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홍재철 대표회장)가 갑작스럽게 '교회 세습'이란 단어를 비판하고 나섰다. (관련 기사 : 한기총, 세습이라 하지 마라) 주장인즉 아버지의 담임목사직을 아들이 물려받는 것을 세습이나 승계 따위로 부르면 안 되고 직계 가족이나 친척이 아닌 사람이 후임 목사로 올 때와 같이 청빙으로 불러야 한다는 것.

교회법을 어기면서까지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었던 원로목사가 회개하는 일이 벌어지고, 교회 세습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때에 한기총의 세습 옹호는 엉뚱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한기총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세습하는 목사들을 변호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금세 알 수 있다.

현재 한기총 대표회장인 홍재철 목사(경서교회)와 직전 대표회장인 길자연 목사(왕성교회)는 '금권 선거 의혹' 외에 '교회 세습'이란 또 다른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홍 목사는 아들 홍성익 목사를 담임목사에 앉혔고, 길 목사는 아들 길요나 목사를 후임으로 세우기 위해 노력 중이다.

홍재철 목사는 세습 마무리만을 남겨 두고 있다. 지난 2010년 공동의회를 열어 아들을 위임목사로 청빙했고, 홍재철 목사는 당회장직을 맡아 동사 목회를 하고 있다. 홍재철 목사가 은퇴하는 2013년을 전후로 위임식을 하고 홍성익 목사가 교회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은퇴하는 길자연 목사도 급히 세습을 준비하고 있다. 길 목사는 지난 3월 25일 공동의회에서 길요나 목사가 시무하는 과천왕성교회와의 합병을 통과했다. 은퇴 전까지 아들과 동사 목회를 하겠다는 안건도 통과됐다. 최근에는 청빙위원회가 길요나 목사를 후임으로 추대하기로 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맥락에서 한기총의 세습 옹호를 전·현직 대표회장의 세습 사전 작업으로 읽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두 목사가 단체의 입을 빌려 "아들이 아버지에 이어 담임목사를 맡는다고 해도 이는 세습이 아닌, 절대적인 하나님의 부르심과 본인의 소명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여 신학적, 사회적 정당성을 얻으려는 포석인 셈.

한기총의 세습 변호와 홍재철·길자연 목사의 교회 물려주기 계획이 어떻게 맞물려 진행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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