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만 되면 교계가 떠들썩하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는 선언을 하거나 설교를 통해 숨김없이 특정 후보를 비난하거나 지지하는 것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기독교 정당을 만들겠다고 정치판에 뛰어들기도 한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홍재철 대표회장)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한기총과 다른 입장에 서 있는 기독교 단체도 직접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히지 않았다고 해도 내용적인 면에서 어느 정당과 후보를 지지하는가가 드러나 있다. 이런 상태니 '종교의 정치 참여' 문제에 대해서 갑론을박하기 전에 이미 종교가 현실 정치에 들어와 있다 하겠다.

세계사를 통해서 '정교일치', '정교분리'라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 나라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 그런데 '정교분리'라는 말은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뜻 정도로 해석되면서, 정치적인 무관심이 곧 종교적인 행동인 것처럼 호도되기도 한다.

1970년대 이후의 한국 기독교계는 진보와 보수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진보적인 기독교계에서는 유신 체제에 반대해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 등을 적극 지원했고, 그 때문에 1970년대에는 유신 정권에 의해 많은 핍박을 받기도 했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통일 운동과 민주화 운동 등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1987년 6월 항쟁을 승리로 이끌어가는 데 많은 이바지를 했다.

하늘나라만 봐야 한다는 종교는 '사이비'에 불과

그러나 보수적인 기독교계는 이런 진보적인 기독교계를 향해 '정치 참여'를 한다고 비난을 했 으며, 종교의 정치 참여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견지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은 조찬기도회 등을 통해 1980년 광주 시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잡은 전두환 군부 정권의 시녀가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자신들의 정치적 성향과 같다고 여겨지는 보수적인 정당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와 성원을 멈추지 않는다.

1970~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적극 나섰던 진보적인 기독교계를 '정치 참여'라고 비난했지만, 그들은 침묵이나 동조로 여당 일변도 혹은 보수 일변도의 정치 참여를 해 왔던 것이다.

종교는 정치와 무관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며,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종교는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예수의 십자가형, 그것은 예수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정치적인 죽음이었다. 당시 십자가형은 정치범들에게 행해지는 형벌이었으며, 그런 점에서 예수의 양옆에서 십자가형을 받은 강도 역시도 정치범이었다.

예수 당시, 정치범을 가리켜 권력가들은 '강도'라고 지칭했다. 예수는 단순히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을 비판하고, 가난한 민중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았다. 그런데 권력을 쥔 자들의 눈에는 그것은 다분히 정치적이었으며, 당시 예수의 삶은 그가 의도하지 않아도 정치적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에도 이것은 같다. 개인의 구원 문제는 단순히 사후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의 문제이며, 한 개인을 옭아매는 악한 구조가 있다면 그 악한 구조와 싸울 수밖에 없다. 건전한 종교는 단순히 사후 세계의 구원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더욱이 기독교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뤄지이다'라고 기도하지 않는가? 그러니 이 땅의 문제에 관심을 두는 것은 당연하고, 이 땅의 부조리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정치, 문화, 경제적인 문제들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만일, 어느 종교 집단이든 종교가 현실 정치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며, 신자들은 오로지 지금 여기가 아닌 저 하늘나라만을 바라봐야 한다고 가르친다면 그것은 사이비 종교에 불과하다. 종교는 사람의 구원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기에 필연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정치적일 수밖에 없지만 정치권력 '지향'하지는 말아야

종교는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진보적인 기독교계를 정치적으로 야당 성향이라고 한다면, 보수적인 기독교계는 철저하게 여당 성향이었다는 점은 지난 1970년대 이후 교계의 민주화 운동 과정을 살펴보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최근의 예를 들어보자. 사학법이나 4대강 사업에 대한 찬반논란에서 기독교계는 진보와 보수의 견해차가 극명했다. 그런데 어느 쪽은 정치 참여고, 어느 쪽은 정치 참여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종교의 정치 참여를 반대하는 이들은 선거철만 되면 기독교 정당을 만들겠다며 후보들을 냈고, 지난 대선과 관련해서는 후보가 기독교 장로라고 적극 후원하고 지지했다는 점이다. 과연 그들의 행동은 정치 참여가 아닐까?

여기에서 차이가 있다.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 노동운동, 생태 운동 등 사회적인 약자들의 처지를 대변했던 이들은 정치적인 행동을 했지만, 권력 지향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위와 같은 일들을 '정치 참여'라고 비판했던 이들은 철저하게 권력 지향적이었다. 여기에 차이가 있을 뿐이었고 실상은 둘 다 정치적이었다는 점이다.

종교는 정치적일 수밖에 없으나 권력을 지향하는 순간 본질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정치권력을 지향하는 이들은 예수가 당시 "독사의 새끼들아!"하고 비난했던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예수의 제자들조차도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누가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인가 다투지 않았는가? 그런 현실적인 한계와 더불어 지금 이 땅에서 사회적인 약자들의 처지를 대변한다 했을 때, 그것이 정치적인 것과 무관할 수 없다.

종교가 정치 참여를 해야 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논쟁은 무의미하다. 이미 종교가 정치적이지 않을 수 없는 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다만, 끊임없이 경계해야 할 것은 '권력 지향'일 것이다. 이것은 보수, 진보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기독교인, 더 나아가 종교인은 이 사회의 구성원이다. 그들에게 정치와 무관한 삶을 요구하는 것이 얼토당토않은 것처럼, 종교의 정치 참여 문제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 생각한다.

김민수 /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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