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 성향의 기독 단체가 지역 주민의 반대에도 애기봉 등탑 점등을 강행했다. ⓒ뉴스앤조이 정재원
보수 성향의 기독교 단체가 지역 교회와 김포 시민의 반대에도 서부전선 최전방에 있는 애기봉 성탄 트리에 불을 밝혔다. 30m 높이의 애기봉 등탑은 북한 주민이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북한으로부터 대북 심리전 시설물로 규정된 바 있다. 이번 점등은 2010년 이후 2년 만이다.

탈북난민북한구원한국교회연합(탈북교연) 등 4개 단체는 12월 22일 오후 5시 지역 주민의 반대를 뚫고 성탄 등탑 점등 예배를 강행했다. 이날 애기봉 진입로에는 행사 시작 3시간 전부터 '전단 살포 및 애기봉 등탑 반대 김포공동대책위원회' 등 4개 단체가 점등 행사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일부 김포 농민은 트랙터를 동원하여 애기봉 진입로를 막으려 했지만 경찰의 봉쇄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시위에 참석한 한 김포 시민은 "접경 지역의 주민은 전등이 모두 꺼질 때까지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며 "애기봉 등탑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예수의 성탄 트리가 아니라 전쟁을 일으키는 분쟁 트리다"고 성토했다.

점등 반대 시위에는 지역 교회도 포함돼 있었다. 17년간 서부전선 최전방에서 사역한 이적 목사(민통선평화교회)는 "성탄절만 되면 등탑 점등으로 지역 주민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은 진정한 성탄 트리가 아니다"며 "등탑 행사를 준비하는 분이 목사인데 지역 교회를 괴롭히면 어떡하느냐"고 비판했다.

▲ 김포 주민과 농민들은 애기봉 점등 행사를 막기 위해 진입로 차단을 시도했다. 트랙터를 동원하고 맨몸으로 길에 누워 진입을 막으려 했지만 경찰의 제지로 성공하진 못했다. ⓒ뉴스앤조이 정재원
행사를 주도한 김충립 목사(탈북교연 공동대표)와 60여 명의 참가자는 경찰·소방서·해병대 등 정부 기관의 협조를 받으며 애기봉 성탄 등탑 점등 예배를 진행했다. 김 목사는 "고통받는 이북 동포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해서 성탄 트리를 점등하게 됐다"고 행사 취지를 밝혔다. 남북 간의 군사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해마다 진행한 행사로 북한을 자극하려는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예배를 마치고 오후 6시경 점등이 이뤄졌다. 애초에는 참석자 모두가 등탑 앞에서 "온 누리에 평화를"을 외치며 점등하려 했지만, 만약의 사태를 염려한 군 당국자의 만류로 제지당했다. 김충립 목사는 "점등이 이뤄지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냅다 뛰어라"고 안내했고, 참가자들은 애기봉 등탑 옆 전망대 안에서 "온 누리에 평화를"을 외친 뒤 철수했다.

이날 행사는 영등포교회 이름으로 국방부의 승인을 얻어 추진됐지만, 정작 설교를 맡은 영등포교회 방지일 원로목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축사를 맡은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도 다른 일정을 이유로 행사에 불참했다.

1954년에 시작된 애기봉 점등식은 2004년 6월 제2차 남북 장성급 군사 회담 합의에 따라 중단됐다.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정 활동을 중지하기로 한 것이다. 애기봉에 대해서는 북한 측이 철거를 주장했지만, 점등하지 않는 선에서 합의를 본 바 있다. 그러나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로 점등 행사가 재개됐다. 지난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으로 북한 측의 애도 기간을 감안해 점등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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