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9일 선거일에, 나는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바로 투표소를 찾았다. 쌀쌀한 날씨 탓인지 투표장은 비교적 한산한 까닭에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데까지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던진 소중한 한 표가 무효표로 처리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해 간 휴지로 인주를 두세 번 찍어 냈다. 혹시나 인주가 다른 곳에 묻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인주가 다른 곳에 묻을 염려는 거의 없는 것 같았다.

16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으로 돌아와서 첫 번째 참여하게 되는 선거가 대통령 선거였는데, 초박빙의 승부였다. 1번 후보도 2번 후보도 결국 허물이 많고 죄성을 가진 사람이며, 결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메시아가 될 수 없음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선거 유세 기간 내내 나는 아무개 목사처럼 물불 가리지 않고 한쪽 후보를 위해 뛸 수도 없었고, 또한 나의 페이스북 친구 목사님처럼 다른 한 편 후보를 위해 글을 열심히 써 댈 수도 없었다. 다만 적어도 저쪽보다는 이쪽이 기득권층의 배만을 채우는 것보다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위해 좀 더 노력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나의 한 표를 던졌다. 현대판 광해와 같은 리더를 뽑기를 희망하면서….

선거 유세 내내 내가 선거에 대해서 아무 소리도 하지도 않은 것은 어쩌면 비겁한 행동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복음은 단순히 종교적이고 영적인 것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제적인 삶과도 연관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의 영역은 세속적인 영역이기에 목사가 관심 밖에 두어야 할 영역이라고 보는 것은 성경적이지 못한 이원론적 세계관일 뿐이다. 더 나아가 어차피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든 정치적이지 않을 수 없다. 침묵함으로써 우리는 일종의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 정치에 대한 침묵은 비겁한 행동일 뿐만 아니라, 일방적으로 어느 한 편을 돕는 정치적 행위를 해 온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1번도 2번도 내가 원하는 적절한 후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비교적 더 나은 후보라 생각되는 자에게 표를 던지기는 했지만…. 만일 내가 어느 후보를 일방적으로 지지하게 된다면, 결국 내가 더 소중하게 전해야 하는 복음이 오해를 받을 소지가 농후하게 된다. 내가 만일 1번을 지지한다고 떠벌리면, 대한민국 국민의 48%는 내가 전하는 복음을 오해하고 거부할 것이다. 내가 만일 2번을 지지한다고 그 선전의 대열에 앞장선다면, 대한민국 국민의 51.6%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어설픈 정치를 덧입혀 복음이 값싼 취급을 받게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어느 쪽 한 편을 편들다가 다른 한 편을 잃고 싶지도 않다. 비록 그 다른 한 편이 단 한 명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소위 '꼴통' 보수주의자들에게도 필요하고, 또한 소위 '빨갱이' 진보주의자들에게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전하는 예수님은 꼴통도 아니고 빨갱이일수도 없다.

내가 설교 시간에 어떤 건강식품이나 기발한 상품들을 선전하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내가 전할 예수의 복음이 그 어떤 이 세상의 가치 없는 것들과 동일시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내가 전해야 할 것은 어떤 정치인이 아니고, 어떤 이데올로기 체제도, 어떤 기발한 상품도 아니다. 내가 전해야 할 대상은 오직 예수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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