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터, <그리스도의 수난과 적그리스도>(비텐베르그, 1521)>, 루카스 크라나흐 그림.

루터는 1521년 교황 레오 10세의 파문에 이어 보름스의회에서 찰스 황제의 정치적 파문을 받자 이에 항의(프로테스트)하고,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의 보호를 받으며 독일어 성경을 번역하면서 이 소책자를 출판하여 교황을 적그리스도(anti-Christ)라고 담대히 비판했다. 이는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지칭한 첫 공식 문서로서 천주교회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루터는 전체 26쪽의 짧은 이 팸플릿에서 13가지 교황의 범죄와 타락을 지적하는데, 왼쪽에 그리스도의 모습을, 오른쪽에는 교황의 모습을 배치하여 대조하는 방법을 취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교황과 천주교회가 그리스도로부터 얼마나 멀어지고 타락했는지 쉽게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림 아래의 각 본문은 신약성경 말씀과 교황청에서 만든 교회법(Canon Law)을 비교한다. 사진에 나오는 7~8쪽은 세금 문제를 다루는데, 본문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 

"바다에 가서 그물을 던져라. 잡는 첫 고기의 입을 열어라. 거기서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다. 이것을 나와 너의 세금으로 주어라(마 17:27)." "그 손에 칼을 가지고 있는 지배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이자를 받을 자에게 이자를 주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라(롬 13:4, 6, 7)."

 

적그리스도 

"우리는 교회 직원에게 세금이나 의무를 부과하거나, 집에서 나오라고 명령하거나 다른 물건을 내라고 명령하거나, 엄중한 금지나 금령의 고통을 가하는 세속 법의 권한을 가진 자들은 결단코 적절하지 않다고 설정하고 명한다. 사제는 우리의 허락 없이 이것들이나 이와 비슷한 것을 지불해서는 안 된다(교회법)." 따라서 교황은 하나님의 계명을 비기독교적인 칙령의 결과에 불과한 자신의 계명으로 범했다.

루터가 신학적‧목회적으로 교회를 개혁해 나갔다면 그의 멘토이자 동역자였던 크라나흐는 그림과 출판으로 종교개혁을 일반인에게 보급하고 판매하고 소통한 자였다. 그가 그린 '그림 설교(미술 복음, 시각화된 말씀)'를 보면 베드로는 낚시로 잡은 물고기 입에서 한 세겔의 은전을 꺼내고 있고, 그리스도는 그 동전으로 징수하러 온 성전 세관원에게 세금을 내고 있다. 율법에 의하면 유대의 20세 이상의 남자는 1년에 한 번씩 반 세겔의 성전세를 낼 의무가 있었다(출 30:13~16).

반면 교황은 세금은 전혀 내지 않고 교회 지도자들로 하여금 세속 정부에 세금이나 다른 의무를 하지 않도록 명령하는 한편, 속죄전을 판매하여 가난한 자들의 연보를 그물질하여 부를 축적하고 호의호식하고 있다. 사실 당시 교황청에 큰 뇌물을 바치고 주교가 된 자들은 투자한 돈을 되찾기 위해서 엄청난 양의 속죄전을 판매하고 기도처를 세워 세금을 받고 기도하도록 함으로써 막대한 수입을 올렸고, 그 수입은 모두 주교의 개인 금고에 들어갔다. 그래서 루터는 당시 지도자들에게 편지로 발송한 '95개조(1517년)'에서 "저들(면죄부를 파는 자들)은 전도하기를 돈이 헌금궤에 쩔렁하고 떨어질 때마다 영혼이 연옥에서 날아서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쩔렁하고 돈이 떨어질 때 탐욕과 모리가 늘어날 것이다"고 했고, "면죄부의 보화는 사람의 재산을 따먹는 것이 되었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오늘의 교황은 부자 가운데 거부인데 왜 자기의 돈을 들여서 성당을 짓지 않고 가난한 신자들의 돈을 거두어서 지으려고 하는가?"라고 신랄하게 지적했다.

루터는 교회에 공동 금고(Common Chest)를 마련하고 일정한 연보가 모이면 시의회와 협력하여 도시 빈민 구제, 교육, 도서관 설립 등을 위한 복지(디아코니아)에 사용했다. 중세의 공로 신학이 장려한 걸인과 탁발승 제도를 없애기 위해서 개인 자선을 넘어 제도적 장치로 해결한 것이었다. 물론 루터가 교황과 주교를 비판한 배후에는 독일 상인의 부가 이태리 로마 교황청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을 막고 독일의 민족 경제, 귀족과 중산층의 경제를 보호하려는 측면도 있었다.

세계 교회는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루터와 크라나흐에 대한 재조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루터와 크라나흐가 만든 수십 종의 소책자 가운데 초기에 속하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적그리스도>를 보면서, 오늘날 제도화되고 종교화된 한국 개신교회가 이 책의 오른쪽에 나오는 교황과 중세 교회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그리스도에서 적그리스도까지 1500년의 시간이 흘렀을 때 루터는 목숨을 걸고 종교개혁의 투쟁에 나섰다. 루터로부터 시작된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이제 500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생명을 걸고 항의하고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되는 타락한 교회가 되었다. 하나님과 돈을 동시에 섬긴 결과이다. 부유한 교회와 큰 교회의 목사들이 정교분리의 이름으로 세금을 내지 않겠다는 권위적 태도를 보이는 뒤에는, 가난한 성도들의 피땀 어린 노력을 저인망 그물로 끌어 모으듯이 쓸어 담는 비인간적인 헌금 제도, 투자의 이름으로 부동산을 늘려 가면서 비과세를 이용하는 실제적 탈세, 그리고 미자립 교회에서 최저임금 이하의 사례비로 봉사하는 수많은 목회자와 비슷한 처지의 부목사와 전도사들의 눈물이 있다.

복지가 화두인 2010년대에 디아코니아를 못 하는 교회와 목회자는 세금이라도 내어 정부의 복지를 도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목회자 세금 논쟁은 더 큰 신학적 성찰을 요구한다. 루터는 면죄부 판매-성직 매매-대형 교회 건축-주교의 부 축척과 정치권력 강화 등을 한 통속으로 파악하고 이를 포괄적인 신학적, 제도적 개혁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의 개혁 프로그램의 기초에는 신약성경과 그리스도의 삶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옥성득 / UCLA 한국기독교학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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