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27일 열린 실행위원회가 97회 총회 결의를 삭제한 선거법개정위원회의 개정안을 그대로 받아 논란이 예상된다. ⓒ마르투스 이명구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실행위원회가 총회 결의를 폐기해 논란이 예상된다. 실행위는 지난 2월 27일 선거법 개정안을 확정하면서 97회 총회에서 결의한 '총회 임원 후보는 세례 교인 500·300명 이상 교회 시무자여야 한다'는 조항을 삭제한 선거법개정위원회(유병근 위원장)의 초안을 그대로 받았다. (관련 기사 : 총회 결의 뒤엎은 선거법 개정) 일각에서는 몇몇 정치권 인사들을 위해 세례 교인 수 제한을 없애고 총회 활동 경력을 넣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의문1 : 선거법개정위, '전면 개정' 위임받았나

▲ 선거법개정위 서기 고광석 목사는 97회 총회에서 선거법을 '전면 개정'하라고 했기 때문에 세례 교인 수 제한 조항도 고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르투스 이명구

선거법개정위는 세례 교인 수를 제한한 선결의보다 '선거법 전면 개정'을 위임한 후결의가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선거법개정위 서기 고광석 목사는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97회 총회 셋째 날 세례 교인 수 제한 조항을 결의했지만, 다음 날 선거 방식이 절충형으로 바뀌면서 5인 위원회가 선거법을 개정하도록 전권을 위임받았다"고 설명했다. 정치부 서기이기도 한 고 목사는 "전면 개정을 하라고 했기 때문에 정치부 서기인 내가 선거법개정위에 들어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97회 총회에서 선거법개정위에 선거법에 관한 전면 개정을 위임했다는 내용은 없다. 당시 정치부 보고 때 고 목사가 직접 낭독한 내용은 "(선거 방법 수정의 건은) 절충형, 즉 제비뽑기로 두 명을 선출한 후 직접 선거하되 이를 위한 연구 및 실행위원 5인을 선정한다"이다. 총회에서는 12년간 고수해 온 제비뽑기 선거 방식을 직선제를 가미한 절충형 방식으로 바꾸면서 이를 어떻게 실행할지를 연구하라고만 한 것이다.

총회가 전면 개정을 위임한 게 아니라면 선거법개정위가 이미 결의된 세례 교인 수 조항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실행위는 이에 대한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선거법개정위의 보고를 통과시켰다. 실행위 회의에서 황규철 총무는 "선거법개정위는 절충형만 연구하면 되는데 왜 세례 교인 조항까지 건드리느냐"며 총회 결의 당시 비디오를 보자고 제안했지만, 다른 실행위원들은 이를 거절했다.

의문2 : 실행위가 총회 결의 폐기할 수 있나

물론 세례 교인 수 조항은 97회 총회 결의 당시에도 총대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한 총대가 나서 "시골 교회에서는 세례 교인 500명을 채울 수가 없다. 총회장이 될 자격과 능력이 있어도 세례 교인 수 때문에 출마하지도 못한다"고 발언했다. 정준모 총회장이 가부를 물을 때 "아니오"라고 외치는 총대도 많았지만 정 총회장은 "'예'가 더 많으니 그대로 받겠다"며 의사봉을 두드렸다.

이견이 많긴 했어도 교단 최고 의결 기구인 총회의 결의다. 실행위 회의에서는 총회 결의를 실행위가 함부로 바꿀 수 없다는 의견도 다수 제기됐다. 정중헌 목사(영도교회)는 "세례 교인 수 조항이 '좋다,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라 일단 총회에서 결의한 사항을 바꾸려면 노회가 헌의하거나 총회에서 긴급동의안을 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형만 목사(삼호교회)도 "총회 결의는 고칠 수 없다"고 거들었다. 1300여 명이 결의한 내용을 고작 50여 명이 모여 손바닥 뒤집듯이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장합동 총회 규칙에도 실행위가 총회 결의 사항을 번복할 수 있다는 조항은 없다. 총회 규칙 제3장 10조에 따르면 실행위는 총회의 정책을 연구하는 곳이다. 하지만 정책을 연구하더라도 바로 시행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반드시 '총회에 헌의하기로' 돼 있다. 또 실행위는 총회가 파한 후 대내외적으로 발생한 긴급한 사항이 있을 때 총회적 차원에서 이를 처리하는 위원회다. 실행위가 총회가 결의한 사항을 폐기해도 된다는 규칙은 찾아볼 수 없다.

의문3 : 세례 교인 수 대신 총회 활동 경력은 왜 넣었나

총회 임원 후보 자격에 세례 교인 수를 제한한 것은 목회 리더십 자격을 강화하겠다는 뜻이었다. 지난 회기 선관위 한 위원은 "많은 교인 수와 높은 목회 자질이 꼭 비례하진 않지만, 목회에 대한 특별한 기준이 없다보니 목회는 뒷전이고 총회 정치를 업으로 삼는 정치꾼들이 마구잡이로 출마하는 게 현실이다"며 "교단을 대표하는 총회 임원 후보 자격에 세례 교인 수 제한을 두면 자질을 어느 정도 검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 실행위원회는 총회에서 논의되지도 않았던 '총회 활동 경력'이 임원 후보 자격으로 들어갔다. 일각에서는 몇몇 정치권 인사들을 배려한 결정이라는 의혹이 일고 있다. ⓒ마르투스 이명구

하지만 개정된 선거법에는 총회에서 논의되지도 않았던 '총회 활동 경력'이 세례 교인 수 조항 대신 추가됐다. 선거법개정위는 2월 14일 선거법 개정을 위한 공청회에서 처음 이 같은 안을 선보였다. (관련 기사 : 부총회장 출마 자격, 갑론을박) 당시에도 이영신(양문교회)·남태섭(대구서부교회) 목사는 97회 총회 결의를 한 번도 시행하지 않고 폐기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고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세례 교인 수 조항 삭제를 반대했다.

반면, 김영우(총신대 재단이사장)·강흥찬(진성교회) 목사 등은 총회 활동 경력 안을 지지한 바 있다. 이들은 총회 활동 경력 조항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총회 임원이 될 사람들은 교단의 이런저런 일을 해 보면서 시행착오를 겪어 보고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목사·장로들은 총회 정치권에 있는 일부 목사들이 조항을 바꾸는 데에 공조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시무하는 교회에 교인 수는 많지 않지만 총회 상비부·위원회·기관들을 두루 돌며 활동한 사람들에게 딱 좋은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한 실행위원은 "세례 교인 수 조항을 그대로 두면 본인들이 총회 임원에 입후보할 수 있는 길이 막히는데 누가 그런 법을 받아들이겠느냐"며 혀를 찼다. 또 다른 목사는 "정치꾼 몇몇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조항을 바꿨다"며 개탄했다.

이들은 총회 결의를 무시한 선거법 개정이 총회에서 다시 불거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목사는 "2월 27일 실행위의 결정은 98회 총회 때 문제가 될 게 뻔하다"고 전망했다. 다른 목사는 "선거법은 98회 총회 때 다시 얘기해야 한다. 아마 봄 정기노회에서도 헌의안이 많이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구권효 / <마르투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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