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화와 종교 - 상충하는 경향들> / 강인철 지음 / 한신대학교출판부 펴냄 / 512면 / 3만 원

민주화 이행이 시작된 이후의 종교 정치(politics of religion)는 중요하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다. 그럼에도 '민주화와 종교', 더 구체적으로 '민주화 시대의 종교 정치'라는 주제는 현재까지 거의 연구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전반기까지 한국의 종교-정치-국가 관계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교지도자들의 민주화 운동이나 군사정권의 종교 탄압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 연구가 축적되어 있는 편이나, 1980년대 말 이후의 종교-정치-국가 관계를 다룬 연구는 현재로선 아주 드물다. 1980년대를 연구 대상 시기로 삼은 연구들이 간혹 발견되지만, 대체로 1970년대의 연장선상에서 다뤄지고 있을 뿐이다. 결국 우리는 '포스트 민주화 시대(post-democratization era)'에 한국의 종교-정치-국가 관계가 어떻게 변화되는지에 관해 알고 있는 바가 거의 없는 셈이다.

이런 학문적 결핍 현상은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에서 종교의 정치적 중요성이 감소했음을 반영하는 것인가?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1980년대 말부터 정치인들은 선거 전략에서 종교조직을 매우 중시하게 되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그러한 것처럼 보인다. "영남 불교도"나 "강남/분당 크리스천"과 같은 종교의 공간-계층적 분화 현상이 선거정치 활성화 추세와 맞물리면서, 불교·개신교·천주교의 3대 종교가 선거정치의 절대강자들로 떠올랐다. 1990년대 들어서는 선거에서의 지지를 대가로 다양한 종교 지원 정책들을 약속하는, 이른바 '종교 공약'도 등장했다. 반세기 이상의 단절 끝에 '종교 정당들'도 다시 출현했다. 3대 종교의 최고지도자들이 새로 취임한 주요 정치인들과 고위 관료들의 예방(禮訪)을 빠짐없이 챙기는, 오로지 국립현충원의 '호국 영령과 순국선열들'만이 누려 온 호사를 함께 즐기기 시작한 것도 민주화 이후 새로 나타난 풍경이다.

그 뿐인가. 1987년 이후 명동성당이 "민주화의 성지"로 추앙받고, 온갖 사회적 약자들이 저마다의 억울한 사연들을 안고 몰려들었던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1994년 봄 김영삼 정부가 비호하던 서의현 총무원장 세력을 축출한 후, "깨달음의 사회화"를 표방하고 본격적인 사회 참여에 뛰어든 불교(조계종)도 있지 않은가? 2003년 이래 대규모 시국 집회의 단골 주역이 되고, 마침내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장로를 이승만·김영삼에 이어 역사상 세 번째 '장로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개신교 보수 세력은 또 어떠한가? 장삼과 가사를 차려입고 반듯하게 도열한 승려 1만 명을 비롯하여, 무려 20만 명의 불자들이 구름처럼 가득 찬 가운데 2008년 8월 27일 저녁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렸던 '종교 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 대회'는 또 무엇인가?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 사상 초유의 화려한 불교 스펙터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지 않은가?

"민주화 시대의 한국 종교 정치"와 관련된 다양한 차원과 쟁점들을 체계적·심층적으로 다룬 최초의 연구로 이 책을 내세울 만하다고 생각한다. '민주화 이전'의 종교-정치-국가 관계에 관한 연구들은 대개 종교들이 민주화 과정에 미친 영향, 혹은 종교들이 민주화 운동에 기여한 정도와 원인에 주목했다. '민주화 이후'를 다루는 이 책에서는 반대 방향의 인과적 영향, 즉 민주화 과정이 종교-정치-국가 관계에 미친 영향과 변화 그리고 민주화의 종교정치적 함의에 초점을 맞춘다. 민주화는 보다 '직접적으로' 종교 영역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다른 다양한 매개변수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종교 영역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진보적인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은 1970∼1980년대에 민주화 운동을 주도함으로써 한국 민주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물론 그 당시에도 민주화 운동에 나선 이들보다 훨씬 많은 종교 지도자들은 권위주의 정권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에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한국 민주화에 기여했던 종교계는 아직도 '민주주의의 공고화·심화'에 기여하고 있는가? 오히려 그 반대가 사실에 더 가깝지 않을까? 민주주의적인 가치·규범·제도의 확산과 정착 속도에서 종교 영역이 다른 사회 영역들에 비해 훨씬 뒤쳐진다면, 나아가 2000년대의 '종교권력 담론'이 보여 주듯이 종교 영역이 민주화의 질적 발전을 방해하는 대표적인 권력 집단 중 하나로 부상한다면, 이야말로 역설적인 현상이 아니겠는가?

종교 지도자들이 민주화에 큰 공을 세운 외국의 많은 사례들이 보여 주듯이, 민주화 이행이 본격화되면서 종교의 정치적 역할이나 비중은 급속히 감소하게 마련이다. 한국에서도 종교의 정치적 역할․비중 감소 현상이 비교적 명료하게 확인되는 영역들이 존재한다. 민주화 운동, 인권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도시 빈민 운동, 시민운동 등 '사회운동' 영역, 그리고 정당과 정치 단체들로 대표되는 '정치사회' 영역에서 특히 그러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평가할 때, 민주화 이후의 한국에서 종교의 정치적 역할과 비중이 과연 축소되었는지는 의심스럽다. 이전에는 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형태의 종교 정치가 활성화되는 양상 또한 뚜렷하고 현저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종교 차별 정치, 보조금의 종교 정치, 성역 정치, 개발과의 전쟁, 세금 분쟁 등 이 책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게 될 허다한 종교 정치 형태들이 '민주화 이후' 시기에 만개(滿開)했던 것이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 과정이 종교-정치-국가 관계에 미친 영향이나 민주화의 종교정치적 함의는 결코 단순하게 이해될 수 없다는 점이 이 책에서 거듭 강조되고 있다. 그것은 다양한 방향의 구조적 경향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교차하는 과정이며, 이 과정은 아직 상당한 유동성을 내장한 채 계속되고 있다. 정치나 경제 영역과 비교할 때, 종교 영역에서 민주화의 진행 과정이나 영향은 상당히 다른 양상, 다른 내용, 다른 템포, 다른 음조(音調)를 드러냈다. 민주화 시대 종교 정치 연구의 지체 현상도 1980년대 말 이후의 종교-정치-국가 관계가 이전에 비해 한층 복잡해졌고, 어떤 일관된 흐름이 뚜렷이 가시화되지 못한 탓이 큰 것 같다. 종교별·교단별 정치적 입장의 분화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전에 발견되던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명료한 양상과 대조적으로, 1990년대 이후에는 결코 단순하게 서술될 수 없고 하나의 일관된 논리로도 포괄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에서는 민주화 이후의 종교-정치-국가 관계에서 발견되는 '상충하는 경향들'을 다루고 있다. 제2부에서는 민주화 이후 급격히 활성화되었다가, 이후 퇴조와 부분적 해체의 조짐을 보이는 '종교 정치적 성역'과 '성역 정치'를 해부한다. 제3부에서는 불교·개신교·천주교의 3대 종교를 대상으로 '종교 지형(religious terrain)의 정치적 재편'을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제4부에서는 종교-정치-국가 관계의 미래상을 가늠해 볼 수도 있는 '새로운 양상들'을 시민사회와 종교권력의 충돌,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급속히 재활성화 된 종교정치 양상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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