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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은 구원의 조건인가, 구원의 결과인가
알렌 크라이더의 <회심의 변질> (대전: 대장간, 2013)을 읽고
  • 성기문 (ksung65@gmail.com)
  • 승인 2013.04.22 02:36

   
▲ <회심의 변질> / 알렌 크라이더 지음 / 박삼종,신광은,이성하,전남식 공역 / 대장간 펴냄 / 208쪽 / 1만 원

이 책이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한국교회에 진정한 회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진정 죄를 뉘우치지 않고 종교적인 삶을 사는 자들이 신자로 그리스도인으로, 결국 그리스도와 교회를 욕보이고 어지럽히며 세상을 문란(紊亂)케 하지 않은가?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이와 같은 기독교 신앙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회심'을 역사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책이 나와서 즐겁다.

이 책을 통하여 저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통하여 회심의 정의와 변절의 과정을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1) 초기 교회에서 나타난 회심의 본질-신념, 소속, 행동- (2) 회심의 변질된 속성을 연대기적으로 탐구-여기서 저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 아우구스티누스, 케사리우스의 영향력에 특별히 주목한다- (2) 크리스텐덤(Christendom), 걸림돌이나 도전 과제.

본서는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스티누스와 키프리아누스의 회심(1장), 초기 기독교의 매력(2장), 회심의 여행(3장), 콘스탄티누스는 유혹을 확대했다(4장), 대중을 상대로 한 신앙입문 교육: 키릴로스와 크리소스토모스(5장), 반대하는 자들을 유혹하기: 아우구스티누스와 볼루시아누스(6장), 크리스천을 변화시킨다: 아를스의 캐사리우스(7장), 회심의 산물인 크리스텐덤과 기독교의 미래에 대한 몇 가지 단서들(8장).

기독교는 회심의 종교다. 당연히 초대교회 상황을 다루는 신약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기독교 회심을 주로 다룬다. 이것은 주로 '급진적 제자도'로 명쾌하게 규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회심 이야기는 주후 2세기부터 다루어진다. 2세기의 유명한 회심 이야기를 다루어 보자. 유스티누스는 신자들에게 돈과 섹스와 권력과 주술의 문제로 마귀와 대적하라고 촉구하였다. 키프리아누스는 사치하고 풍요로운 삶을 버리고 검소하고 손님 대접하는 삶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 다음은 기독교의 폭발적 증가는 전도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도대체 주변 사람들이 발견한 기독교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가난한 자를 돌보는 삶, 즉 신앙이 삶으로 구현되는 것이었으며, 인내하고 부활의 소망을 버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와 같은 회심의 네 단계는 다음과 같았다. 1)그리스도인과 잠재적 신앙인의 접촉점인 복음 전도 2) 믿음을 인정받으면 신앙 입문 과정 3) 교리적 가르침 4) 신비입문식.

회심의 변질의 첫 번째 단계다. 국가와의 타협에 따른 문제의 시작이다. 엄격한 회심 절차에 대한 예외 조항이 발생하는 것이다. 로마제국에 의한 박해가 끝나고 회심에 대한 변질이 발생한다. 그것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보여 준 신앙적 회심의 모호함이다. 그의 지연된 회심(의 절차와 의식)이며, 신앙 문답도 받지 않았으며 말년에 이르기까지 공동체에 완전히 속해 있지 않았다. 즉 그는 당시의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삶의 단계(회심의 단계)를 제대로 밟지 않았다는 말이다.

회심의 변질의 두 번째 단계다. 국가가 교회의 회심을 통제하게 된다. 그와 같이 공직자들과 지도자들의 회심에 교회의 원칙이 온전히 준수되지 못하더니, 4세기의 개종 정책 도입, 즉 국가권력에 의한 개종(회심) 강제와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주는 정치경제적 유인책(특혜와 금지)이 제공되었다. 그러다 보니, 교회의 회심과 관련된 신앙 문답의 축소를 초래하게 된다. 이후에 시릴루스와 크리소스토무스와 아우구스티누스 시절에는 이와 같은 심각하고 중대한 회심의 절치가 대중적 신앙 문답으로 변질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회심문답의 형식화와 조문에 대한 심오한 이해(예전의 발달)가 실제 삶을 통한 변화나 검증보다 더 강조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결국 교회는 게르만 전도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회심과 삶의 변화에 대한 요구 없이 세례를 주게 되었다. 그때부터 대중 전도나 지역 통치자나 왕의 개종에 따른, 급속한 기독교화의 특징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회심의 변질의 세 번째 단계다. 저자는 그러한 변화 중의 하나로 아우구스티누스가 지지한 유아세례를 꼽는다. 유아세례가 북아프리카에서는 흔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믿음과 삶의 변화의 증거도 없는 유아에게 (신자와 회심의 표 가운데 중요한 최종 단계인) 세례를 베푼다? 그러다 보니, 유아세례를 받는 부모나 후견인들에 의한 대리 서약이 중요하게 되었다. 케사리우스는 후견인들의 책임을 강조하였다.

회심의 변질의 마지막 단계에 이른다. 위에서 말하는 회심의 과정이 너무 복잡해지고 또한 준수가 어렵게 되자, 교회는 수도원 제도를 개발하게 되었다. 복잡하고 정교한 회심 절차는 성직자의 의무로 두고 평신도들에게는 완화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앞서 언급한 콘스탄티누스나 게르만 족의 왕의 회심에는 죄에 대한 참회나 삶의 변화보다는 전쟁의 승리가 주목표가 되며 그것에 대한 약속이 선포된다.

평가와 질문들

회심에는 중대한 삶의 변화가 필요하다. 저자는 국가권력을 통한 회심이나 대중적 회심이나 회심의 예외적 적용이나 회심의 대상의 분리나 회심의 목적의 변질이 회심의 변질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이 문제는 당시나 지금이나 유사한 문제로서 우리에게 심각한 도전으로 다가온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젯거리는 다음과 같다.

과연 초대(신약)교인들이나 교회들도 엄격한 회심의 과정이 적용되었을까? 신약, 특별히 사도행전이나 바울서신이나 요한계시록을 보더라도, 그들 가운데 여전히 문제가 있었고 죄를 짓고 있었고 심지어 배교(背敎)까지 일어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들의 문제는 쉽게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초대교회는 회개하지 않은 죄인들을 수용한 것일까? 회개한 죄인들이 다시 범죄한 것일까?

사실 신약도 문제지만, 저자가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2~3세기 기독교는 문헌 자체가 혼돈이다. 매우 다양한 주장이 난무할 뿐이다. 심지어 개신교나 로마가톨릭교회 모두 자신들의 뿌리가 그곳에 있다고 주장할 정도다. 콘스탄티누스 이전에도 이미 기독교는 로마가톨릭교회로 가는 터를 닦고 있었다. 게다가 많은 학자에 따르면, 그 이전 이미 목회서신만 보아도, 그 성직 계층과 보수성이 보인다고 난리들 아닌가?

마지막 물음은 다음과 같다. 이 책의 회심 논의는 구원이란 즉각적인가 점진적인가를 물어보게 만든다. 구원의 여부가 ('칭의'로서) 일회적인 사건이라면,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이라면, 2~3세기의 경우처럼 복잡한 회심 과정을 거치거나 회심 검증 과정을 거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기독교 학습과 세례문답을 통하여 신앙 교리 교육과 신앙고백을 받아내고, '칭의' 구원 이후의 삶의 열매를 통한 구원을 검증한다고 하지 않는가? 이 책의 저자가 강조하듯이, 회심과 구원이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데, 우리는 (완벽한) 회심이란 구원의 전제 조건인가, 구원의 자연스러운 결과인가를 다시 한번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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