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5장은 유다의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 장에서 앞으로 70년간 바벨론 나라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25:11).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어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촉구하였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25:3~7). 이렇게 예언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바벨론 왕을 가리켜 "나의 종 바벨론 왕"이라고 부르신다(25:9).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바벨론은 하나님나라를 대적하는 세력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존재이다(17:5; 18:2, 10). 그런데 바로 이런 바벨론의 왕을 가리켜 하나님께서 "나의 종"이라고 부르시는 것이 놀랍다. 정말 하나님께서는 악인도 하나님의 종으로 삼으셔서 사용하시는가? 이런 질문이 떠오르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께서 악인을 부리신 후에, 그 악을 책망하고 심판하시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나의 종"이라는 표현이 어떤 의미에서 "나의 종"인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성경을 해석할 때에는 언제나 그렇지만, "어떤 의미에서" 단어나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지 분석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나의 반석이라고 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반석처럼 든든하신 분이라는 의미에서 표현한 것이지, 하나님은 바위처럼 무뚝뚝하다는 의미에서 사용한 것이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의 종"이라는 표현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잘못을 책망하기 위하여 베벨론 나라를 사용하신다는 의미이다. 바벨론은 이스라엘 민족을 책망하는 하나님의 도구 혹은 하나님의 사자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바벨론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나의 종"이라고 불렀던 것(12:7~8)과는 다른 차원에서 그렇다. 바벨론은 스스로 자신들이 하나님에 의하여 사용되는 하나님의 종이라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실제로 그들은 너무나도 악한 민족이었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민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징계하시는 일에 사용되는" 극히 제한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종"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한 인류의 구원을 이루는 일에 지대한 공헌을 한 하나님의 종이라고 자부심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빌라도 총독이나 가룟 유다나 당시의 제사장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일에 사용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 바벨론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들은 교회를 어지럽게 하고 힘들게 하는 무리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목사의 잘못을 비방하기도 하고, 교회의 문제들을 끄집어내어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무리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이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좀 더 정신을 차리고, 좀 더 본질로 돌아가게 되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그들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종의 기능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긍정적인 의미의 하나님의 종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들이 어떤 포장으로 자신들을 정당화하든 말이다. 우리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한다. 바벨론처럼 혹은 가룟 유다처럼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였다고 자부심을 가질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2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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