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청춘과 퇴근의 해방감을 누리는 직장인들이 비틀거리는 강남역. 환히 불을 밝힌 음식점과 술집을 지나 주택가 근처에 이르면 어둠 속에서 십자가에 불을 켜고 있는 사랑의교회가 있다. 3월 22일 금요일 저녁, 사람들이 강남역 중심에서 유흥으로 불타는 금요일 밤을 보내고 있을 때 사랑의교회 교인들은 교회 마당에서 기도로 따끈한 금요일 밤을 보냈다.

기도 모임은 사랑의교회 교인들이 모여 만든 '사랑의교회 회복을 위한 기도와 소통 네트워크(사회넷)'가 주도해 마련됐다. 오정현 목사의 논문 표절과 말 바꾸기가 사실로 드러난 뒤에도 당회가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는 데 문제의식을 공유한 교인들이 정규 모임을 시작한 것이다. 사회넷은 매주 금요일 저녁 8시와 주일 아침 8시 예배 전후로 교회 마당에서 기도회를 열기로 했다.

▲ 사랑의교회 교인들이 교회 마당에 모여 기도회를 열었다. 오정현 목사의 논문 표절과 말 바꾸기가 사실로 드러났음에도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교회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정규 기도 모임이 열린 첫째 날, 260명 이상이 교회 마당을 찾았다. 지난 3월 15일 열린 임시 당회 때 기도회보다도 사람이 늘었다. 참석자 명단에 이름을 적은 사람만 260명이니, 이름을 적지 않고 기도에 동참했던 사람은 더 많을 터. 지난 2월 13일 최초로 교인들이 교회 마당에서 침묵 기도를 했을 때 10명이 왔던 것과 비교하면, 한 달여 사이 교회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고 행동에 나선 교인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기도 모임은 회개로 시작했다. 사랑의교회가 어려움을 겪는 지금의 상황이 남 탓이 아니라 바로 내 잘못이라는 반성이 먼저 터져 나왔다. 교회 예배당 출입문 앞에 둥그렇게 모인 교인들은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기 시작했고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눈물을 흘리는 교인들이 눈에 띄었다. "하나님, 교회를 회복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대표로 기도한 장로 세 명은 안타까움에 괴로워하면서도 사랑의교회가 다시 회복되는 날을 기원하며 외쳤다.

▲1985년, 사랑의교회에 첫 발을 디딘 박애란 집사는 "사랑의교회에 다니면서 행복했었다. 기도하며 밤을 새웠던 그 때의 모습을 회복하자"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저는 오정현 목사님에게 감사합니다. 우리가 언제 이렇게 모이고 기도하겠어요." 박애란 집사는 교인들 앞에 나와 말했다. 박 집사의 말처럼 오 목사는 본인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흩어진 교인들을 다시 모았다. 무리한 예배당 건축과 권위적인 목회자의 모습에 상처받고 사랑의교회를 총총히 떠났던 교인들이 다시 교회 마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몸은 떠났어도 마음은 여적 남아 있었다.

갑자기 찾아온 꽃샘추위를 쫓아 줄 가스난로가 없었지만 곁에 선 교인의 체온 덕에 언 몸이 녹았다. 기도하는 이의 목소리는 마이크가 없어도 고깔모자 꼭지를 잘라 만든 확성기를 통해 고요히 경청하는 교인들의 귀로 전달됐다. 변변한 조명도 없었지만 반가운 얼굴은 놓치지 않고 인사를 나누었다. 200여 명의 사람은 그렇게 교회 마당에서 기도하고 대화했다.

이따금 소란스럽기도 했다. 기도회에 참석하라는 문자를 받고 교회를 온 한 남성은 자신이 생각했던 기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경찰을 불렀다. 경찰은 신고한 이에게 따로 고소장을 접수하라며 일단 현장을 떠나라고 권유했다. 기도회를 먼발치서 지켜보다가 욕설을 내뱉고 돌아가는 이들, 큰소리로 기도하거나 찬양하며 기도 모임에 불만을 표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건 어떻게 된 거래요?" 교인들은 서로에게 물었다. 온라인에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 들은, 믿고 싶지는 않지만 꼭 사실일 것만 같은, 교회를 둘러싼 숱한 의혹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어 했다. 말은 많아도 어디서 무엇을 듣고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아니, 물을 수 있을지 교인들은 알지 못했다. 정확한 사실을 알려면 똑바로 묻고 확인할 조직이 필요했다. 교인들은 사회넷 운영자인 김근수 집사에게 조직을 만들 권한을 주자는 데 동의했고 김 집사는 사회넷 운영위원들과 조직을 구성하기로 했다.

기도 모임에 참석한 이들은 오정현 목사의 논문 표절 전반을 조사한 7인 대책위원회의 보고서와 교회 재정 장부 공개를 요청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오 목사의 사임도 추구해야 할 목표의 하나로 선언했다.

"오정현 목사의 논문 표절이 드러난 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1979년부터 사랑의교회를 다니며 25년간 순장을 맡아 교회 소모임인 다락방을 이끈 전현경 권사는 가슴 아파하면서도 현실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사랑의교회가 오정현 목사님의 것은 아닙니다." 한 교인은 큰 소리로 반복해서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했다. 1984년 고 옥한흠 목사가 깨어나라고 부르던 교인들은 깨어서 2013년 3월 22일, 사랑의교회 마당에 서 있었다.

▲ 교인들은 가장 먼저 회개를 외쳤다. 사랑의교회가 어려움을 겪게 된 건 남이 아니라 내 탓이라는 고백이 이어졌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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