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박사과정에 새로 입학한 제자가 공부법을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을 공글리다가 예수의 경우에 빗대어 두어 가지 일러주었다. 하루가 지나고 내 생각의 틈새가 보이기 시작할 무렵, 새벽녘의 영감을 다독여 이제 내가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또는 못한 것)을 간추려 정리해본다.

예수는 자신의 몸을 끌고 움직이며 부리는 동선을 통해, 그리고 바깥 사물과 현상에 대한 일상적 관찰을 통해 가르쳤다. 또 그는 묵시의 하늘과 지혜의 땅을 두루 조망하는 전체에 대한 원근법적 통찰로 그 공부가 전체를 지향하면서 앎의 지경을 확대, 심화해 나가는 개안의 경험임을 깨우쳐 주었다. 이를 위해 그는 주로 비유와 어록의 형식을 통해 암시와 압축의 교수법에 바람직한 공부법의 실례들을 담아내었다.

무엇보다 예수는 길 위의 존재였다. 아니, 그의 존재(being)는 길 위에서 생성(becoming)의 과정을 밟았다. 그는 길 위에서 부단히 움직이며 사람을 만났고 그들과 관계를 맺으며 그들의 필요에 부응하여 적극 도와주었다. 가버나움에서 시작된 갈릴리 사역은 예루살렘과의 대척점이라는 결핍된 지리적 변두리를 하나님나라라는 내밀한 화두로써 풍성한 교육의 장으로 둔갑시켰다. 동서 사방으로 그 발걸음의 동선을 확대해 나간 그의 선교 여정은 곧 몸으로 겪어 내며 보는 만큼 알고 깨치는 공부의 신체적 차원을 역설한다. 자신의 몸을 끌고 길의 여정을 탄주하는 그의 동선 끝에서 그는 자신이 개척한 길의 정점을 찍은 뒤 마침내 '그 길'(the Way)로 승화되었다.

예수의 눈은 명민한 관찰의 미덕을 지녔다. 가깝게는 땅의 백합화를 주시하고 멀리는 하늘을 나는 새를 응시하면서 그는 원근법의 시선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피조 세계를 여유 있게 관조함으로써 그 틈새에 서린 하나님의 섭리와 그윽한 생명의 아름다움을 포용할 줄 알았다. 그 시선의 관찰을 통한 공부 길의 언저리에는 무궁한 자유를 통해 다다르는 평화가 있었고 평화로써 누리는 생명의 향유가 움트고 있었다.

그는 천지의 조화를 향해 묵시적 비전을 간직하면서도 그것이 공허한 이상으로 겉돌지 않도록 이 땅의 사람살이에 대한 현실주의적인 지혜에 충실하였다. 카이로스의 번득이는 순간에 임하는 우주적인 천국/하나님나라의 이념형을 설파한 예수가 '망대의 비유'와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베푼 그 예수와 동일 인물인지 간혹 의아해질 때가 있을 정도다. 그만큼 그는 이것을 붙잡고 저것을 놓지 않는, 또는 저것을 품으면서 이것을 팽개치지 않는, 전체에 대한 통찰의 공부법을 견지했다.

그의 교수법 한가운데 듣는 제자의 상상력을 증폭시키는 평이하면서도 경이로운 비유의 세계와 기지 넘치는 촌철살인의 아포리즘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생활 현장의 일상적 체험에 터하여 그것을 소박하게 서사화하고 다시 한 번 뒤집어 그 서사의 다채로운 이면을 깊이 성찰하는 데 공부의 맥점이 있음을 암시한 증거였다. 이로써 그는 공부가 경청과 숙고, 묵상과 성찰, 해석과 적용이란 과정을 거친다는 점도 드러냈다. 이 세상의 주류 가치를 향한 집착과 그로 인한 상투적 인습이 공부의 가장 버거운 장벽이라는 경고도 그 가운데 은근히 깔려 있었다. 그것을 뒤집어 정신의 헐거운 통풍구가 조성될 때 비로소 공부의 에너지가 자생하는 이치도 그 틈서리에 꼬물거리고 있었다.

예수의 공부법은 또 과격한 사랑법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오래 묵은 전통을 품되 그것을 과감하게 재해석하는 방식, 곧 다중이 듣고 소문으로 전하여 고착된 습관을 넘어서는 자리에서 빛을 발했다. 산상수훈의 발화 방식이 절묘하게 드러내듯, 그에게 '전통'이라는 권위적 매개로 강요된 수동적 청종의 텍스트('너희는 이와 같이 들었다')는 예수가 용감하게 개척한 주체적 해석의 컨텍스트('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를 거쳐 마침내 반역과 전복의 지평으로 그 의미를 갱신해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갱신된 의미의 지평 위에 가난한 심령들을 더 많이 아우르고 사랑할 수 있는 태반이 조성되었음은 물론이다.

그에게 공부는 곧 태초의 감각을 염두에 둔 신명 나는 삶의 퍼포먼스에 다름 아니었다. 그의 짧은 공생애와 이야기에 식사와 잔치 모티프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공부의 결실이 삶의 향유와 긴밀히 연동되어 있었음을 암시한다. 삶이 그렇듯, 배움 역시 축적하고 소유하는 것보다 좋아하여 즐기고 누리는 것이 상전이었던 셈이다. 그가 당대 최고 권위의 전당이자 거룩함의 표상이었던 예루살렘 성전에서 자기 목숨을 담보로, 이전의 그와 같지 않은 폭력적인 언행 속에 극렬한 퍼포먼스를 벌인 예는 그의 공부가 즐거움을 매개로 역사를 의식한 증거로 볼 수 있다.

그 예언자적 상징 행위는 자신의 공부가 한 시대의 '뜨거운 상징'이길 지향한 선택이었지만, 동시에 그는 자신의 몸과 피를 떡과 포도주의 상징에 담아 제자들에게 공여하는 방식으로 죽을 때까지 몸에 의한, 몸을 통한, 몸의 공부에 충실했다. 종말도 구원도 사랑도 우리의 식도를 타고 흐르는 그런 물질의 감각처럼 구체적으로 체감되는 자리에 제자들을 위한 공부의 열정이 육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이타적 방식과 별도로 그는 한 무명 여인의 머리털과 입술에 실려 감촉되는 값비싼 나드 향유의 서비스를 통해 역설적으로 거룩한 낭비와 사치의 생산성을 전수하는 여유를 보여 주었다. 이처럼 향유(香油)를 통해 삶의 마지막을 향유(享有)하는 순간 속에 죽어 바스러질 몸의 생명을 달래며 예의를 갖춰 위로하는 것도 공부의 윗길에 있었다.

마지막으로 예수는 죽어가면서도 가르쳤다. 또 그것이 가장 중요한 운명의 공부임을 예감했다. 겟세마네는 죽음을 통과하는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길과 배부른 돼지의 길 사이에 제3의 미학적 대안을 제시한 공부의 또 다른 현장이다. 그는 냉엄하고 초연하게 죽음을 가뿐히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면서 충분히 고뇌하고 슬퍼했다. 또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적 실존의 인지상정을 깊이 공감했다. 그렇다고 그가 돼지 멱따는 소리 하면서 동물적인 생존 본능의 노예가 된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 실존의 극점에서 자신의 뜻을 아버지의 뜻에 맡김으로써 지극히 인간적인 죽음이 인간 이하로 추해지지 않는 선에서 절묘한 미학적 긴장을 유지했다. 살아생전 분요한 가운데서도 여유롭고 고요한 평정을 유지해 오던 그는 죽어가면서 가장 아름다워지는 포즈로써 공부의 모범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오늘날 공부하는 이들은 종종 좁게 파다가 넓이를 놓치고 넓게 파다가 깊이를 잃어버린다. 그런가 하면 현미경의 시선으로 공부하다가 망원경의 존재를 망각하거나 그 반대의 선택으로 전체에 대한 통찰을 포기한다. 또 어떤 이는 장황한 지식의 대양을 유영하다가 압축과 요약의 묘미를 얻지 못한 채 익사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배부르게 채우고 쌓는 데 혈안이 되어 서늘하게 존재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대학 잘 가라는 지청구에 떠내려가는 이들의 공부 길에 전복적 상상력과 과감한 해석은 언감생심이고 용감하게 존재하려는 결기가 생길 리도 만무하다.

생활의 현장에서는 뱀처럼 교활한 정도로 영리해져야 할 이들의 공부 목표가 비둘기처럼 순진한 구석으로 맴돌기 십상이고, 세속에 닳아빠지고 너무 영악해져서 비둘기의 순결한 자세를 다져야 할 이들은 도리어 지나치게 교활한 꾀에 자주 휘둘려 제 함정을 스스로 파기도 한다. 공부의 수많은 재료가 난무하는 이 현대에 지혜를 살려 독을 약처럼 쓰며 공부하는 현명한 이들이 있는가 하면, 맥락을 살려 쓸 만한 양약조차 불신하여 독으로 내치는 우매한 자들도 적지 않다.

내 공부 길을 되짚어 보니 나 역시 어리석은 길에서 혼미하게 헤매고 시간 낭비한 적이 적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앞을 보니 읽을 책이 산더미 같고 공부하여 깨치고도 망각한 진리의 숲을 대하자니 민망한 근심이 가득 차오른다. 내 천학비재를 통렬하게 자각하고 탄식하는 순간은 곧 내가 다시 새롭게 공부해야 할 이유를 제공한다. 내 부실한 삶의 열매와 빈곤한 공부의 결실을 반성하는 새벽녘 고요한 시각, 내 다급한 기도 제목은 예수와 더불어 공부하여 그의 공부법에 신입생으로 다시 입문하는 것이다.

공부의 위기는 공부의 새로운 기미다. 다시 참신한 탐구자가 되라고, 결기 충만한 구도자로 우뚝 공부길 위에 서보라고 예수의 영이 지친 내 등을 떠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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