하기에 좋고, 무료함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C교회가 주는 용돈은 "과자 한 봉지값도 안 된다"면서 별로라고 했다. 이 씨는 질문하는 기자를 향해 "어찌 젊은 사람이 이런 데 왔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남자는 건너편 의자에 앉아야 한다고 했다. 건너편 의자에는 백현석(가명․74) 씨가 혼자 앉아 있었다. 백 씨는 B교회에서 C교회로 왔다. 그는 다른 이들과 달리 두 교회만 다닌다는 점을 강조했다. 자신과 달리 다른 노인들은 교회를 직업적으로 다닌다면서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그중에는 조선족도 많다고 했다. 질문이 계속되자 백 씨는 거부 반응을 보였다. "젊은 사람이 여기 뭐 하러 왔어, 다른 데 가야지. 이런 데는 나이 먹고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다니는 데야."

화장실을 다녀온 전 씨가 사람이 적다며 의아해했다. 예배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40~50대 남성도 눈에 띄었다. 예배당에는 70여 명이 모였다. 오가며 얼굴을 익힌 이들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남성들 사이에서는 이따금 욕설 섞인 이야기가 오갔지만, 이내 침묵을 유지했다. 여성들 사이에서는 줄어든 용돈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돈을 1000원밖에 안 준다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오자, 전 씨가 나섰다. "그래도 저녁은 주잖아. 지난주에는 삼계탕 나왔어." 더 이상의 불만은 제기되지 않았다. 예배가 끝난 후 김 씨는 1000원을 받았다. 저녁으로 갈비탕이 나왔다.

C교회 예배가 끝나면서 김 씨도 일과를 마무리했다. 저녁 7시경이었다. 이날 4개 교회를 출석해 1만 6500원을 받았다. 끼니도 해결했다. 김 씨는 초기에는 돈이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무료함을 벗어나기 위해 교회를 찾는다고 했다. 4년 동안 교회를 돌면서 신앙생활의 변화가 있었는지 물었다. "요로코롬만 다녀. 믿음이나 이런 거 없어." 김 씨는 잰걸음으로 교회를 떠났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