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생 시절, 갑자기 어려서부터 다닌 교회에 회의가 밀려들었다. 현실의 불의와 악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오직 피안의 세계만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목사. 그러면서도 누구보다 이 세상의 성공과 부를 갈망하며, 화려한 건축을 부흥이라고 외치는 교회. 차안과 피안이 뒤죽박죽 섞여 버렸다. 김광석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이란 노랫말 가사가 떠오른다. 뭔가 대단히 잘못되었다. 어디서 꼬였는지 몰라도 심하게 꼬였다. 결국 휴학계를 내고 신학교를 떠났고, 20년간 다니던 교회마저 떠났다. 그 후로 교회는 필자의 화두가 되었다.

교회란 무엇인가?

▲ <자유인의 교회 : 향린교회를 말하다> / 김진호 외 12인 지음 / 한울 펴냄 / 398면 / 2만 8000원
'교회란 무엇인가?' 이 물음은 현재 한국교회의 화두다. 불의와 무자비, 생존 경쟁이 난무하는 이 땅에 '교회'가 무엇인지를 삶으로, 온몸으로 답해야 할 한국교회가 답을 잃어버렸고, 잊어버렸다. 교회에 관한 책들은 범람하지만, '이것이 교회다'라고 보여 주는 곳은 찾기 어렵다. 세계에서 가장 큰 50개의 교회들 중에 23개를 가지고 있고, 서울에만 만 명이 넘는 교회가 15개나 되지만, 우리가 믿고 본받을 만한, 자랑할 만한 교회와 존경할 만한 스승을 찾기 어렵다. '메가처치'를 꿈꾸는 자는 윌로우크릭이니 새들백, 레이크우드를 찾아다니고, 작지만 영향력 있는 교회를 꿈꾸는 자는 세이비어교회에 열광한다. 솔직히 한국교회는 '성장'에 집착하다가 '교회의 본질'을 상실했다. 이웃의 고통에 동참하는 유일한 방편은 '질병 치유'와 '기복'으로 제한하고, 이 땅에서 자행되는 악한 권력에 저항하기보다는 순응하는 삶을 가르쳤다. 그러면서 왜 한국에는 세이비어교회가 없냐고 개탄한다. 이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향린 교회란 무엇인가?

본서는 향린교회가 60주년을 맞이해 자신을 돌아보며 쓴 책이다. 13명의 글쓴이 중 6명이 향린교회 교인이고, 3명이 향린교회 담임목사와 부목사, 나머지는 외부에서 사역하는 교수 및 목사들이다. 저자가 많으면 글이 산만해지거나 중복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현장 교회 이야기는 종종 눈물샘을 자극하는 신파조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그것은 괜한 기우였다. 왜냐하면 이 책은 진보교회의 지식인들의 자기 교회에 대한 홍보 책자가 아니라, 교회의 본질과 한국교회의 현대사를 담아 내고 있으며, 교회의 성찰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향린교회는 민중 신학 하는 진보적인 교회요,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읽으며, 국악 찬양으로 예배하는 토착 교회로 유명하다. 일주일에 딱 한 번 공예배가 있고, 목사만이 아니라 평신도도 설교하며, 설교를 '하늘뜻펴기'로 부르고, 담임목사의 카리스마보다는 교회 전체가 긴 토론을 통해 의사를 결정한다. 예배당에만 갇혀 있지 않고, "교회당을 벗어나 아픔과 고통이 있는 현장으로 직접 찾아가 예배"(189쪽)하기도 하며, 목사가 독재국가에 항거하는 설교를 하다가 투옥되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향린교회는 "진보적인 교회의 대명사요, 탄식이 끊이지 않는 사건의 현장에서 강도 만난 이웃들의 손을 잡아 주고 연대 투쟁을 이어가는, 정치색이 짙다 못 해 너무나 뚜렷하여 공격받기 일쑤인 교회다"(248쪽).

향린의 역사에서 한국교회 현대사를 읽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필자는 이 책이 단지 향린교회라는 한 교회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교회의 현대사를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향린이 역사의 변두리에서 고통의 현장을 외면한 채 '저 천국’만을 노래한 교회가 아니라, 불의한 체제 속에서 순응하지 않고, 민중의 고난의 현장에서, 민중의 편에 서서, 그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악한 권력에 담대히, 그리고 끝까지 저항하는 사역을 펼쳐 왔기 때문이다. 향린의 이 같은 사역은 "참된 기독교인으로 살아 나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45쪽)이었다. 한마디로 향린교회는 한국교회 현대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

향린교회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발견하다

한국교회는 담임목사 1인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구조다. 카리스마적 목사가 계시를 독점하고, 설교나 축도권을 쥐고 교인들을 쥐락펴락 통제해 왔다. 평신도는 목사의 말에 복종해야 하고, 목사는 어디를 가든 극진한 대접을 받는 것을 당연시하였다. 하지만 향린은 이러한 현상을 독재 정권의 그림자가 교회 안으로 잠식해 들어온 것으로 보았다. 교회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담임목사의 주도 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교회가 아니라, 이성적 토론과 민주적 의사 결정과 소통을 중시하였다. 서슬 퍼런 독재 정권을 향해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며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는 목소리만 높인 것이 아니라, 세상과 다른 공동체, 즉 독재 정권과 대조되는 민주주의 가치관을 교회에 이루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화두에 '향린교회가 답하다'

선교가 교회의 존재 목적임을 분명히 한 향린교회는 선교의 초점을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를 선포하고 구현하는 일"(252쪽)이라 정의하였다. 그들은 이 땅의 고통받고 있는 민중과 고난을 같이하며, 궁극적으로 이 땅에 희년 공동체를 세우는 것을 교회의 본질적 가치로 여겼다. 향린교회 목회자들은 다 자신들의 신앙적 고뇌를 평신도들과 함께 나누며, 신학적 탐색을 함께해 나간다. 향린교회 이야기를 통해 교회가 마땅히 있어야 할 주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향린은 '성령'과 '구원'과 '천당' 등 몇 가지 단어로 조제한 만병통치약을 처방하지 않고, 오히려 시대적 아픔의 현장에 머물러 있으려 노력했다. 그들은 아픔의 현장으로 달려가, 그곳에서 기도했으며, 그들의 상처를 치료해 주어야 하고, 그들이 회복될 때까지 시간과 재정을 투자했다.

<메가처치 논박>에서 신광은 목사는 한국교회의 크기에 대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성장해야 한다고 말하는 교회는 더 많았다. 그러나 교회가 어디까지 성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는 교회는 단 한곳도 없었다"(21쪽)고 말했다. 하지만 안병무 박사는 이미 1952년에 교인의 최대치가 200명이고, 자신에게 알맞은 교인 수는 최대 100명 이내라고 말했고, 1987년도에는 최대 적정치를 50명이라고 말하였으며(302쪽), 또한 향린교회는 500명을 최대치로 설정했다.

일전에 정용섭 목사가 향린교회 조헌정 목사의 설교를 비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헌정 목사는 낭만적 평화 원리주의자에 지나지 않으며, 기존교회 목사의 설교가 '값싼 은혜'에 떨어졌다면 조목사의 설교는 '무거운 은혜'에 떨어졌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향린교회는 에덴의 회복을 꿈꾸는 예언자적 이상주의자요, 값싼 은혜만이 난무하는 가운데, 실천으로 값진 은혜를 만들어 가는 진정한 '세이비어'교회라고!

전남식 / 대전 꿈이있는교회 목사·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KAC)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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