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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왕은 정말 "성경이 만든 사람"일까
<성경이 만든 사람 백화점 왕 워너메이커>가 놓친 워너메이커의 이면…19C 미국 사회 소비 욕망에 대한 윤리 의식 결여
  • 임안섭 (asact@newsnjoy.or.kr)
  • 승인 2013.04.03 23:17

   
▲ 2005년 1월 출간된 <성경이 만든 사람 백화점 왕 워너메이커>는 지금까지 20만 부 넘게 팔렸다. 저자 전광 목사는 "교회 일과 사업에서 동시에 성공한 사람"으로 워너메이커를 소개한다. (생명의 말씀사 갈무리)

'백화점 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존 워너메이커(John Wanamaker, 1838~1922). 그는 링컨·록펠러 등과 함께 성공한 신앙 인물로 설교 예화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2005년 1월 출간된 <성경이 만든 사람 백화점 왕 워너메이커>(<백화점 왕>·전광 목사, 생명의 말씀사)는 지금까지 20만 부 넘게 팔렸다.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의 저자이기도 한 전광 목사는 "교회 일과 사업에서 동시에 성공한 사람"으로 워너메이커를 소개한다.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면서 직장과 사업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워너메이커는 청년 시절 제일독립교회 주일학교와 베다니 주일학교(베다니) 등을 설립하고 교사로 60년 넘게 활동했다(58~67쪽). 1898년 베다니는 학급이 1200여 개, 학생이 6000명을 넘어 설 정도로 커졌다(146~153쪽). 워너메이커는 미국·인도·일본·한국 등에 YMCA 건물을 짓는 데에도 기여했다(72~79쪽).

그는 1861년 의류점 '브라운 오크 홀'을 창업해 고객을 왕으로 여기며 정가 판매, 반품 교환 등을 내세워 사업을 키웠다(84~93쪽). 1870년대 중반 워너메이커는 대형 소매업에 진출해 미국 필라델피아와 뉴욕에 백화점을 지으면서 사업을 확장해 갔다. 1877년 처음 지어진 '그랜드 디포 백화점'은 1884년에 직원이 4000명 정도까지 늘어났다. 1906년 필라델피아에 세워진 '워너메이커 백화점'은 매장 공간만 5만 4000평인 고층 건물로서 당시 세계에서 가장 컸다(108~117쪽). 말년에 그의 재산은 200억 달러 정도 되었다.

'백화점 왕'이란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성공했고 남다른 신앙을 소유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하지만 그를 정말 "성경이 만든" 인물로 평가해도 될까.

<욕망의 땅>(윌리엄 리치, 동문선)은 <백화점 왕>에 드러나지 않은 워너메이커의 이면을 보여 주는 책이다. 저자 윌리엄 리치 교수(William Leach, 미국 컬럼비아대학 사학과)는 워너메이커 백화점의 고문서 보관소를 5개월간 출입하면서 자료를 수집했고, 미국 자본주의가 발달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워너메이커를 조명했다. 그는 워너메이커가 주일학교와 YMCA 사역을 병행하면서 소박한 생활 운동을 후원하고 동참했던 측면이 있지만, 소비의 쾌락과 탐닉에 빠져들게 했던 자본주의 사회를 통찰하는 신앙은 없었다고 비판한다.

워너메이커, 19세기 후반 미국 소비문화 편승해 부 축적

   
▲ <욕망의 땅> 저자 윌리엄 리치 교수는 워너메이커가 주일학교와 YMCA 사역을 하면서 소박한 생활 운동을 후원하고 동참했던 측면이 있지만, 소비의 쾌락과 탐닉에 빠져들게 했던 자본주의 사회를 통찰하는 신앙은 없었다고 비판한다. (동문선 갈무리)

워너메이커는 1860년대 초반 미국 남북전쟁을 거치면서 발흥한 자본주의의 세례를 받은 사업가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가 한창 백화점 사업을 펼쳤던 19세기 후반 미국은 급격한 산업화 물결에 발맞춰 새로운 상품 생산에 자본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돈이 중요한 교환 수단이 되면서 금전적인 부가 극히 소수에게 집중되었고, 점차 많은 미국인들이 자본 소유자들에게 자신의 임금과 복지를 의존하게 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안락과 번영을 추구하는 소비문화가 확산되면서 개인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욕망하고 동경하는 '욕망의 민주화'가 등장했다. 백화점을 비롯해 극장·레스토랑·호텔·유원지 등 새로운 쾌락을 제공하는 공간이 점점 더 많이 생겨났다.

리치 교수는 워너메이커가 새로운 경제 상황에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본 점을 지적한다. 워너메이커는 미국의 기독교와 상업이 모두 건강한 상태라고 믿었다. 한 목회자가 1901년 "근대 상업주의가 교회 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가" 하고 물었을 때, 워너메이커는 "(교회 생활에) 부정적인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고 답했다(297쪽). 또 워너메이커는 '현대 상업주의가 교회 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질문에는 "밀주·술집·도박과 같은 사업이 아니라면 어떤 사업도 적절치 못한 것은 없다.…제품 판매 사업이 지난 세기부터 시작되었던 이래로 종교 생활에 우호적인 지평이 열렸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348쪽). 워너메이커가 쓴 편지에 나온 내용이다. 워너메이커는 상업의 팽창이 기독교 영성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와 상관없이 자기 신념에 따라 백화점 사업 확장과 주일학교·YMCA 사역을 함께 했다.

리치 교수는 워너메이커가 기독교 사역에 동참하고 소박한 생활 운동을 후원하면서, 중산층의 도덕적인 심성을 증진시켰던 점은 인정했지만 다른 측면을 문제 삼았다. 바로 워너메이커의 신앙이 개인주의적이고 내면적인 영성에 그쳤을 뿐, 세속적인 풍조를 향한 예언자적인 비판과 성찰로 나아가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프랑스 목사 샤를 바그너(Charles Wagner)는 새로운 상업 문화를 추종하는 세태를 통탄해 하며 <소박한 생활>을 펴낸 인물이다. 워너메이커는 그를 존경했으나 본인은 그런 근대적인 추세에 편승했다. 그는 백화점에서 최초로 전구를 사용했고 자동차와 비행기를 판매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고, 사치품을 필수품이나 상품으로 바꿔 낸 것에 흡족해 했다.

1900년 무렵 새로운 대중 경제와 문화에 순응하면서 미국의 주류 개신교는 16세기 종교개혁의 비판 정신이나 지적인 전통을 점점 잃어버렸다. 개인적인 구원과 복지를 갈망하는 신앙을 강화했지만, 소비에 탐닉하게 하는 문화에 대한 통찰은 무시했다. 백화점과 정부 기관뿐 아니라 교회도 욕망의 땅을 창조하는 데 함께 행동하기 시작했으며, 소비자의 쾌락과 유흥을 좇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워너메이커와 미국 주류 개신교, 상업주의 향한 예언적 관점 빈약

워너메이커는 소비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런 한계는 그의 후손의 도덕적 몰락으로 이어졌다. 워너메이커의 아들 로드먼 워너메이커(Rodman Wanamaker)는 아버지처럼 소박한 생활이나 기독교 신앙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사업에 충실하긴 했지만, 사치의 세계에서 살았다. 여러 채의 집을 소유하고 있었고, 유럽 최고 귀족들을 파티에 초청해 즐겼다. 손님들에게 값비싼 와인을 대접하고 다이아몬드를 선물했다. 워너메이커의 손자 존 워너메이커 주니어는 문란한 길을 걸었다. 그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키운 상업 문화 속에서 도덕성을 잃었다. 그에게는 오로지 요트와 대저택만이 매력적이었을 뿐, 교회와 주일학교는 끔찍한 곳으로 다가왔다. 1920년대 무렵 알코올 중독에 빠졌고, 마약도 접했다. 그는 워너메이커 백화점에 고용한 젊은 여성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기도 했다.

   
▲ 1870년대 중반 워너메이커는 대형 소매업에 진출해 미국 필라델피아와 뉴욕에 백화점을 지으면서 사업을 확장해 갔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그랜드 디포(1876), 뉴욕 워너메이커(1896년), 필라델피아 워너메이커(1906년) 백화점이다. (Department store museum 블로그 갈무리)

리치 교수는 워너메이커 가문이 내리막길을 걸었던 사례가 그 당시 미국 주류 개신교 신앙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맘몬 숭배를 금하는 기독교 신앙이 중산층 미국인들의 삶에서 서서히 퇴색했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적 복음을 강조했던 독일 침례교 목사 월터 라우센부쉬(Walter Rauschenbusch)가 <기독교와 사회 위기>에 쓴 글을 빌어 워너메이커의 신앙을 경계했다. "경쟁적인 상업은 우리 앞에 물건을 펼쳐 놓고 우리가 원하지도 않는 것을 사라고 설득한다. 거기에 휩쓸리면서 윤리 교육으로 인한 자제력과 예지력이 서서히 파괴된다."

드류대학교에서 미국 교회사를 전공한 배덕만 교수(복음신학대 역사신학과)는 미국 남북전쟁 이후 상황을 제대로 보면서 워너메이커를 조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전쟁 이후 미국의 농경 사회는 해체되었고 북부 중심으로 산업과 도시가 발달되면서 도시 빈민이 늘어났으며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발생했다. 배 교수는 "이런 사회문제 앞에서 미국 개신교는 크게 사회 개혁에는 무관심하고 개인 구원과 윤리에 초점을 맞춘 '근본주의 기독교'와 사회문제를 적극 해결하는 데 뛰어 드는 '사회 복음 기독교'로 나뉘었다"고 했다.

산업화·도시화 흐름에 편승해 백화점을 운영한 워너메이커는 미국 사회의 주류를 이룬 근본주의 개신교와 관련이 깊었던 것이다. 배 교수는 미국에 '사회 복음'을 강조하며 산업사회 속에서 희생당한 이들을 돕고 개인 구원과 사회 개혁을 함께 실천한 그룹도 있는데, 한국교회는 주로 미국의 근본주의 개신교 배경 속에 있는 사람을 추앙하고, 그들의 영향을 편향되게 받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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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 송광섭 2013-04-04 22:39:09

    워너메이커는 170여년전에 태어나서 90여년전에 떠난 사람이다. 이미 100여년전에 당시의 윤리와 세상의 사상 속에서 충실하게 살아간 사람을 오늘의 잣대와 사상으로 평가하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인간은 한 문화와 한 부분에서 살아갈 뿐이지 전세계를 망라해서 사는 것이 가능할까? 오늘날도 아프리가 일부 부족은 교육도 받지 못하고 원시인으로 살고 있지 않은가? 옷도 안입고 학교도 없고 병원도 없고 전기도 없고 , 이런 세상도 있지 않은가?   삭제

    • 김창수 2013-04-04 20:33:57

      John Wanamaker was a Pennsylvania Mason. The John Wanamaker Masonic Humanitarian Medal was created by resolution of the Grand Lodge of Pennsylvania at the December Quarterly Communication of 1993. It is to be awarded to a person (male or female) who, being a non-Mason, supports the ideals and philosophy of the Masonic Fraternity. The recipient of this medal is one who personifies the high ideals of John Wanamaker - a public spirited citizen, a lover of all people, and devoted to doing good. The award is made at the discretion of the R. W. Grand Master. The medal has been presented sparingly, to maintain the great prestige associated with an award created by resolution of the Pennsylvania Grand Lodge. In addition to the John Wanamaker Masonic Humanitarian Medal, The Pennsylvania Grand Lodge also awards the Franklin Medal for Distinguished Masonic Service, and the Thomson Award for Saving a Human Life. 이글은 인터넷 사전 위키페디아에서 그대로 인용한 전문이다. 워너마커는 엄연히 프리메이슨이다. 이런자를 생명의 말씀사에서 성경이 만든사람이라는 책자로 선전하다니 한심하다 ㅋㅋㅋ 뉴스앤조이도 마찬가지다 그를 비판하려면 그의 신분이 누구인지 먼저 정확히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는가 ? 프리메이슨교도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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