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봉사와 헌신으로 사신 아프리카 수단의 이태석 신부님이라든가 인도의 테레사 수녀님 아니면 가깝게는 우리나라의 다일공동체의 최일도 목사님이나 산동네에서 알게 모르게 어려운 이웃과 함께 사랑을 실천하시는 호용한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도 적지 않은 감동을 받고 그분들을 본받고 싶다."

혜민 스님이 2011년 11월 블로그에 쓴 수필 '가슴에 남는 성경 구절들'의 한 부분이다. 스님이지만 경전의 가르침대로 실천하는 이웃 종교인들의 활동에 감명받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테레사 수녀나 이태석 신부, 최일도 목사에 관해서는 워낙 알려진 이야기이니 그러려니 넘어갔다. 그런데 호용한 목사(56)는 누굴까? 다른 이들에 비해 세간에 알려진 일이 별로 없다. 산동네에서 봉사 활동을 펼치는 목회자라면 호 목사 말고도 훌륭한 족적을 남긴 이들이 있는데, 혜민 스님은 어떻게 호 목사를 알게 되었을까. 검색해 보니 비슷한 시기에 한 일간지가 호 목사와 옥수중앙교회(서울 성동구 옥수동 금호4가 1528-4) 이야기를 보도한 적 있다. 10년 동안 꾸준히 산동네를 섬기면서 교회도 덩달아 부흥하고 있다는 것이다.

꾸준히 이웃을 섬기는 선행이 결국 교회 부흥으로 이어졌다는 기사의 결론이 불편했다. 교인이 늘어난 이유를 그렇게 짜 맞춘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게 만들었다. 언론에 비친 호 목사도 눈물 많은 자상한 목자 이미지다. 이쯤 되면 직접 확인해 보는 게 상책이다.

지하철 3호선 금호역에서 내려 비탈진 골목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제법 넓은 평수의 아파트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옥수중앙교회 주변으로만 재개발을 기다리는 빈집들이 자리 잡고 있을 뿐, 나머지는 온통 아파트 천지다. 옥수동은 서울시에서도 떠오르는 아파트촌이다. 아직도 이곳에 가난한 사람이 살고 있으리라고 믿기지 않았다. '산동네 성자 목사님 신화는 옛이야기가 아닐까.'

교회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부동산중개소가 내붙여 놓은 광고판은 이곳의 40평대 아파트 매매가는 7억 원에서 10억 원을 오르내리고, 전세도 4억 원 안팎에서 거래된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강남과 도심 가깝고 북부간선도로를 이용해 외곽으로 빠져나가기 좋은 목', '한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남향 집'이라 자랑하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옛 산동네, 달동네가 이제는 부촌이 되어 가는 변화의 중심에 옥수동이 서 있는 듯 보였다.

산동네 눈물 많은 목사?

▲ 호용한 목사는 옥수중앙교회 주변이 재개발되었지만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 많다고 설명했다. ⓒ마르투스 주재일

인터뷰 시간에 맞춰 정문에 나와 있는 호 목사와 인사를 나눴다. 가난한 사람이 살 것 같지 않다는 말부터 건넸다. 혹시나 교회 주변 오래된 건물에 사는, 아직 떠나지 못한 이들을 돌본다는 뜻인지 확인했다.

"옥수동을 멀리서 보면 그렇게 이해하는 게 당연해요.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달라요." 호 목사는 주변 아파트 시세부터 일반 임대아파트 사이로 주공아파트들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자세히 설명해 줬다.

확실히 옥수동 아파트는 인기를 끌고 있다고 호 목사도 말했다. '한강 조망권'에 '사통팔달 교통' 조건까지 완벽하게 갖춘 아파트 값은 열기가 식었다는 부동산 시장을 비웃듯 치솟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곳에도 구석구석 가난한 이들은 여전히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살고 있다고 했다.

옥수중앙교회가 돕고 있는 가정은 대략 600가정이 넘는다. 대부분 차상위계층으로 정부 지원을 받기 어려운 가정이다. 그렇게나 많이 살고 있을까 싶지만, 아파트촌을 누비면서 울보가 되었다는 말이 돌아왔다. 12평 남짓한 주공아파트에 예닐곱 명이 사는 것은 기본, 호 목사는 아홉 명이 사는 가정도 보았다고 했다. 강남과 가까워 파출부로 일 나가는 사람이 많고, 독거노인이나 조손 가정 아이들도 흔하다고 했다.

홀로 사는 노인, 노인만 사는 가정은 으레 '비닐침대'를 쓴다고 했다. 오줌 가리기도 어려운 이들, 또 그들을 간호할 형편이 안 되는 가족과 함께 살기에 침대는 우선 비닐을 깔고 그 위에 담요를 펴고 생활한다는 것이다. 노인 중에 상당수는 자녀들이 있어 정부 지원에서 제외되었지만 자식들이 전혀 찾아오지 않아 방치된 삶을 산다. 호 목사는 집안에서 풍기는 퀴퀴한 냄새로 고단한 삶을 가늠하면 처음에는 화가 치밀다가 나중에는 눈물이 난다고 했다.

"어렵게 사는 어르신들 댁을 방문하면 부모를 이렇게 내팽개치는 자식들이 다 있나 싶어 욕부터 나왔습니다. 어르신들과 대화하고 삶을 살피면서 자식들은 또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헤아리게도 되었습니다. 이제 쉰을 넘겼을 내 또래의 자식들은 또 얼마나 퍽퍽한 삶을 살까 생각하면 화 대신 가슴이 시려 옵니다."

우유에 사랑과 복음을 담아

이들을 대상으로 옥수중앙교회가 펼치는 대표적인 활동은 '사랑의 우유 나누기'다. 배를 채우기에 급급하다 보니 소홀하기 쉬운 필수영양소를 섭취하도록 돕는 게 필요했다. 특히 어려운 처지의 어린이나 노인들에게는 우유가 완전식품이자 필수 식품이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형편이 닿는 대로 100가정 이상의 이웃들에게 우유를 배달해 왔다. 지금은 250가정이 옥수중앙교회 우유를 먹는다.

호 목사가 우유 배달로 노리는 점은 뼈가 약한 노인과 어린이의 영양 회복만이 아니다. 우유 배달로 응급 구호 활동도 펼친다고 했다. 매일같이 배달하다 보니 문 앞에 우유가 두세 개만 쌓여도 그 가정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배달하는 우유 회사와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우유가 쌓인 집을 직접 방문하고 주민센터 혹은 구청에 연락해 위급한 상황을 처리하기도 했다.

▲ 옥수중앙교회가 우유와 함께 이웃들에게 전달하는 '사랑의 쌀'. 옥수중앙교회는 1년에 4차례 이웃들에게 쌀과 라면, 김치 등을 전달한다. (사진제공 옥수중앙교회)

"가끔 이웃이 죽은 지 몇 개월 만에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볼 때가 있는데, 우리 동네에서는 그런 슬픈 일만큼은 막고 싶었습니다. 우유 배달은 자연스럽게 어려운 이웃의 형편을 살필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이웃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옥수중앙교회표 우유를 배달받은 사람들 가운데는 다른 곳으로 이사해서도 꾸준히 지원받는 가정이 있다. 이사하면서 교회로 전화를 걸어 계속 도와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형편이 정말 어렵기 때문에 염치 불구하고 부탁하는데, 거절할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호 목사는 불편한 일이나 도움이 필요한 일은 없는지 안부 편지를 두 달에 한 번씩 보낸다.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정은 없는 법이다. 2010년 겨울 호 목사와 옥수중앙교회는 큰 선물을 받았다. 5년간 옥수중앙교회 우유를 드셨던 이선희 할머니(79세)가 방울 모자 100개를 떠서 들고 온 것이다. 할머니는 공짜로 우유 받아먹어서 염치가 없었다며, 실 모자를 만들어 가져왔다고 했다. 할머니는 실을 최대한 저렴하게 사기 위해 시장에서 싸게 파는 옷에서 실을 한 올 한 올 풀어서 모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호 목사는 "주는 사랑, 받는 사랑은 이런 것이다"고 설교했다. 이 일은 구청 소식지를 타고 세간으로 알려져 일반 언론에도 나게 되었다.

▲ '사랑의 김장 나누기.' 해마다 김장철이면 옥수중앙교회는 1500포기 규모의 김장을 해 이웃과 나눠 먹는다.(사진제공 옥수중앙교회)

쌀·라면·김치는 먹는 게 아니라 나누는 것

옥수중앙교회는 한 해에 네 차례 '사랑의 쌀/라면 나누기' 행사도 펼치고 있다. 10킬로그램짜리 쌀 300포대와 라면 300상자를 300가정에 나눠 준다. 부활절과 추수감사절, 성탄절 등 교회 절기와 설이나 추석 등을 전후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한다. 쌀과 라면을 배포하는 장소는 교회가 아니라 주민센터다. 주민센터에서 주민들에게 연락해 가져가도록 하고 있다. 옥수중앙교회는 교회 이름과 짧은 성경 구절만 포장지 한 쪽에 적어 놓는다.

쌀이 가면 반찬도 가야 한다. 해마다 겨울이면 김장을 하느라 옥수중앙교회 주차장이 북새통을 이룬다. 1500포기가 넘는 배추를 절이고, 한쪽에서는 김치소를 만든다. 10킬로그램씩 300개를 포장해 배달했다. 지난겨울에는 여기에 양말 두 켤레까지 곁들였다. 옥수동의 한 양말 공장 사장님이 양말 600켤레를 기부했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신앙인이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옥수중앙교회 활동 이야기를 듣고 먼저 연락해 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교회에 쌀을 쌓아 놓고 가져가라로 홍보했다. 찾는 사람이 드물었다. 이런 식의 수혜는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구나 싶어 직접 배달했다. 그래도 반응은 시큰둥했다. '아, 자신의 삶을 도움 주는 쪽에 드러내고 싶지 않구나.' 또 한번 배웠다. 이번에는 주민센터에 연락해 도움을 청했다. 옥수중앙교회가 쌀을 마련해 놓으면 주민센터가 주민들에게 연락하는 방식이다.

▲ 떡국을 나누는 날. 작은 선물과 함께 떡국떡을 넣고 포장지에는 성경 구절과 교회 이름을 적어 넣었다. 떡을 먹는 이웃이 하나님의 사랑도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았다. (사진제공 옥수중앙교회)

나눔은 또 다른 나눔을 부른다

이후 자연스럽게 주민센터와 공조하는 일도 많아졌다. 주민센터의 제안으로 재개발로 헐리기 전까지 옥수동의 어린이 도서관도 옥수중앙교회가 운영한 적 있다. 교회에서 사서를 파견해 주민센터 한쪽에 있는 어린이 도서관을 운영한 것이다. 호 목사는 그때 북적거리던 아이들이 생각나 나중에 꼭 교회에서 어린이 도서관을 다시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주민센터나 구청 복지과 공무원들은 도움이 필요하지만 정부나 법이 돕기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을 옥수중앙교회와 맺어 준다. 그때마다 옥수중앙교회는 거절하지 않고 도왔다. 그렇게 한두 가정씩 섭외가 들어와 50곳의 결손가정을 도왔다.

무상 급식이 실시된 뒤부터는 결손가정에 들어가는 돈으로 월드비전과 협력해 해외의 결식아동 20여 명을 후원하고 있다. 그리고 옥수동과 금호동에 사는 조손가정 20곳에 5만 원씩 지원한다. 멀리 있는 사람들을 돕는 만큼 가까운 이웃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균형'을 맞춘 것이다.

▲ 짜장면 잔치하는 날. 중국집 사장이 동참해 토요일마다 어르신들을 초대해 짜짱면을 대접했다. (사진제공 옥수중앙교회)

선행은 또 다른 선행을 불러오는 법이다. 지난 5년간 꾸준히 토요일 짜장면 잔치를 연 적 있다. 주변 독거노인 150분을 초대해 짜장면을 대접했다. 옥수중앙교회의 봉사 활동 소식을 들은 압구정동의 한 중국집 사장이 자신도 동참하고 싶다며, 5년간 매주 토요일마다 짜장면을 배달해 온 것이다. 교회에서는 후식으로 먹을 과일과 차를 내놓았다.

"어르신들을 식사만 하시고 돌려보낼 수 없어 과일을 내놓았더니 드시지 않는 겁니다. 다들 호주머니에 넣어서 가져가시더라고요. 집에 남은 가족들 생각에 드시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과일도 잘라 놓고 커피도 타 놓았더니, 그제야 드시고 가십니다."

돕는 것으로 출발해 더 잘 돕는 것으로 성숙해 가는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웃을 챙긴 것이었는데, 자연스럽게 타인의 심정을 헤아려 가게 되었다. 따뜻한 마음은 교인들의 마음을 데워 갔고, 교회 밖으로도 퍼졌다. 교인들 가운데 최근 사업이 번창한 형제 기업인은 올해부터 월 300만 원을 '사랑의 우유 나누기'에 기부하기로 했다. 교회 밖에서도 10만 원, 20만 원씩 보내는 분도 있다. 해외에서도 100달러를 편지와 함께 보내는 부부, 이름 없이 통장으로 돈만 보내오는 이들이 늘었다.

교회 하나 되게 한 장학 사업

옥수중앙교회가 꾸준히 심혈을 기울이는 또 다른 사역은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장학 사업이다.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 20명에게 학기마다 100만원 씩 지원한다. 지금까지 장학금을 받은 학생만 100명을 훌쩍 넘는다. 해마다 1억 원 이상 이웃을 위해 쓰고 대학생 장학금까지 지원하는 이야기를 하면, 큰 교회라 착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옥수중앙교회의 연 예산은 2012년 기준 8억 원이 조금 넘는다.

교회도 큰 규모가 아니지만, 교인들도 부유한 가정이 많지 않다. 교인 가정의 3분의 1이 월수입 120만 원을 넘기지 못한다. 최저생계비 이하의 돈으로 사는 가정이 꽤 많은 편이라고 호 목사는 말했다. 호 목사가 옥수중앙교회에 부임한 13년 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이었다. 교회는 건축으로 10억 원에 이르는 빚을 지고 있었고, 재개발과 내분으로 교인들도 많이 떠나고 150명 정도가 남았다고 한다. 나누는 것은 고사하고 어떻게 생존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처지였다.

"독일에서 유학 생활을 접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 옥수중앙교회에서 청빙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어디서든지 목회할 수 있으면 감사했습니다. 목사가 교회 속사정까지 따져 보고 가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알아서 살려주시겠지' 하고 부임했습니다. 그래도 처음에는 막막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 옥수중앙교회는 최선을 다해 이웃들에게 베풀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통해 펼치시는 기적이라고 믿습니다."

▲ 교인들과 함께 떡국떡을 포장하는 호용한 목사. 그는 이웃에게 자신들을 사랑하는 목사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사진제공 옥수중앙교회)

호 목사가 말하는 '기적'의 계기는 부임 후 석 달만에 찾아왔다. 호 목사가 한 권사의 팔순잔치 설교를 맡은 적 있다. 이 권사는 답례로 오랫동안 타향살이하다가 들어왔으니 돈이 많이 들 거라며 봉투를 건넸다. 특히 자녀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신경 쓰라고 당부했다. 이북 출신이었던 권사는 피난민 아버지 밑에서 가난하게 성장한 호 목사에게 처음부터 동질감을 느껴 호의를 베푼 것이었다. 그런데 봉투에 돈이 20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호 목사는 아내와 상의 끝에 "우리 자녀만을 위한 돈이 아닌 것 같다"고 마음을 모았다. 예배 시간에 교인들에게 이 돈으로 장학 사업을 해 보자고 제안했다. 자신이 앞장섰으니 교인들에게도 한 달에 1만 원 정도씩 장학 헌금에 동참하자고 했다. 가난한 처지에 있는 교인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호 목사의 사심 없는 마음이 통해서였는지 모르지만, 교인들은 작정한 헌금은 매월 350만 원이 넘었다.

여기에 호 목사가 돈을 더 보탰다. 심방 때 만난 교인들이 '도서 구입비' 명목으로 준 돈 1500만 원을 그대로 내놓았다. 교인들이 독일에서 갓 돌아온 호 목사의 생활이 걱정돼 목사가 심방할 때 주는 돈보다 더 많이 챙겨서 주었는데, 장학 기금으로 내놓은 것이다. 호 목사가 내놓은 3500만 원과 교인들의 작정 헌금을 씨앗 기금으로 장학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결식아동을 돕고, 등록금도 지원했다. 형편이 어려운 다자녀 가정을 위해서 전기 요금과 수도 요금 등을 대신 내주기도 했다. 출산하는 교인들에게는 소정의 격려금도 지급하고 있다.

옥수중앙교회의 장학 기금 사용 방법은 적립하지 않는 것이 첫 번째 원칙이다. 장학 기금 가운데 1000~2000만 원 정도만 통장에 남기고 나머지는 그때그때 필요한 이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돈이 쌓이면서 벌어질 수 있는 불필요한 갈등을 사전에 막는 처방이기도 했고, 당장 급한 이들이 있는데 차일피일 미뤄서도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학 기금 소식이 교인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떠났던 교인들이 돌아오는 경사도 겹쳤다. 그때까지 옥수중앙교회는 이런저런 일로 세 번 정도 교인들이 갈라져 나간 적 있다. 그런데 교회 밖에서 호 목사의 목회 활동을 들은 떠나간 교인들이 50명 씩, 30명씩, 20명씩 되돌아온 것이다. 교인들 간의 닫힌 마음도 봉사 활동을 함께 하면서 금세 열렸다고 한다.

▲ 호용한 목사는 이웃과 나누기 위해 사찰집사와 사무원 등을 두지 않고 모든 일을 교인들과 직접 한다고 했다. 그렇게 아껴서 이웃을 돕는다고 했다. ⓒ마르투스 주재일

나누기 위해 악착같이 아낀다

여기에 자신감을 얻은 호 목사는 교인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한 해 1억 원 이상은 이웃 돕기에 쓰자"고 발표했다. 대신 아낄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절약하겠다고 약속했다. 우선 옥수중앙교회에는 사무원이나 사찰집사가 없다. 호 목사는 예배 후 성경과 찬송가를 정리하고 정수기를 청소하는 일 정도는 직접 나선다. 불이 나간 전등을 갈거나 주보를 만들고 손님을 접대하는 일 따위도 부교역자들이 분담해서 처리한다. 교회 청소도 교인들이 돌아가며 한다.

"이렇게 악착같이 아끼면 1년에 5000만 원 정도는 절약이 되더라고요. 그만큼 우리는 이웃을 위해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겁니다."

아끼면 이웃을 도울 수 있다는 말이 실언이 아니라는 것은 금방 확인할 수 있었기에 교인들도 흔쾌히 동의했다. 목사는 심방 가도 돈을 받지 돈을 따로 챙기는 일이 없다. 재정은 바로바로 공개해 어떻게 쓰는지 교인들 누구나 확인할 수 있게 홈페이지 등을 통해 투명하게 공개했다. 교회 빚도 5년여 만에 다 갚고, 오히려 교회 옆 부지를 교육관으로 쓰려고 매입까지 하게 되었다. 건축도 무리하게 않았다. 빚을 내지 않고 지을 수 있을 만큼만 늘렸다.

재개발이 되어 떠난 사람들도 많지만 옥수중앙교회는 교인이 네다섯 배 정도 늘었다. 매주 서너 명은 새로 예배에 참석한다. 예전처럼 가난한 산동네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다. 새로 출석하는 교인 중 상당수는 중산층 가정이 많다. 분명 재개발로 산동네가 아파트촌으로 바뀌면서 생긴 변화들이다. 재개발 때문에 교인 100여 명이 이사를 갔지만, 교인이 오히려 늘어난 것은 아파트 단지로 변모한 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옥수중앙교회가 신앙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외부의 조건 때문만은 아니다. 이웃을 위해 교회가 최선을 다해 나누는 옥수중앙교회의 모습이, 한 번 방문해 보는 주변 교회에서 정착해 신앙을 뿌리내리고 싶은 공동체로 여기게 만드는 것이다.

교인들은 "우리 목사님은 돈을 밝히지 않는다"고 자랑한다. 그렇지만 호 목사는 오해라고 손사래를 친다. 돈 싫어하는 사람 어디있겠느냐고. 다만 자신은 자기 분수를 알고 욕심을 내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또 이웃을 위해 아낌없이 주는 교회로 알려진 것은 모두가 교인들 덕으로 돌렸다.

얼마 전 설교에서 호 목사는 혜민 스님 이야기를 꺼냈다. 교인들 모두가 뜻을 모아 이웃을 돕다 보니 세간의 호평도 받았다며 혜민 스님 글을 읽어 주었다. 호 목사는 "여러분 때문에 나는 테레사 수녀 같은 성자의 반열에 올랐다"고 농담을 했고, 교인들도 호 목사도 한바탕 웃었다.

주재일 / <마르투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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