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장합동 총회 실행위원회가 통과시킨 개정 선거법을 다시 인준하는 촌극을 벌였다. 개정안을 받지 말고 총회 결의를 지키자는 의견이 다시 한번 제기됐지만 압도적인 차이로 개정 선거법은 통과됐다. ⓒ마르투스 이명구

총회 결의를 무시해 소송에 걸릴 위험에도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 실행위원회가 선거법 개정안을 다시 한번 통과시켰다. 실행위는 5월 1일 총회 회관에서 회의를 열고 개정 선거법 인준 절차를 밟았다. "총회 임원 후보는 세례 교인 500·300명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항을 삭제한 개정안을 철회하고 총회 결의대로 하자는 의견은 또 묵살됐다.

거침없이 개정안 통과, 60명 중 56명 찬성

회의에서는 개정안을 두고 또 다시 설전이 벌어졌다. 백남선 목사는 선거법 개정안을 아예 실행위 안건으로 상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백 목사는 "지난 실행위에서 개정안을 통과시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선거법개정위나 실행위나 총회에서 맡긴 일만 해야지 법을 바꾸거나 만들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이영신·정중헌 목사는 개정된 선거법을 그대로 받으면 총회에 더 큰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목사는 "실행위는 총회에서 맡긴 것만 다뤄야 한다. 이 이상 진행하지 말고 총회에서 결정한 대로만 하자"고 말했다. 그는 "세례 교인 수 제한을 두는 조항이 피선거권을 제한한다고 해도 실행위에서 다룰 문제는 아니다"고 덧붙였다.

정중헌 목사는 실행위가 순리를 쫓지 않고 정치만 쫓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요즘 실행위가 총회 위에 있다는 비난이 쏟아진다며 많은 노회가 실행위를 폐지하자는 헌의를 했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 노회들, 실행위원회 '물갈이' 주문) 정 목사는 "세례 교인 수 조항이 부당해서 없애더라도 총회에서 해야 한다"며 "제발 순리대로 가자"고 호소했다.

▲ 백남선 목사는 회의가 시작하자마자 선거법 개정안을 안건으로 상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하다고 발언했다. 실행위나 선거법개정위가 법을 만들거나 바꿀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마르투스 이명구

반면, 개정 선거법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미 끝난 얘기라며 맞섰다. 실행위원 전체적으로 지난 2월 27일 회의에서 갑론을박을 벌인 후 결정된 사항이니 이번에도 그냥 통과시키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김영우 목사는 이날 회의가 개정 선거법의 내용을 논하는 자리가 아니라고 못박았다. "지금은 선거관리위원회가 받은 개정안을 인준하는 자리지, 개정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자는 게 아니"라고 김 목사는 말했다. 그는 선거법개정위가 선거법을 전반적으로 개정한 것에 무리가 없으며, 총회장의 리더십 문제가 교회 크기에 있는 게 아닌데 유난히 세례 교인 수 조항에만 집착하는 것은 정치적 접근이라고 비판했다.

선거법개정위 서기였던 고광석 목사도 "상반된 의견들은 이미 공청회에서 다뤘다. 지난 실행위에서도 난상토론을 벌였다. 선관위에서도 통과됐고 교단지에 2번이나 공고됐다. 이 시점에서 개정안대로 시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발언했다. 황규철 총무도 "개정안을 인정할 수 없다면 지난 회의에서 막았어야지 지금 다시 논할 수는 없다"고 거들었다.

결의 과정에서 거수로 개정안 반대 의사를 표한 위원은 60명 중 고작 4명에 불과했다. 끝까지 반대 의견을 고수한 한 목사는 "실행위원들에게 기대하지도 않았다"며 "총회에서라도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 김영우 목사는 선관위가 개정안을 상정했으니 실행위는 인준만 하면 된다고 발언했다. 또 유독 세례 교인 수 조항에만 집착하는 것은 정치적 접근이라고 비난했다. ⓒ마르투스 이명구

이전 결의는 '예행연습'…예고된 소송도 불사

이날 실행위는 이미 2월 27일 회의에서 통과시킨 개정 선거법을 다시 인준하는 촌극을 벌였다. (관련 기사 : 총회 결의 뒤엎은 선거법 개정) 선거법 개정 때문에 소송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뒤늦게라도 절차를 밟으려 한 것이다.

서중노회 배재군 목사는 지난 4월 17일 선거법을 원래대로 돌려놓지 않으면 사회법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내용증명을 정준모 총회장과 선거관리위원장 이기창 목사, 서기 고영기 목사에게 보냈다. 선관위는 이를 접수하고 위원회 차원에서 다룰 수 없는 내용이라며 총회 임원회로 보냈고, 임원회는 같은 이유로 실행위로 미뤘다.

▲ 황규철 총무는 이날 회의가 개정 선거법으로 인한 소송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실행위 결의가 '예행연습', '해프닝'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고 기자들에게 브리핑했다. ⓒ마르투스 이명구

배 목사는 내용증명에서 선거법개정위 명칭과 활동이 모두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97회 총회가 결의한 내용은 절충형 선거제도를 연구 및 시행할 5인위원회였다고 명시했다. 전체적인 선거법 개정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선거법개정위가 총회에서 결의된 선거 규정을 무효화하고 새로운 규정을 만든 것은 불법이라고 했다. 배 목사는 총회 선거 규정은 총회에 보고해 인준을 받은 후 적용 및 실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행위는 선관위가 개정안을 실행위에 상정한 셈 치고 이를 인준하는 모양을 택했다. 선관위는 지난 3월 25일 선거법 개정안을 그대로 받았다. 당시 총회 결의와 다른 개정안 때문에 논쟁이 벌어졌지만 실행위가 이미 안건을 통과시켰기 때문에 번복하기 어렵다고 선관위는 결론지었다. 실행위의 영향으로 선관위가 개정안을 받았는데, 이를 다시 실행위가 인준하는 꼴이 됐다.

황규철 총무는 이전 실행위 결의가 '예행연습'이었다고 말했다. 황 총무는 회의가 끝난 후 브리핑에서 "오늘 회의는 소송이 걸릴 수 있으니 절차를 제대로 하자는 의미였다"며 "지난 2월 27일 회의는 하나의 해프닝, 예행연습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총회 대신 실행위가 선거법을 인준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당장 6월부터 후보 등록을 해야 하는 긴급한 상황이니 실행위가 총회를 대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행위는 이날 결의를 배재군 목사에게 통보하기로 했다. 선거법개정위가 법적인 하자가 없고 개정안은 절차를 거쳐 인준되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배 목사가 사회법으로 간다면, 피소자가 될 정 총회장에게 자문위원 5인을 선정해 대응할 수 있는 권한까지 줬다.

실행위 결의를 들은 배 목사는 결국 사회법 소송 의사를 밝혔다. 그는 실행위 결의에 유감을 표하며 선거 규정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권효 / <마르투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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