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학에 '논점 일탈의 오류'라는 말이 있다. 주제와 동떨어진 지엽적인 문제를 핵심인 양 주장해 논점에서 벗어나 주위의 관심을 새로운 방향으로 돌리는 것을 말한다. 지금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정준모 총회장이 빠져 있는 수렁이다.

정 총회장을 비롯한 예장합동의 지도급 목회자들이 노래주점에서 도우미들과 유흥을 즐겼다는 의혹은 지난해 예장합동 교단은 물론 한국교회 안팎을 술렁이게 한 이슈다. 당사자들은 즉각 사실을 부인했다. 한 목사는 선대의 신앙 이력까지 들먹이며 노래방은 물론 영화관도 가지 않는다고 인터뷰했다. 정 총회장도 "떠도는 추문은 사실이 아니다", "음해 세력의 조작·각본·소설"이라고 펄쩍 뛰었다. 하지만 5개월 뒤인 지난해 12월 말, 정 총회장은 노래방에 갔으며 도우미가 동석했다고 시인했다.

▲ 예장합동 정준모 총회장은 노래방 유흥 논란으로 교단 안팎의 여러 명과 소송을 벌이고 있다. ⓒ마르투스 구권효

한참 늦었지만 모두가 궁금해 했던 사실에 솔직하게 답했다. 한 교회의 목회자이자 국내 최대 교단의 수장으로서 덕스럽지 못한 행동에 대해 스스로 인정한 만큼 다음 행보에 기대가 모아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때부터 논점 일탈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언론에 자신의 추문을 흘렸다고 의심 가는 윤남철·허재근 목사 등을 고소했다. 도우미도 협박 혐의로 수사를 의뢰했다.

정 총회장은 도우미의 신상을 조사해 언론에 공개했다. "도우미 여진에 대해 알아본 사실이 있다. 대학과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 둘을 키우는 사십대 여성"이라고 했다. 이어 "아이들이 엄마가 하는 도우미 일을 알면 충격을 받을 위치다"고 말했다. 도우미 입장에서는 '여차하면 딸들에게 당신 직업을 말해 버리겠다'는 위협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발언이다.

도우미는 지난해 8월 정 총회장에게 이런 문자 메시지를 보낸 적 있다. "참 더 두고는 못 보겠다. 어쩜 목사들이…. 제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라." 곧 이어 도우미는 기자를 만나 목사들과 놀았던 그날 밤 일을 상세히 증언했다. 정 총회장은 이 문자 메시지를 '협박'이라고 규정했다. 총회장 본인이 기자들에게 배포한 보도 자료에 비하면, 도우미 문자는 애교 수준인데 말이다.

정 총회장이 경찰에 제출했다는 증거 자료에도 문제가 있다. 정 총회장은 최 아무개 목사와 전화 통화한 녹취록을 경찰에 제출했다. 이 녹취록에는 피고소인 허재근 목사가 기사를 작성해 언론사에 송고했다는 최 목사의 발언이 담겨 있다. 정 총회장은 최 목사의 말을 근거로, 허 목사가 언론을 이용해 자신을 음해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대해 최 목사는 "의혹 수준에서 해 본 말이었고 이후 정정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이 말을 듣고 경찰도 피고소인들도 허탈해 했다는 후문이다. 정 총회장은 최 목사가 거짓말한다고 항변했다고 한다.

설령 정 총회장의 주장대로 교단을 대표하는 인사의 치부를 언론에 제보한 게 사실이었다고 하더라도, 언론사 제보 자체가 잘못된 것인가. 제보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면 모르지만, 상당 부분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마당에 제보했다는 것만으로 음해라고 주장하는 건 억지스럽다.

또 다른 증거 자료는 더 황당하다. 정 총회장은 변 아무개 목사와 윤남철 목사의 통화 녹취록을 경찰에 제출했는데, 여기에는 윤 목사가 정 총회장을 (정치적으로) 죽이겠다고 말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이 녹취록은 변 목사가 녹음해 자기 핸드폰에 저장해 두었는데, 지난해 봄 총회장 측근으로 통하는 한 목사를 거쳐 총회장 손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변 목사는 제공한 게 아니라 갈취당했다고 주장했다. 이 목사가 자기 핸드폰을 빼앗아 녹음파일을 전송해 갔다는 것이다. 변 목사는 "이 문제에 대해 당사자에게 여러 차례 해명을 요구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어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논점을 일탈하는 것에는 자신이 당했다는 피해 의식이 깔려 있다. 내가 도우미를 부르지 않았는데 도우미가 동석했고, 이후 동영상이 있다는 소문이 돌더니, 성매매를 위한 2차 운운하는 유언비어가 나왔다. 결국 무슨 억하심정이 있기에 도우미는 기자를 만나 그날 일을 상세히 증언하고, 두 목사는 작년 총회 직전 기자회견을 열어 진실을 규명하라고 떠들었느냐 말이다. 배후에 누군가 있다는 의심을 품을 만하다. 정 총회장의 보도 자료 곳곳에는 음해, 공작, 철저히 계산된 모략, 협박 따위의 말들이 널려 있다. 정 총회장의 억울해 하는 심정과 분노가 정제되지 않은 채 문장 곳곳에 배어 있다.

남을 탓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순간 품위를 잃고 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이제는 교단 이름으로 도우미의 배후를 조사하고 진상을 파악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화가 치밀겠지만, 멈춰야 산다. 어려운 주문이지만, 일탈에서 돌아와야 한다. 노래방에 갔다고, 도우미와 동석했다고 고백한 그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자신의 행동을 언론에 제보한 사람을 찾아내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배후 조종자를 추적하는 데 쏟는 에너지를 이제 거둬야 한다.

대신 당시 도우미를 돌려보내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노라 고백하고, 사건이 터졌을 때 진솔하게 말하지 못하고 음해라고만 했던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해야 한다. 교권을 이용해 조사하려 하고 사회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려 한다면 자신은 물론 교단까지 만신창이가 될 것은 불 보듯 훤한 일이다. 일탈을 멈출 사람은 총회장 자신뿐이다. 1월 30일 열리는 총회 실행위원회가 새로운 출발의 계기가 되도록 주님의 은총을 구한다.

주재일 / <마르투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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