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야, 대답 좀 해 봐라. 이 건물에 사람이 다 차서 더는 앉을 자리가 없으면 옆 건물을 하나 더 사면 될까? 그래서 또 그 건물도 꽉 차면 다른 건물을 하나 더 사고? 그렇게 계속 건물을 사서 사람을 꽉꽉 채우기 위해 교회가 존재하는 걸까? 교회가 있는 이유가 그렇게 사람 모으기 위해서일까?"

찬수 형이 내게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아주 오래전 아버지가 고등학생이었던 내게 던졌던 바로 그 말을 기억했다. 어느 주일 오후, 아버지는 사람들이 예배당에 너무 많이 몰려들자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오는지 모르겠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람들을 보내시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며, 말해봤자 도움될만한 답도 없는 고등학생 장남에게 당신의 고민을 토로했다. 그 순간, '아빠는 참 복에 겨워 별걱정을 다 한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나 찬수 형의 고민을 듣는 순간, 형의 고민이 나의 고민으로 다가왔다.

30여 년 전 아버지가 교회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놓고 고민하던 때와 지금은 상황이 너무나 달라졌다. 그때도 세상의 희망이 교회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교회가 세상에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그때도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칭찬을 듣지는 못했지만, 지금처럼 상상도 못할 일들 때문에 욕을 먹지는 않았다. 세상은 너무 많이 바뀌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교회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각이 너무도 많이 바뀌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교회가 자신을 보는 시각이다. 여전히 자신이 특별하고 대단한 줄 아는 그 착각 말이다. 목회자들의 자기 인식도 바뀌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목회자는 교회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차고 넘치면 좋아 죽으려 하고, 교인 숫자 가지고 어깨에 힘이나 주려고 한다. 그 숫자가, 대책 없이 늘어나는 숫자가 가져다 주는 위험을 생각할 그릇이 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니 그런 고민이 머리에 스칠 이유가 없다.

찬수 형이 의식했는지 못했는지 모르지만, 옥한흠 목사의 30여 년 전 고민, 그가 은퇴한 후 가장 많이 아파했던 그 고민을 지금 형이 하고 있음에 감사했다.

"형의 고민은 이해하지만 현실적으로 오는 사람들을 못 오게 할 수 없잖아요. 아버지도 많이 고민했지만 결국은 거기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잖아요? 다른 건 몰라도 일단 아버지도 그렇고 형도 그렇고 사람들이 설교 때문에 교회를 찾는데, 다른 데 가서 다른 설교 들어라 이거 힘든 얘기잖아요."

"그래, 나도 안다. 나도 지금 무슨 답을 가진 건 아니야.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게 하나 있다."

그러면서 형은 언론이 지난 7월 5일 보도한 분당우리교회 10년 계획을 내게 말했다.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니 혼자 알고 기도해 달라는 당부와 함께. 그리고 형이 물었다.

"그런데 성호야. 10년 말이야, 10년. 10년 후에도 과연 교회가 한국에서 버텨낼 수 있을까? 이렇게 문제들이 터지는 교회가 10년을 버틸 수 있을까? 내가 10년 후를 얘기하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글쎄요. 힘들지 않을까요? 이렇게 간다면 결국은 무슨 이상한 사람들이 따로 모인 하나의 사회 속의 동떨어진 섬 같이 되지 않을까요?"

그러나 지금 내 생각은 그때와 다르다.

찬수 형과 대화를 했던 그날만 해도, 나는 한국교회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 이후, 사회에서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교회 내에서는 내내 금기시되던 지극히 '상식적인'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하나씩 일어나고 있다. 은혜라는 이름으로 덮기에 급급하던, 더럽고 부끄러운 진실의 치부를 밝혀내고 밑바닥에서부터라도 다시 시작하겠다는 생각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한 명씩 늘고 있기 때문이다. 거짓과 가식으로 치장된 외형적 성장이 주는 가치보다 상처받지 않는 한 영혼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너무나 당연한 성경의 진리를 깨닫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찬수 형과 같이 결코 쉽지 않은 '자기 부인'의 십자가를 지려는 목사가 생겨나고 있고, 분당우리교회 당회와 교인들 같이 자기를 부인하는 목회자를 믿고 따르는 신실한 교인들이 우리 주변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10년 후 한국교회의 미래에 대한 내 생각은 훨씬 더 희망적이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목회자라면, 지도자라면 아무도 모르는 자신만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자신을 부인하며 하루하루 살아야 하는 것을 숙명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안 되고 싫다면, 그는 자신과 남들을 위해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남들에게 환희와 기쁨을 주는 이유가 자기를 부인하는 목회자에게는 고민과 근심으로 다가온다. 그렇기에 자신을 부인하는 목회자는 결코 다른 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고독과 고통 속에 산다. 나는 그러한 자기 부인의 모습을 그날 찬수 형에게서 보았다.

나는 형과 헤어지면서 형의 손을 잡고 말했다.

"형. 아버지가 형하고 똑같은 고민을 하셨지만 결국 못하신 거 알지요? 은퇴 후에는 뭔가 하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러니 형만은 아버지가 못 하셨던 그 일을 꼭 해 주세요."

나는 찬수 형을 통해 앞으로 우리나라에 '대형 교회'라는 말이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운 이름이 될 희망의 불씨를 보고 있다.

옥성호 / <갑각류 크리스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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