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과 연결해서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여호수아서를 중심으로 큰 그림을 쉽게 그릴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단강 동편에서 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여리고와 아이 성을 무찌릅니다. 이어서 립나, 라기스, 헤브론, 드빌, 하솔과 같은 주요 도시들을 점령하고(수 12:9~24), 기브온과 기럇여아림은 전쟁을 치르지 않고 얻습니다(수 9장). 여호수아 장군의 기민하고 영리한 군사 작전 덕분에 5년 만에 가나안 땅 대부분을 차지합니다(수 14:7, 10).

전쟁을 이긴 뒤에 요단강 동편에서 영토 할당을 받지 않은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땅을 나누어 줍니다. 여호수아서 21:43은 가나안 정복 전쟁을 최종적으로 요약합니다(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사 주리라 하신 온 땅을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에 거주하였으니).

그러나 여호수아서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사사기의 첫 장을 읽어 보면 가나안 정복 이야기는 사뭇 다릅니다. 정밀화인줄 알았던 그림이 추상화가 되어 버린 느낌?

여호수아서와 사사기

여호수아서의 가나안 정복과 정착에 관한 이야기가 사사기에서는 전혀 다른 순서로 나타납니다. 사사기에서는 사건들이 '여호수아가 죽은 뒤에(삿 1:1)' 일어났다고 말하지만 '정복 이후 땅 분배'의 순서가 다릅니다. 사사기에서는 땅이 먼저 분배되고 나중에 정복 전쟁을 벌입니다. 그래서 유다는 형 시므온에게, "내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네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하니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갑니다(삿 1:3). 여호수아서에서는 '온 이스라엘'이 힘을 합쳤지만 사사기에서는 각 지파들이 산발적으로 전투를 할 뿐입니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이 그 땅의 주민을 소탕했다는 여호수아서와는 달리 사사기 1장은 쫓겨나지 않은 20개 도시의 목록이 나옵니다(삿 1:21, 27~33). 여기에는 예루살렘, 벧스안, 다아낙, 돌, 이블르암, 므깃도, 게셀, 벧세메스 등이 나오는데, 여호수아 12:7~24에는 대부분 멸망했다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곳입니다.

여호수아서는 신속한 '정복 이후, 정착'을 말하지만 사사기의 전승은 특정 지역을 얻기 위한 개별적인 전투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평화로운 정착이 이루어졌음을 보여 줍니다. 사실 여호수아서 곳곳에서도 가나안 땅이 단번에 점령당하지 않았다는 암시가 있습니다(수 17:14~18).

여호수아서가 후대 기록임을 추정할 수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여호수아 10:12~13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브온에서 아모리 사람들과 전투하던 가운데 태양이 멈춘 사건에 대한 정보의 출처가 야살(Jashar)의 책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야살의 책은 사무엘하 1:18에 다시 나오는데, 만약 이 책이 여호수아서에 나오는 것과 같은 책이라면 여호수아서 기록의 실제 연대는 다윗의 시대로 봐야 합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여호수아서와 사사기서 가운데 우리는 어느 쪽을 따라야 할까요?

민수기에 나오는 가나안 정복

민수기를 시작으로 가나안 정복 여정을 차근차근 뒤따라가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신 광야에서 네게브(네겝) 사막과 트랜스요르단(요단강 동쪽지역, 바산‧길르앗‧암몬‧모압‧에돔지역, 성경에서는 '요단강 건너편') 정복을 시작합니다. 이것은 민수기 20~36장에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1. 가데스-바네아에서 동쪽으로 네게브를 지나 트랜스요르단 남쪽에 있는 에돔으로. 이곳에서 에돔 왕이 이스라엘 통과를 거부하다(20:14~21).

2. 에돔의 호르 산에서 아론이 죽다(20:22~29).

3. 네게브 사막에 있는 아랏으로 돌아와서, 이스라엘이 모든 지역의 도시들을 파괴하고 그곳 이름을 '호르마(히브리어로 '파괴'; 21:1~3)'라고 바꾸다.

4. 아랏에서 남쪽으로(그리고 분명히 동쪽으로), 그렇게 에돔을 피해서; 모세가 뱀들의 재앙을 처리하다(21:4~9).

5. 모압 동쪽 안에 있는 오못과 이예아바림에 장막을 치다; 세렛과 아르논 계곡들이 있는 모압과 '아모리 족'”사이의 경계에; 마침내 맛다나, 나할리엘, 바못, 그리고 여리고와 요단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비스가로 가다(21:10~20).

6. 헤스본에 있는 '아모리 왕, 시혼'과 야하스와 디본에서 큰 전투를 해서 승리하다. 이곳 '아르논에서 얍복까지' 모든 지역을 이스라엘이 점령하다(21:21~32).

7. 바산을 향해 북쪽으로 가는 군사 행동, 그리고 에드레이에서 바산 왕 옥에게 승리하다(21:33~35).

이와 같이 트랜스요르단(가나안 땅) 정복은 시리아 경계와 가까운 길렛과 바산을 향해 북쪽으로 진행한 것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땅을 나누는 기사에서 북쪽 지역은 므낫세에게, 남쪽 지역은 갓과 르우벤 부족에게 할당됩니다. 이것은 요단 서편에 이 부족들이 거점을 확고하게 보유하지 못했다는 것을 사실을 보여 줍니다(수 13:8).

민수기 33장에서는 이집트의 경계선으로부터 여리고의 사막 동쪽까지 모든 길의 여정의 단계들을 정리합니다. 민수기 33장은 이스라엘의 야영이 어디였었는지 언급하는데, 이들의 지역 이름이 40개가 넘습니다(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던 시내 산은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토록 중요한 시내 산이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일까요?).

민수기에 나오는 가나안 정복 여정을 따라 주요 장소를 수많은 고고학자들이 발굴했는데, 그 결과를 살펴보겠습니다.

호르마, 아랏, 오봇, 이예아바림

첫 번째로 점령을 시도한 곳은 호르마입니다(민 14:45). 네겝 사막 북쪽으로부터 기름진 언덕 헤브론의 서쪽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호르마'는 브엘세바의 동남쪽에서 11km 거리인, 텔 마소스(Tel Masos)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이곳을 1972~1975까지 독일과 이스라엘 발굴단이 연합으로 광범위하게 발굴했습니다. 그들은 기원전 1225~1100년경으로 추정할 수 있는 4 에이커(1만 6187㎡) 크기의 작은 (이스라엘)마을을 발굴했습니다. 이곳은 '4개의 방'으로 된 집들과 초기 이스라엘 마을의 특징인 도기 형태들이 있는 담이 없는 농촌 마을입니다. 그러나 이 지역이 반드시 기원전 12세기 이스라엘 농촌 마을이라고 확신할 수 없으며, 심지어 성서의 호르마와 정확히 일치하는 지역도 아닙니다. 어떤 학자들은 텔 마소스를 바알랏 브엘(수19:8), 아말렉(이스라엘 도시가 아닌), 네게브의 벧엘(Bethel-of-the-Negev; 삼상 30:27), 또는 시글락(삼상 27:6)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텔 마소스와 성서의 호르마가 같은 지역이건 아니건, 여기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텔 마소스에서는 기원전 13세기(출애굽 시기)에 점령 전쟁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그 땅의 원주민들과 전투를 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지역을 더 넓게 본다고 해도 네게브 북쪽지역 어디에서도 이러한 점령은 없었습니다. 단 하나의 후기 청동기 지역에서 조차 말이죠.

존 커리드(John Currid), 케네드 키친(Kenneth Kitchen), 챨스 크래멀코프(Charles Krahmalkov) 같은 몇몇 보수학자들은, 이집트 원문의 언급들을 참고로 해서 이 지역을 에돔이 광범위하게 점령했고 후기 청동기시대에 이곳에 도시가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고고학적 증거는 이와는 다르게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통과하기를 거부했던 에돔 왕이 그곳에 있을 수가 없는데, 에돔은 기원전 7세기까지 국가로서의 모양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아랏은 또 다른 고고학 딜레마를 보여 줍니다. 민수기 20장에서 에돔 땅을 통과하려다가 거부당하고, 21장에서는 호르마와 아랏이 같은 곳으로 연결됩니다(민 21:1~3). 이 지역은 의심할 것 없이 아라비아의 텔 우라드(Tell 'Urad)와 일치하는데 브엘세바 동쪽에서 약 30km거리입니다. 이스라엘 고고학자 요하난 아하로니(Yohanan Aharoni)는 1963~64년에 철기시대 고분의 윗부분을 발굴했는데 다른 북쪽 네겝 지역들과 같이, 아랏은 기원전 1200년대인 후기 청동기시대에는 점령의 흔적이 없습니다. 격리된 마을은 다른 초기 청동기 도시의 폐허 위에 10세기 후반에 세워진 것이었습니다. 이 도시는 기원전 2600년경에 버려져 기원전 1700년경까지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민수기 21:1~3에서 이스라엘이 아랏을 황폐화시키고 주변의 모든 도시들을 파괴했다는 이야기는 실제 일어난 사건이 될 수 없습니다. 여기에 반대해서 몇몇 학자들은 '아랏'이 거대한 구역을 표시하는 것으로 간주하거나, 또는 텔 엘-밀(Tell el-Milh) 가까운 곳에서 아랏을 찾으려 했지만 그러나 이것 역시 실망스러운 시도일 뿐입니다. 네게브 북쪽 어디에서도 후기 청동기(13세기 출애굽 당시) 가나안 도시들이 건설된 흔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이스라엘은 저항하는 에돔을 피해서 남쪽 노선을 통해 트랜스요르단으로 돌아갑니다(민 21:10~20). 북쪽 어느 곳에 있었다고 말하는 오봇과 이예아바림, '모압 앞쪽 해 돋는 쪽 광야', 이곳은 동쪽에 있었는데 세렛과 아르논 협곡 사이에 있었습니다. 오봇에 관해서는 실마리가 없지만 이예아바림은 아라비아의 와디 타마드(Wadi Thamad)에 있는 모압 북쪽에 위치한 디반(Dhiban)의 동남쪽에서 수십 km거리의 크 엘-메데이네(Kh. el-Medeiyneh)일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발굴 결과 이곳에서 요새화된 도시가 드러났습니다. 2중 도시 벽과 인상적으로 세워진 대문과 함께 짝을 이루는 측면으로 배치된 3개의 방이 있는데, 모든 것이 기원전 8~7세기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기에 만약 성서의 메데이네(Medeiyneh)가 성서의 이예아바림이라고 해도 그곳에는 기원전 8세기 이전에는 도시가 없었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헤스본과 디본(Dibon)

민수기 21:21~32에서 헤스본의 파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서의 헤스본은 암만(Amman)의 남/남서로 21km 거리의 텔 헤스본(Tell Hesban)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 지역은 1968~1976년에 대규모로 발굴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가나안 정복을 고고학으로 증명하려는 보수적인 학풍의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Seventh Day Adventist) 학자들이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집니다. 그 지역은 13세기 출애굽 시기보다 한참 뒤인 철기 2기 기간에 지어진 것이었기 때문이죠. 그곳은 기원전 11~12세기에는 흩어진 채로 남아 있었는데 13세기에 해당하는 어떤 점령 흔적도 없었습니다.

모압 남쪽의 아르논 계곡(Arnon Gorge)의 북쪽 제방에 있는 헤반(Heban)의 서쪽으로 약 35km 거리의 디본(Dibon)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디본은 아라비아의 디반(Dhiban)으로서 이름이 같습니다(여기에서 모압 비석이 발견되었기에 이곳은 명백하게 메사의 수도입니다). 이곳은 성서의 역사성을 추구하는 미국 남침례교 신학자들이 1950년대에 발굴하였습니다. 결과는 다시 한 번 실망을 안겨 줍니다. 그곳에는 기원전 9세기에 지어진 몇 개의 건물들과 도시 벽체들이 남아 있을 뿐이었고 후기 청동기시대(출애굽 시기)의 유물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텔 엘-우메이리(Tell el-Umeiri)

이와는 달리 실제 기원전 13세기에 파괴된 증거가 있는 지역도 있습니다. 오늘날 암만의 남쪽 변두리에 있는 텔 엘-우메이리(Tell el-Umeiri)는 매우 흥미로운 곳입니다. 이곳의 견고한 방비 시설(건조한 축성, 외부의 방벽, 흙으로 만든 제방)들은 13세기 후반 또는 12세기 중반에 대규모로 파괴된 흔적이 있습니다. 발굴자 래리 허(Larry Herr)는 이 마을을 초기 이스라엘의 마을일 것으로 보았는데, 아마도 르우벤 지파일 것으로 보이는 이 부족은 맨 처음 요단 서쪽에 정착을 시작해서 트랜스요르단에서 끝낸 것 같습니다(비교, 민32, 수 13:8~13). 하지만 정착 과정에서 나중에 어딘가를 본거지로 얻으려고 노력했던 르우벤 지파가 우메이리를 파괴할 이유가 있었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그 마을이 천천히 복구된 것으로 보아 이곳을 파괴했다고 해도 정착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든 이 지역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실제로 점령했다고 볼 수 있는 고고학 증거를 분명히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리고 안타깝게도(?) 성서에서는 이 지역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여호수아서를 중심으로 하는 정복 전쟁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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