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합동에 수십 년 몸담고 있는 이들은 1979년을 잊을 수 없으리라. 교권주의자들의 패권 싸움 끝에 그해 9월 총회 때 교단은 분열되었다. 주류 교권주의자들의 전횡과 비리를 보다 못한 박윤선 목사는 이듬해 교단을 나와 합동신학원을 개원했다. 이리하여 합신이라는 새로운 교단이 탄생하게 되었다.

교단이 갈라질 때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고, 박윤선 목사가 합동신학원을 개원할 때 중학교 1학년이었다. 나의 아버지가 2대 담임목사로 목회하던 한성교회의 개척자이기도 한 박윤선 목사가 교단과 교회를 나가자, 그분과 함께 교회를 개척했던 장로들이 쑥 빠져나갔다. 어린 시절 내 교회 친구들이 어느 날 갑자기 한꺼번에 사라진 사건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당시 장로들은 사회적으로도 엘리트 그룹이었다. 장로들의 자녀들은 나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깔끔하고 똑똑하고 잘생겼고 열심이었다. 한마디로 알곡들이었다. 교회에서 알곡은 다 빠져나가고 쭉정이들만 남아서 활보하기 시작했다. 실력도, 수준도 안 되는 사람들이 교회를 휘저었다. 그중에 지금도 총회에서 온갖 비리를 저지르며 돌아다니는 장로도 있다.

40대 초반에 담임목사가 된 아버지는 20년을 간신히 채우고 60대 초반 한창 나이에 은퇴해야 했다. 교단과 한국 교계에서는 나름 존경받는 목회자였으나, 교회 안에서 일부 쭉정이들이 저지르는 패악을 이길 재주가 없었다.

내가 90년대 중반 교단지인 <기독신문>에 입사해서 교단 내부를 취재하면서, 아버지의 문제가 한 교회나 목사의 문제가 아니라 교단 전체의 구조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자 경력이 쌓일수록 왜곡된 구조 속에서 풍기는 썩은 냄새를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2000년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만든 것이 <뉴스앤조이>다. 악명 높은(?) <뉴스앤조이>의 진원지는 예장합동 교단인 셈이다.

쓰레기더미에서 벗어났다는 기분 덕분에 몇 년 동안은 홀가분했다. 그러나 '애증(愛憎)'의 늪에서 빠져나오지는 못했다. 나의 아버지는 자식 등록금은 마련하지 못해도 총신 장학금은 아끼지 않았다. 2003년 하늘나라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췌장암으로 고생하면서도 총회 발간 장년 공과 집필에 매달렸다. 원고료 500만 원은 <뉴스앤조이>에 후원하셨다. 아버지는 하나님 다음으로 존경하는 박윤선 목사를 따르지 않고 교단에 머물렀다. 그리고 교단의 희생양이 되었다. 하지만 교단을 끝까지 사랑했다. 자신을 배신할 제자들을 예수님이 '끝까지' 사랑하셨던 것처럼. 아버지가 품었던 '애정'이 나에게는 '애증'이 된 것이다.

2012년 4월, 나는 <마르투스>라는 이름의 예장합동 전문 온라인 매체를 만들었다. 아버지와 내가 교단과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방법은 이처럼 극과 극이다. '마르투스'는 '순교자' 또는 '증인'을 의미한다. 예장합동 교단에서 증인으로 살아가려면 순교를 각오해야 한다는 현실을 완벽하게 표현한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나 다를까. 창간한 지 100일도 안 되었는데, 여기저기서 고소를 해 대지 않나, 총회 임원회가 기자의 총회 회관 출입을 금지하기로 결의하지를 않나.

내 어린 시절 큰 상처를 주었던 교권주의자들의 잔당들이 쭉정이가 되어서 지금도 이처럼 교단을 주물럭거리면서 교단과 한국교회의 몰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79년 그때랑 비교할 때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내부를 들여다볼수록 <마르투스>가 다뤄야 할 문제들이 산적하다. 하지만 올해는 우선 GMS 문제, 아이티 문제, 목회자 은급 문제 등 '돈' 문제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돈만 보면 눈이 뒤집히는 이들이 너무 날뛴다. GMS, 아이티, 은급, 이런 건 돈 아니면 사고가 날 일이 아니다. 이단 문제는 또 어떤가. 다 돈 때문이다.

그 돈이 어떤 돈인가. 마치 산소호흡기를 달고 간신히 연명하듯이 버티는 수많은 미자립 교회와 농어촌 교회 성도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스민 헌금이다. 그 돈으로 선교사를 후원하고, 목사 은퇴 이후를 돌보고, 지진 피해자를 돕자고 내 몸속 피를 기꺼이 뽑은 것이다. 그 고귀한 헌금을 하이에나들이 날름날름 집어삼키고 있다.

하지만 교단 안에 선량하고 양심적인 목사 장로들도 있지 않은가. 이상하게도 다들 꿀 먹은 벙어리다. 순교 정신은 신사참배 때나 필요한 것이고, 교인들에게 설교할 때만 거론될 단어인가. 그나마 기대했던 '교회갱신을위한목회자협의회(교갱협)'는 갈수록 존재감을 잃어 가고 있다. 총신대에서는 나가떨어지고, GMS 사태로는 내부 분열이다. 교단 현안에 대해서 의견을 물으니 몸 사리기 바쁘다. 하는 일이라고는 해마다 대규모 집회 한 번씩 여는 것. 그리고 읽으나 마나 한 내용의 성명서 한 장 발표하는 것이 고작이다. 창립한 지 20년도 안 되었는데 조로(早老) 현상이 너무 빨리 오는 것은 아닌가.

<마르투스>는 우리 식대로 한국교회와 교단에 대한 애증을 표현할 것이다. 고소를 하든 출입을 막든, 그것이 진실을 덮을 수는 없을 것이며 우리의 애증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셨는데 우리가 먼저 냉소주의에 빠져서 포기하는 불충(不忠)을 저지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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