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재 명예교수는 WCC 공동선언문 사태를 지켜보며 안타까워했다. 김 교수는 "여러 명분을 충족하기 위한 축복의 WCC 공동선언문이 됐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이는 서명한 교계 지도자들 모두가 잘못한 것이다"고 비판했다.ⓒ뉴스앤조이 이용필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가 WCC 공동선언문을 '우스꽝스러운 문건'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WCC 공동선언문이 진보와 보수가 손을 맞잡고 체결한 문서로 알려졌지만, 보수 측 입장만 가득 담긴 그래서 실패한 문서"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사실상 WCC 공동선언문 폐기와 관련자 책임을 촉구하는 에큐메니컬 진영과 뜻을 함께했다.

김 교수가 WCC 공동선언문을 두고 날 선 비판을 한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다. 한국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 체결한 WCC 공동선언문에,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거나 존중하는 내용이 없었기 때문. 김 교수는 "WCC 공동선언문에 한국 보수 신학적 입장이 말뚝 박은 듯 들어가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오히려 신학적·사회적·성경관 차이로 갈등을 빚어온 진보와 보수가 서로의 다름을 정직하게 인정했다면 존중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한신대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쳐 온 김 교수는 WCC 공동선언문 사태의 원인을 성경관에서 찾았다. 현 상황을 정치적인 문제로 비추는 여론이나 일부 관계자들과 시각을 달리했다. 김 교수는 WCC 공동선언문 조항이 금지 또는 반대로 도배가 된 것은 근본주의적인 성경관 때문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성경무오설과 축자영감설이 하나님을 신학 속에 가뒀다. 모든 답을 성경에서만 찾으려는 근본주의자들의 의식이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쳤고, 그 결과 WCC 공동선언문이 나오게 됐다"고 주장했다.  

1월 31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한 카페에서 김경재 교수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김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교회협과 한기총, WCC한국준비위·WEA한국준비위가 1월 13일 체결한 WCC 공동선언문이 논란이다. 특히 에큐메니컬 진영에서 성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보수 진영은 환영하는 반면 에큐메니컬 진영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한국 기독교인 중 한 명으로서 교계 지도자들이 체결한 WCC 공동선언문에 대한 선한 동기를 의심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선한 동기치고는 절차·방법·의도가 순수하거나 투명했다고 보기 어렵다. WCC 공동선언문은 한국의 보수 신학적 입장이 말뚝 박은 듯 들어가 있다. 한국 기독교 진보와 보수는 지금도 성경관에 대한 이해나 신학적·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결 접근 방법을 달리한다. 차라리 서로의 다름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그만한 이유를 댔더라면 존중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의 화합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실재하는 갈등과 차이를 은폐해 버렸다. 무엇보다 공동선언문은 한 쪽(보수) 견해를 어느 한 쪽(진보)에 강요하는 의도가 무의식적으로 작동했다. 이런 점에서 양쪽 지도자들이 정직하지 못했다고 본다. 양측 모두 뚜렷한 명분도 없는 상태에서 입장을 바꿨고, 결국 풍파를 일으킬 만한 우스꽝스러운 문건이 나온 것이다."

▲ WCC 공동선언문 사태에 대해 유감스럽다고 말한 김 교수는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반성하고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WCC 공동선언문에는 종교다원주의 반대 내용이 나온다. 평소 타 종교에 대한 이해와 상생을 주장해 온 교수님의 입장과 배치한다.

"기독교인은 19세기까지 선교 신학의 주장처럼 타 종교는 거짓 종교이자 우상 종교라서 멸절돼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이 때문에 다른 종교와 대화를 나누거나 공부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이런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종교 다원 현상은 엄연한 현실이고 사실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전통적인 종교에 귀의한 채 삶의 길을 찾고 있다. 또 그들 스스로 문화·예술·윤리·도덕 등이 그리스도교 문명보다 결코 떨어지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를 부정하려는 것은 눈 감고 해를 보지 않으려는 것과 같다. 신학은 하나님의 인류 구원 속에서 2000~3000년 동안 지속했다. 수많은 종교에 대한 판단은 그리스도교 복음과의 원만한 대화를 통해서 풀어야 한다."

- 개종 전도를 놓고 한국정교회에서 강하게 반발했다. 한국에서는 교세가 약하지만 세계 교인 수는 전체 1/3을 차지할 만큼 크다고 한다. 공동선언문에서 밝힌 '개종 전도 금지주의 반대'에서 말하는 개종 전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 일반 전도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종교는 인간의 궁극적 관심에 대한 신념이자 고백이다. 어느 종교나 자기가 체험한 종교 진리에 대한 자부심과 전도·포교의 열망을 가진다. 이것을 탓할 수는 없다. 일반 전도는 자신이 체험한 구원 진리를 다른 사람도 같은 체험을 하길 바라는 차원에서 말과 행동으로 전하는 것이다. 일반 전도에서 중요한 점은 복음을 '증언'하는 일이며, 증언하는 자가 복음에 합당한 새 사람으로 변해 행위와 삶에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개종 전도는 다른 사람이 이미 특정 종교에 귀의하고 있는데, 그 종교가 진리가 아닌 거짓·우상 종교라고 판정하고, 기존 종교를 부정한 후 기독교로 종교를 변경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 개종 전도를 선교라고 볼 수 있는가. 아니면 무분별한 종교 강요로 봐야 하는가. 또 개종 전도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19세기 서구 기독교 문화권의 눈으로 볼 때는 선교는 곧 개종 전도였다. 20세기 들어 선교 신학자들이 자기 성찰을 통해 개종 전도에 문제가 있다고 자각했다. 이런 가운데 WCC 등 진보적 세계 기독교 단체는 타 종교에 대한 배타성이 교리적 근본주의 신학 안에서만 유효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결과물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과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 속에 나타났다. 이웃 종교를 폄하하거나 열등하다고 주장하면서, 기독교만이 유일한 구원 종교라고 받아들이라고 요청할 때, 개종 전도는 선교사들의 신앙적 열정에도 무분별한 종교 강요가 된다. 개종 전도의 문제의 심각성은 이웃 종교들(불교·이슬람·민족 종교들)도 같은 주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종교 간의 우열 경쟁은 종교전쟁으로 비화하여 평화를 깨뜨릴 수도 있다."

- 우리나라는 개종 전도가 특히 심한 것 같다. 봉은사에서 일부 보수 기독교인들이 땅 밟기를 하거나 목사 간증이 담긴 CD를 몰래 배포하기도 했다. 이런 현상이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해결책은 무엇인가.

"한국 기독교의 주류를 형성하는 복음주의 신학의 기초는 성경무오설과 축자영감설이다. 성경을 문자적 오류가 없는 절대 계시적 경전으로 삼는 것을 모든 신앙과 신학의 근본 원리로 삼는다. 그 결과 이웃 종교들을 진리가 아닌 폐기해야 할 우상 종교로 판단하는 결과를 낳았다. 아무 오류도 없고 역사적 한계성과 상황성을 초월하는 성경에 대한 절대 주장은 이웃 종교들에 대해 알고자 하는 모든 생각을 차단하고, 타 종교 문화에 대한 몰이해와 선입견에 사로잡히게 하였다. 그 결과 기독교는 다원 사회 속에서 독단과 독선의 종교로 평가받고, 진정한 복음 선교의 길을 차단되는 모순이 발생했다. 가장 중요한 해결책은 '성경관'에 대한 새롭고 성숙한 이해를 해야 하며, 이웃 종교와 문화에 대한 진지한 연구를 해야 한다."

▲ 김 교수는 성경무오설에 대해 "루터나 칼빈도 오늘날의 한국 기독교 보수주의자 만큼의 성경관을 지니지는 않았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원이지만, 하나님 구원의 사역은 제약할 수 없다"는 신학적 견해가 세계의 진보적 신학 그룹에서 공감을 얻어가고 있다. 한국 기독교가 좀 더 성숙하고 유연한 수준으로 나아가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우선 세계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창조적인 변화와 정보를 교계 지도자나 목회자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이는 교인들이 큰 충격을 받더라도 해야 할 일이다. 또한 21세기 지구촌 사회의 가치와 이해 신념 체계가 다양하다는 것을 알리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 속에 드러난 복음 진리의 영원성을 신앙으로 하되, 그것을 역사적 특정 시대의 신학이나 교리 체계로 일치시키는 해석학적 도단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생명의 하나님 이외에 어떤 형태의 종교·신학·경전·교리 등을 절대 신성시하는 것은 '우상숭배'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 WCC 공동선언문 논란이 뜨겁다. 생명평화마당에서 2월 4일 WCC 공동선언문을 놓고 신학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신학자들이 대거 참여해 발제와 논평을 하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고무적이며, 세 가지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문제 사안의 중요성이다. WCC 공동선언문 내용이 신학적·신앙적 문제점이 너무 크기 때문에 신학적 지성인으로서 침묵할 수 없다는 공통 집단 지성의 항의다. 둘째, 대형 교회 목회자들의 정치적 야합과 시대착오적인 신학에 대해 더 이상 침묵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결의 표명이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세계 그리스도교계에서 일어났고, 이미 진행된 진보적이고 성숙한 신학적 의제들과 신앙고백적 성찰을 신학교 교실에서만 강의한 것에 대한 반성이다. 일반 교인에게 적극적으로 알리지 못한 것에 대한 자기 성찰의 행동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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