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흔들지 마라."
"괴로우면 네가 교회를 떠나라."
"네 말이 사실인지 어떻게 아느냐, 증거를 가져와라."

전병욱 목사에게 성추행당한 피해자들이 어렵사리 꺼낸 피해 사실에 대해 삼일교회 교역자들이 보인 반응이다. 교회는 피해 여성들에게 침묵을 강요했고, 피해자들은 또 한번 절망했다. 한국교회가 '전병욱 사태'를 다루는 데 있어 단지 전 목사의 비윤리적 행동을 규탄하고 그를 면직하는 것으로만 이 일을 마무리할 수 없게 하는 대목이다.

▲ 여성의 입장에서 전병욱 사태를 바라보는 토론회가 7월 31일 명동 청어람에서 열렸다. ⓒ뉴스앤조이 정재원
서울여대 새벽이슬, 여성주의 연구 살롱 '나비', 청어람아카데미는 7월 31일 명동 청어람에서 '전병욱 사태를 보는 또 하나의 시선'이라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열었다. 전병욱 한 개인에 대한 문제 제기를 넘어 교회 내 존재하는 '수많은 전병욱'을 직면하고 여성의 관점에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남성 중심적인 문화, 전병욱 사태의 배후

김애희 집행위원(교회개혁실천연대)은 "교회 내 성폭력은 '아버지와 같은' 목회자에 대한 '자식과 같은' 신도의 절대적 신뢰와 친밀성을 기반으로 자행되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삼일교회에서 일어난 전병욱 사건은 특정 교회 혹은 잘못된 목사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교계 전반이 지니고 있는 구조적 문제"라고 말했다.

▲ 김애희 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은 "전병욱 사건은 특정 교회 혹은 잘못된 목사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교계 전반이 지니고 있는 구조적 문제"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정재원
김 집행위원은 "실제로 교단 총회에 참석하더라도 여성 총회원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남성 중심적인 구조의 문제를 지적했다. 게다가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 교단에서는 여성의 참정권 자체가 제한된다고 했다. 김 집행위원은 "여성은 한복을 입고 목회자들을 반기며 꽃다발을 전달하는 식의 봉사하는 주체에 머물고 있다"며 "그런 맥락에 볼 때 전병욱 사태는 한 목사가 성적 유혹에 빠져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식으로만 연결되지 않으며, 한국교회 현실이 전병욱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회 내 성폭력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서도 "남성 목회자들에 의해 특정 직책이나 역할이 과도하게 신격화되고 교역자를 평신도 구성원들로부터 구별하며, 여성으로 대표되는 상대적 약자들을 그 계급 구조에서 제외·배제하는 메커니즘에 기인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홍대 앞 전병욱의 삐뚤어진 단상을 통해 우리 안의 전병욱, 즉 내적 '전병욱스러움'과 부끄럽게 직면하고 뼈아프게 반성하며, 이를 통해 의미 있는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주변의 통념

유리화영 소장(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은 전병욱 사태를 낳은 또 다른 원인인 '통념'의 문제를 지적했다. 유리 소장은 "저항하면 성폭력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성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가까울수록,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신뢰가 강한 관계일수록,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성폭력이 발생할 때 피해자의 적극적인 저항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 유리화영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성폭력 문제를 피해자의 탓으로 돌리는 통념의 문제를 지적했다. ⓒ뉴스앤조이 정재원
특히 목회자가 성폭력 가해자일 때 문제는 더 심각하다. 유리 소장은 "성직자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다면 그 성직자를 신뢰하는 사람은 몇 명이 아니라 교회 전체, 교단 전체가 될 가능성이 있다"며 "그렇다면 피해자는 피해 경험을 쉽게 말하지 못할뿐더러 교회를 떠나는 방식으로 가해자와의 단절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또 "피해자는 문제 해결을 위해 자신의 피해를 알리는 과정이 오히려 교회나 하나님에게 누가 될까 걱정한다"고 말했다.

"전병욱 사태,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김선희 연구원(기독교상담연구소)은 문제 해결을 위해 "피해 여성이 악에 저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악한 자를 악하다"고 규정하는 게 급선무라고 했다. 김 연구원은 "언제까지 가해자를 '목사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피해자가 부르고 싶은 명칭으로 가해자를 새롭게 명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연구원은 또 성폭력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말하기를 통한 '공개하기' △회유에 넘어가지 않고 '버티기' △탈퇴 등에 '거부하기' △기관과 '연대하기' △가해자에 대한 '신화 파괴' 등을 제안했다.

이날 유일한 남성 발제자인 박현철 전도사(예수마을교회 청년부)는 "전병욱 사태를 일부 목회자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고 했다. 박 전도사는 "여성 목사 안수 같은 큰 목표뿐 아니라 당장 교회 내의 예배위원 선정에서부터 성비를 맞추는 등의 사소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토론회에는 60여 명의 청중이 자리를 메웠다. 특히 여성 참가자들이 반 이상을 차지한 점이 눈에 띄었다. ⓒ뉴스앤조이 정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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