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성교회(길자연 목사) 당회가 세습을 결정했다는 소식은 <뉴스앤조이>를 비롯한 언론 매체 보도로 빠르게 확산됐다. 일간지와 방송은 "공동의회를 거쳐야 세습이 확정되지만, 당회 결정을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사실상 세습이 끝났다"고 보도했다. 길자연 목사 뜻에 반대하기 어려운 왕성교회 분위기가 전해진 탓이다.

그러나 왕성교회 안에도 세습을 반대하는 교인들이 있다. 소신껏 반대 목소리를 내는 교인 중 한 사람과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세습 여부를 결정짓는 공동의회를 이틀 앞둔 10월 5일, ㅂ 집사를 만났다. ㅂ 집사와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 장로 99명 중 85명이 세습에 찬성했다. 일간지도 교인 대부분이 찬성하리라고 내다봤다. 그럼에도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세습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교회 특성상 무조건 반대하기도 쉽지 않다. 교회 분위기나 사정을 잘 아는 아들이 목회할 때 장점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아들이 오더라도 최소한 과정은 공정해야 한다.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후임 목사를 정했을 때 아들이 될 수도 있지 않나. 아들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자신은 아들을 허수아비로 세워 교회 자산을 지키려는 생각이 문제를 일으킨다.

우리 교회는 청빙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 청빙위원회는 청빙을 비공개로 진행하면서 공개하지 않는 타당한 이유를 대지 못했고, 교회는 후임 목사 후보를 어떻게 선정했는지 교인들에게 알린 적이 없다. 아들 길요나 목사가 후임 목사 후보로 결정됐다는 사실도 교인 다수가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다. 길요나 목사는 최근에 왕성교회에 와서 설교한 적도, 목회 비전을 설명한 적도 없다. 길요나 목사가 담임목사가 된 이후도 걱정이다. 아들이 아버지 영향력을 벗어나서 교회를 이끌기 어려울 것이다.

- 길자연 목사가 은퇴 이후에도 교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예상한 일 아닌가. 올해 3월 25일 열린 공동의회에서 "길 목사는 은퇴한 뒤에도 설교·동사 목사로서 목회한다"고 결의했다.

길자연 목사가 공동의회가 끝난 다음 주 열린 금요 예배에서 "설교·동사 목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5월 말쯤에는 과천으로 이전하지 않겠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기도 했다. 원래 동사·설교 목사가 되거나, 과천으로 교회를 옮겨서 은퇴하지 않고 계속 목회하려고 했다고 들었는데, 그것을 포기하고 올해 은퇴하기로 한 것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고마웠다. 하지만 그 뒤로 청빙을 불투명하게 진행해 세습을 시도했다.

- 왕성교회의 세습 강행이 많은 언론 보도를 타고 사회의 관심을 받고 있다. 교회 분위기는 어떤가.

교회 밖에서는 비판 여론이 강해도 세습에 찬성하는 교인이 많다. 그동안 교인들은 목사가 대제사장이고, 목사만 하나님의 종인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설교를 들으면서 목사에게 복종하는 태도가 미덕이라 배웠다. 덕분에 많은 교인이 목사 뜻에 거역하면 벌 받는다고 여긴다. 반대하는 교인도 교회 분위기 탓에 공개적으로 자기 뜻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교회는 세습을 위해 장로 임직 카드까지 꺼냈다고 한다. 교역자들이 최근 안수집사들에게 "장로 25명을 새로 세운다"고 말했다고 들었다. 우리 교회는 담임목사가 추천하면 100% 장로가 된다. 장로가 되고 싶은 집사는 목사 뜻을 거스를 수 없다. 장로 임직을 앞세워 집사들을 포섭하고 있는 셈이다.

- 장년층이야 목사 말에 복종하는 게 익숙하다고 해도 젊은 층은 생각이 좀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청년들 반대표를 의식해 공동의회를 청년부 예배와 같은 시간에 여는 게 아닐까. 예배를 빠지고서라도 공동의회에 참여할 의지가 있는 청년들은 없나.

젊은이들이 후임 목사 결정에 관심 자체가 없다. 목사를 정하는 것은 어찌 보면 대통령을 뽑는 일보다 신중해야 한다. 대통령은 견제 세력이라도 있지만, 한국교회에서 목사는 견제 세력이 없는 존재 아닌가. 그럼에도 젊은 사람들이 청빙 자체를 모르거나 청빙에 참여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 왕성교회에 미래가 없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 이번 일을 겪으면서 교회 제도나 문화에 많은 문제를 느꼈을 것 같다.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교회에 교인들의 생각과 주장을 전달할 제도가 없다는 게 답답했다. 사회에서는 언론도 있고 감사원이나 고충처리위원회도 있어 국민 의사를 전할 수 있는데, 교회는 의사 결정 구조에서 교인들이 배제되어 있다.

청빙 과정도 바뀌어야 한다. 후임 목사 선정을 당회와 담임목사가 좌우하는 경우가 많은데, 후임 목사는 교인들이 뽑아야 한다. 교회는 교인들이 바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 세습이 확정되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세습을 반대했던 사람으로서 교회를 다닐 때 마음이 편하지 않을 텐데.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하지만 같이 신앙생활 하는 동료들이 있기 때문에 교회를 떠나지는 못할 것 같다. 교회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좋은 동역자가 있어 버틸 수 있었다. 교회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바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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