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 2012년 교계 이슈 정리에 이어 <뉴스앤조이> 네 명의 편집위원과 함께 2013년을 내다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기독 출판사, WCC 총회, 언론, 목회 분야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 편집자 주

▲ 교회 생태계를 다시 세워야 한다. 정의, 평화, 생명의 하나님나라 씨앗이 잘 자라도록 염려, 유혹, 욕심의 땅을 갈아엎고 좋은 땅을 일궈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거둬야 한다. 사진은 남오성 목사. ⓒ뉴스앤조이 최유진
개신교는 3등이다. 지난 10월 시사주간지 <시사인>이 발표한 종교 신뢰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신교는 1등 천주교, 2등 불교에 밀려 3등이다. 대중이 개신교에 대해 느끼는 신뢰도(28.1%)는 천주교(61.8%)와 불교(55.1%)에 비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결과를 보도한 기자는 '힐링(healing, 치유)'을 주요 키워드로 봤다. 천주교는 주교회의를 통해 4대강 사업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제주교구장이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에 동참하는 등 사회적 약자들의 상처를 보듬는 힐링을 실천했다. 또한 불교계는 법륜과 혜민 등이 베스트셀러, 청춘콘서트, 트위터 등을 통해 절망에 빠진 젊은이들을 위로하며 힐링의 메시지를 전파했다.

반면 개신교는 어떠했나? 타 종교에 대한 무례함, 이명박 정부의 개신교 편향 논란, 목회자들의 비리 사건 등으로 힐링은 고사하고 가뜩이나 세파에 찌든 사람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남겼다. 본래 힐링, 즉 치유는 예수님의 주요 사역이자 교회의 본래적 사명 아닌가? 세상을 치유하여 하나님나라를 세워야 할 교회가 역할을 못하고 있다. 힐링의 주체가 되어야 할 교회가 힐링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이름은 모욕을 당하고, 복음의 길은 막혀만 간다. 이 안타까운 현실을 목격하며 새해를 맞이한다. 2013년 한국교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생태계 재구성

2013년을 교회 생태계 재구성의 해로 삼자. 교회 생태계란 무엇인가? 같은 곳에 살면서 서로 의존하는 유기체 집단의 독립된 체계를 생태계라고 하는데, 교회도 사회적 유기체로서 다른 유기체들 즉 교회, 교단, 기관, 연합체, 신학교, 기독언론사, 기독출판사 등과 상호작용하며 생태계를 이룬다. 그런데 이 생태계가 본질적으로 심각하게 오염되었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본디 섬김, 희생, 나눔이 교회 생태계의 기본 정신인데, 작금의 오염된 생태계에서는 쟁취, 성공, 승리가 지배 이데올로기이다. 옳고 그름, 정상과 비정상을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뒤집어진 것이다.

오염된 구조 속에서 개인 또는 개별 교회가 독야청청하기란 쉽지 않다. 돈, 권력, 명예를 향한 탐욕을 억제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긍정적 사고, 삼박자 구원, 고지론으로 정당화시키는 이 나쁜 생태계 속에서는, 아무리 순전한 신자와 목회자라도 생존을 위한 적응의 과정을 통해 부지불식간에 변질되기 십상이다. 이 거짓 생태계의 주범이자 최대 수혜자는 세속화된 대형 교회들인데, 이들은 막강한 물적, 인적, 정치적 자원을 투여하여 성장 지향 일변도의 생태계가 되도록 왜곡을 심화시키고 있다. 결국 드러나는 개별 교회 비리의 난맥상은 감추어진 교회 생태계 구조적 왜곡상의 표현에 불과하다.

교회 생태계를 다시 세워야 한다. 정의, 평화, 생명의 하나님나라 씨앗이 잘 자라도록 염려, 유혹, 욕심의 땅을 갈아엎고 좋은 땅을 일궈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거둬야 한다.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먼저 교회가 존재하는 위치, 목적, 방식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

존재 위치의 재구성 : 중심에서 변방으로

목 좋은 신도시 중심부엔 교회가 바글바글하다. 전통적인 기독교식 가정교육을 거쳐 아이비리그 입학을 이뤄낸 차세대 주류 세력들 즉 강남 '엄친아'의 성공 스토리는 아직도 기독 출판계의 단골 메뉴다. 의사, 교수,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과 국회의원, 판사, 검사 등 정관계 유력 인사들이 북적대는 교회는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다. 그동안 세 명의 장로 대통령을 세우고 한국교회는 얼마나 감격했던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간 세월이 얼마던가? 지금 한국교회가 지향하고 존재하는 위치는 '중심'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주류의 중심을 지향하고 점점 다가가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 예수 잘 믿어 불신자들보다 성공하면 선망받고 칭찬 들을 줄 알았는데, 이 싸한 반응은 뭘까? 여의도 국회 옆의 가장 큰 교회를 본받아서 서초동 대법원 옆에 가장 비싼 교회 짓는데, 왜 사람들은 손가락질할까? 그 이유는 교회가 바라보고 머물러야 할 위치는 중심이 아니라 '변방'이기 때문이다.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는 <변방을 찾아서>에서 인류사에 면면히 이어 온 변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문명의 중심은 부단히 변방으로 이동해 왔다. 중심부는 변화하지 못해 쇠락하지만, 변방은 변화와 창조와 생명의 공간이었기에 새로운 중심이 된 것이다. "변방 의식은 갇혀 있는 틀을 깨뜨리는 탈문맥이며, 새로운 영토를 찾아가는 탈주 그 자체이다."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중심부에 대한 열등의식이 없어야 한다. 콤플렉스가 있으면 주체적이고 창조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이야말로 변방의 존재이다. 1세기 팔레스타인 베들레헴 구유에서 태어나, 선한 것 나지 않는 나사렛에서 자라나, 갈릴리 바다에서 세리와 창녀들과 어울리다, 골고다 언덕에 올라 십자가에서 죽었다. 교회야말로 변방의 존재이다. 하나님나라 소망 품고, 고아와 과부 돌보며, 환란과 핍박 속에서도 신앙 정조 지키다가, 영광스런 순교자의 길로 가는 것이 바로 교회의 삶 아니던가?

그래서 교회는 변방에 있을 때 교회답다. 교회가 변방에 위치할 때 비로소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할 수 있다. 잃을 기득권 없는 변방의 교회여야 세상 권세를 향해 예언의 메시지를 선포할 수 있다. 크고 무거운 교회에 대한 콤플렉스 없는 작고 가벼운 교회의 행복한 일상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창조적 역동성이 흘러나온다. 변방으로 향하는 노마드 교회, 이것이 교회가 지향해야 할 존재 위치이다.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눅 6:20)."

존재 목적의 재구성 : 성취에서 회개로

'잘살아 보세 2.0'을 아는가? 이는 박정희 정권의 새마을운동 '잘살아 보세' 정신의 요체인 세속적 번영 욕구를 '현세 축복'이라고 신학적으로 도색하고, 거기다 하나님나라 복음을 축소 왜곡시킨 '내세 천국' 교리를 장착하여, 살아서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가능하도록 업그레이드시킨 종교 상품이다. 마침 불어온 7, 80년대 고도성장의 바람을 타서 그동안 잘도 팔아먹었다. 그동안 한국교회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빙자한 자기 욕망의 '성취'이었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졌다. 서울대 박명규 교수에 의하면, 지금은 해방 이후 최초로 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경제적으로 진보하지 못하는 시대이다. 고도성장의 순풍은 멈췄고 '잘살아 보세 2.0'은 작동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수 기독교인은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선택하며 망가진 제품을 만지작거린다. 번영을 향한 인간의 무한한 욕망은 자유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이제 번영 복음의 유효 기간은 끝났다.

새해를 교회의 존재 목적을 회복하는 해로 삼자. 새로운 교회 생태계에서 교회의 존재 목적은 다름 아닌 '하나님나라'이다.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며, 하나님나라는 '회개'를 통해 가능하다. 회개는 기본적으로 인생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즉 '태도'의 실천적 변화이다. 도쿄대 강상중 교수는 <살아야 하는 이유>에서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인생을 대하는 '태도'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인간의 궁극적인 가치는 '창조'와 '경험'보다는 삶을 향한 '태도'에 있으며, 태도의 변화는 '거듭나기'를 통해 가능하다. 포스트 번영 복음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교회는 강 교수의 조언에 귀 기울여야 한다.

교회가 하나님나라의 도구로서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려면 교회의 목적을 성취의 결과가 아닌 태도의 변화 즉 '회개'에 둬야 한다. 삶의 초점을 자기 자신이 아닌 하나님과 공동체와 가난한 자에게 맞춰야 한다. 먼저 교회가 회개하자. 그동안 역할을 제대로 못 해 세상의 소망이 되지 못한 점을 회개하자. 그리고 세상을 향해 회개를 선포하자. 탐욕을 향해 달려가는 막장 인생들을 향해 삶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맡길 것을 촉구하자. "때가 찼고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존재 방식의 재구성 : 약육강식에서 공생으로

지금은 교회 정글 시대이다. 강한 교회가 약한 교회를 잡아먹는 약육강식, 그 피비린내 나는 정글 논리가 교회를 물들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형 교회의 물량 공세를 이기지 못해 싹도 못 틔워 보고 죽어 나가는 개척 교회가 태반이다. 진화론을 그토록 반대하면서, 진화론의 나쁜 점은 잘도 배웠다. 지금 한국교회의 존재 방식은 '약육강식'이다.

약육강식의 교회 현실은 잘못된 교회론에 기인한다. 모든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의 지체들이다. 그런데 사도신경 암송할 때 "거룩한 공회(holy catholic church, 거룩한 보편적 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공교회주의는 로마가톨릭만의 것이라고 오해한다. 뒤틀린 교회론의 결과는 교회 간의 경쟁, 시기, 질투, 다툼이다. 지구 반대편 교회를 위해서는 사랑의 마음으로 기도해 주고 선교비를 보내 주고 단기 선교 팀도 파송하지만, 같은 동네 교회는 치열한 경쟁 상대일 뿐이다. 결국 교회와 교회 간의 친밀도는 거리에 반비례하는 셈이다.

새로운 교회 생태계의 존재 방식은 약육강식이 아니라 '공생'이다.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는 <호모 심비우스>에서 꽃과 곤충의 실례를 들어 공생의 중요성을 말한다. 지구 생태계에서 생물 중량 면에서는 최고는 꽃식물이고, 개체 수 면에서 으뜸은 곤충이다. 곤충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을 위해 꽃가루를 날라 주고, 그 대가로 식물로부터 꿀을 얻는다. 이 지구 생태계에서 가장 막강한 두 생물 집단의 성공 비결은 경쟁이 아니라 공생이다. 이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교회 생태계의 운영 체계를 생각하는 데 큰 영감을 준다. "무차별적 경쟁보다 공생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공생만이 살길이다. 새로운 생태계에서는 공교회성이 회복하고 교회 간에 친밀한 코이노니아를 이뤄야 한다. 이를 위해 목회자들 간에 우정 교류가 필요하다. <교회2.0목회자운동>과 <예수목회세미나>와 같은 선한 모임이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교회 간의 협력도 요구된다. 최근 출범한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을 주목할 만하다. 나아가 교단 간 협력이 필요하다. 2013년 부산에서 개최되는 세계교회협의회(WCC) 10차 총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교리의 차이는 인정하되 함부로 상대를 매도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깨서는 안 된다. 사랑의 정신에 기초한 공생의 방식으로 생태계를 일궈야 한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 15:12)."

결국, 한국교회 생태계 재구성의 모델은 세례요한을 많이 닮았다. 그는 이스라엘 변방 광야에서, 당대 주류 종교인들에게 회개를 촉구했다. 그리고 겸손한 자세로 예수님과 공생했다. 새해가 밝았다. 2013년은 한국교회 생태계 재구성의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중심 지향, 욕망 성취, 무한 경쟁의 나쁜 생태계를 박살내고, 변방 지향, 회개 실천, 상호 공생의 아름다운 생태계, 세례요한 교회 생태계의 도래를 꿈꿔 본다.

남오성 / 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 일산은혜교회 청년부 목사, <뉴스앤조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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