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장 이야기는 관념의 산물을 담고 있는 가공된 역사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들은 기원전 제1000년대에 다양한 정치·신학·문화적 동기를 가진 저자들에 의해 문학 형태로 만들어졌습니다.

따라서 창세기 12~50장의 족장들은 역사적 인물이라기보다는 미래의 이스라엘 사람들과 그들의 이웃 나라에 대한 유형론적 원형으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곧 그들은 기원 인물(eponym; 후대 집단의 이름의 기원이 되었거나 기원이 되었다고 여겨지는 실존 혹은 가상의 인물)로서 각 지파 이름의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역사의 부스러기들로 만들어 낸 기원 인물

야곱은 '이스라엘'이 되는데 이는 민족 '이스라엘'의 기원 인물입니다. 모압과 암몬은 이스라엘과 항상 긴장 관계였는데 롯과 그의 딸들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에서 태어납니다(창 19:30~38). 야곱(이스라엘)은 형 에돔(창 25:30, 36:1)이라고 불리는 에서를 속입니다. 이스마엘은 이집트 출신의 하녀 하갈의 소생입니다(창 16장). 이러한 족장들의 이야기는 후대에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갈등과 긴장 관계에 있었던 주변 민족들의 정치적 전망을 검토해 보는 데 매우 유익합니다.

우리가 읽는 최종 형태의 족장 이야기는 정착 시대 말엽(기원전 1000년경) 이스라엘 공동체의 자기 이해를 반영합니다.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의 통일체로 나타나는데 여기에는 남부 지파들, 특히 유다 지파가 주목을 받습니다. 이런 현상은 유다 지파에 속해 있는 다윗 왕조의 영향력을 보여 줍니다.

위대한 조상들을 만들어 내는 것은 공동체의 결속을 위해 필요한 혈연관계의 끈을 형성하는데 이용하는 흔한 방법으로써 오늘날의 베두인 사람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으며 고대의 증거도 많습니다. 둘 다 '아모리' 왕조였던 바벨론의 함무라비와 아시리아의 샴시-아다드 1세는 자기네 부족의 기원에 관한 공통된 전승을 갖고 있는데 그들의 초기 선조들의 이름 중에는 서부 셈족들의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는 이름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초기의 계보에서 씨족, 부족, 장소, 지역으로부터 유래한 많은 기원적 이름들과 소수의 전설적 영웅들의 이름이 함께 섞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초원의 고요한 풍경을 배경으로 삼아서 그린 족장들의 초상화들이 전시된 화랑에 들어서면, 첫 번째 자리에서 아브라함의 위엄 있는 모습이 방문객을 맞습니다. 아브라함의 이름은(이삭, 야곱, 이스라엘, 요셉과는 달리) 성서에서 사람 이름으로만 나올 뿐 부족이나 지역의 명칭으로는 나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가 기원적 조상이 아니라는 것은 거의 확실합니다. 어쩌면 그는 전승과 신화의 인물이 되기 전에 역사적인 실제 인물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브람'은 적어도 '아비람'의 형태로는 모든 시대에서 발견되는 아주 흔한 이름으로, 이 이름은 후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1550~1200)에 많이 나타납니다. 따라서 그가 메소포타미아에서 가나안으로 왔다는 주장이 역사적으로 완전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세겜(창 12:7), 벧엘/아이(창 12:8, 13:4), 헤브론(창 13:18), 모리아 산(창 22:2), 브엘세바(창 21:33)에 있는 종교 유적을 세운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고고학 기록에서 아브라함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파라오 셰숑크 1세(성서의 시삭)의 전승 기념비에 나오는 네겝에 있는 도시 이름입니다. 이 원정은 르호보암의 통치 기간 기원전 925년에 있었습니다(왕상 14:25~26, 대하 12:2~12). 그 비문에 네겝 지방을 언급하고 있는데, '아브람의 성채' 또는 '아브람 요새'라고 읽을 수 있는 지명이 나옵니다. 이 유적의 위치와 연대기적 맥락은 지명의 유래가 된 아브람이 성서 전승의 아브람이었을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이삭

이삭은 리브가와 결혼하여 브엘세바 근처에 정착하여 에서와 야곱 쌍둥이를 낳습니다. '이삭'이라는 이름은 구조적으로 사람 이름, 지역 이름으로 적절합니다. 선지자 아모스는 8세기 북 왕국에 관해 언급하면서 '이삭'을 이스라엘과 병행해서 사용합니다(아모스 7:9, 16). 아마도 이삭이란 이름을 북부 지파들의 지역에 대한 명칭으로 사용한 것 같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J 자료가 이삭에 관해 말하면서 북부 사람들의 순례여향을 했던 남부의 순례지 브엘세바(창 26:23, 25)에 종교 유적을 설립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습니다(아모스 5:5, 8:14).

이삭은 북부 네겝, 특히 브엘세바 오아시스 및 브엘라헤로이(창 24:62, 25:11, 26:32~33)와 지리적 연관성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고학 기록에 따르면 후기 청동기 말엽 이전에는 이 지역에 거주민이 없었습니다. 북부 지역으로부터 네겝으로의 확장은 일러야 기원전 13세기 후반에 일어납니다. 브엘세바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에 따르면 성서와 관련된 우물 하나가 이 무렵에 만들어졌습니다(창 21:25와 26:25). 네겝의 주민 정착은 남쪽으로 확장되어 가다가 11세기에 이르러서야 완성되었습니다. 이는 이삭 이야기와 브엘세바 지역의 결합이 기원전 12세기 전에 일어났을 수는 없으며, 사실상 10세기 경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남부 전승 발전의 일부로써 일어났다는 것을 예측하게 합니다.

야곱

야곱은 아람족 아내들과 첩들에게서 열두 아들을 낳았으며 이들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됩니다(창 25:19~35:29). 형을 피해 달아났다가 하란에서 돌아온 뒤 중부 산지에 있는 세겜 지역에서 살아갑니다. 그는 벧엘에 종교 유적을 설립하며(창 28:10~22, 35:1~5), 아브라함처럼 세겜에 제단을 세웁니다(창 33:8~20). 두 유적은 모두 이스라엘 북부 지역에 있습니다. 야곱은 중부 산지에 거주하는데 이 시점에서 야곱은 곧 '이스라엘'로 이름을 바꿉니다. 따라서 야곱은 아브라함이나 이삭과는 대조적으로 남부 지역이 아닌 북부 지역과 가까운 인물입니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이름을 바꾸는 장소는 두 군데입니다. 얍복강 기슭에서 신적인 존재와 씨름을 한 뒤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고(창 32:28~29), 창 35:6~10에 나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개명(改名)은 벧엘에서 일어납니다. 창세기 후반부에서 야곱과 이스라엘이라는 두 이름은 상호 교환이 가능하게 사용됩니다. 야곱은 지파 동맹의 형성기에 혈연관계 전승이 만들어질 무렵, 새롭게 출현한 공동체의 기원 인물인 이스라엘과 동일시되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것은 아닙니다.

고고학자 아하론 켐핀스키는 이스라엘의 시크모나에 있는 기원전 18세기의 무덤에서 발견된 야곱-하르의 갑충형 인장(scarab; 고대 이집트의 매우 신성시한 쇠똥구리의 모량을 본떠 만든 부적 겸 인장)에 근거해서, 야곱-하르라는 이집트의 힉소스 왕은 야곱-하르라는 지명을 갖고 있던 팔레스타인의 어느 지방을 다스리던 왕의 후손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 지도자가 그 도시 이름의 유래가 된 야곱이었을 수 있습니다. 이 주장을 따른다면 야곱 전승은 기원전 제2000년대에 팔레스타인 중부 산지에서 기원했을 것입니다.

요셉

요셉은 과거의 영웅일 수도 있고 어떤 집단이나 지역의 허구적 기원 인물일 수도 있습니다. 후자의 가능성은 초기 왕정 문서(삼하 19:21)와 다른 곳에서 북부 지파들을 집합적으로 지칭할 때 '요셉의 집'이란 표현을 쓰는 데에서 암시되지만, 유다와 이스라엘의 통합 이후에 '유다의 집'에 상응하는 표현으로서 이 표현이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매우 설득력 있습니다.

요셉 이야기에 묘사된 사건들은 어느 정도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중기 청동기 시대(주전 2000~1550)에 살았고 요셉은 이집트가 아시아 군주들의 두 왕조의 통치를 받던 힉소스 시대(약 1675~1552)에 살았다고 봅니다. 이것에 따르면 요셉은 아시아인이었으니까 이집트의 아시아계 왕으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았을 것입니다. 또한 힉소스 시대의 수도는 나일 강 삼각주 동부에 있었는데, 이 지역은 성서의 '고센'입니다(창 46:28).

그러나 비슷한 이야기도 많습니다. 보디발 아내의 유혹(창 39:6~20), 꿈과 해석 이야기, 일곱 해의 흉년 이야기는 주변 민족 문학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요셉 이야기가 이집트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뜨거운 바람은 '동풍(창 41:23, 27)'이 아니라 실제로는 '남풍'입니다. 여러 이집트 관리들에게 부여하는 관직과 직책은 이집트보다는 시리아나 가나안 상황과 더 적합합니다. 이집트의 왕(王)은 '큰 집'을 뜻하는 '파라오'라 불리는데, 이 칭호는 투트모세 3세(주전 1479~1425)의 통치 이전에는 왕의 칭호로 쓰이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47:11에서 요셉의 가족이 정착하는 지역이 '라암세스'라 불리는데, 이 역시 람세스 2세(주전 1279~1213)의 통치 이후에나 쓰인 지명입니다. 그러므로 성서의 요셉 이야기가 연합 왕국의 설립 이전(기원전 1000년경)에 쓰였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신 야웨와 만났던 사람들

창세기 12~50장의 족장 이야기는 한 가족의 이야기이고 이 가족은 하나님의 약속의 상속자였습니다. 이 이야기 속의 신학적 모티프들-약속에서 언약으로, 대립과 화해, 신의 섭리, 배신과 회개 등-은 다양한 사회·정치 배경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이러한 약속들은 다윗 왕조가 들어서고 그리고 다윗 왕조가 무너지고 난 뒤에 생겨난 성서 문학 작품에 녹아들어 갑니다.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의 유산에는 부족의 연대감, 곧 백성과 하나님과의 연대감이 있었는데 이것은 이후의 모든 시대에 걸쳐 두드러진 특징이 된 강력한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데 우리가 추측하는 것 이상으로 기여했음이 틀림없다. 이를 넘어서 '약속과 언약'이라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 아로새겨졌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만남의 시작에 서 있다. - 존 브라이트

무엇보다, 족장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해를 반영합니다. 그들은 조상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신 야웨를 이해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신 야웨는 100세를 넘긴 아브라함을 통해서도 후손을 이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고, 약속의 자녀들은 어떠한 역경이 있어도 헤쳐 나갈 수 있었으며, 비록 왕이라 할지라도 족장들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12장, 20장). 롯과 다툼이 있을 때 좋은 땅을 기꺼이 양보하는 아브람의 선택이 옳았음을 보여 주며(창 13장), 야웨는 주인의 소모품이나 다름없는 종 하갈에게도 직접 나타나서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며(16장), 의인 10명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지 않지만(창 18:22~33), 죄악은 참지 않고 진멸합니다. 아비 아브라함의 어리석은 죄는 자녀 이삭에게 이어지며(26장), 야곱과 같이 야비한 사람은 고통과 절망의 시간을 통해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창 30~32장).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이겨 낸 요셉은(창 39장) 감옥에서조차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창 40장). 동생을 노예로 팔아 버린 형제들의 비극 이야기에서도 피의 복수를 은혜로 바꾸는 신의 섭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창 45:1~8, 50:15~21).

이스라엘 민족은 지리적, 정치적으로 매우 불리한 상황에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초강대국인 이집트를 중심으로, 아시리아, 바벨론, 시리아, 페니키아 등의 패권 관계 속에서 이스라엘은 고전했습니다. 그들의 거주 지역 또한 고산 지대로 자연환경이 메마르고 척박한 곳이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은 야웨 신앙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았으며 이 야웨 신앙이 이스라엘 공동체가 살아가는 저력과 사상이 됩니다. 삶의 수많은 배신, 낙망과 좌절, 다툼, 기근, 복수와 전쟁과 같은 불안정한 여정 가운데서 족장들은 신 야웨를 만났습니다. 족장들의 이야기 속에서 후손들은 야웨의 공평과 정의, 화해와 자비를 배움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확고히 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족장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모세와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출애굽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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