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을 추진하던 민주통합당 소속 의원들이 보수 기독교 단체의 조직적 파상 공세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김한길·최원식 의원은 지난 2월 각각 차별금지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에는 '학력·혼인 상태·종교·정치적 성향·전과·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예방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에 보수 기독교 단체들은 "법이 통과되면 학교에서 동성 간의 성행위를 가르쳐야 하고 북한을 찬양하는 사람들을 처벌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총 공세를 펼쳤다. 항의 메일은 기본이었다. 의원실 전화통에는 불이 났고, 온갖 비속어와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지역 기독교 단체들은 해당 지역구 의원의 낙선 운동을 벌이겠다고 나섰다.

기독교 단체와 회원들의 집중 공격이 시작된 지 한 달여 만인 지난 17일, 두 의원은 차별금지법을 철회하기로 했다. 최원식 의원은 18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대로 가면 민주당이 고립될 수 있다"며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차별금지법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민주당으로서는 '민주당 vs 보수 기독교 단체'로 굳어진 구도에서 탈피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국제적 압박에 밀려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을 발의하는 시점에 맞춰 두 의원도 '단일 법안'을 만들 계획이다. 보수 기독교 단체의 목표를 민주당이 아닌 박근혜 정부로 돌리겠다는 의도다.

차별금지법 발의한 의원실에 항의 전화..."욕 쏟아져"

지난 2월 먼저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김한길 의원은 민주당 의원 51명의 공동 발의로 법안을 냈다. 최원식 의원은 민주당·진보정의당 의원 12명의 공동 발의로 법안을 제출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민주당 의원 127명의 절반가량이 서명한 것. 사실상 '민주당'과 '보수 기독교 단체'의 싸움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법안은 성별·나이·지역·학력·혼인 상태·종교·정치적 성향·전과·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에서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고 예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차별 당한 피해자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하면 인권위는 시정 명령을 내릴 수 있고, 이를 어길 시 이행강제금(최대 3000만 원)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국내외적 조건도 마련됐다. 2008년 유엔 인권이사회가 한국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한 이래 국제사회의 압박이 이어졌고, 박근혜 정부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민주당의 법안과 법무부의 법안을 두고 양 측의 조정이 이어진 후, 제정의 단계를 밟아갈 것으로 예상됐다.

▲ 보수 기독교 단체가 보수 언론에 게재한 광고. (광고 갈무리)

그러나, 3월부터 민주당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보수 기독교 단체들은 보수 신문에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사퇴하라"는 광고를 게재했다. 일종의 선전포고다.

이들은 '정치적 성향·전과·성적 지향·종교에 대한 차별 금지' 항목의 삭제를 요구했다.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에 대한 차별 금지' 항목을 두고 "이 법이 제정되면 김일성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국회와 중요 공직에서 자유롭게 적화 활동을 해 나갈 것"이라고,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 금지' 조항은 "교회에서조차 성경대로 죄(동성애)를 죄라고 가르치지 못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전과에 대한 차별 금지'는 "미성년자 성폭행 전과자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도록 내버려두게 된다"고, '종교에 대한 차별 금지'는 "종교에 대한 합당한 비판도 할 수 없게 된다"고 주장했다.

신문광고에는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과, 법안을 심사할 법사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의원실 전화번호도 함께 적혔다. "국회의원들의 전화가 불이 날 것"이라던 홍재철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의 예언은 적중했다. 해당 의원실에는 하루 종일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벨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미국에서도 전화가 걸려 왔다. "우리 목사님이 거기(의원실)에 전화해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라고 하는데, 내가 맞게 걸었느냐"던 재미교포는 "할 일을 다 했다"며 곧장 전화를 끊었다. '목사님의 지시'로 걸려온 전화는 계속됐다. "차별금지법..."이라고 말만 꺼낸 뒤 흐느껴 우는 이도 있었다.

항의에는 욕설이 섞였다. 민주당 법사위 의원실 관계자는 "'민주당은 종북 세력이라서 이런 법을 추진한다, 동방예의지국에서 동성애가 말이 되느냐, 종북 게이'라는 비난 속에, 살아오며 듣도 보도 못한 욕설에 시달리자 우울증이 오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교회의 입김이 강한 지역 출신 의원의 경우, 지역 교회 목사들의 전화를 수차례 받았다고 한다.

인천 지역구 의원의 경우, 인천광역시기독교총연합회에서 차별금지법에 발의·서명한 의원을 직접 불러 "법안 내용을 바꾸든지, 철회하든지 이에 대한 답변서를 작성해 오라"고 요구했다. 국회 입법예고 누리집에는 차별금지법 관련 찬반 글이 10만 6000건 넘게 올라왔다. 대부분이 반대 의견이다. 보수 기독교 단체 홈페이지에 공지 사항으로 띄워진 '의원실에 전화하기, 입법예고 누리집에 글 올리기' 내용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전방위적 홍보는 무료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 '카카오톡'을 통해서도 이뤄졌다. 법안을 발의한 의원실 보좌관에게도 지령이 담긴 '카카오톡' 메시지가 올 정도였다.

이 같은 맹폭에 최원식 의원은 언론을 통해 "성범죄를 저지르는 전과자를 비판하지 못한다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이고, 동성 간 성행위를 가르치는 건 말도 안 된다"며 "동성애를 합법화하거나 조장하는 법안이 아니라, 성적 취향을 이유로 일반 회사에서 해고되는 그런 차별이 문제라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김한길 의원도 지난 3월 보도 자료를 통해 "비합리적이고 과도한 차별을 금지하자는 것이지 합리적인 차별 또는 법에 근거하는 차별을 금지하자는 것이 아니다, 성범죄 전력이 있는 사람을 교사로 쓰는 것에 반대한다"라며 "개인적으로 동성애를 찬성하지 않고 확산되는 것에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차별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일일이 설명에 나섰다. 그러나 속수무책이었다.

보수 기독교 단체에 밀린 민주당, 결국 '차별금지법' 철회

▲ 지난 9일 국회 앞 차별금지법 반대 집회 현장. 집회를 연 국민연대는 "학교에서 항문 성교를 교육하도록 지켜볼 부모는 없다. 이 법이 통과되면, 교회 강단에서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설교를 할 수 없다. 국민의 종교의 자유를 악의적으로 심각하게 탄압하는 법이다. 김일성 주체사상 신봉자가 국회에서 판을 치는 꼴을 볼 수 없다. 나쁜 망국 차별금지법을 국민 모두와 함께 목숨 걸고 반대한다"고 밝혔다. ⓒ강의석

결국, 두 의원은 법안을 철회하기로 했다. 김한길·최원식 의원 보좌관들은 지난 17일 차별금지법에 공동 발의한 의원실을 돌며 법안 철회 요지를 전달했다. 공동 발의한 의원들의 동의가 이뤄진다면 이들은 이르면 19일 철회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철회 요지서에서 두 의원은 "차별금지법안의 취지에 대해 오해를 넘어 지나친 왜곡과 곡해가 가해져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토론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주체사상 찬양법, 동성애 합법화법이라는 비방과 종북 게이 의원이라는 낙인찍기까지 횡행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는 일부 교단이 앞으로 반대 운동을 더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두 의원이 택한 방법은 '법안 단일화'다. 이들은 "법안을 하나의 단일안으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반대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교단을 포함해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풍부하게 수렴해 종합적으로 재검토해 새로운 내용으로 가다듬겠다"며 "이를 위한 당내 논의 기구 등 대책 마련을 당 지도부에 건의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둘 경우 차별금지법에 대한 낙인찍기가 굳어져 법안에 대한 논의 자체가 좌초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재반격의 시점은 법무부의 차별금지법을 제출할 때에 맞출 계획이다. 두 의원은 "법무부가 정부 견해를 담은 차별금지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시점을 전후해 당 차원의 새로운 차별금지법 단일안이 발의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최 의원은 18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사회적 합의를 미리 밟았어야 했는데, 막상 법안을 발의해 보니 예상보다 사회적 갈등이 컸다"며 "단일안을 만들며 토론을 거쳐 사회적 합의를 이뤄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계속 법안을 밀고 나갔을 경우, 내년 지방선거까지 영향받을 수도 있는 담론"이라며 "민주당이 고립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단일안에는 "종교 자유를 침해할 것"이라는 오해를 불식하기 위한 조항 조정 등을 거친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가장 비난을 받고 있는 '성적 지향' 항목에 대한 삭제 가능성을 묻자 최 의원은 "모든 가능성은 열어두고 진행할 것"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법무부의 법안 발의 시점을 기점으로 둔 데에 대해서는 "지금은 새누리당에서 손에 피를 안 묻히려고 전혀 나서지 않는데, 법무부가 법안을 발의하면 정부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며 "이런 상황 속에 치밀하게 치고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vs 보수 기독교 단체'로 굳어진 구도를 '정부 vs 보수 기독교 단체' 구도로 전환하고, 민주당이 정부를 적극 뒷받침해 역공에 나서겠다는 설명이다. 1보 전진을 위한 후퇴인 셈이다.

"법안 발의 시 항의는 당연... 단체 행동 관철 사례 만든 것 같다"

후퇴에 대한 당 내의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차별금지법을 공동 발의한 한 의원실 관계자는 "어떤 법안이든 이해 관계자들의 항의는 이어지기 마련인데, 이번 일을 계기로 관련자들이 단체 행동이 관철되는 사례를 만든 것 같다"며 "앞으로 의원들이 법안을 내거나 공동 발의할 때 눈치를 보게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민주당 당 대표가 유력시 된다는 의원이 낸 법안임에도 보수 기독교 단체에 흔들리고 있다"며 "이것이 민주당의 현 주소"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차별금지법의 '좌절' 역사는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제정 필요성이 제기됐으나 담론에 머물렀다. 2007년 법무부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예고했으나, 재계와 보수 언론·보수 기독교 단체의 반대에 부딪혔다. 재계와 보수 언론은 학력과 병력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면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막게 된다고 반대했다. 보수 기독교 단체들 역시 성적 지향 항목 삭제를 요구했다. 정부는 이 같은 반대를 뚫지 못했고, 결국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못했다.

이주연 /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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