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감히 고(告)하다

▲ <something in common> / Adrian chatfield 지음 / 김기석 외 옮김 / 성공회출판사 펴냄 / 235쪽 / 1만 8000원

"무식하면 용감하다"라는 말이 있다. 그 의미는 무언가에 대해서 잘 모르면 쉽게 말하고 행동 하지만, 잘 알면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기가 꺼려진다는 말이다.

어느 날, 성공회 신부님을 통해서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성공회 교단을 소개하는 안내서격인 책이다. 필자는 성공회에 대해 거의 잘 모르지만,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곳이라 신부님이 주신 책을 단숨에 읽었다. 책을 다 읽은 후, 이상한 의무감이 생겼다. 성공회 밖에 있는 사람이 이 책을 통해서 갖게 된 성공회에 대한 인상을 일반인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문제는 성공회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 때문에 전하고 싶은 의무감에 제동이 걸렸다. 어떻게 할까 수차례 망설인 끝에 소크라테스의 역설 논법, 내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단 한 가지라는 말에 위안을 얻고 '무지(無知)의 지(知)'라는 합리화로 무식하지만 용감하게 펜을 들기로 결심했다.

책의 제목은 <SOMETHING IN COMMON>, 번역하면 '공통점'이다. 저자는 성공회 사제인 아드리안 챗필드(Adrian chatfield)이고,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김기석 신부를 비롯해 몇 사람의 공동 번역으로 성공회 출판사가 2012년 4월에 출판했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판매 부수를 높이기 위해 독자들의 관심을 끌려고 표지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쓴다. 상업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상업성이라는 군살을 쏙 빼 버렸다. 오롯이 내용 전달에만 관심을 둔 것 같다. 그 이유는 제목의 디자인에 숨어 있다. 역자들은 제목을 한글로 번역하지 않고 영어로 그대로 표기했는데, 얼핏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는 책 전체의 성격을 규정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제목을 살펴보자. <SOMETHING IN COMMON>에서 첫 단어 'SOMETHING'의 글자 수는 9개이고, 두 번째 'IN'은 2개, 마지막 단어 'COMMON'은 6개이다. 첫 단어의 알파벳 숫자와 마지막 단어의 알파벳 숫자는 3개 차이가 나서 양쪽 단어의 균형이 맞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SOMETHING'에서의 'S'와 마지막 글자 'COMMON'에서 'N'이 똑같은 크기로 인쇄되어 있다. 그리고 'SOMETHING'과 'COMMON'의 두 글자의 알파벳의 활자가 중간으로 가면 갈수록 똑같은 크기로 점점 작아지면서 묘한 대칭 구조를 이루면서 가운데 'IN'이라는 글자로 수렴된다.

글자 수는 다르지만 양쪽 끝에 있는 두 단어의 알파벳을 똑같은 크기로 하고 점점 중간으로 오면서 크기에 균형을 잃지 않고 같은 폰트로 디자인함으로써 다르지만 왠지 모르게 똑같은 묘한 균형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는 제목의 윗부분에 '아름다운 하모니-성공회를 말하다'라는 부제를 달았다.

이는 출판한 사람들이 책 제목만 봐도 성공회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를 알 수 있는 숨은 그림 찾기와도 같은 암시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중심축은 두 가지이다. 이는 성공회가 지향하는 방향성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첩경이기도하다. 첫째는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고, 둘째는 다르지만 포용하자는 열린 태도이다.

그것이 책 제목의 디자인을 통해 글자 수는 '다르지만' 균형 있는 감각의 크기로 대비함으로써 '하모니'를 통해 '포용'하자는 정신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 책이 지향하고 있는 가치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다름 속의 하모니'이다. 곧,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이다. 아마 이 책을 중국이나 대만에서 출판한다면 제목을 '화이부동'이라고 해도 꽤 어울릴 것 같다.

Ⅱ. 내용 소개

이제 내용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 책은 꼬리 부분의 크랜머 대주교의 설교와 함께 총 일곱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게 보면 1장에서 5장까지는 이론적인 부분, 6장과 7장은 실천적인 부분으로 구분된다.

1장은 성공회의 참모습, 즉 진짜 얼굴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성공회는 다양한 얼굴이 공존하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신앙 형식이 전부라는 아집을 버리고 포용적인 자세를 취할 것을 강조한다. 그 이유는 성공회는 포용하고 끌어안으시는 큰 하느님을 믿고, 과거, 현재, 미래를 중요시하는 역사관과 범세계적인 가족이라는 정신으로 다른 교파 그리스도인들과 친교하기 때문이다.(16~17쪽) 이것이 성공회가 넓은 교회를 지향하는 이유이다.

2장은 성공회의 기원과 역사이다. 영국에는 북 아프리카와 관련된 브리튼 교회, 로마인인 세운 교회, 오거스틴이 선교한 교회가 있다. 성공회는 종교개혁 이전과 이후에 따라 앵글로-가톨릭교회, 즉 고교회(high church), 복음주의 성공회, 즉 저교회(low church)로 나뉜다. 19세기는 성공회 자유주의가(liberal Anglicanism)가 등장함에 따라, 성공회는 성서의 권위를 강조하는 복음주의자, 전통을 수호하는 앵글로 가톨릭주의자, 이성을 중요시하는 자유주의자들의 흐름으로 나뉘었다.

3장은 성공회의 기도와 예배, 즉 전례이다. 성공회의 전례는 전 세계적으로 동일하지는 않지만 공통분모로 묶을 수 있는 관심사와 주제가 있다. 그것이 곧 전례가 가지는 양면성, 즉 보수성과 급진성이다.(67쪽) 왜냐하면 성공회 예배가 공통적인 양식과 비슷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공통 구조는 예배를 통해 성공회 신자임을 확인시켜 주는 하나의 수단이지, 그 구조가 성공회 예배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공회 전례의 핵심은 상반된 것과 화해하고 갈등을 뛰어넘는 성공회 정신이다.

4장은 성공회 신학의 교리이다. 성공회의 교리는 다른 교파와 유사하지만 독특한 점은 교리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성공회의 특성을 한마디로 "교회는 늘 개혁이 필요하다(105쪽)"는 말로 정의한다. 그럼에도 성공회는 성서를 기초로 신경, 성공회 기도서와 39개 신조, 직제와 법규, 람베스 회의와 세계성공회협의회, 마지막으로 관구한 회의라는 기초에 교리가 서 있다.

5장은 성공회의 선교이다. 교회의 사명은 선교이듯, 성공회도 다르지 않다. 성공회의 사명 선언은 역시 선교 명령이다. 그러나 성공회의 선교는 복음 전도와 사회적 관점이라는 두 가지 측면으로 접근한다. 전자는 전도 활동이고, 후자는 전도라는 미명하에 원주민들의 전통과 가치 훼손에 대해 성찰적 측면으로 접근한다.

6장은 성공회와 다른 교단 및 종교와의 관계 설정이다. 성공회는 교회 일치를 위해 가교 역할을 하는데, 이는 넓은 교회(broad church)를 지향하는 성공회의 정신 때문이다.

7장은 오늘날 성공회가 직면한 과제를 다룬다. 에이즈, 여성 인권, 가족, 동성애, 조상 숭배, 동거, 일부다처제, 안락사, 경제 침탈 등 현대 종교인들이 안아야 할 핵심 사안들이 성공회 정신에 입각하여 설명되어 있다.

Ⅲ. 평가

대부분의 신학 서적은 일부 민중신학과 해방신학, 여성신학 등을 제외하고 대체로 유럽이나 북미의 신학자들이나 내용을 주로 인용한다. 그것은 오늘날 기독교의 주류가 서구 구라파나 북미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이 책은 좀 다르다. 인용된 신학자들과 내용을 보면 제3세계 출신들과 이야기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예컨대, 모리셔스 성공회 이야기(20쪽), 앙골라 성공회 이야기(24쪽), 아프리카인 올라다 에퀴아노(89쪽), 케냐의 신학자 존 음비티(93쪽), 우루과이 신학자 수잔나 로페즈(95쪽), 남아프리카 선교 신학자 데이비드 보쉬(125쪽), 케냐의 조세핀 키무유 이야기(160쪽), 말레이시아 바투말라이(184쪽), 파기스탄 자베드 이크발(186쪽), 남아공의 데스몬드 투투(213쪽)등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는 오랫동안 유럽과 미국을 위시한 기독교 국가의 정치적 식민지였고, 현재는 경제적 식민 상태에 놓여 있는 처지이다. 저자가 3세계 국가를 자주 인용하는 이유는 1세계 신학과 3세계 신학의 형평성을 의도적으로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미 저자의 머릿속에는 서구 구라파 중심의 신학 체계들뿐만 아니라, 3세계에 대한 신학적 깊이와 경험이 상당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는 다른 신학 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 책만의 특징이자, 강점인데 저자는 이것을 통해 성공회의 신학 정신을 나타내고자 한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쉬운 문체이다. 신학 서적에 흔히 등장하는 히브리어, 헬라어는 한 군데도 없고, 라틴어는 손에 꼽을 정도로 나오지만 친절하게 국문 옆에 괄호로 처리되어 있다. 영어와 한자어 역시 꼭 필요한 곳에 국문과 함께 괄호로 표기했다.

아마도 저자와 역자들은 성공회 신자와 다른 교파, 다른 종교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비종교인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간결하고 쉽게 만든 것 같다. 그래서 성공회에서 사용하는 용어에 대한 선이해만 있다면 이 책은 독자들에게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에게도 큰 부담 없이 전할 수 있는 좋은 교재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후반부에 비록 간략하지만 여러 가지 쟁점 사안들을 다룬다. 저자는 종교 간 대화, 에큐메니컬, 조상 숭배 등의 종교적 문제와, 여성, 인권, 가족, 폭력, 동성애, 에이즈, 안락사 등의 사회적 문제, 부채와 희년 등의 경제적 문제까지를 망라하여 정의와 평화, 평등과 질서를 강조한다.

책 후반부에 이런 문제들을 비중 있게 다루는 이유는, 저자와 성공회가 인류가 직면한 이슈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성공회의 교리가 화석화된 낡은 부산물이 아니라, '행동하는 역동적 유기체'임을 시사한다.

필자가 책을 읽고 가장 흡족했던 두 가지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이 책의 백미(白眉)라고 단언한다. 하나는 정직한 역사 서술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열린 선교관이다.

우선 첫 번째 부분을 살펴보자. 대부분의 역사책을 보면 관점이라는 전제하에 사실(facts)을 자기에게 유리한 입장으로 적당히 위장한다. 그런 점에서 역사가는 위장술에 가장 뛰어난 예술가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기독교는 명백히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의 통치 이데올로기의 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한국 교회사가들은 선교 사관, 민족 사관, 구속사관(섭리사관), 실증주의 사관이라는 명목하에 식민지 종교 침투를 거의 부정하고 선교라는 진술로 미화한다.

예컨대, 제너럴셔먼호 사건(1866년)때 토마스를 보자. 비교적 한국 개신교사에서 실증적이고 과학적으로 역사를 서술했다는 <한국기독교의 역사>도 토마스를 목사 안수를 받았고 평양 시민에게 성경을 전해 주고 했다는 이유로 개신교에서 첫 순교 영광을 차지한 인물로 묘사한다.

그러나 김명호는 토마스가 영국 런던선교회 소속의 목사로 피살되어 순교자로 예찬되어 왔지만, 분명 그는 셔먼 호 일당 중 조선어 통역사로 승선해 우두머리처럼 행세함으로써 침략자들의 괴수로 죽임을 당했다고 말한다.(강준만, <한국근대사 산책> 1권, 인물과사상사, 2007)

이런 시각차는 기독교 역사가들과 일반 역사가들 사이에 기독교 수용에 대한 온도차가 크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이는 기독교 역사가들이 정치-사회학적 관점으로 역사를 쓰지 않고 신앙적 스펙트럼에 갇힌 채, 유리하게 미화하려는 아전인수식 서술 태도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역사서술은 군더더기 없이 솔직 담백하다. 저자는 오늘날 성공회는 '식민지의 유산'이라고 고백한다. 대부분의 역사서, 특히 자신의 교파를 알리는 역사책들과 마찬가지로 저자 또한 과거 영국 성공회의 식민지 시대의 잔재를 교묘하게 숨기고 관점을 핑계 삼아 덧칠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달콤한 유혹을 과감하게 뿌리친다. 그는 "성공회 선교의 공식적인 부분은 대영제국이 식민지를 확장하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팽창 정책과 함께 진행되었다. 영국군이 가는 곳에 영국성공회는 등장했다. 이것은 역사상 썩 잘 어울리지는 않은 조합이었다(132쪽)"고 시인한다. 나아가, 자메이카의 정치적인 식민지 선교는 "교회와 국가가 정치경제학적으로 타협한 실패한 선교 모델(134쪽)"이라고까지 말한다.

얼마나 솔직한 역사의 고백인가? 한 개인을 넘어 교단을 소개하는 서적에 자신들에게 불쾌할 수 있는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자아 성찰적 태도로 정직하게 역사를 서술한 순수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제 두 번째 백미, 즉 열린 선교관을 살펴보자. 다른 교단들은 선교를 복음 전파라는 시각으로만 바라본다. 이는 '외발식 선교'이다. 이것은 피선교국의 상황(context)은 무시하고 선교국의 콘테츠만 이식하려는 일방적이고 독선적인 방법이다. 이런 선교 태도는 공격적이다 못해 해괴망측하다.

예를 들어, 이슬람 국가로의 무차별적 선교로 인한 죽음, 단군상의 훼손,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공격적인 방식은 선교를 넘어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인 행동이다. 심하게 말하면 이런 해괴망측한 행위들은 기독교계 전체를 몰살할 수 있는 '아노미적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그러나 저자는 성공회의 선교는 복음 전도와 사회적 성격이라는 두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126쪽) 이것은 '이식'하려는 일방성이 아니라, '상통'하려는 상호성이다. 복음 전도만이 아니라 사회적 성격을 고려한다는 것은 선교국의 콘텐츠와 피선교국의 문화를 조화시키고, 토착화를 수용하려는 열린 선교관, 즉 '양발식 선교'를 지향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구체적으로 첫째, "다원주의 문화 속에서 각 문화는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보는 세상에서 불교도인 캄보디아인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려는 것이 적절한 일일까?"라고 묻는다. 그는 스스로의 질문을 통해 한 나라의 문화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는 복음전도는 식민지 침투와 다르지 않다고 역설한다.

둘째, "원주민들이 착취당하고 노숙자로 전락하며 복음화의 명목으로 그들의 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지역"이 많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저자가 그만큼 선교와 토착화의 긴장성의 유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입증해 주는 구절이다.

셋째,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곳에서 흔히 성공회가 퍼졌는데 그곳이 사회정의를 찾으려고 투쟁할 때, 성공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이는 식민지화의 주구(走狗)로서 시작된 선교 역사를 청산하고 원주민의 사회정의를 회복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말하고자 한다.

이 책은 언급한 대로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진 좋은 책이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옥에 티가 있는 법, 두 가지 아쉬운 점을 지적하고 싶다. 첫째는 이 책이 인류가 당면한 여러 이슈를 다루고 있지만, 중요한 현안들을 간과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토 분쟁과, 민족 갈등, 종교 간 대립 같은 문제이다. 헨리 2세와 헨리 8세 이후 구교-신교 갈등으로 아직도 미완의 역사로 남아 있는 북아일랜드, 에스파냐의 일부로 있는 바스크족, 에스파냐와 프랑스 남쪽 카탈루냐, 프랑스의 브로타뉴, 벨기에의 프랑스계 발롱인과 네들란계의 플랑드로인, 스위스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계의 갈등, 캐나다 퀘벡 주(州)의 영국계와 프랑스계 주민 사이의 갈등, 중국 신장-위구르, 독도와 댜오위다오 영토 분쟁, 개신교와 이슬람의 갈등과 같은 산적한 문제들이 인류의 화합에 발목을 잡고 있다.

물론 이 작은 책에 모든 것을 거론할 수 없다. 이것은 책의 원래 저작 목적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왕지사 인류의 당면 과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이런 부분도 한두 페이지 정도만 언급했더라면 관심 있는 독자의 시선에서 책의 완성도가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또 다른 아쉬운 점은 한자어와 영어 표기가 부족하다 것이다. 책에 나오는 몇 가지 용어들은 성공회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생소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축성(祝聖)이라는 단어다. 이 말은 책의 초반부에 한자나 영어식 표기 없이 한글로만 나온다. 그래서 처음에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쌓아서 된다(築成)'는 뜻인지, '거룩함을 쌓는다(蓄聖)'는 뜻인지 말이다. 159쪽에 가서야 비로소 '축성한(consecrated)'이라는 영어식 표기를 보고 이해했다.

이처럼 독자들의 어려움을 들어주면서 개정판이 나올 때, 더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고자 한다면 세 가지 사실에 주목했으면 좋겠다. 첫째는, 주요 단어들이 한글 옆에 영어로만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한자 문화권의 언어인 우리글의 특성상, 한글만으로는 의미 전달이 부족할 수 있다. 따라서 영어 단어 옆에 한자어도 같이 병기(倂記)하면 훨씬 이해가 수월할 것이다.

둘째는, 영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미니 영어사전처럼 단어의 뜻을 풀이해 준다거나, 성공회만의 독특한 용어는 내용 주를 달아서 설명해 준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저자 아드리안 챗필드와 김기석 신부를 비롯한 몇 명의 역자, 그리고 성공회 출판사의 트로이카(troica)로 출간된 성공회 입문서의 역작임이 분명하다. 이들의 노고로 말미암아 성공회에 대해 받은 강한 인상이 있다. 성공회는 넓음과 깊음이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넓음이라 함은 모든 것을 아우른다는 말이고, 깊음이라 함은 구체적으로 통(通)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성공회 신학이 지향하는바, 가로와 세로가 교차하는 '십자가 신학'이다.

그리고 십자가가 교차하는 공통 지점이 전 인류의 화해자 되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조화를 이루어야 할 '공통점(something in common)'인 것이다. 이것은 한국교회에서 대한성공회가 가지는 위상을 보여 주는 척도로 '작지만 가장 큰 교단'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책은 한국교회의 어두운 그림자들인 종교 권력화, 개 교회 중심의 성장주의, 이념적 분열, 세습 문제 등의 모순을 타파하고 포용과 조화를 통해, 그리스도의 한 몸 된 지체로서의 공교회성을 회복하는 데 공헌할 수 있는 책이라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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