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제 올림픽이 런던에서 열렸다. 우리나라는 금 13, 은 8, 동 7개 종합 5위로 서울에서 열렸던 88 올림픽 이래로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막을 내렸다. 열띤 스포츠 제전이 열린 2주간 동안 한국은 전국이 흥분의 도가니 속에 있었다. 한국 선수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행복했고 자랑스럽게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그 모습에서 감격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축구에서 일본을 꺾고 동메달을 차지한 것이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다. 개인전에서 선전하는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단체 구기 종목에서 이런 성적을 거두었다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주변에 있는 미국 사람들은 올림픽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금 46개, 은 29개, 동 29개로 종합 1위를 차지한 미국이지만, 그런 사실조차 모르는 미국인들이 상당수 있는 것 같고, 알고 있다고 하여도 그렇게 우리처럼 흥분하는 것 같지 않다. 미국 사람들에게는 올림픽에서 종합 1위를 했다는 것이 별로 그렇게 흥미로운 뉴스거리가 되지 못하기 때문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별히 더 열광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땅덩어리도 별로 크지 않고 인구도 그리 많지 않은 동양의 한 나라가,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전쟁의 상흔 아래 허덕이고 다른 나라의 구호를 받으며 살아야 했던 나라가, 이제는 세계의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고 있는 모습이 놀랍기 때문일 것이고, 그런 나라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자부심을 갖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 나는 추신수 선수가 있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경기를 참관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그런 느낌을 가졌었다. 지금은 3번에서 뛰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1번 선수로 나와서 뛰는 추신수 선수가 나올 때마다 상대편 선수들이 긴장하고 마운드에 모여 회의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대단하다 싶었다. 미국의 메이저 리그에서 당당하게 뛰는 한국인의 모습이 참 인상적으로 내게 다가왔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우리 모두가 속아 넘어가는 함정이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올림픽에서 종합 5위를 했다는 사실과 나의 체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다. 야구에서, 골프에서, 축구에서, 피겨 스케이팅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뛰어난 기량을 발휘한다는 사실은 나의 체력이나 건강과는 전혀 무관하다. 그리고 한국의 자동차들이 미국 시장을 헤집고 다녀도, 나의 재정적인 능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늘 아침 신문에서 한국의 슬픈 자화상을 보여 주는 기사를 읽었다. 직장도 없이 지내던 어떤 젊은 청년이 고시원 지하방에 살면서 월세 25만 원을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가 옛 직장 동료를 향해서 칼부림했다는 기사였다. 한국이 부자가 되고 있지만, 수많은 청년들이 실업과 가난으로 상대적 빈곤감과 박탈감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한국의 현재 모습인 것이다. 북한이 금메달 4개를 획득하며 종합 20위의 성적을 냈다는 사실이 북한 사람 전체가 체력적으로 건강한 사회라는 것을 말해 주지 않는 것처럼, 우리나라가 종합 5위를 했다는 사실이 국민 전체가 체력적으로 건강하다는 사실을 말해 주지 않는다.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그저 좋은 교회를 다니면 저절로 자신의 신앙생활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줄로 안다. 그리고 자신의 신앙생활은 엉망이면서도 자신이 어느 교회 소속이라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는다. 미국에서 목회하는 나는 종종 한국에서 이주하여 오는 신도들을 만난다. 그런데 개중에는, 한국에서 S교회, O교회, J교회를 다녔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다. 반면 자신이 다닌 교회는 조그만 교회였기 때문에, 자신이 어느 교회를 다녔는지 이름조차 말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도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유명한 교회를 다닌다 할지라도 저절로 내 신앙이 유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유태인들은 자신들이 선택된 민족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다른 민족이 아닌 이스라엘 민족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으니, 그러한 자부심은 어쩌면 정당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이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과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곤 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에 대하여 세례 요한은 일침을 가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마 3:7~10)." 아무리 선택된 민족 이스라엘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믿음의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지적한 것이다.

지금 나는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지금 어떤 좋은 교회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가? 좋지 않은 나라에 태어나고, 좋지 않은 교회에 다니는 것보다야 훨씬 낫겠지만, 하지만 그러한 사실이 자동으로 나를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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