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욱 목사는 폭주했고, 교회는 아무런 제동 장치가 없었다. 전 목사가 상습적으로 여성을 성추행하는 동안, 교역자들은 그런 전 목사를 모른 척했다. 오히려 피해 여성들에게 교회를 나가라고 조언(?)했다. 침묵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억울함을 해결해 준다고 설교했다.

2004년 여름, 제주 선교 준비 팀 데스크에서 지원자 신청을 받던 유민지 씨(가명)는 7~8명의 부목사가 있는 공개된 장소에서 전 목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전 목사가 테이블을 짚는 척하면서 유 씨의 몸에 손을 댔다. 깜짝 놀란 유 씨는 전 목사의 손을 쳐냈고, 함께 있던 교역자들의 시선은 전 목사가 아닌 유 씨를 향했다. 마치 유 씨가 이상한 행동을 한 것처럼.

유 씨가 처음 삼일교회를 찾은 건 2000년대 초반 대학 입시 후다. 청년 목회로 이름이 꽤 알려진 곳이었지만, 낡은 건물에서 예배하며 오직 복음으로만 무장한 듯 보였다. 전 목사 역시 깨끗한 이미지에 유창한 설교까지 더해지면서 멘토로 여기기에 충분했다. 유 씨는 리더로, 헬퍼로, 선교 준비 팀으로 열심히 헌신했다. 하지만 그런 유 씨에게 돌아온 건 은혜가 아닌 상습적 성추행이었다.

▲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은 상습적이었고, 포옹하며 엉덩이 만지기, 자신의 허벅지에 손 올려놓기, 실수한 척 가슴 만지기 등 그 수법도 다양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전 목사는 첫 성추행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했다. 오히려 "스킨십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추억이 될 수 있다"는 망언을 하는가 하면, 자신을 남자로 봐 주지 않는다며 유 씨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전 목사는 설교 중에 유 씨를 언급하며 친근감을 표현했다. 피곤할 때는 자신의 방으로 유 씨를 불러 마사지를 시켰고, 그곳에서도 음담패설과 성추행을 일삼았다.

평소 전 목사를 영적 스승이자 아비로 여겼던 유 씨는 혼란스러웠다. 목사로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전 목사를 보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다고 다른 교역자들에게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그들은 자신의 성추행 현장을 봤는데도 침묵했던 사람들이었다. 말해 봤자 자신만 이상한 사람이 될 게 뻔했다. 같은 팀 간사 언니에게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했지만 "나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유 씨는 전 목사의 약점을 놓고 기도하며 전 목사가 돌이키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2010년, 전 목사의 성추행 사건이 세간에 알려졌고, 유 씨는 이번 기회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길 바랐다. 하지만 교인들은 전 목사의 성추행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자신이 당한 성추행 사실을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믿지 않는 눈치였다. 함께 신앙 생활하던 친한 동생이 홍대새교회에 나가 웃고 있는 모습을 볼 때,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문자로 성추행 사실을 알렸지만 답이 없었다.

유 씨는 용기를 내어 이진오 목사가 개설한 '전병욱목사진실을공개합니다' 카페에 자신의 피해 사실을 올렸다. 한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위로의 말 한마디 없이 "목사님 사모님과 딸들을 생각하라"며 글을 내리라고 했다. 기가 막혔다. 전 목사를 따르는 이들에게 유 씨가 당한 고통은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유 씨가 올린 글에는 "전 목사에게 간 네가 잘못이다", "네가 지식이 없어서 당했다"는 식의 악성 댓글이 달렸다. 아무도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지 않는 것 같았다. 가만히 앉아 만 있어도 눈물이 흘렀다. 더는 사람들을 볼 수 없을 거 같았다. 유 씨는 이 모든 것에서 떠나야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9월 28일 만나 유 씨는 어렵사리 피해 사실을 꺼내 놓았다. 전병욱 목사를 더는 '목사'라고 부를 수 없어 '전 씨'라고 부르겠다고 했다. 유민지 씨는 이번 인터뷰로 많은 사람이 진실을 알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 아래는 유 씨와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내용이다.

- 삼일교회는 언제부터 다녔나.

▲ 숙명여대 대강당을 빌려 예배를 드렸던 삼일교회는 건물 없는 교회로 알려지기도 했다. 2009년 숙명여대와의 계약 종료 후에는 각 교육관에 분산되어 예배를 드렸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대학 입시가 끝난 2000년대 초반 삼일교회를 출석했다. 처음엔 서울에서 젊은이들이 많이 모인다는 교회가 너무 낡아서 놀랐다. 열정과 담대함과 복음으로 무장한 교회로 보였다. 교회가 건물이 아님을 보여 주는 것 같아서 감동을 받았다. 전 씨의 책을 보면 정말 대단한 사람 같았고, 하나님한테 철저히 복종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물질적으로도 투명하게 행동한다는 점에서 존경할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유창하게 설교하는 전 씨가 나의 멘토로 느껴졌다.

- 교회에서 어떤 활동을 했나.

모태신앙이라서 그런지 처음부터 리더를 맡았다. 리더를 돕는 헬퍼 역할도 했다. 제주 선교 준비 팀, 한미준(한국교회미래를준비하는모임) 준비 팀에도 참여하면서 전 씨를 가까이서 보게 됐다. 평상시에도 개인적으로 전화가 왔었고, 다른 청년과도 그렇게 지내는 줄 알았다. 그때는 사제지간이기 때문에 그러나 보다 생각했다.

- 전 목사에게 어떤 성추행을 당했나.

2004년 여름에 제주 선교 준비 팀 데스크에서 지원자 등록을 받고 있었다. 7~8명의 부목사님과 준비 팀 사람들이 테이블에 주변에 모여 있었고, 그때 전 씨가 와서 테이블을 짚는 척하더니 왼손 손등을 내 음부에 갖다 댔다. 너무 놀라서 반사적으로 손을 쳐냈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모두 놀라는 분위기였지만,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너무 부끄러워서 일단 다른 준비 팀 사람들 있는 곳으로 피했다. 그쪽에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정신이 없어 답하지 못했다.

- 그 일을 겪고 나서 전 목사와의 관계는 어땠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씨가 나에게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했다. 나는 내가 너무 오버한 건 아닌가, 실수로 잘못 짚을 걸 오해한 건 아닌가 싶어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따라갔다. 그런데 전 씨는 그 자리에서도 "결혼을 했건 안 했건 스킨십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추억이 될 수 있다"는 이상한 소리를 했다. 커피를 마시고 오는 길에는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목사님은 저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다. 목사님 말씀으로 은혜 받고 교회를 더 잘 섬기게 됐다. 내겐 영적 아버지 같은 분이다"고 답했더니, 자기를 남자로 봐주지 않는다며 크게 화를 내고는 먼저 가버렸다.

그 일이 있고 나서도 전 씨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대했고, 설교에서도 나를 인용하며 특별히 예뻐하는 것처럼 말했다. 제주 선교 때도 자기 뒤에 따라다니라면서 친근감을 표했다. 그래서 난 전 씨에 대해 색 안경을 끼고 보진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이후에도 전 목사가 성추행을 시도했나.

전 씨에게 발 마사지봉과 관련 책을 사 준 적이 있다. 늘 피곤하다고 해서 사모님과 함께 사용하라고 준 선물이었는데, 전 씨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직접 와서 해달라고 했다. 나는 전공자가 아니라서 잘 못한다고 했는데도 본인이 지금 너무 피곤하고 몸이 안 좋다며 와 달라고 했다. A관 목양실이었는데 그곳에는 이미 많이 쓴 듯 보이는 마사지봉이 여러 개 있었다. 발 마사지를 끝내고 나가려고 하는데, 전 씨가 오른손으로 열어야 하는 문을 굳이 왼손으로 열면서 가슴을 쓸듯이 만졌다. 너무 이상한 자세였기 때문에 의도적인 게 분명했는데, 전 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잘 가라"고 했다.

- 성추행 이후에 전 목사의 태도는 어땠나.

그 뒤로도 "네가 마사지를 해 줘서 너무 좋았다"며 또 와서 해달라고 요구했다. 어느 날은 나를 불러놓고 "내가 너의 가슴을 만졌다는 메일이 왔다"며 자신이 그런 적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만졌다고 하기엔 모호했기 때문에 "아니요"라고 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떠보기 위해 그런 말을 한 거 같다.

- 매번 마사지하는 것이 괴로웠을 텐데 거절하지는 않았나.

전 씨가 너무 피곤하고 힘들다고 부탁하는데 안 갈 수가 없었다. 나만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 씨에게 갈 때마다 언니나 친구를 꼭 데리고 갔다. 그런데 전 씨는 "왜 맨날 언니랑 같이 오냐. 앞으론 너 혼자만 오라"고 했다. 엄마가 굉장히 걱정하셨다. 서울에서 공부하라고 보냈는데 밀폐된 공간에서 목사님 발마사지를 하는 건 안 된다고 하셨다. 전 씨에게 얘기했더니 "넌 왜 그런 얘기를 엄마한테 하느냐"며 굉장히 화를 냈다.

- 전 목사의 성추행은 계속됐나.

소파에 같이 앉아 있었는데 "겨드랑이 제모는 하느냐"며 팔을 들춰보려 한 일, 자기 옆으로 와서 앉으라 해놓고 "뭐 안 이상하지"하며 손잡고 자기 허벅지에 얹어 비빈 일 등 상습적으로 성추행했다. 장흥 선교 때는 말씀 전하기 전에 "넌 내가 아기처럼 생각하니까"하면서 내 엉덩이를 주물렀다. 사람 없는 틈을 타 껴안으면서 엉덩이를 툭툭 건드렸다. 놀란 기색을 보이면 "내가 뭐 했니. 네가 이상한 거야"라고 했다.

성희롱 발언도 많이 했다. 여자들 음모가 여러 모양이 있다며 "나는 이러이러한 모양을 좋아하는데, 너희는 어떻게 생겼느냐"고 물은 적도 있고, 내가 이성 교제 때문에 힘들어 할 땐 "너 그 애랑 잔 건 아니지. 넌 아긴데, 너는 아직 순수하니까 안 그랬지"라고 물으며 성적 수치심을 줬다.

- 상습적으로 피해를 보면서도 저항하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가.

교회 다니는 자매들은 대부분 착한 사람이 많다. 목사한테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하던 사람들이라서 저항하기가 쉽지 않다. 전 씨는 성추행해 놓고 내가 뭘 했냐는 식이다. 증거를 잡기도 쉽지 않다. 미국에서는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안고 엉덩이를 만진다. 순진한 사람들은 당하면 아무 말도 못하고 놀라기만 한다. 순식간에 지나간 일을 따지기도 어렵다. 전 씨 같은 절대 권력한테 뭐라고 한들 바위에 달걀 치기다. 주변에 이 사실을 말해봤자 그냥 교회를 떠나라고만 한다.

- 다른 사람에게 피해 사실에 관해 이야기했나.

부끄러워서 사람들에게 많이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평소 '거룩하게 살고 희생하라'는 말씀을 많이 했기 때문에 전 씨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느낄 거로 생각했다. 몇몇 사람과는 성적인 부분에 약하니까 회개하시길 바란다고만 이야기하고 마무리 지었다. 평소 전 씨를 맹신하는 교회의 분위기에서 스타 목사인 전 씨에게 문제를 제기해 봤자 나만 바보로 만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 얘기를 해 봤자 믿을 사람도 없었고, 침묵한 가장 큰 이유는 교회에 덕이 안 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 교회 교역자들에게는 따로 이야기 안 했나.

이야기를 못 했다. 내가 성추행당하는 상황을 다 봤는데도 그들의 눈빛이 마치 '당하는 네가 바보 같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난 8월에 삼일교회 여름 선교를 다녀왔다. 가고 싶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지 않겠냐는 주변 지인들의 권유로 참여하게 됐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선교에 전념했다. 그런데 마지막 날 밤 000 목사가 이제 카페 활동(전병욱목사진실을공개합니다) 같은 것 하지 말라고 했다. 본인이 당했던 억울한 일에 대해 하나님이 명예 회복을 시켜줬다고 얘기하면서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내가 피해당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들으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뒤에 앉아서 계속 울었다. 그때 다시 한 번 피해자들이 울든지 말든지 입 닫고 가만히 있으라는 게 교회 분위기라는 것을 알았다. 그 일로 이제는 정말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 2010년에 전 목사의 성추행 사실이 외부에도 알려졌다.

나 역시 그 사실을 듣고 충격을 받았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굉장히 조심하니까 나에게 함부로 하지는 못했지만, 교회 로비에서 나와 이야기할 때도 육감적인 몸매를 가진 자매가 지나가기라도 하면 발정 난 수캐처럼 그 자매를 쳐다봤다. 눈빛이 정말 위험해 보였다. 어떻게든 해 보려고 하는 것 같았다.

- 많은 교인이 전 목사의 성추행 사실을 믿지 않았다.

한 간사님에게 전 씨의 성추행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물었는데,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라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내 경험을 얘기했더니 사람들은 전 씨에 대해 화를 내기도 했고 그러려니 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모른다는 걸 알고 이진오 목사가 개설한 카페에 피해 사실을 알리는 글을 썼다. 얼마 후 글을 내리라고 연락이 왔다. 어떤 언니는 "네가 굉장히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며 "목사님의 사모님과 딸을 생각해라"고 했다. 전 씨가 가해자인데, 피해자인 내가 뺨을 맞는 느낌이었다. 그 언니에게 전화를 받고 나서 사람들이 이렇게 사실을 덮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쓴 글에는 "전 목사에게 간 네가 잘못이다", "네가 지식이 없어서 당했다"는 악성 댓글이 달렸고, 나는 큰 상처를 받았다.

- 삼일교회의 대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장로님들은 개인적으로 만나면 참 좋은 분들이다. 처음에 전 씨의 사건을 덮으려고 했던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방법이 너무 잘못됐다. 인터넷에 관련 글이 올라오면 다 지우고, 성도들의 입을 아예 막았다. 왜 일 처리를 이런 식으로 하는지 너무 답답했다. 자기 딸이 당했으면 이럴 수 없다. 일 처리하는 과정은 솔직히 교회가 잘못했다. 예배를 드리러 가면 우리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평화롭고 재밌기만 했다. 한 목사는 설교 중에 "선교나 하고 헌신이나 하지, 입 닫고 있으라"고 했다.

교회는 단지 어깨를 주물러 달라는 요구였다며 사건을 축소하기 바빴고, 피해 여성이 이단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그런 일들로 50여 명의 집사가 '공동 요청문'을 작성하게 됐다. 성추행을 당하고 교회를 지켜보면서 어떻게 이런 일들이 드러나지 않을까 답답해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오랫동안 감춰진 죄를 결국 드러내셨다.

- 다른 교회로 옮길 생각은 안 했나.

삼일교회에 있으면서 선교를 꼭 가고 싶었다. 선교 현장에 가면 정말 작은 교회에서 한 영혼을 위해 이름도 빛도 없이 섬기는, 존경할 만한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교회를 가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삼일교회가 싫다고 다른 교회로 바로 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 결국 교회를 떠났다.

사람들을 만나기 싫었다. 부교역자들을 만나면 피하게 됐고, 그들에게 말씀으로 공격받기에는 내가 받은 상처가 너무 깊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교회를 기다리기에도 너무 지쳤다. 전 씨가 가끔 보인다는 장소에 가면 혹시나 마주칠까 봐 계속 두리번거리는 버릇도 생겼다. 너무 힘들어서 정말 쓰러질 정도로 운 적도 있다. 견딜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다. 그래서 이 모든 것에서 떠나고 싶었다.

- 홍대새교회에 대해서는 어떤 마음인가.

홍대새교회 홈페이지에서 전 씨가 웃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는 머리가 터져버리는 것 같았다. 친하게 지냈던 동생이 그 교회에서 웃고 있는 사진도 봤다. '네가 내 마음을 안다면 거기에서 웃고 있을 수 있느냐'고 문자를 보냈는데 답이 없었다.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내가 당했다고 얘기해도 그 사실을 들을 마음이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예 마음이 닫혀 있었다. 내가 상처를 받았다고 직접 말해도 홍대새교회로 간 사람들이 있다.

- 전 목사 측근인 남동성 변호사는 전 목사의 가해 사실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다.

유명한 사람의 측근이 되면 으쓱해지는 것 같다. 남 변호사는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있지만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했는데, 그건 틀린 말이다. 성직자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게 최우선이다. 그것을 기대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장난치자는 거다. 전 씨에게 남동성은 독이다. 전 씨를 정말 위한다면 남동성이 떨어져야만 한다. 물론 전 씨는 부추긴다고 안 할 걸 할 사람은 아니다. 서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 전병욱 목사는 성추행 문제로 안식년에 들어간 후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채 기도원에 머물렀다. 하지만 교인들은 이곳에 찾아와 전 목사를 만났고, 함께 예배도 드리고 사진도 찍은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 전 목사가 사과했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전 씨가 의로운 사람인 척 교회에서 나갈 때도 그게 위장이고 가식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은 절대 못 나간다고 바락바락 우기다가 겨우 나갔다고 했다. 기도원에서 숨어 있을 때도 전혀 회개하고 있지 않았다고 들었다. 자매들이 옆에서 팔짱 끼니까 "너 나한테 이러지 마. 그 자매도 처음엔 너처럼 이랬어"라고 했다고 한다.

피해 자매들은 아마 전 씨가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사역한다고 했으면 박수 쳐 줬을 거다. 하지만 홍대 앞을 바꾸겠다는 현수막을 거는 건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이 사역했던 교회 지척에서 어떻게 목회 재개를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 혹시 최근에 전 목사가 한 설교를 들어봤나.

설교는 전혀 듣고 싶지 않다. 목소리조차 듣고 싶지 않다. 사진 속 전 씨의 얼굴을 보면 속이 울렁거린다. 예전 물건들 중에 담임목사 전병욱이라고 쓰여 있는 것이 남아 있으면 나도 모르게 이름을 지워버린다. 다른 사람이 올려놓은 게시물을 본 적이 있는데 설교 제목부터 장난치는 것 같았다. 이러한 일을 겪으면서 가짜 복음에 속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2004년에도 이미 말씀을 전하는 예배가 아니라 그냥 재미있는 강의 같았다. 그것 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사람도 봤다.

설교 중에 신변잡기와 음담패설을 많이 했다. 나이 서른이 넘어도 성적 경험이 없는 건 바보 같다는 말을 했다. 같은 내용을 오늘은 A로 전했다가 다음주에는 B로 전해서 새 신자들이 무슨 말인지 헷갈려하기도 했다. 가슴이 큰 여배우를 언급하면서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기 때문에 인기가 많다는 식의 이야기를 설교 중에 자주 했다. 이상한 내용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하나님이 이 교회를 사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냥 있었던 거다.

▲ 삼일교회 교인 117명이 서명한 전병욱 목사 면직 청원서는 평양노회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측으로부터 거절됐다. ⓒ뉴스앤조이 김은실
- 노회나 총회는 전 목사를 징계할 의지가 없는 것 같다.

아직 징계가 내려지지 않은 것은 절망스럽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타락했나 싶다. 면직 청원서를 아예 받아주지 않았다. 장로들은 더는 일할 마음도 없고 손을 뗀 것 같다. 피해자들이 울든 말든 그건 내 알 바 아니라는 식이다. 자기 딸들이라면 그렇게 했을까. 노회는 목회자를 똑바로 세워야 한다. 교회가 더는 욕먹지 않게 하려면 썩은 가지를 잘라야 한다. 이런 일에 대해 그저 침묵하고 있는 교회와 목사들이 너무 많다.

- 전 목사를 어떻게 징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면직이 옳다고 본다. 썩은 부분이 도려내지 않으면 안 된다. 타락하고 신뢰할 수 없는 목사가 성도들에게 바로 살라는 말을 어떻게 하겠나. 그런 썩은 부분 때문에 복음 전파가 안 된다. 청소해야 한다고 본다. 전 씨는 아직 회개하지 않았다. 정말 회개했다면 교회를 그만두거나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한다. 목사직을 내려놓고 평신도로 돌아가서 평생 회개하며 사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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