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1장은 소발의 두 번째 말(욥 20)에 대한 욥의 답변이다. 욥기 20장에서 소발은 악인은 이 세상에서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요지로 말을 하였다. 이러한 소발의 주장에 대하여, 욥은 21장에서 악인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되받아친다.

욥은 자신의 말을 자세히 들어 보라고 한다(1~2상). 그리고 이것이 자신을 위로해 주는 말이 되기를 소망한다(2하). 나의 말을 들어 보고, 그 후에야 나를 비웃든지 조롱하든지 하라고 부탁한다(3). 욥은 자신이 지금 원망과 불평을 내어놓은 것은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는 하나님께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4상). 그는 지금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답답하고 조급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4하). 욥이 처한 상황을 보면 사람들이 그 처참한 모습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할 것이다(5). 현재 욥이 당하고 있는 처참한 고난을 생각만 해도 두렵고 떨리며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한다(6).

이제 7절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욥은 소발의 논지(욥 20)에 대하여 반박한다. 악인이 이 세상에서 반드시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악인이 장수할 뿐만 아니라 그 권세가 약해지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7). 악인들의 자녀들은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는다(8). 악인들의 집은 평안하고 두려움도 없으며, 하나님의 책망의 매가 임하지도 않는다(9). 악인들의 집에 있는 소들은 새끼를 낳는데 유산하지도 않는다(10). 악인들의 자녀들은 양떼와 같이 다니고 춤을 추며 악기를 연주하며 흥에 겨워 지낸다(11~12). 악인들은 유복하게 지내다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이 빨리 죽는다(13).

악인들은 하나님을 멀리하면서 하나님의 법도를 알려하지 않는다(14). 악인들은 전능자 하나님을 섬기기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기도할 이유도 발견하지 못한다(15). 그럼에도 악인들은 번성할 뿐이다(16상). 개역개정 성경은 16절 상반절을 "그러나 그들의 행복은 그들의 손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오히려 "그들의 번영이 그들에 손에 있지 않는가?"로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욥은 말한다. 자신의 삶은 그러한 악인의 생각과는 다른 삶이었다(16하).

그런데 그러한 악인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지 않으셨다. 악인이 등불이 꺼지거나, 재앙이 악인들에게 닥치거나,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그들에게 고통을 더하신 일이 몇 번이나 있었던 말인가(17)? 악인들이 바람 앞에 날리는 지푸라기와 같고 폭풍에 날려 가는 겨와 같이 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 말인가?(18) 개정개역 성경은 18절을 "그들이 바람 앞에 검불같이 폭풍에 날려가는 겨같이 되었도다"고 번역하고 있는데, 오히려 이것은 의문문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점에서 옛 개역성경이 개정개역보다 더 나은 번역이다. 도무지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심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대하여 욥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아마 이러한 사실을 보면서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하나님은 악인들의 죄악을 그들의 자손들에게 갚으실 것이라고 말이다(19). 개역개정 성경은 19절을 욥의 바람인 것처럼 번역하고 있으나, 오히려 이것은 욥의 생각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역시 이점에서도 옛 개역성경이 개정개역보다 더 나은 번역이다. 사람들은 악인들이 지금 당장은 심판을 받지 않지만, 악인들의 후손들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악인들이 지은 죄가 있다면 그들 자신이 멸망을 받아야 하고 그들이 전능자의 진노를 당해야 할 것이다(20). 만일 그들의 달이 다 지나가고 죽어 버리면, 그 후에 그 악인들의 집이 하나님의 심판을 당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21)?

그런데 우리가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방식대로 행동하지 않으신다고 하여서, 우리가 어찌 하나님께 지혜를 가르칠 수 있으랴? 하나님은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마저도 심판하고 재판하시는 분이 아닌가?(22).

어떤 사람은 죽을 때까지 기운이 넘쳐 나고 평안한 삶을 누리며(23), 그의 그릇에는 우유가 가득하고 그의 골수는 윤택이 넘친다(24). 하지만 어떤 사람은 마음에 고통을 고통 가운데 죽으며 단 한 번도 풍요를 맛보지 못한 채 죽게 된다(25). 그런데 이들이 죽어서는 똑같이 흙에 묻히게 되고 똑같이 구더기들이 덮이게 된다(26). 악한 자나 그렇지 못한 자나 죽은 다음에는 모두 그 육신이 똑같이 흙에 묻히고 구더기에 덮이게 되는 것이니, 악인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욥은 질문한다.

내가 너희들의 생각을 안다. 또한 너희가 나를 해하려는 생각도 안다(27). 너희들은 말한다. 왕자의 집이 어디 있느냐? 악한 자가 살던 장막이 어디 있느냐?(28). 즉 너희들은 악한 자가 잘되는 법이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너희들은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지 아니하였느냐? 그들이 말하는 바를 듣지 아니하느냐?(29) 사람들은 말한다. 악한 사람은 재앙의 날에도 살아남았으며, 진노의 날에 구원을 받았다(30). 여기서 개역개정 성경의 번역은 마치 악인들은 결국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라는 의미로 번역되었으나, 오히려 악인들은 진노를 피해 간다는 의미로 번역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욥의 친구들은 악인이 형통하지 못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악인이 형통하고 심판을 면하게 되는 경우가 많음을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고 욥이 말하고 있다.

누가 그 악인이 행한 것을 공표하며, 그 악인이 행한 것을 보응하겠는가(31)? 악인이 행한 그 악은 드러나지도 않고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이 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무덤으로 내려갈 때에 무덤을 지키게 될 것이다(32). 악인이 죽을 때 오히려 더 화려한 장례가 뒤따른다. 골짜기의 토양이 그에게 달게 느껴질 것이다(33상). 땅도 그의 시신을 반기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모든 사람들이 그 뒤를 따를 것이고, 그보다 앞서 간 사람들도 셀 수가 없이 많다(33하). 악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똑같이 죽어 무덤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악인의 죽음이나 의인의 죽음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일이 이러하거늘, 어찌 너희가 나를 헛되이 위로하려 드느냐? 너희들의 말은 거짓일 뿐이로다(34). 욥은 악인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심판한다는 소발의 말이 타당하지 않으며, 따라서 소발의 말은 욥의 상황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헛된 소리에 불과하다고 답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욥은 21장에서 악인이 악을 행하며 살아도 하나님께서 그 악행을 심판하지 않고 그 악인이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며, 다른 일반인들의 죽음과 같은 죽음을 맞이하는 그런 불합리에 대해서 불평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욥은 영혼에 대한 것을 다루지 않았다. 만일 영혼의 문제를 다룬다면, 악인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임을 누구든지 동의할 것이다. 욥이 죽음 이후 영혼의 문제를 다루지 않은 이유가 있다면, 소발도 20장에서 영혼에 대한 문제를 다루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소발은 악인이 '이 세상에서' 심판을 반드시 받을 것이라고 논지를 펴 내려갔다. 이러한 논지는 욥이 이렇게 고난을 당하는 것은 욥이 악한 자였기 때문이라는 영적인 비판을 에둘러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욥은 악인이 이 세상에서는 심판을 당하지 않는 경우가 있음을 말하면서, 자신의 고난이 억울함을 항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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