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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끈을 묶고 먼 길을 떠나다
나의 고대 동방 기독교 유적 답사기(1)
  • 성기문 (ksung65@chol.com)
  • 승인 2006.08.09 23:25

 

여기서 '고대 동방 기독교'라는 말은 당나라 때부터 몽골 제국 때까지의 기독교를 의미한다. 이것은 라틴어와 헬라어를 말하는 헬라 문화권에서 발전하였던 서방 기독교와는 달리 안디옥-페르시아 기독교가 실크로드를 따라서 중앙아시아·인도와 동양 철학 사상과 한자 문화권에 속하는 중국-한국-일본에 전래되었다. 여기에서 언급되는 일부 특정한 인물과 상황 설명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 모호하게 재구성되었음을 밝힌다. 중국의 지명이나 인명은 때때로 우리식 한자 독음과 중국식 독음법을 혼용하였다.

 

   
 
  ▲ 난 두발로 먼길을 떠난다. (사진제공 성기문)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행 1:8)

사도 바울이 수차례의 선교 여행을 통해서 꿈꾸었던 일은 세계 복음화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로마 제국의 복음화였을 것이다. 사실 당시의 사도 바울의 그와 같은 '수고스럽고 영광스러운' 노력은 어떤 면에서 보면, 매우 실망스러운 것일 수 있다. 예수님과 사도 바울의 시대에 알려진 (문명화된!) 세상의 절반은 로마 제국의 통치하에 있었다고 한다면, 당시에 나머지 세상의 절반은 한(漢)나라가 통치하고 있었다. 사실 전설에 따르면 도마가 인디아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으며 중국에까지 다녀와서 인디아에서 순교하였다. 이것이 전설인가 진실인가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제 살펴보게 되듯이, 복음이 유럽을 거쳐 미국을 지나 동양으로 왔다는 표현은 잘못된 것 혹은 오해 될 만한 여지가 있는 것이다. '서방 교회적' 전통을 가진 선교사들이 로마 가톨릭의 형태로 이미 몽골제국시대부터(우리나라에는 임진왜란 때) 그리고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팽창과 식민 시대에 개신교의 형태로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전역에 복음을 다시 전하려고 노력하였다고 말해야 정확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하나님이 20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세상의 반이었던 동양을 내버려 두셨겠는가? 그것은 절대로 아니다.

동기와 배경

사실 내가 경교(고대 동방 기독교의 당나라 때의 명칭)에 대해서 흥미를 갖게 된 것은 10여 년 전의 일이다. 정확하게는 1990년대 초 무렵이다. 그때는 한참 젊은 혈기와 선교에 대한 열정에 가득 차 있었던 때였다. 오죽하면 신대원(ACTS)을 졸업할 무렵에 인도네시아에 한 달간 단기 선교를 다녀오고 졸업 후에 아프리카에 3개월 정도 단기 선교 여행을 다녀왔었겠는가!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는 교회사적인 측면에서나 선교학적인 측면에서 서양 중심적 관심에 집중하다보니, 아시아 교회사와 아시아 선교에 대해서 너무 무지하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서방교회적 형태의) 개신교가 아시아에 전래된 것이 비록 10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그 훨씬 이전에 경교(景敎)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이미 극동 3국(즉 중국·한국·일본)에 전래되었다는 사실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 호기심은 그들이 어떻게 극동 3국의 종교와 문화와 접촉하면서 기독교의 복음을 전했는가에 주로 집중되었다. (동방 기독교적 전통 속에 있었던) 경교는 특히 당대(唐代)에 불교와 도교와의 관계성 속에서 전달되었고 몽골 제국 시대에 전해졌던 (서방 기독교적 전통 속에 있었던) 로마 가톨릭 신앙은 예수회 출신의 마테오리치를 통해서 의료·기술·과학 문명과 함께 (원시)유교와의 연관 속에서 전달되었다.

 

   
 
  ▲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 프란시스 쉐퍼 지음. (사진제공 성기문)  
 

또 하나의 자극은 당시에 라브리 설립자로 유명한 프란시스 쉐퍼(Francis August Schaeffer Ⅳ, 1912~1984년)에 매료되었던 터라. 아마 1980-90년대의 기독 청년들에게는 하나의 유행이며 트렌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나는 쉐퍼가 썼던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How Should We Then Live)>의 동양판 혹은 한국판을 만들고 싶었다.

당시에 많은 한국의 기독 청년들이 그러했겠지만, 쉐퍼가 기독교와 헬라 철학이 만나 은총과 자연이 어떻게 기독교와 서양 철학 사상 속에서 분리 되었는가 등의 명쾌한 해설과 분석을 제시할 때 나는 깊게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나중에 연구용 소책자로 그리고 비디오물로도 제작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러한 충격 속에서 나는 동양의 세계관과 사상들의 변천과 기독교의 관계를 중심으로 중국의 유신론적인 하늘(天)사상의 기원으로부터 현대  한국교회의 기복주의와 샤머니즘의 영향까지의 방대한 사상 교류사를 기술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실제로 중국 경교에서 마테오리치 그리고 조선후기의 로마 가톨릭 사상을 흡수한 실학자들의 기독교 이해까지의 사상적 연관성을 대략적으로나마 기술하려는 시도까지 했었다.

그러나 문제는 당시에 출간되었던 몇 권의 책들만을 가지고 방대한 도움이나 지원이 없이 그와 같은 계획을 신대원 졸업생이 나로서 당장 실천에 옮기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게다가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서 구약전공 신학석사과정을 다니면서 영국 유학을 준비하던 나의 입장으로서는 더 더욱 '평생에' 이루어질 수 없는 꿈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국 십여 년의 세월이 다른 관심과 장소에서 보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96년에 떠났던 영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에 그 꿈을 조금이나마 실현해볼 만한 기회가 주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 이 기회를 놓치면 내 인생에 더 이상의 기회는 없을 것이라는 절박함 속에서 중국으로 가는 길을 서두르게 되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여행을 할 것인가

사실, 말이 쉽지 고대 동방 기독교의 유적지를 한번 대략적으로 돌아보는 일만도 재정적인 부담뿐만 아니라, 사전에 많은 연구와 조사가 필요하고 실제로 답사가 시작되었더라도 많은 시간과 수고와 노력이 든다. 이 때문에 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고 낙심하였겠는가!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당시에는 세상의 전부라고 여겨졌던 영역을 차지한다는 점에도 그 방대함을 깨닫는다. 즉 안디옥과 페르시아(지금의 이라크와 이란, 암만) 지역과 실크로드의 중앙아시아 지역을 제외한 실크로드의 동쪽 끝인 중국의 위구르 자치주에서 시작하여 고창고성과 돈황(敦煌)을 거쳐 서안(예전의 장안[長安])과 낙양(洛陽)에 이르고, 다시 내몽골(內蒙古)과 몽골 공화국에서 시작하여 중국의 동쪽국경에까지 이르고, 또 러시아 연해주지역에서 시작하여 두만강, 압록강을 따라 중국의 동해안에 이르러 남하하는 루트로 훈춘->심양->안산->소주->광주에까지 이르는 중국 여정과 마지막으로 아시아의 종착점(한국과 일본)까지를 포함한다. 여기에다가 가능하다면 티베트와 인디아 지역의 고대 기독교 유적지도 포함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언급한 대로 중국 지역만으로 한정한다고 하더라도 쉽게 시작하여 마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이번에 연재되는 <나의 고대 동방 아시아 기독교 유적 답사기>는 당나라 시대의 유적들에 주로 국한하고자 한다.

성기문 / 말씀발전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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