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양시 호계동에 위치한 A교회. 이 교회를 개척한 원로목사의 아들 김 아무개 목사 위임식을 지난 5월 24일 금요일에 조용하게 치렀다. 손님들을 많이 초청해 잔치 분위기로 치르는 여느 위임식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이날 위임식의 내막에는 지난 9년간 A교회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 안양시 호계동에 위치한 A교회. ⓒ뉴스앤조이 한경민
이날 김 목사의 위임식은 처음이 아니었다. 2008년 김 목사는 당연히 거쳐야 할 법 절차인 공동의회 결의를 거치지 않고 담임목사가 되었다. 노회의 청빙 허락까지 받고 위임식을 치렀지만 강하게 반발한 교인들이 있었다. 그들이 반발했던 데는 그가 세습했다는 것, 법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는 것 외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김 목사는 2004년 2월 자신이 이끌던 A교회 수련회에서 당시 16세였던 P양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피해자의 말에 따르면 김 목사는 숙소에서 자고 있던 P양의 몸을 만지고, 자신의 바지 속으로 P양의 손을 집어넣었다. P양은 이를 부모에게 알렸지만 A교회 중직자였던 P양의 부모는 김 목사가 교회를 떠나길 기대했을 뿐, 딸을 보호하기 위해 김 목사를 고소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김 목사는 교회를 떠나지 않았고, 성추행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P양은 김 목사를 피해 다녀야 했다.

4년 후 김 목사가 담임목사가 되자 P양의 가족을 비롯해 일부 교인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성추행 이야기가 수면 위로 올랐다. 그러자 위임식까지 치른 김 목사는 돌연 미국으로 떠났다. 그가 돌아오기까지 목회는 원로목사가 다시 맡았다.

성추행 피해자에게 사과했다가 돌연 번복

김 목사는 2011년 7월 교회로 돌아왔다. 그가 담임목사로 강단에서 설교를 하기 시작하자 잠잠했던 교회는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P양은 성인이 된 후에도 과거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해, 김 목사와 비슷한 체격의 남자만 봐도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을 성추행한 김 목사는 7년간 용서도 구하지 않고, 버젓이 담임목사가 되어 있었다. P양은 영화 '도가니'를 보고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용기를 냈다. 시간이 흘렀지만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P양과 가족은 성추행 사건을 교인들에게 알리고 교회에도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미안하다. 죽을죄를 지었다. 그때 너한테 무릎 꿇고 빌었어야 했는데, 아마 평생을 다해서 속죄해야 할 것 같아. 난 네가 용서하기 전까지는 성이라는 단어도 입에 못 달고 설교도 못 할 거야. 미안하다"

2012년 1월 초, 김 목사는 8년 만에 P양을 찾아가 용서를 구했다. 그는 지난 8년 동안 우연히 만나서라도 직접 용서를 구하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다며 이제 교회를 떠나겠다고 약속했다. 교회에 사직서도 제출했다.

하지만 김 목사는 3일 만에 사직 의사를 번복하고 혐의를 부인했다. 교인들 앞에서 P양을 보호하기 위해 하지도 않은 일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P양은 약속을 어긴 김 목사를 고소했다. 그러나 이미 성추행 공소시효가 지나 검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을 했다.

"피해자 아버지 협박받아 성추행 시인…믿어 주는 교인들 때문에 안 떠나"

김 목사의 태도는 돌변했다. 그는 P양 아버지가 원로목사인 아버지와 자신을 쫓아내기 위해 딸을 이용해 헛소문을 퍼트렸다고 주장했다.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했다는 사법경찰관의 의견서를 교회 게시판에 붙여 놓기도 했다. P양과 가족은 김 목사의 말을 믿는 교인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상담을 통해 P양을 도왔던 군포여성민우회 성폭력 상담소 등 피해자의 사정을 들은 일부 시민 단체는 A교회 앞에서 김 목사를 규탄하는 시위를 열고, 담당 경찰서를 찾아가 항의하기도 했다. 이런 일들은 작년 9월 JTBC '진실 추적자 탐사 코드 28회'에 보도되기도 했다. (바로 가기 : 진실 추적자 탐사 코드 28회)

<뉴스앤조이> 취재에서도 김 목사는 모든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P양을 찾아가 용서를 구했던 것은 협박과 회유를 당해 어쩔 수 없이 한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김 목사는 "피해자의 아버지가 20년간 교회 재정장로로 있으면서 아버지(원로목사)의 흠을 많이 잡았다며, 그것으로 나를 협박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피해자가 제시한 증거가 성추행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사법경찰관의 의견이 담긴 서류를 기자에게 보여 주며 자신은 사법적으로 아무런 혐의가 없다고 강조했다.

교회에 사직서를 내고 이를 번복한 이유에 대해서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 목사의 설명을 종합해 보면, 그는 피해자 가족의 협박을 받고 자신이 교회를 떠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으로 생각해서 사직서를 냈고 신변을 정리했다. 그러나 자신을 믿어 주는 교인들이 집으로 찾아와 떠나면 안 된다고 간곡히 설득했고, 번복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 A교회 앞에서 시위하는 군포여성민우회원들. (사진 제공 A교회 교인)

노회, 성추행 혐의 알고도 묵인…화해위의 석연찮은 중재

장로와 안수집사를 중심으로 김 목사를 반대하는 교인들은 그의 성추행 혐의와 불법 담임목사 추대, 그리고 원로목사의 재정 횡령 혐의를 문제 삼으며 비상대책위원회를 조직했다. 비대위는 2008년 김 목사가 A교회 위임목사가 된 것은 불법이라며 소를 제기했고, 법원은 비대위의 손을 들어줬다. A교회 공동의회에서 김 목사를 위임목사로 세우겠다는 결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 4월 법원은 김 목사의 위임목사 직무 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고, 12월 본안 소송에서도 A교회가 김 목사를 위임목사로 결의한 일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직무가 정지됐지만, 김 목사는 노회에서 설교 목사로 파송 받았다며 교회에 계속 나왔다. 어찌 된 일인지 A교회가 소속된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 측 한성노회는 김 목사의 성추행 혐의를 알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대신 직무 정지가 된 김 목사를 대신해 당시 노회 정치부 목사였던 최 아무개 목사를 임시 당회장 목사로 파송했다.

이후 노회는 A교회 분쟁을 수습한다는 이유로 임시 당회장으로 파송한 최 목사의 권한을 정지시키고 '화해조정위원회'(화해위)를 결성했다. 화해위는 활동 중 소요되는 비용(예배 인도, 회의 소집, 행정 비용 등)에 대해 예탁금 명목으로 A교회 김 목사 측과 비대위 측에 각각 천만 원을 요구했다.

지난 3월 화해위는 A교회 공동의회를 소집했다. 교인들은 이 공동의회에서 비대위 측 교인들이 개척 자금을 받아 분립하고, 김 목사를 A교회 위임목사로 세우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피해자 가족은 이에 반발해 비대위를 탈퇴했다.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비대위에 참여한 것이지 교회로부터 돈을 받고 떠나기 위해 싸움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김 목사 반대 측 비대위 결성했으나 개척 자금 받고 분립하기로

함께 반발한 일부 교인들은 화해위가 소집한 공동의회의 결의가 무효라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미 법원이 화해위는 공동의회를 소집할 권한이 없다며 공동의회 소집 금지 가처분 결정을 내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성노회는 화해위가 A교회 임시 당회장의 권한을 대신하기 때문에 공동의회를 개최한 데에 어떤 문제도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목사 측 교인들도 법원 가처분 결과를 무시하고 공동의회 결과를 밀어붙여 5월 24일 위임식을 치른 것이다.

분립 개척을 택한 비대위 측 교인들은 다른 곳에 예배 공간을 얻어 따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분립 개척에 참여하지 않는 피해자 가족과 일부 교인들은 지금이라도 김 목사의 성추행 혐의를 제대로 밝히고, A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끝까지 싸운다는 입장이다.

바로잡습니다. A교회 목사 위임식은 5월 24일 금요일 저녁이 아니라 오전 11시에 열렸습니다. 해당 부분을 수정했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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