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다시 부활절이 다가왔습니다. 자연의 시간인 크로노스는 순환하고 해마다 새 봄이 오듯이 새로운 기회를 줍니다. 농부는 자연이 주는 이 많은 기회를 알고 기다리며 삽니다. 그러나 직선적 시간관을 지닌 기독교 신앙에서는 하나님의 시간인 카이로스가 역사에 단번에 주어지고 유일회적 사건인 십자가와 부활이 우주적 의미를 지니며 '때'를 놓치면 다시 기회가 없습니다. 따라서 후자의 시간은 삶에 긴장을 주고 '타이밍'이 생명입니다.

이 '때'에 대한 역사의식이 히브리 기독교적 사고의 핵심입니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은 비록 하나님의 시간인 카이로스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그 대신 리스크와 긴장으로 가득 찬 문명의 타이밍의 시간 속에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 시간 속에 살아가는 존재로서 그 각각의 존재 양식을 시의적절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정현 목사의 표절 사태에 대해 지난주에 발표된 손봉호 교수님의 글을 읽고 이 글을 적습니다. 저는 같은 고향 출신이지만 옥한흠 목사에게 인사를 드린 적이 없고, 오정현 목사도 만난 적이 없으며, 사랑의교회와도 어떤 인연도 없는 국외자입니다. 저는 서울대학교 학부 시절 손봉호, 이만열 교수님의 영향을 받았고, 통합 측 장신대 시절에는 온누리교회 전도사로 4~5년간 봉사하면서 하용조, 김진홍 목사님의 영향도 받았습니다. 80년대 신복음주의 노선에서 성장하면서도 그 성장 위주의 정책을 비판했고, 한국교회 개혁의 대안으로 역사 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만열 교수의 개인 조교로 9년간 초기 한국교회사를 공부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직후 1993년 미국에 왔습니다.

따라서 지난 20년간 성장이 멈추고 위기에 처한 한국 개신교회를 밖에서 관찰하는 처지에 있었으므로, 한국교회의 현 상태에 대해서 모르는 부분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의교회나 온누리교회를 비롯한 신복음주의 노선의 교회에 애정이 있고, 한국교회사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이번 표절 사태는 2010년대 한국 개신교에 치명적이고 중차대한 사건이라고 생각하므로 이 글을 씁니다. 

손봉호 교수님은 "죽었으면 살았을 것"이라는 쓴소리에서 십자가 뒤에 부활이 있듯이, 만일 오 목사가 진정한 참회와 함께 사임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로써 낮은 자세로 선교 활동에 들어갔다면 다윗처럼 개인적으로 복권될 수 있을 것이고, 한국교회도 살 것이라며 비통한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손 교수님의 인격이 실린 무게 있는 글에 백번 공감하는 바입니다.

베드로의 부인과 오정현 목사의 부인 

저는 고난 주간과 부활 주일을 보내면서 베드로가 세 번 예수를 부인했던 사건과 요한복음 21장에 나오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에서 고기 잡는 베드로를 찾아가 세 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질문하며 회복시켜 주신 사건을 묵상하면서, 오정현 목사를 떠올렸습니다. 오 목사는 조사위원회 앞에서 표절을 처음 부인했고, 교회 앞에서 두 번째 부인했으며, 모든 것이 밝혀지고 당회 결정이 내려진 후 다시 영상으로 나와 어중간한 회개로 세 번째 기회를 놓쳤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제자 훈련을 받은 베드로도 인간이기에 공개적인 자리에서 예수님을 부인했는데, 오 목사도 비슷한 실수를 반복했다고 봅니다.

요한 21장은 부활 사건의 적용 부분으로, 부활의 교리와 메시지가 죄 많은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교회가 부활 주일 이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즉 그리스도를 부인한 베드로가 용서받고 회복되는 과정을 선명하게 보여 주며, 이는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오 목사가 따라야 할 성경의 한 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갈릴리 해변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먼저 찾아가신 것처럼 손봉호 교수님과 홍정길 목사님을 비롯해 오 목사의 멘토가 될 수 있는 교회 지도자들이 먼저 오 목사를 찾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가서 '고기를 잡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방향을 바꾸어 그물을 던지게 하여 고기를 잡게 하시고, 숯불에 고기를 구어 나누어 먹으며 대화하신 예수님처럼, 오 목사의 목회 방향 선회를 촉구하고, 오 목사는 비디오 회개가 아니라 공개적으로 육성으로 지도자들과 사랑의교회 앞에서 참회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 피어오르던 구수한 숯불 냄새는 추억의 냄새입니다. 가야바 대제사장의 뜰에서 숯불을 쬐며(요 18장) 예수의 제자임을 부인하던 시절의 냄새입니다. 오 목사와 옥 목사님과 추억의 냄새를 나누던 지도자들이 나서서, 오 목사의 지금까지의 헛그물질 대신 새로운 사역지에서 새로운 관점에서 그물을 던지도록 지도하면 좋겠습니다. 또한 오 목사의 기도원과 이후 자숙과 회개 기간이 새로운 방향 선회를 위한 준비 기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두 번째로 공개 회개와 사랑의 회복입니다. 예수님은 세 번 베드로에게 '사랑'하는지 질문했고, 그 세 번의 질문으로 과거의 세 번 부인을 회개하고 회복하는 기회를 삼도록 했습니다. 따라서 오 목사는 조사위원회와 당회와 교회 앞에서 세 번 공개적으로 회개하며 용서를 구함으로써 사랑을 회복하면 좋겠습니다. 그때 주님과 교회에서 그에게 양을 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입니다.

물론 기도원에서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서 회개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논문 표절 사건이 교회와 사회에 준 피해와 상처를 고려해보면 쉽게 알 수 있듯이 공적인 회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공개적으로 수치를 당했고 십자가에 공개 처형되었습니다. 한 대형 교회 담임 목사의 공개 회개가 그렇게 어려운데,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그렇게 비참하게 십자가에서 공개 처형되어야만 했을까요? 순교자들은 어떻게 공개적 처형을 묵묵히 받아들였을까요?

사실 1907년 대부흥 운동 당시 회개는 교인들 앞에서 우상숭배, 불효, 시기, 거짓말, 간음, 도적질, 살인 등의 죄를 낱낱이 고백하는 공개 자백이었습니다. 통성기도와 공동 회개와 공개 회개가 부흥회의 특징이었습니다. 죄를 고백하고 예수의 속죄 은혜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인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와 기쁨으로 살아갔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부활과 사랑과 평화의 복음이요, '사랑'의교회가 마땅히 행할 일입니다. 오 목사는 기도원에서 홀로 6개월의 시간을 보내기만 하면 안 됩니다. 때가 지나가지 전에 공개 회개하고 사랑을 회복할 수 있도록 멘토들이 나서서 도와주어야 합니다.

세 번째로 다른 제자는 어떻게 될지 질문하는 베드로에 대해 예수님은 다른 사람은 상관하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합니다. 한국교회의 목사나 신학교 교수 가운데 표절에서 자유로운 자는 별로 없을지도 모릅니다. 오 목사는 다른 목사의 표절 문제나 죄의 문제에 상관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아직 들키지 않은 표절자'에 불과한 자들입니다. 물론 표절을 방지하고 예방하는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하겠지만, 남을 상관하기 전에 각자 주님을 따르는 일에 더욱 정진할 때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실수가 많고 중대한 죄를 저질렀으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사랑을 회복함으로써 교회의 첫 목회자가 되었고 순교의 자리에까지 갔습니다. 한국교회는 해방 이후 50년간(1945~94) 한국 경제 성장과 더불어 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그러나 지난 20년 가까이 밤새 수고하며 그물을 던졌으나 빈 그물뿐입니다. 중고등학교 학생의 개신교 신자 비율은 5~7%라는 통계도 있습니다. 90년대 이전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그물을 던졌기 때문입니다.

관점을 바꾸어 배 '오른편'에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지시에 순종할 때입니다. 교회의 '반대편'에는 아마도 가난한 자, 노약자, 탈북자, 동남아시아 노동자, 가출 청소년, 미혼모, 수감자, 중독자, 에이즈 환자 등 153종의 다양한 사람들과 다문화 인종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미 그곳에 그물을 던진 작은 교회들, 약하지만 좋은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형 교회가 그 쪽으로 삶의 방향을 전환할 수 있을까요? 전문가 어부였던 베드로는 순종했는데, 과연 대형 교회는 해오던 일상 비즈니스를 바꿀 수 있을까요? 사실 선교는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약함으로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 5절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는 질문은 지난 20년 간 한국교회가 직면했던 문제였습니다. 이미 고기를 많이 잡았다고 자부한 일부 교회는 지난 10년간 세대교체기를 지내면서 '세습'이라는 배 뒤 쪽에 그물을 던지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그물을 잃는 낭패를 당했습니다. 일부 교회는 해외 교회 목회자와 참신한 인물들을 세웠는데, 사랑의교회는 가장 성공적인 세대교체의 사례로 꼽혔습니다. 그런데 이번 논문 표절 사건으로 그것이 왼쪽에 그물을 던진 것에 불과했고 밤새 던진 그물은 빈 깡통에 불과하다는 것을 만천하에 보여 줌으로써, 한국 개신교 전체가 세대교체에 실패했다는 인상을 줍니다. 여기에 오 목사 사건의 핵심이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한국교회에 필요한 것은 요한복음 21장 6~17절에 나오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범죄한 아담에게 먼저 찾아오셔서 '네가 어디 있느냐?'고 질문하십니다. 우리는 답하는 존재이지 질문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랑의 교회와 오 목사는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고, 예수님과의 첫 사랑을 회복하고 향후 2~3년간 하나님과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를 회복할 때입니다. 나아가 "다른 사람은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각자, 각 교회가 순종할 때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신상 털기와 다른 사람의 글에 악플 달기 대신, 우리 각자 바로 서기와 주님 따르기에 투자할 때입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고기, 곧 성장과 성공만을 추구하던 욕망 충족의 번영 신학을 떠나서, 사랑과 관계와 공동체와 생태계를 중시하는 샬롬의 평화 신학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이번 사태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한 세대 동안 개신교는 계속 감소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즉 해방 이후 50년(1945~95) 동안의 성장기를 지나 정체와 감소의 50년(1995~2045)을 맞이하게 될 듯합니다. 사랑의 교회와 오 목사 사태는 하나님의 '때'가 한국교회에 임한 역사적 시점을 보여줍니다. 눈앞의 작은 고기 몇 마리를 담는 미봉책으로 큰 그물을 손에서 놓치는 소탐대실이 없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랑의교회와 그 당회가 역사적 때에 막중한 역사적 책무를 다하기 바랍니다.

옥성득 / UCLA 한국기독교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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