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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의도성을 확인할 증거
모 유명 목사의 학위 논문 표절 사건에 부쳐
  • 차정식 (chajs2000@yahoo.co.kr)
  • 승인 2013.03.08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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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에 문학을 즐기고 특히 시를 사랑한다. 시를 종종 읽고 묵상하며 분석도 하고 그 미학적 숨결을 깊이 느끼는 데까지 나가고자 한다. 시를 평가할 때 여러 기준이 있지만 그 내용의 덕스러움이나 메시지의 진정성 이외에도 나는 시의 리듬이 주는 탄력성을 포함하여 그 형식적 완성도를 세밀히 따져 본다. 아무리 작품의 교훈이 훌륭하고 메시지가 고상하다 할지라도 그것을 감싸고 있는 형식의 미학적 성취가 시원찮으면 그 울림이 크지 않다. 언어와 언어가 어울려 빚어내는 시적인 아우라가 그 반쪽의 작품 속에 체감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글쓰기가 마찬가지다. 그 글의 성격에 맞는 형식이란 게 있고 그 형식이 요청하는 미학적 조건과 건축공학적 구조란 것도 있다. 논문 쓰기에도 그 글의 고유한 장르에 합당한 방법이 존재한다. 가령, 논문에서 타자의 글을 인용하기 위해 학자들 사이에 합의된 표준 방식이 있다. 논문이란 연구의 결과물이어서 그 글쓰기의 과정에는 제 연구의 흔적이 드러나는 것이 필수적이다. 게다가 그 연구의 과정에 참조한 타인의 학문적 결과물이 투영되는 예측 가능한 경로라는 것도 있다. 그것을 면밀하게 판독하면 어떤 글의 작문이 자신의 표현인지 타인의 글을 인용 또는 참조한 것인지 검증이 가능하다. 아울러 전문적 편집 경험의 식견이 동원되면 글쓴이가 저지른 표절 행위가 어쩌다 생긴 우발적 해프닝인지 정교하게 기획된 의도적 산물인지도 구별할 수 있다.

내 편집 경험에 비추어 우발적인 실수나 순간적인 태만으로 논문의 각주 처리를 못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물론 이런 경우는 정상적인 수준으로 석·박사 과정을 공부할 만한 기본 역량만 갖추었다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그러나 인간이란 게 엉뚱한 순간 자신도 모르게 실수하는 존재이기에 그 희박한 가능성을 배제하기보다 너그럽게 배려하는 게 후덕한 인지상정의 자세일 테다.

이러한 측면에서 비의도적 실수로 봐줄 만한 구체적인 사례는 대체로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된다.


1. 따옴표로 핵심 문구나 문장을 인용하였는데, 그것의 출처 표기를 실수로 각주에서 누락하는 경우

2. 논의의 필요상 중요하게 여겨지는 글의 일부를 직접 인용문으로 길게 처리하면서 글자 크기를 본문보다 한 단계 낮추고 상하좌우 여백을 두어 함께 표준 방식으로 처리했는데, 그 출처 표기를 깜빡 잊어 각주에서 빠트리는 경우

3. 따옴표 처리나 긴 직접 인용문 표기, 각주 표기 등을 모두 누락했지만, 그 인용의 내용이 논의의 흐름에서 특정 개념의 핵심을 정의하거나 중요한 이론의 요지를 제시한 경우 등이다.

앞서 지적한 대로 이러한 누락이나 망각의 실수가 초고 작성에서 발생할 수 있다 해도 웬만한 연구자는 자신의 논문에 대한 반복적인 교정 절차를 밟는다. 그래서 인간의 명민하지 못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러한 우발적 실수는, 자가 교정이든, 지도 교수나 동료 학인의 도움을 통한 편집이든, 거의 대부분 바로 잡히는 것이 상례이다. 그래도 이런 방면의 오류가 미미하게 발생한다면 그것은 비의도적 실수로 봐줄 만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표절의 비의도성을 전혀 인정해 줄 수 없는 사례도 있다. 가령, 인용문의 개념적 비중이나 값어치와 무관하게 잡다한 내용들을 평범한 본문의 서술 과정 가운데 무더기로 집어넣으면서 일부 단어만 변개하거나 편집의 '솔기'(seam)를 지우고 매끄러운 문맥의 흐름을 위해 최소한의 손질을 하는 경우가 그렇다.

나아가 그러한 무단 인용의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 여기저기 남발된 경우라든지, 한 사람의 한 자료가 아니라 복수의 저자가 생산한 복수의 자료를 그런 식으로 도배하듯이 접속시켜 놓은 경우는 우발적인 실수나 순간적인 태만이 아니라 '작심하고' 남의 글을 도둑질하기로 명백히 '의도한' 증거로 봐야 옳다. 특히 학위 논문의 경우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최대한의 공력을 투입하기 때문에 이러한 검증 기준에 비추어 한두 가지라도 의혹의 여지가 있다면 그 속내가 명약관화하다는 게 전문적 편집 경험이 있는 자들의 상식이다.

나는 항간에 문제시되고 있는 모 유명 목사의 학위 논문 표절 사건에 대해 조사 보고서를 낱낱이 읽어보고 특정 대목은 매우 상세하게 해당 증거를 비교 검토해 본 적이 있다. 내 결론은, 이건 '영리한 표절'도 못되고 '무지막지한 복제 및 짜깁기'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이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과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정직하게 텍스트의 구성과 문장의 흐름만을 대조해 보면 이런 진단 결과는 그리 어렵지 않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것을 받아 박사 학위를 수여한 학교의 학장이나 어떤 개인이 대강 눙치면서 '별 문제 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 학교와 학장의 지적인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치명적인 증거이다. 또 이런 심각한 사안을 개인 대 개인의 소통 방식으로 처리하는 행태에 나는 경악을 금할 수 없다.

내가 경험하고 아는 해외의 좋다는 대학들은, 아니 논문에 대한 기초 상식만 갖춘 보통의 대학만 되어도 이런 사안에 대응하는 방식과 절차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이다. 먼저 이를 조사하는 위원회를 꾸며 치밀하게 검증하고 그 결론에 대해서는 오로지 '학문의 엄정함'과 '지적인 공론'의 기준에 터하여 엄중하게 처리하는 것이 이미 관례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해외뿐 아니라 근래 국내의 웬만한 대학이나 학회에서도 표절 문제를 조사하는 제반 절차를 연구 윤리 규정 가운데 구체적으로 제도화해 두고 실제로 시행하기도 한다. 이런 현실을 아는 서울대 모 교수는 자신의 연구 논문(학위 논문도 아니고)이 표절로 드러나자 학교의 징계가 내려지기도 전에 참담하고 창피한 심경을 감당키 어려워 스스로 사직서를 내고 학교를 떠났다.

어떤 대학이 예전에 학문적 명성과 권위가 대단했다는 식의 말은 오로지 현재 진행형의 효력을 가져야 신뢰받을 수 있다. 물론 신정아 가짜 학위 스캔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전통적 명망이 자자한 예일대 같은 학교도 행정상의 실수로 착오는 늘 생길 수 있다. 다만 그것을 처리하는 뒤끝은 말끔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조사와 검증의 단초와 그 과정이나 결과가 두루 엉성하고 지질한 수준을 드러내 보인다면, 나는 솔직히 그 학교에서 공부하는 이들한테 자기들끼리 체면치레하며 방어할 의욕을 거둬들이고 얼른 다른 학교로 전학하라고 간곡히 권하고 싶다.

명문 대학은 자기만족적인 구호나 소문 속에 희미하게 떠도는 항간의 평판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 그것은 세월의 경륜과 선배들의 공력을 우려내어 치장하는 전통의 훈장 같은 것도 아니다. 좋은 대학의 훌륭한 선생과 성실한 학생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학문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그 연구와 글쓰기의 공정을 통해 지적인 엄정함에 기초하여 꾸준히 단련될 때 피상적인 평판의 허울을 넘어 비로소 학문의 당당한 주체가 될 수 있는 법이다. 명문 대학은 따라서 그 공동체 내에 몸담고 가르치며 배우고 연구하는 선생과 학생들이 협력하여 현재 시점에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렇게 좋은 이름을 세우기 위한 노력의 출발점은 지식인이 자신의 정직한 말과 주체적인 글로써 자신의 지적인 정체성을 견고하게 구축하는 데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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