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합동 취재기자로서 지난해 9월 '총회 파행'이라는 큰 사건을 겪었습니다. 유래 없는 총회정상화를위한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구성되고 많은 총대들이 '교단 개혁'의 깃발 아래 모였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총회를 개혁하는 이런 때를 누군가는 10년, 또 다른 누군가는 20년, 30년 손꼽아 기다려 오지 않았을까.' 예장합동을 취재한 지 1년도 안 되어 이런 일을 겪은 저는 행운아랄까요.

비대위가 구성된 목적은 '97회 총회 정상화'입니다. 제대로 된 파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고 파행을 주도한 총회장과 총무를 징계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교단 구성원들의 바람은 잘못 간 길을 되돌리는 것뿐 아니라 개혁의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는 것까지 포함했습니다. 지난해 총회 기습 파회 당시 불 꺼진 회의장에서 "이 기회에 총회에 정치꾼들이 얼씬도 못하게 하자"고 결기를 다지던 총대들의 모습이 선합니다.

이들은 총회 사태를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고 믿었습니다. 많은 목사·장로들이 "지금은 총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했을 때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라고 자각했습니다. 지난해 11월 15일 전국 2500여 목사·장로가 모인 비상 기도회에서 한 설교자는 "총회 사태는 교단이 병들어 죽기를 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주신 회복의 기회"라고 선포했습니다. 올해 2월 호남 지역에서 열린 비상 기도회에서도 참석자들은 "하나님이 우리 교단의 개혁을 주도하고 계신다"고 인정했습니다. 교단의 치부가 낱낱이 드러나 세상의 손가락질을 당하더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개혁의 발판을 준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총대들이 2월 19일 속회 총회 후에도 비대위를 존속시킨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총회장의 사과를 받고 800여 명이 모이는 속회를 이뤄냈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았던 것이죠. 98회 총회까지 교단 개혁의 열기를 이어가기 위한 구심점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한 목사는 "비대위가 없었다면 전국 대다수 노회들이 한 뜻을 가지고 지금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비대위가 해산하더라도 교단 개혁의 기치를 들고 총회를 감시할 조직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더군요.

지금은 98회 총회 개혁을 준비할 봄 정기노회가 한창입니다. 예상대로 97회 총회를 파행으로 이끈 자들을 징계하라는 헌의안이 곳곳에서 채택되고 있습니다. 총회 석상에서 가스총을 치켜들어 총대들을 위협하고 대규모 용역을 고용해 언론을 탄압한 황규철 총무를 해임해야 한다는 여론이 드셉니다. 현역보다 발 빠르게 사사건건 간섭했던 전 총회장들의 권한을 제한해야 한다는 헌의도 있더군요. 교단 결의와 다른 WCC 공동선언문과 다락방 이단 해제로 물의를 일으킨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탈퇴와 관련자 처벌 헌의안도 나왔습니다.

이와 함께 이번 봄 노회에서는 총회의 제도를 바로잡으려는 헌의가 눈에 띄게 많습니다. 총회 내 회전문 인사를 막기 위해 총회 실행위원회·특별위원회 위원 구성을 규정에 맞게 해야 한다는 것부터, 정치권 인사들이 노림수로 이용해 왔던 실행위를 폐지하거나 새로운 조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헌의가 상당합니다. 또 몇몇 노회에서는 총회장과 총무가 불법을 행했을 경우 해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헌의했습니다.

시스템 자체를 고치지 않고 사람만 바꾸면 그 자리는 또 다시 비슷한 자들로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교단 구성원들은 목회보다는 총회 정치를 업으로 삼는 정치꾼들이 더 이상 총회를 쥐락펴락하는 모습을 방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지난 1월 부산 지역 총회 정상화를 위한 비상 기도회에서 한 목사는 "정치꾼 30명만 바꾸면 총회는 개혁된다"며 목사·장로들이 목숨 걸고 뛰어들자고 추동했습니다.

하지만 개혁은 '깔끔하게', '저절로' 되지 않았습니다. 97회 총회 사태로 불거진 파행을 정상화하기에도 벅찹니다. 현재 총회 측은 속회 총회를 불법으로 규명하고, 총회사태진상규명위원회를 가동해 속회를 주도하거나 참석한 사람들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정준모 총회장도 자진 근신을 철회하고 비대위를 사법 처리하겠다고 강수를 뒀습니다. 총무는 들끓는 해임 여론에도 '모르쇠'입니다. 한기총까지 나서 딴죽을 겁니다. 한기총은 비대위가 게재한 성명서 때문에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비대위 임원 및 자문위원과 <기독신문> 관계자 32명을 고소했습니다.

총회 정치권 인사들은 오히려 더욱 강고하게 서로 결속하는 인상까지 줍니다. 이들은 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이 세를 규합할 때는 일단 움츠리며 버티다가, 조금 느슨해지면 틈을 놓치지 않고 기승을 부립니다. 벌써 97회 총회 파회 후 6개월이 지났습니다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습니다. 진흙탕 속에서도 12개월 동안, 아니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지치지 않고 꿋꿋이 서 있는 쪽이 이기는 지난한 싸움입니다.

진정한 교단 개혁은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총회 파행을 되돌려 놓은 후에도 총회세계선교회(GMS), 은급재단 납골당 사업, 아이티 구호 헌금, 찬송가공회 문제 등 교단 현안들이 아직도 산적합니다. 철저한 인적 청산을 통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교인들의 헌금을 마구잡이로 갖다 쓴 관행을 타파하기 위해 정책을 보완해야 합니다. '총회 돈은 눈먼 돈'이라는 말은 이제 그만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 교단 목사의 말처럼 개혁은 땀 흘림 없이 이뤄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교단 구성원 하나하나가 양심을 회복하고 부패한 세력에 맞서 피를 흘리고 땀을 보탤 때 개혁은 한 걸음 다가올 것입니다. 비대위를 구성했던 노회장들이 줄곧 인용하던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모르드개가 민족 존망의 위기 속에서 에스더에게 했던 "네가 왕비가 된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소신껏 발언하고 적극적으로 전략을 구상해 개혁의 봄을 만들어 갈 때입니다. 

구권효 / <마르투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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