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속과 자율> / 강인철 지음 / 한신대학교출판부 펴냄 / 380면 / 3만 2000원
1945년 8월에 현실로 나타난, 민족 해방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은 한국 종교 지형에도 거대한 충격을 가했다. 그것은 분명 뜨겁고 격정적인 감격의 사건이었고, '집합적 열광'을 자아내는 수많은 정치적 의례와 축제․기념 행위들의 원천이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해방 사건'은 어떤 이들에게는 어떻게든 피하고 싶고 인정하기 싫은 사건, 두렵고 수치스럽고 떨리는 현실이기도 했다.

"해방 사건의 종교적 여파 내지 충격"과 관련하여 세 가지 차원의 변화가 특히 주목된다. 첫째, 종교 지형 내부에서 '일본계 종교들'이 졸지에 몰락했거나 기득권을 현저히 위협받는 상황으로 몰렸다. 반면 '민족주의적 종교들'은 대단한 생명력과 에너지를 공급받아 그야말로 약진할 기회를 얻었다. 둘째, 해방 사건은 각 부문 종교 지형들에도 강한 충격을 주어 기존 종교 권력 구조를 요동치게 만들었다. 각 종교들 내부에서 종교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친일파들'에 대한 공격과 권력투쟁이 활성화되었고, 그 와중에 소외되어 있던 '민족주의자들'이 성큼 종교 권력에 접근했다. 셋째, 해방 사건을 계기로 한국 종교 지형 내에서 그리스도교(개신교와 천주교)의 지위 상승 현상이 두드러졌다. 그것은 해방이 임시적 분단 및 미국 군정(軍政)과 함께 도래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태평양전쟁' 시기에 일본제국주의의 "철천지원수"였던 미국과 직접 연계된, 한국의 그리스도교 분파들이 임시 분단․미군정의 가장 큰 수혜자였다.

이 책은 1945년 8월의 민족해방부터 1961년 5월의 군사 쿠데타까지 근 16년 동안의 종교 정치(politics of religion)를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정치사 측면에서 보면 미군정, 이승만 정권, 장면 정권 시기가 여기에 해당된다. 종교 정책과 불교․유교 관련 장들에서 보는 것처럼, 대조와 비교의 필요성 때문에 식민지 시대 역시 간헐적으로 언급하게 될 것이다. 미군정 및 이승만 정부 시기 종교 정책과 헤게모니 전략의 특징들은 식민지 시대와의 대조를 통해 가장 선명하게 제 모습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개신교 정권의 점진적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1945∼1961년 사이 국가-종교의 전략적 상호작용을 전체적으로 개관하면서 그 과정과 특징들을 고찰하는 제1부, 적산(敵産) 혹은 귀속 재산 획득을 위한 종교들의 경쟁과 그 결과를 다루는 제2부, 그리고 주요 종교들이 개별적으로 국가․정치와 형성해갔던 역동적인 관계를 기술․해석하는 제3부가 그것이다.

미군정 및 이승만 정권 시기는 신생 대한민국의 종교-정치-국가 관계에서 '원형적 틀 형성'의 시기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한반도 남쪽에서 진행된 특정한 역사적 궤적, 즉 "임시적 분단과 미군정의 성립 → 국가권력의 성격과 소재를 둘러싼 격렬한 대립 → 이승만-한국민주당(한민당) 일파의 승리와 반공․우파 정권의 성립"이라는 궤적은 이후의 종교-정치-국가 관계 패턴에 거의 항구적인 영향을 미쳤다. 미국식 정교관계(政敎關係)를 남한 사회에 그대로 이식한 미군정이 3년 동안 지속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미군정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으며 격렬한 좌우 갈등으로 특징지어지는 해방 정국의 최종 승자가 친(親)개신교 성향의 이승만-한민당 세력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승만 정권이 미군정의 개신교 친화적인 관행과 제도들을 고스란히 승계했다는 점이 특별히 중요할 것이다.

불교․유교에 대한 권위주의적 통제장치 유지 등 식민지 시대와의 부분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미군정 시기의 종교 정책은 몇 가지 측면에서 식민지 시대와 현저히 달랐다. 변화의 핵심은 ① 근대적인 국가-종교, 정치-종교 관계의 확립, ② 친(親)그리스도교적 제도와 관행의 도입이라는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군정의 등장과 함께 갑자기 '지배 종교'의 지위로 올라선 개신교․천주교는 말할 것도 없고, 식민지 시대의 '공인종교 제도'로 인해 '비(非)종교' 혹은 '반(半)종교'로만 취급되었던 수많은 종교들에게 식민지 시대의 종식은 진정한 의미의 '해방'이었다. 그러나 불교와 유교에게는 아직도 ('정치적 해방'에 걸맞은) '종교적 해방'이 도래하지 못했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까지 대략 15년을 지나면서, 마치 그리스도교가 국교나 국가 종교라도 되는 것 같은 사회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한국의 파워 엘리트 집단 내부에서 특히 그러했지만, 연중(年中) 캘린더, 크리스마스 캐럴과 성탄절 특사, 부활절 예배, 국가 의례, 십자가가 빠르게 늘어가는 도시 풍경, 새벽 종소리, 교회에서 나눠주는 미국산(産) 구호 금품, 번창하던 YMCA의 영수학관(英數學館) 등을 통해 대중의 일상생활 속으로도 그리스도교가 깊숙이 침투해 들어갔다.

저자는 이 책에서 개신교 정권 형성의 '과정적'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제1부(그 중에서도 특히 2∼3장)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이승만 정권이 '개신교 정권'의 성격을 강하게 띠었음은 분명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초대 내각의 종교적 구성만 놓고 보더라도 그랬다. 개신교 편향이 드러나긴 했으나, 초대 내각에는 주요 종교의 대표 격인 인물들이 비교적 골고루 배치됨으로써 전체적으로는 ‘'범종교적인' 내지 '종교 연합적인' 색깔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1948년부터 그 후 6∼7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천주교, 대종교, 불교계 인사들을 내각에서 하나씩 배제시켜 나감으로써 '개신교 정권'의 성격을 점점 강화해 갔다.

이승만 정권의 '개신교 정권' 성격이 짙어질수록 개신교는 갈수록 '특권적 종교'가 되어갔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크리스마스나 형목 제도․군종 제도 등만이 아니라, '종교불'(宗敎弗) 즉 미국으로부터 달러화 형태로 유입되는 그리스도교 선교 자금에 막대한 특혜를 제공한 당시의 복수환율 제도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의 무력화가 당시 개신교에게 얼마나 큰 '구원'의 효과를 발휘했는지에 대해서도 흥미를 느끼리라 생각한다.

제2부(4∼6장)에서 집중적으로 분석하게 될 적산/귀속 재산의 분배도 대단히 흥미롭고도 중대한 주제이다. "적산/귀속 재산의 종교별 배분"이라는 쟁점은 완전히 새로운 연구 주제로서, 이것이 독립적인 연구 주제로써 본격적으로 다뤄진 것은 이 책이 사실상 처음이다. 적산 문제는 당시 주요 종교들이 적산에 대한 접근능력 면에서 의미 있는 차이를 드러냈고, 적산 배분에의 참여 여부가 향후의 교단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적산 확보가 해당 종교 단체에 얼마나 큰 이득을 초래했는지, 얼마나 풍요로운 발전의 기회를 의미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천도교 부산 교구'의 사례 또한 그런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2부에서 비교적 명료하게 드러날 것이지만, 개신교와 불교가 적산 배분의 최대 수혜자였다. 따라서 개신교와 불교의 적산 인수 사례들에 대한 분석이 2부 논의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획득한 적산의 '양'(量) 못지않게 '질'(質)도 중요했다. 적산 인수 건수가 거의 없으면서도 서울에서 인수한 단 한 건의 적산을 활용하여 <경향신문>을 창간했던 천주교가 좋은 사례일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은 남산(南山)을 둘러싼 상징 투쟁은 적산 획득․ 전용 경쟁과 중첩되었다. "남산의 상징적 재구성"을 둘러싼 경쟁은 식민지 시대에 일본 국가 종교인 "국가신도의 성지"로 성역화 된 남산의 종교적 재구성, 즉 "지배 종교의 상징적 교체"를 의미할 수도 있었다. 해방 직후 개신교가 남산을 선점했지만, 남산을 둘러싼 개신교와 불교의 경쟁 또한 자못 치열했다. 남산을 둘러싼 '성지의 상징 정치'에서 최종적인 승자이자 주역은 국가(대한민국) 자신이었고, 개신교․불교와도 적당한 선에서 타협이 이루어졌다.

한편 '종교별 고찰'이라고 할 수 있는 제3부에서는 해방 정국에서 '6대 종교'로 간주되었던 종교들 가운데 개신교를 제외한 5대 종교들이 집중적으로 분석되었다. 해방 직후 6대 종교는 하나같이 적극적인 정치 참여에 나섰다. 바야흐로 종교 지도자들의 정치 참여가 만개했던 시대였다. 그러나 참여의 강도, 참여의 내용, 참여 세력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성향, 정치적 동맹 세력, 특히 이승만-한민당 세력과의 연대/갈등 관계 등에서 종교들은 저마다 중요한 차이를 드러냈다. 그리고 이런 차이는 '대한민국'이 수립되는 1948년 이후 해당 종교의 제도적 이익과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활발한 정치 참여의 와중에 심각한 내분(불교, 유교, 천도교)이나 강도 높은 국가 개입(불교, 유교)에 시달린 종교들도 있었다. 이승만 정권과의 "협력에서 대립으로" 나아간 종교들이 있는가 하면(천주교, 대종교), 이와 반대로 "대립에서 협력으로" 나아간 종교도 있었다(천도교). 김창숙이 이끄는 유교의 '정통파'는 이승만 정권과 시종일관 대립 관계를 유지했고, 그로 인해 국가권력의 가혹하고도 세찬 억압에 노출되어야 했다.

이런 차이로 말미암아 주요 종교들의 미래 운명은 첨예하게 엇갈렸다. 그리스도교의 눈부신 성장과 세력 확장 속에서, 해방 후 채 15년도 못 가서 6대 종교 중 절반가량이 결국 경쟁 대열에서 낙오했다. 한국전쟁 직후부터 불교가 장기 내분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이에, 그리스도교는 최대 종교인 불교와의 장기 경쟁에서 기존의 격차를 좁히고 나아가 역전까지 도모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스도교-유교의 교세(敎勢) 역전 그리고 그리스도교-불교의 교세 역전은 말하자면 '지배 종교의 교체'를 뜻하는 것이다. 이토록 짧은 기간 내에 진행된 '지배 종교 교체' 현상은 19세기 이후 서구 그리스도교의 식민 지배를 겪었던 무수한 비(非)서구-비(非)그리스도교 사회들에서도 거의 발생하지 않았던, 요컨대 세계적으로도 매우 희귀한 일이었다.

저자는 3부에서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 15년, 특히 1945∼1953년의 8년 동안은 '정치적 격동기'였을 뿐 아니라, '종교적 격동기'이기도 했음을 입증해 보이려 한다. 이때는 종교 정치가 전례 없이 활성화된 시기였고, 한국사 최대의 종교 지형 격변기 중 하나였다. 누구든 해방 직후의 종교 지형을 그로부터 불과 약 30년 후인 1980년대, 혹은 약 50년 후인 2000년대의 그것과 비교해 본다면, 너무 판이한 종교 경관으로 인해 필경 낯선 이질성을 톡톡히 체감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강인철 교수의 열 번째 저서이자, 저자의 <한국의 종교 정치> 5부작 가운데 네 번째로 발표되는 저작이기도 하다. <한국의 종교 정치> 5부작은 그 분량만 해도 A4 용지 1560장이 넘는 대작이다. 이 책에 앞서 민주화 이후 시기(1987∼2012년)의 종교 정치를 분석한 <민주화와 종교 : 상충하는 경향들>과 <종교정치의 새로운 쟁점들>이 2012년 12월에 가장 먼저 발간되었다. 이어서 한국 현실에 부합하는 이론적 접근 방법과 개념들을 만들어 소개하고, 해방 후 지난 67년 전체를 개관하면서 새로 고안해 낸 이론과 개념을 실제 사례들에 적용해 본 <한국의 종교, 정치, 국가 : 1945∼2012>가 2013년 초에 발간된 바 있다. 군사정권 시기(1961∼1987년)의 종교 정치를 분석한 <저항과 투항 : 군사정권들과 종교>이 이번 책(<종속과 자율 : 대한민국의 형성과 종교 정치>) 발간 직후에 발간됨으로써 5부작의 대미를 장식하게 될 것이다.

5부작이라고는 하나 이 책들은 각기 다른 시대와 대상을 다루는, 저마다 개성과 완결성을 지닌 별개의 단행본으로 기획되었다. 따라서 이 책들에 어떤 순서나 일련번호를 부여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출간 시기가 연대기적 순서를 따르지 않고 제각각인 것도 그런 연유에서이다. 하나하나의 책 안에서도 독자들이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순서를 무시하고 건너뛰면서 선택적으로 읽어도 별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들에 "한국 종교 정치 5부작" 정도의 느슨한 동질성과 유대는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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