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와 연세대학교의 관계

연세대학교는 설립 초기부터 기독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선교사였던 언더우드의 헌신적인 노력을 통해서 미국과 캐나다 등의 교회가 선교적 협력으로 많은 재정적인 후원을 해 주었습니다. 그 이후, 연세대학교는 기독교적 신앙에 바탕을 둔 교육으로 한국의 현대사에 교육적으로 커다란 공헌을 하였습니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1957년 이사회가 출범하는 순간부터 예장(통합), 감리교, 기장, 성공회의 4개 교단이 이사를 파송하며 연세대학교와 한국교회의 협력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이러한 관계에 대해서 <연세대학교 100년사>에서는 "연세대학교는 다른 사학법인과는 달리 여타 육영재단을 설치하지 않고, 한국 내의 각 기독교 교파들의 대표와 동문회 대표 및 사회유지 인사로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으며, 교계와 동문과 사회의 연합 정신으로 개방 운영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연세대학교만의 특수성과 선진화된 모습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연세대학교 100년사> 제2권, 537쪽 참조)

교육계에서 200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야기되는 사립학교의 개방적인 운영이 연세대학교에서는 50년 전부터 시행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최근 사학법은 학교의 공공성을 강조하되, 설립자의 설립 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균형적인 모습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서 과거 연세대학교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한국교회의 4개 교단이 연세대학교에 이사를 파송하고 있었던 것은, 기독교적 정신으로 학교를 운영하려고 했던 언더우드 선교사의 바람(설립자의 설립 정신)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스스로 자기의 역사를 부정한 연세대학교 이사회

그러나 최근에 연세대학교는 그러한 과거의 훌륭한 유산을 단순한 경영 논리를 내세우며 철저하게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동안 교단 파송 이사 제도가 효과가 없었다는 주장과 함께 교단 파송 이사 제도에 대한 정관을 개정해 버린 것입니다. 이사회는 정관 개정을 통해서 '교단 파송 이사' 부분을 삭제하고 '기독교계 2인'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기독교계 2인으로 충분히 건학 이념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연세대학교 설립 역사를 전혀 모르는 무지한 행동입니다. 언더우드가 초창기에 학교를 세우기 위해서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교단들과 협상하고 대화하면서 힘겹게 만들어 놓은 연세대학교를 처음부터 무시한 것입니다. 언더우드는 특정한 교파나 특정한 소수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학교를 원한 것이 아니라 여러 교파가 함께 연합하여 학교의 운영에 도움을 주는 것을 원했던 것입니다. 때론 그 과정에서 갈등도 있었고, 좌절도 있었지만 그러한 힘겨운 과정 속에서도 연합의 정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언더우드의 모습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무식함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역사를 스스로 부정해 버린 연세대학교 이사회가 어찌 연세대학교의 운영을 대표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연세대학교의 역사에 대해 전혀 이해도 못하는 그들이 어찌 연세대학교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자리에 있을 수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이사회의 정관 개정에 대해서 많은 지식인은 이사장인 방우영 씨의 의도에 대해서 우려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이사회 정관 개정에 대해서 '방우영 씨의 연세대 사유화 음모'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을까요? 지금 당장은, 정관 개정에 참여했던 이사들은 나름대로 '의롭고,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정말 정관 개정의 과정에 있어서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한 점 부끄럼이 없다면, 왜 정관 개정 이전에 한국기독교장로회와 성공회가 이사를 파송한 것을 이런 저런 핑계로 받지 않았으며, 정관 개정에 있어서 사전에 공지하지 않고 기습적으로 정관 개정을 안건으로 다루었을까요?

정관 개정은 역사의 평가를 피할 수 없습니다!

정관 개정에 참여했던 이사들은 지금 당장에는 개인적으로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연세대학교의 기나긴 역사의 한 페이지에 똑똑하고 선명하게 기록될 것입니다.

과거 을사보호조약에 협조했던 대신들은 자신들이 대한제국을 위해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변명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그것은 조선의 역사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았고, 당시에 누가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가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정관 개정도 연세대학교의 역사 속에서 절대로 침해되어서는 안 되는 건학의 정신, 설립자의 헌신적인 정신은 안중에도 없고, 지금 현재 이사회를 누가 장악하고 있는가에만 몰두해서 결정된 참극입니다. 이것은 연세대학교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잘못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정에 참여했던 이사들은 대대로 기억될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이야기한다면, 학교의 운영을 현대화하기 위해서 기독교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정관을 개정한 뜻있는 이사들로 평가되거나, 지금 눈앞에 보이는 기득권을 얻기 위해서 연세대학교의 역사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사립학교법의 맹점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연세대학교의 건학의 정신을 훼손시킨 이사들로 평가될 것입니다.

교파와 교단을 초월하여 하나가 된 한국교회

이에 대하여 한국교회는 이사를 파송하던 4개 교단 이외의 교단들이 연합하여 대책을 강구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1심에서 재판부는 정관 개정의 법적인 절차에 대해서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적법하다는 판결을 했습니다. 이러한 1심 판결의 부당함을 인지하고 지난 3월 7일에 대책위원회에서는 항소심을 준비하는 동시에 한국교회를 향한 목회서신을 발표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에 지난 3월 29일, 대책위원회에서는 "재를 쓰고 옷을 찢으며 애통합니다!"라는 제목의 목회서신을 뜻을 함께하는 교단의 각 교회들에게 보냈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 한국교회가 교파와 교단을 초월해서 대응하는 모습은 꽤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파와 교단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당면한 문제(연세대학교 이사회 정관 개정)에 하나가 되어 대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교파와 교단 간의 신앙과 사상, 특별히 이념적으로 상반되거나 다른 생각을 가진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연세대학교 정상화를 위해서만큼은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를 파송하는 교단이 아님에도 한국교회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자기의 십자가로 인식하고 기꺼이 동참한 교단들의 참여의 정신은 높게 평가되어야 합니다. 진정 한국교회의 연합과 하나 됨(일치)은 이러한 자그마한 참여를 통해서 시작되고, 그 가능성이 발견되며, 완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회서신 전문]

"재를 쓰고 옷을 찢으며 애통합니다!"

천만 성도 여러분, 이 시기에 한국 교회의 대표자 된 우리는 비통함과 참회의 심정으로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선조들이 물려준 소중한 선교 유산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이 땅 사람들의 구원과 선교를 위해 피땀 흘려 세워 놓은 연세대학교라는 역사를 빼앗기고 만 것입니다.

연세대학교와 그 병원은 본래 한국에 온 선교사들이 세웠고, 이후 한국교회가 공식적으로 이사들을 파송하여 운영해 왔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조선일보 방우영 명예회장이 이사장이 되면서 한국 기독교와 무관한 쪽으로 방향을 잡더니, 일부 교단이 파송하는 이사를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예 정관을 고쳐서 기독교회의 이사 파송 권한을 없애 버렸습니다. 더욱이 이러한 잘못을 시정해야 할 교육과학기술부도 오히려 이에 부화뇌동하여 비상식적으로 정관 개정을 승인하였습니다. 이제 소수로 명맥만 유지하는 한국 기독교의 이사 자리도 언제든 없앨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단들의 이사 자리에는 한국교회와 별로 관계없는 사람들로 채워졌습니다. 놀랍게도 그중에는 독실한 불교 신자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일로 연세학원과 방우영 씨, 그리고 교육과학기술부와도 맞서고 있습니다.

2013년 예산 3조 7590인 연세대학교의 재산이 아까워서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가 모든 것을 다 장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물려준 소중한 선교 유산들과 그 정신을 덧없이 잃어버리고 빼앗겼기 때문에 이러는 것입니다. 만약에 기독교가 모든 것을 움켜쥐고 있을 생각이었다면, 이미 30년 전부터 이사 정수의 절반이나 되는 숫자를 기독교 바깥에 개방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구한말에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복음을 전하는 데 가장 우선적인 일이 이 땅 민초들의 고단하고 절망적인 현실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못 배우고 못 먹고 병에 걸려도 치료받지 못하고 죽어 가는 그들을 위해, 무엇보다도 먼저 학교와 병원을 세웠습니다. 그 학교와 병원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배웠고, 건강을 되찾았고 그리고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학교가 연세대학이고 이화대학이며, 그 병원이 세브란스 병원입니다.

그러므로 연세학원은 우리에게 단지 재산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다. 그것은 기독교의 정신이자 살아 있는 역사이며, 기독교가 선교를 위해 흘린 피와 땀의 유산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상실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현실에 대해 재를 뒤집어쓰고 옷을 찢는 심정으로 애통하고 참회합니다. 지킬 것을 지키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를 되찾지 못한다면, 그것은 한국 기독교 역사에 씻지 못할 오점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간에 기독교의 많은 재산들이나 신앙 유산들이 이런 저런 사유와 명분으로 사라졌습니다. 기독교가 세운 여러 대학이나 고등학교들이 이미 기독교나 교단과 무관한 재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공적인 유산이 사적인 것이 되거나, 기독교적인 것이 비기독교적인 것이 되고 마는 오늘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따라서 연세대학교의 문제는 단지 연세대학교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기독교 유산 상실의 결정적인 상징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여러 가지 노력을 했습니다. 연세대학교의 어려움을 알리는 홍보도 했고, 이사회와 관할 관청에 호소도 했습니다. 여러 번에 걸쳐 기도회도 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응답이 없는 상태에서 연세대학교 이사회는 한국 기독교와 관계를 단절해 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언더우드 선교사 가문의 생존자들이 정관 변경에 대해 깊이 우려하며 한국교회의 이사 추천권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호소했음에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교단의 대표들로서 힘겹게 법적 소송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소송에 따른 사회 법정의 판결로만 해결할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천만 성도 여러분께 우리는 비통한 심정으로 호소합니다.

성도 여러분, 연세학원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를 회복하는 것은 우리들의 책임입니다. 이제 전국의 모든 목회자와 성도 여러분은 연세대학교 사태에 관심을 기울이고, 우리 교단들의 대응에 적극 동참해 주시며, 또한 이 사태를 주변에 널리 알려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연세대학교가 본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혼자, 또 여럿이 간절하게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목회자들께서는 예배나 집회 시에 연세학원 문제를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간곡히 요청 드립니다.

2013.3.22 사순절에
연세대사유화저지를위한기독교대책위원회
위원장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장 손달익

기독교대한감리회 임시감독회장 김기택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총회장 이동춘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장 박현모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서대문) 총회장 박성배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여의도) 총회장 이영훈
기독교한국루터회 총회장 엄현섭
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장 고흥식
대한성공회 의장주교 김근상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총회장 박정원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총회장 황수원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 총회장 정영근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장 손달익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장 정준모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총회장 이철호
한국구세군 사령관 박만희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나홍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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