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반연이 7월 30일 교단마다 세습 방지법을 발의한 노회 관계자들을 초청해 포럼을 개최했다. 패널들은 세습 방지법을 발의할 당시 상황과 이 법의 의미에 관해 이야기했다. 왼쪽부터 기장 군산노회 김성열 노회장, 임홍연 서기, 진형섭 회록서기, 명승인 사회평화통일위원장, 예장통합 경남노회 정장현 노회장, 예장고신 경기노회 오세택 목사, 예장통합 평양노회 조주희 서기, 세반연 방인성 실행위원장. ⓒ뉴스앤조이 이규혁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가 바닥을 친지 오래됐다. 2010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설문 응답자의 17.6%만이 한국교회를 신뢰한다고 대답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많은 사람이 한국교회의 장래가 암담하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교회의 자정 능력을 기대하는 이들도 있다. 목회 세습에 대한 교계 인식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회 세습은 교회의 권력과 부의 사유화라는 비판과 함께 기독교의 사회적인 신뢰도를 떨어뜨린 주범이었다. 그럼에도 교계는 목회 세습을 묵인해 왔다. 하지만 작년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전용재 감독회장)가 세습을 법적으로 금지하며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올해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고신·합신,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가 세습 방지법을 논의한다.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세반연·공동대표 김동호·백종국·오세택)는 7월 30일 교단 총회에 앞서 세습 방지법 제정을 돕기 위해 포럼을 개최했다. 간담회 형식으로 진행된 이날 포럼에서는 각 교단에 세습 방지법을 발의한 노회 관계자들이 나와 당시 상황과 이 법의 의미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발의 과정, "순조로웠다"

조주희 목사는 목회자들도 목회 세습이 올바르지 않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규혁

노회에서 치열한 논의가 오갔을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발의 과정은 순조로웠다고 한다. 예장통합 평양노회(정대경 노회장)는 특별한 반대나 토론 없이 만장일치로 발의가 통과됐다. 노회 서기인 조주희 목사는 한 총대가 세습 방지법을 제정하자고 발의했을 때, 한 사람도 반대하지 않았다고 했다. 목사들 사이에서도 교회 세습이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는 상당히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평양노회는 교단 안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무엇보다 현 교단 총회장인 손달익 목사가 소속된 노회이기 때문이다.

기장 군산노회(김성열 노회장)도 마찬가지였다. 김성열 목사는 노회원들 간에 큰 이견 없이 세습 방지법이 통과됐다고 했다. 다만, 최초 발의 때보다 내용은 일부 축소됐다. 이 법을 처음 발의한 강봉수 목사(제자들교회)는 세습 금지 범위를 교회 담임목사와 장로 말고도 제직들의 자녀로까지 확장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회에서 세습 방지법 위원회를 만들어 논의한 결과, 제직들은 제외됐다.

예장통합 경남노회(정장현 노회장)도 아직 세습한 교회가 한 군데도 없어 세습 방지법 발의는 순항했다. 정장현 목사는 170여 개의 교회가 노회에 소속되어 있는데, 향후 5년 안에 많은 교회가 세습할 것 같아 총회에 헌의를 하게 됐다고 했다. 정 목사가 임원회의에서 직접 발의했다.

예장고신에서 세습 방지법을 발의한 경기노회(김윤종 노회장)는 일부 원로목사들의 극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95%가 이 법을 찬성했다고 한다. 세반연 공동대표이자 경기노회 소속인 오세택 목사는 "교회 부목사도 바로 담임목사가 될 수 없는데, 자식에게 쉽게 담임목사직을 주는 게 말이 되느냐"는 한 장로의 발언이 많은 노회원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했다.

법 악용에 관한 논의는 아직

▲ 기장 군산노회에서 발의한 세습 방지법. 9항에 보면 감리회와 마찬가지로 '연속해서'라는 문구가 보인다. 이는 최근 임마누엘교회의 세습 논란과 같이 법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 (자료 제공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 

작년 개신교에서 최초로 감리회가 세습 방지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올해 임마누엘교회의 세습 논란에서 나타나듯, 소위 징검다리 세습에 속수무책인 것으로 드러났다. 법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해 세습할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관련 기사 : 임마누엘교회, 꼼수 세습?)

기장 군산노회가 올린 헌의안도 마찬가지 허점이 보였다. 군산노회가 올린 세습 방지법 조항에도 '연속해서'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 노회 사회평화통일위원장인 명승인 목사는 담임목사라는 '직무'를 '연속해서' 자녀나 그의 배우자가 할 수 없다는 의미라고 답했다. 하지만 같은 문구로 법을 제정한 감리회의 경우와 같이 이 표현은 교묘하게 악용될 수 있다.

▲ 방인성 목사는 교단에서 목회 세습에 대한 제재 법안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노회에서 반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뉴스앤조이 이규혁

실효성 확보도 미진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세습에 대한 법적 제재가 따르지 않으면 세습 방지법은 '세습하지 말자'라는 윤리적인 선언밖에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 청중은 세습한 교회를 제명하거나 세습한 목사를 제명하는 제재 법안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반연 실행위원장 방인성 목사는 법적 제재에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교회법에서 제재라고 하는 것이 약하게는 수찬 금지, 세게는 제명 정도인데, 이런 제재는 많은 노회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제재 법안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포럼이 끝나갈 무렵에는 언론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조주희 목사는 감리회가 세습 방지법을 제정할 당시 언론의 관심과 감시가 큰 역할을 했다며 교계 언론들이 법 제정을 지지하고 힘을 실어 주면, 교단 총회에서 상당한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쪽복음을 나눠 줄 때부터 하나님을 믿었다는 한 연로한 교인은 세습 방지법을 통해 한국교회에 변화와 쇄신의 바람이 불어오기를 바란다며 교회 개혁의 열망을 표출하기도 했다. 이날 포럼이 열린 청어람 아카데미에는 교계 기자들을 포함하여 40여 명의 청중이 참석했다. 주로 교단에 세습 방지법을 발의한 노회 관계자와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 교인들이 찾아왔다. 

▲ 포럼이 열린 청어람아카데미에는 40여 명의 청중이 참석했다. 실효성 확보, 법 악용 대책 등 청중들은 세습 방지법에 대한 의견을 활발히 제시했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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