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검색창에 엔터키만 치면 웬만한 건 바로 바로 답으로 나오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뭐가 그리 궁금해서 사람들이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 열광할까. 지난 27일 안성시민회관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즉문즉설' 자리에 모여들었다. 안성시민회관 객석이 모자라 무대 위 마룻바닥에 자리가 마련되었다. 계단 복도에도 앉았다. 자리가 없어 돌아간 사람도 있다.

▲ 법륜스님. 안성 현장 강의에서도 여전히 준비되지 않은 질문에 막힘없이 즉문즉설이 이루어졌다. 자신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마음"때문이라고 했다. (사진 제공 송상호)

'즉문즉설' 하는 자신감, 바로 이거였네

그는 사람들이 자신더러 "모든 걸 다 잘 알아서 즉문즉설을 하는 걸로 안다. 하지만, 그건 몰라서 하는 말이다"라며 "나는 다만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마음이 준비되어 있을 뿐"이라 했다.

이어서 그는 사람들은 "모르는 걸 아는 체 하기 때문에 힘들게 산다"고 일침을 가했다. 자신은 강연에서 모르는 게 나오면 단 네 마디로 대답한단다. "모릅니다"라고. 오히려 모르는 질문을 물어오면 더 편하다고. 모른다고만 하면 되니까. 모르는 걸 물으면 자신한텐 오히려 좋다고. 집에 가서 찾아보고 또 알게 되기 때문이란다. 아하. 그의 자신감은 바로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에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모르는 질문을 하면 고마워하고 배우려는 자세에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사람들이 즉문즉설을 못 하는 이유가 나온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용기가 없다는 것. 용기가 없게 한 건 사회적 분위기가 크다. 모른다고 했을 때 바보 취급하고 낙오시켜 버리는 생존 경쟁 시대가 큰 몫을 차지한다. 이것이 즉문즉설에 열광하는 첫 번째 이유인 듯.

곡해하는 세상이 답답하니까

자신은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세상이 자신을 미치게 만드는 경험이 간혹 있다. 요즘 인터넷과 미디어, 그리고 SNS가 발달한 것들이 더욱 사람을 곡해하는 빠른 수단으로 악용된다.

법륜스님도 이날 자신의 이전 경험을 되새겼다. 한 시민이 "아이 키우는 게 너무 힘들다"고 말해 왔고, 자신은 "여자가 대통령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아이를 잘 키우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을 한 기자가 "법륜스님은 여성을 아이 키우는 존재로 비하했다"고 썼고, 또 다른 기자는 "박근혜 대통령 후보를 겨냥해 말했다"고 곡해했단다.

통신이 발달되어 있고, 앉아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대화하는 세상이지만, 오히려 의사불통이 심각해진 세상이 되어 버렸다. 인터넷을 하는 사람들은 표면적으로 열려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오히려 닫혀 있는 세상이 아닐까.

▲ 이날 자리가 모자라 무대 위에도 앉고, 복도에도 앉았다. 농촌 도시 안성에서 이루어진 강의 치고는 대성황이었다. 즉문즉설을 들어야 답답함을 풀고 희망을 찾을 거라는 희망 때문이었을까. (사진 제공 송상호)

자판 하나로 남을 쉽게 곡해하고, 사장시켜 버리는 무서운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말 한마디 하기가 무서운 세상이 되어 버렸다. 말을 하더라도 머리를 굴려 자신의 입지와 이익을 챙겨야 한다. '곡해받을까봐, 사장될까봐' 하는 두려움은 사람들을 익명성에 묻혀 자판에서 살게 할지도 모른다. 이런 세상에 즉문즉설은 신선한 충격이지 않을까.

수많은 정보가 사람들을 답 못 찾게 만들어

이 시대는 사람들에게 수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정보 홍수 시대다. 하지만, 사람들에겐 오히려 그 많은 정보가 사람들을 헷갈리게 한다. 오히려 인터넷이 없던 옛 시대엔 많은 정보가 없기에 사람들을 심플하게 살게 했을 게다.

수많은 정보가 사람들로 하여금 판단 능력과 선택 능력을 증가시킨 게 아니라 감소시킨 게다. 그것은 곧 사람들이 주변 정보와 지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사람이 자유롭고 편리하려고 정보와 지식을 찾아 헤매다가 거기에 묶인 결과다.

스님은 "우리 불교에서 해탈이란 그 모든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을 말한다. 우리가 모두 지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겉으로 자유 세상이지만, 실제로 자유롭지 못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스님의 자유로움에 감탄하는 현상이라 보인다.

사람들은 남의 문제와 사회문제는 나름 답을 많이 가지고 있다. 넘쳐나는 정보와 지식 때문이다. 정작 자신의 문제는 인터넷으로 해결할 수 없다. 자생력이 그 옛날보다 약화되었다. 즉문즉설에 대한 자생력이 약화된 시대, 자유롭지도 못한 현대인들을 스님에게로 데려가지 않을까.

답답한 세상, 즉문즉설이 청량제

이날 즉문즉설 시간에 나온 질문 유형들을 보면 대략 이렇다. '육아 문제, 자녀 교육 문제, 청년 실업 문제, 식생활 문제' 등. 이 시대에 공통으로 고민하는 문제들이 나왔다. 아직은 사회 어디에도 시원한 대답이 없는 것들이다. 해답이 있어도 사회적 구조가 뒷받침해 주기는커녕 옥죄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답답한 현실은 즉문즉설이라도 들어야 살 거 같다는 현상으로 표출되었다.

기자 옆에 있던 한 아주머니는 연신 "맞다 맞어. 스님 말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네"란다. 사람들은 스님의 말이 맞다 싶으면 "아하"하고 탄성을 지르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낸다. 시원하게 뻥 뚫리는 거 같다는 심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 이날 안성 즉문즉설 현장은 2012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 전국 순회 강연의 일환이었다. 가는 곳마다 차고 넘치는 즉문즉설 현장의 이유는 이 시대가 의사불통이 만연한 시대라는 걸 보여 주는 반증이지 않을까. (사진 제공 송상호)

스님은 입으론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은 청중들의 소리에 귀 기울여 맞장구를 쳐 주고 있는 게다. 모두 다 자기 잘났다고 자기 소리만 내는 시대에 스님은 청중들의 욕구를 들어주고 있는 거다. 공감이란 말을 강조하지만, 공감이 모자라는 시대지 않은가. 이 시대에 스승다운 스승의 부재도 큰 몫을 차지하리라. 잘 가르치는 스승이 아니라 깊이 잘 들어주는 스승 말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신구 세대, 보수와 진보, 부자와 가난한 자 간에 뿌리 깊게 소통이 막힌 시대다. 오죽하면 2012년 대선 주자들의 주요 공통 화두가 '의사소통'이겠는가. 의사소통이 안 되고 답답하고, 그래서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즉문즉설에 열광하는 게다. 역시 이날도 중학생부터 팔순 노인에 이르기까지 강의 내내 사람들의 눈이 초롱초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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