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락교회 2대 담임목사였던 박조준 목사(갈보리교회 원로·79). ⓒ뉴스앤조이 이용필

영락교회 2대 담임목사였던 박조준 목사(갈보리교회 원로·79)는 군사정권 시절 권력과 불화했다. 쿠데타로 들어선 전두환 정권은 박 목사에게 국가조찬기도회 설교를 요청했지만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대통령의 미국 순방에 동행할 것을 암암리에 강요하기도 했지만 박 목사는 거절했다.

그는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전 정권을 못마땅해했다. 자연스럽게 설교에서는 대사회적 비판이 이어졌다. "남산에서 죽이네, 살리네 하는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바른 말을 해야 하지 않느냐"며 당시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회고하는 박조준 목사. 40여 년 목회 인생을 돌아보기 위해 7월 4일 CBS '크리스천 NOW'에 출연한 박 목사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전두환 씨는 머리가 좀 나빠. 조금이라도 자기 칭찬하면 달갑게 듣는데…독재하는 사람이 강한 것 같지요. 천만에요, 약해요. 조금만 바른 소리하면 부들부들 떨면서 나 어떡해야 하는 거냐고 해요.", "미안한데 전두환 씨를 대통령으로 보지도 않아요. 인간으로도 보지 않아요. 역적이야, 재산이 29만 원? 벼락 맞을 이야기지."

박 목사는 약 30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외화 밀반출 사건 이야기도 꺼냈다. 1984년 6월 21일 자 <경향신문>를 보면 "거액이 예금된 미국 은행의 예금통장과 현금·증권 등 25만 달러(약 2억 원)를 외국으로 빼돌리려던 목사 부부가 세관에 의해 적발됐다"고 나와 있다. 목사 부부는 박 목사 부부였다. 박 목사는 이 사건으로 구속 기소돼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김종희 <뉴스앤조이> 대표가 "(적발된 돈이) 목사님의 돈이 아니었느냐"고 묻자, 박 목사는 "내가 그 돈이 왜 필요해요"하며 강하게 부정했다. 박 목사는 당시 휠체어를 이용해 비행기에 탑승할 만큼 몸이 좋지 않았다면서 수술을 받기 위해 미국에 가는 길이었다고 했다. 수술비는 교회에서 지급했기 때문에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고 했다. 박 목사는 이 사건의 배후는 당국이라고 지목했다. "요즘 정보부(국정원) 때문에 말이 있는데, (당시) 정보부에서 다 해 놓은 것"이라고 했다.

지금의 국정원 사태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내뱉었다. 미국의 CIA처럼 국정원은 간첩을 잡는 데 필요하지만, 정치에 관여해 여론 몰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박 목사는 "국정원을 폐지하는 게 상책이다. 잘못된 것은 국민에게 지탄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 박 목사는 박정희·전두환 정권 얘기, 약 30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외화 밀반출 사건 이야기도 꺼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1973년 박 목사는 3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한경직 목사의 뒤를 이어 영락교회를 이끌었다. 부목사 6년을 포함 19년 동안 영락교회에서 재직했다.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당시 정치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유신 시절 박 목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 차지철과 인연이 깊었다. 차지철의 어머니는 영락교회 권사였다. 청와대 경호실에서 월요일마다 30분씩 설교를 했고 차 씨가 10.26 사건으로 죽었을 때는 장례를 집례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박 목사는 5.16 군사 쿠데타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정국이 안정되면 군복을 다시 입고 돌아간다고 해 놓고, 결국 눌러앉았다고 꼬집었다. "사람이라는 게 약해. 권좌에 앉으니까 말하는 대로 척척 되거든. 밑에서 '각하', '각하'하니까 유신을 한 것 아닌가."

한국교회를 향한 고언도 이어졌다. 갈수록 대형화와 세속화, 세습으로 사회의 염려 대상이 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박 목사는 성경이 말하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빛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소금이 맛을 잃으면 어떻게 된다고 했는가. 길가에 내버려져 짓밟히는 존재가 된다."

말씀을 강조하는 한편 말씀이 세상과 짝을 하면 능력이 없어진다고 했다. 교회가 기업화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내비쳤다. "목사가 (교회에) 지분을 내놓으라고 하는 말까지 들리는데,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다. 교회가 구멍가게인가."

교회는 목사 이상 클 수 없기 때문에 목사의 사명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박 목사는 말했다. "독선적인 말 같지만 목사가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든든히 서서 문자 그대로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바른 길을 걸어 나갈 때 한국교회는 살 수 있다."

외화 밀반출 사건으로 영락교회 담임목사에서 물러난 박 목사는 1985년 독립 교회인 갈보리교회를 창립하고 2003년 1월까지 이끈 뒤 원로목사로 물러났다. 후임으로 이필재 목사가 청빙됐고, 박 목사는 이·취임식을 마치자 곧장 미국으로 떠났다. 원로목사와 담임목사의 관계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와 같다고 생각한 박 목사가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미국으로 건너간 박 목사는 세계지도력개발원을 세우고, 10년간 신학 트레이닝이 부족한 목회자들을 지원하며 집회를 해 왔다. 박 목사는 사례비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다 지난 4월 박 목사는 영구 귀국을 결정했다. 생전 미국 여행을 100번 이상했지만, 정작 살아 보니 다른 점이 너무 많았고, 이민 교회 형편은 생각했던 것보다 열악했다는 것이다.

이필재 목사의 은퇴를 앞둔 갈보리교회는 현재 후임 목사 청빙을 진행 중이다. 이 때문에 박 목사의 귀국 시점을 석연찮게 여기며 그의 행보를 눈여겨보는 시선도 있다. 박 목사는 잘라 말했다. "(후임 청빙에) 관계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박 목사는 갈보리교회의 창립자로서 다른 것은 다 바뀌어도 정신만은 살아야 한다고 했다. 정신은 바로 '장로 없는 교회'를 뜻했다. 갈보리교회는 지금껏 장로 제도를 두지 않았다. "처음에는 '장로도 없는 교회가 교회냐'는 오해를 많이 받았지만, 잘 서 나가고 있다. 여느 교회 부럽지 않은 긍지를 가지고 있다." 박 목사가 장로 없는 교회를 추구하는 이유는 영락교회에서의 경험 때문이다. 그는 과거 한경직 목사가 장로들 때문에 눈물 흘리는 모습을 많이 목격하며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지금의 (교회) 문화는 장로들이 목사의 목회에 간섭하고 브레이크 하는 걸로 인식돼 있다. 장로가 계급화된 것 같은 그런 인식을 받는다."

초기 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회(한독선연·송용필 연합회장)를 이끌었던 박 목사는 한독선연에서 발생한 공금 횡령과 무분별한 회원 가입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관련 기사 : 한독선연, 전 총무 횡령 혐의 고소) 박 목사는 현재 한독선연에 가입된 교회만 4000개(편집자 주-2013년 한독선연 3월 회보에는 약 3000개로 나온다) 정도 된다면서 사람이 하니 본래 생각과 다른 일이 벌어져 지탄의 대상이 됐다고 했다. 그러나 "한독선연이 참신한 방향으로 가기 위해 움직이고 있고,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라고 했다.

▲ 방송은 토요일 오전·오후 10시 CBS '크리스천 NOW' 2부에서 시청할 수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한편 박조준 목사는 지난달 24일 <국민일보>에 림택권 목사 등 4인과 함께 한독선연 탈퇴 공고를 냈다. <뉴스앤조이>의 취재 결과 박 목사는 이들과 함께 새로운 독립교회 연합체를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인 것으로 확인했다. 박 목사는 한독선연이 본래 취지와 달리 정치적인 단체가 되어 순수한 독립교회 연합체를 만드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독선연 탈퇴자들의 행보와 관련해 다양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후임 목사 청빙 중에 있는 갈보리교회에서도 박 목사와 관련한 잡음이 들려오고 있다.

방송은 토요일 오전·오후 10시 CBS '크리스천 NOW' 2부에서 시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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