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법적으로 퇴직금 제도가 확립된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대부분의 근로자는 퇴사할 때 근로기준법에 따라 일정 금액의 퇴직금을 받는다. 그들에게 퇴직금은 제2의 인생을 준비할 종잣돈이다. 한국교회 일부 목회자들에게는 퇴직금 외에 또 다른 종잣돈이 있는데 바로 전별금이다.

대중에게 전별금이란 단어가 각인된 것은 2011년이다. 교회 여신도를 성추행한 혐의로 사임한 전병욱 목사에게 삼일교회가 전별금으로 13억 원을 지급했다. 이 일은 13개월이 지나서야 성도들에게 공개됐다. 주택 구입비 10억, 퇴직금 2억, 치료비 1억 원 명목이었다. 그럼에도 전 목사는 사임하고 2년도 채 안 돼 홍대에 교회를 개척했다.

교회 재정 의혹이 불거져 사임하려고 했던 분당중앙교회 최종천 목사에게 교회가 전별금으로 책정했던 돈은 20억이었다. 최근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아 의혹을 씻었지만, 당시 불명예로 사임하는 목회자가 이렇게 큰 금액을 받는 상황은 공분을 샀다. 이보다 앞서 마포 희성교회는 2009년 은퇴한 원로목사에게 교회 1년 예산인 16억보다 더 많은 18억 원을 전별금으로 지급해 교인들이 반발했다.

한국교회는 오래 전부터 은퇴하는 목회자에게 생계 수단으로 퇴직금 외에 별도의 전별금을 주었다. 위로와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일부 목회자에게 거액의 전별금을 지급한 몇몇 교회의 사례는 전별금에 투영된 목회자들의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본래 아름다운 취지 역시 퇴색되고 있다.

퇴직금 계산하면 2~3억, 전별금은 25억

서울 충현교회. 교회는 4월 19일 은퇴한 김성관 목사에게 전별금 25억 원을 지급했다. ⓒ뉴스앤조이 임안섭

서울 충현교회는 4월 19일 은퇴한 김성관 목사에게 전별금 25억 원을 지급했다. 이는 일부 교인들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신청한 장부 열람 청구 소송에서 밝혀졌다. 소송 증인으로 나온 충현교회의 한 장로가 김 목사에게 15억 원은 퇴직금으로, 10억 원은 주택 구입비로 지급한 사실을 밝힌 것이다. 근로기준법에 따른 김 목사의 퇴직금이 2~3억 원 수준인데, 어떤 근거로 25억 원을 책정했느냐는 변호사의 질문에 그는 "다른 교회에 비추어 적당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한 교인은 "하나님께 드린 성도들의 헌금을 이렇게 사용할 수 없다"고 항의했다. 참고로 충현교회 1년 예산은 110억 원이다.

은퇴 목회자에게 전별금으로 25억 원을 지급한 교회는 또 있었다. 인천 주안장로교회다. 지난해 1월 은퇴한 나겸일 목사는 별도의 생활비와 사무실, 그리고 차량과 주택을 제공받으면서 전별금으로 25억 원을 받았다. 주안장로교회는 예배당 7000석 규모의 대형 교회이지만, 2011년 7월 8일자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130억 원의 은행 빚이 있었다. 하지만 교회는 정년 연장을 위해 교단 탈퇴까지 시도했던 나 목사에게 교회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붙여 거액을 지급했다.

기준은 없고, 교인 부담만

서울 관악구에 있는 제일성도교회는 작년 4월 은퇴한 황진수 목사에게 전별금 15억 원을 지급했다. 퇴직금 5억 원에 공로금 10억을 더 얹은 거였다. 교회 1년 예산은 40억. 앞의 두 교회보다 액수는 적지만, 교회 예산을 따져보면 더욱 부담스런 금액이다. 교회는 전별금을 충당할 돈이 없어 교회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야 했다. 대출 이자는 오롯이 교인들의 몫이 됐다. 한 장로는 집행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물질과 세속주의에 빠져 있다며, 교회가 빚을 지면서까지 은퇴하는 목사에게 거액을 지급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확인 결과 이들 교회 모두 전별금 지급과 관련해 뚜렷한 기준을 두고 있지 않았다. 대형 교회에서 떠나는 목회자들에게 거액의 전별금을 지급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오세택 목사(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두레교회 담임)는 대형 교회 목회자들의 물질에 대한 탐욕과 노후에 대한 두려움을 원인으로 꼽았다. 그들이 교회를 세우고 키우는 데 공헌한 공로를 인정받고 싶은 심리도 덧붙였다. 오 목사는 교회가 은퇴하는 목사에 대한 감사와 예우 차원에서 전별금을 주었던 것인데, 이제는 당연한 권리처럼 됐다고 지적했다.

특권 누리지 않고 포기한 목사

반면, 거액의 전별금으로 교회가 혼란을 겪자, 은퇴 예우를 포기한 목사도 있다. 작년 만 65세로 조기 은퇴한 남서울교회 이철 목사다. 그는 자신의 은퇴 전별금이 11억 원이라는 소문이 교회에 돌고, 일부 교인들이 반발하면서 교회가 갈등을 빚자 은퇴 예우안을 포기했다. 이 목사는 자신에 대한 예우보다 화평한 교회가 먼저라며 교회 갈등을 수습했고, 애초 예정보다 3개월 앞당긴 9월 23일 설교를 끝으로 은퇴했다.

송태근 목사는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 혐의로 상처 입은 삼일교회에서 새로운 목회 사역을 하기로 선택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삼일교회 송태근 목사도 이전 교회에서의 특권을 포기했다. 그는 노량진 강남교회에서 19년을 사역해 1년만 더 있으면 원로목사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삼일교회에서는 정년까지 사역한다 해도 원로목사 자격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평생 젊은이를 위한 목회가 소명이었던 그는 전임 사역자의 성 문제로 혼란에 빠진 삼일교회에서 새로운 목회 사역을 하기로 선택했다. 다음은 2011년 6월 11일 <뉴스앤조이>와의 인터뷰에서 송 목사가 한 말이다.

"저라고 왜 그런 생각을 안 했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원로목사에 대한 기대나 목마름이 원래부터 없는 편입니다. 어차피 목회자로 살아갈 텐데 노후에 목매는 건 인간적이라고 생각했죠."

은퇴 목회자 75%, 생활비 50만 원 이하

우리 사회에서 수십 억대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목회자 세계도 마찬가지다. 대다수 목회자는 은퇴 이후 생활고를 겪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의 경우, 총회 사회봉사부가 2007년 8월 발표한 '연금 미가입 은퇴 목회자 생활 실태 조사 연구'에 따르면, 한 달 50만 원 이하의 생활비로 살아간다는 응답이 75%였다.

일부 대형 교회 목회자에게 전별금이 특권이라면 작은 교회 목회자들에게 전별금은 생계를 위해 목맬 수밖에 없는 돈이다. 신동식 목사(기독교윤리실천운동 정직윤리운동본부장·빛과소금교회 담임)는 은퇴 이후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대다수 목회자가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전별금에 매달리게 된다고 했다.

전별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교회의 사정은 더욱 안 좋다. 신 목사는 경제적 여력이 없는 교회는 후임 목회자에게 그 짐을 떠넘기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른바 '성직 매매'다. 전임 목회자의 전별금을 마련할 수 있느냐가 교회가 후임 목회자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대다수 목회자는 은퇴 이후 경제적 어려움에 부닥치지만, 소수의 대형 교회 목회자들은 거액의 전별금을 받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목회자 노후 대책, "시급히 마련해야"

이상원 교수(총신대 기독교윤리학·기독교윤리연구소 소장)는 일부 목회자의 욕심 때문에 건강한 교회들까지 비판을 받는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전별금이 사회적 상규에 맞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목회자가 억대 이상의 돈을 받거나, 교회가 빚을 지는 것은 이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목회자도 은퇴 이후 생활 규모를 대폭 줄이고 남은 생애를 검소하게 살 각오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목회자가 노후 대책을 교회에만 의지하지 말고, 국민연금 등 국가의 사회보장제도를 이용할 것을 제시하기도 했다. 실제 높은뜻숭의교회와 백주년기념교회, 열린교회, 너머서교회, 분당샘물교회, 지구촌교회, 남서울은혜교회, 빛과소금교회 등의 교회에서는 전도사를 포함한 모든 사역자가 국민연금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단의 역할도 중요하다. 큰 교단은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연금 시스템이 있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운용되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합동·고신·합신, 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 등 주요 교단이 연금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회비를 낼 여력이 없는 목회자는 제도 밖으로 소외되고 있다. 이 교수는 아직 교계 전반적으로 거액의 전별금 문화와 은퇴 이후 목회자의 생계에 대한 문제의식이 둔감하다며, 이 일은 한국교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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