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박사의 <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 출간 기념 북콘서트가 11월 23일 서울 합정동 100주년기념교회 교육관에서 열렸다. <뉴스앤조이>·IVP 주최로 연 행사는 김종희 대표(<뉴스앤조이>)가 사회를 맡았고, 이야기 손님으로 송 박사와 김기석 목사(청파교회)가 함께했다. 좌담에 이어 노래 손님으로 길가는밴드·코드셋 등이 나와 공연했다. 기독 청년들과 평화 활동가들, 제주 강정마을 사람들까지 100여 명의 청중이 함께했다.

송 박사는 평화운동을 이유로 아내·딸·아들에게 소홀했던 것에 대해 미안함을 표현했다. 그렇다고 그가 가족을 잊은 적은 없다. 책에는 송 박사가 자신보다 파란만장하게 살았다는 아들 송한별 씨가 쓴 편지가 나온다. "아버지가 앞서 가시는 그 길이 고독할지라도 항상 기억하세요. 아버지를 이정표로 삼아 아버지의 삶을 희망으로 품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안에 한별이도 있다는 것을." 북콘서트에 송한별 씨가 무대로 올라와 송 박사를 향해 쓴 편지를 낭독하며 아버지를 향한 애정을 표현했다.

▲ <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 북콘서트에 송강호 박사의 아들 송한별 씨가 무대로 올라와 송 박사를 향해 쓴 편지를 낭독하며 아버지를 향한 애정을 표현했다. ⓒ뉴스앤조이 엄태현

아래는 송한별 씨의 편지 전문이다.

아버지 깜짝 놀라셨죠?

 저도 제 글이 책에 실린다고 살짝 기대하고 있었는데, 편집이 되어 나온 글을 보고 지금 아버지만큼 놀랐던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에 아버지께 편지로 나누고자 했던 하루하루의 지난한 고민과 그 속에서 찾아 헤매고 있는 듯한 약한 희망의 목소리가 웬 독립운동가의 확신에 찬 웅변 같은 글로 돌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제게 편지를 낭독할 시간을 할애해 주신다고 해서 무슨 글을 써야 하나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 생각난 것이 책의 글로 나타난 왠지 저와 안 어울리는 이질적인 이미지를 좀 관리해 보고자 여기 나오게 되었습니다. 혹시 편집자 분이 서운하실까 봐 드리는 말씀인데 제가 나쁜 감정이 있는 건 아니고요. 난해한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기 편하게 고쳐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아무튼 책을 마지막까지 꼼꼼히 다 읽으신 몇몇 분들이 어머니를 통해 가끔 제 글에 감동을 받으셨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죄송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도 이런 아버지랑 같이 살기 힘들었습니다. 저 아시는 분들은 이거 진담인 것 아시죠? 하지만 제가 아버지를 세상의 빛과 소금 같이 비유한 말씀은 어떤 비약도 섞지 않은, 제가 평소에 간직하고 있던 생각이었습니다. 편지에서 말씀드렸다시피 평소에는 낯 뜨거워서 말하지 못하던 것들을 옥에 갇히셨을 때 오히려 자유롭게 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 얼마 전 제 생일에 주신 책을 받던 날, 그동안 살아오면서 제 안에 침전해 온 어려운 시간들에 대해 말씀드린 것을 가슴 아프게 들으셨을 줄 압니다. 화평케 하는 길은 이렇게 앞뒤로 어려움이 출몰하는 힘들고 막막한 길입니다. 단순히 강한 힘으로 싸움이 없는 상태를 만드는 폭력적 평화가 아닌 어떤 종류의 헤게모니나 이데올로기가 존재하지 않는 대화로 이뤄나가는 평화란 어쩌면 인간의 시대에 이룩할 수 없는 허황된 꿈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그런 위험천만한 거친 풍랑의 바다로 뛰어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계속 봐 왔습니다. 정확히 말해서 봐야만 했습니다.

저는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집어 삼키는 세상의 미친 파도를 향해 돛대를 돌리지 않고 나아가는 당신의 모습은 이 세상 풍파에 숨 죽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에는 미친 사람으로 보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 가슴에는 그것보다 더 무시무시한 마음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언젠가부터 아버지의 모습을 부러워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덥수룩한 수염과 네모난 얼굴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대학교 시절 어머니가 좋아했던, 구멍이 숭숭 난 옷을 입고 다니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당신의 신념과 일치된 삶, 그것보다 제가 더 부러워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디 있는지 알 수조차 없는 평화의 바다로 항해하는 수많은 고난 속에서도 도리어 희열을 감출 수 없는 얼굴로 그 파도를 거슬러 나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진실로 당신의 좌우명처럼 삶이 한 번 살아 볼 만하고 아름답다고 말씀하시기에 참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삶이 힘들고, 패배할지라도 그것을 항상 온전한 자신으로 살아내는 모습을 저는 옆에서 봐 왔기 때문입니다.

제가 강정에 내려왔을 때 어떤 주민 한 분이 아버지가 강정마을과 함께하면서 기울어 가는 싸움에 다시 한번 딛고 일어설 힘이 생겼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일찍이 포기하지 않은 오랜 싸움에 지쳐 뼈와 살이 마르는 주민들을 생각할 때면 이 쓰디쓴 패배를 계속해야만 하는 싸움에 너무 아프고 또 아픈 것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마 아버지가 패배했듯이 우리도 이 승산 없어 보이는 싸움에 계속되는 패배가 마치 십자가처럼 우리 등 위에 무거운 그림자로 드리워질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예수님과 그를 쫓았던 별 볼 일 없던 한 줌 잔당들의 피 묻은 패배가 인류의 가슴속에 구원의 길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어쩌면 우리 등에 지워진 패배의 고통도 제주 교도소의 아버지 뒷모습에서 보았던, 자유의 날개가 돋아나는 그 아픔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포함해 강정마을에서 싸우고 계신 평화의 전사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앞으로 벌어질 결과에 대해 어떤 의심도 없이 당신들께서 해야 한다고 믿는 일들에 전력을 쏟으십시오. 그리고 그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 싸움에서 연행되거나 구속되더라도 몸을 잘 보전하도록 하십시오. 그 무엇보다도 여러분 한 명 한 명이 강정마을입니다.

2012년 11월 23일
한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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