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단군상 철거에서 구속까지
영주시기독교연합회는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 단군상이 세워지자 이것을 철거하기 위해 학교측과 여러 차례 접촉을 가졌다. 하지만 학교측의 입장은 단호했다. 철거를 못한다는 것이었다. "철거하라" "못한다"는 실랑이가 계속된 끝에 연합회측은 결국 임원들을 중심으로 실력으로 철거하자는 뜻을 모으고 99년 12월 23일 드디어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당초 12명이 거사를 결행하기로 했으나 당일에 시간을 맞춰 나온 사람들은 7명이었다.

사건이 터지고 난 후 학교측의 신고로 현장에서 검거되었으나 검찰측의 수사지휘로 폭력과 재물손괴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이후 재판은 10여 차례 진행되었으나 재판부는 학교측과 원만한 합의를 종용하며 재판을 끌어오다가 판사 정기 인사 이동에 따른 새로운 재판부가 들어선 지 불과 2개월이 채 못되어 피고인들을 전격 구속하게 된 것이다.

2.구속의 배경
구속의 원인은 이례적으로 1심 선고공판이 미뤄지면서 일어났다. 공판 당일 피고인들은 전원 법정에 출석하였다. 재판을 20여분 앞두고 피고인들 사이에 공탁서를 둘러싼 찜찜한 마음에 공탁서를 열람하자는 얘기가 오갔다. 그동안 전적으로 변호사에게 맡겨둔 공탁서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3명이 법정을 나와 법원 앞 변호사 사무실로 향했다. 변호사에게서 내용을 확인한 결과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교육기관에 깊이 사죄하고 반성한다"의 문구를 보고서는 변호사에게 항의하자 변호사는 "그러면 다시 작성하겠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면 판사와 협의해서 다음 재판 기일을 잡겠다"고 말했다. 이 말은 들은 피고인들은 법정에 돌아와 나머지 4명을 손짓으로 불러내었다.

한편 변호사는 전화로 판사실과 접촉했으나 이날 따라 판사는 일찍 법정에 나간 상태였다. 피고인들이 퇴장할 때 이미 판사는 법정에 와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법정 도주로 간주한 판사는 다음날(4월 27일)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경찰은 오후 5시경부터 2시간에 걸쳐 7명에 대하여 구속영장을 집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석연찮은 것은 변호사의 태도이다. 당일 전화 통화를 할 수 없었다면 직접 만나거나 적어도 하루 정도 협의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호사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판사는 이런 정황을 알지 못한 채 바로 영장을 발부한 것이었다. 변호사는 과연 이러한 사태를 전혀 예감하지 못했을까? 1년 4개월에 걸친 재판을 정리하는 1심 선고일을 일방적으로 거부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3.단군상 무엇이 문제인가?
이제 사건의 본질을 살펴야 할 것 같다. 단군상은 기독교에게 어떤 존재이기에 실력으로라도 철거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이것을 실행에 옮긴 이들은 단군상이 우상이라는 규정을 내리는 데에서 출발한다. 성경 곳곳에서 말하고 있는 우상의 전형적인 모습이 단군상이라는 것이다. 단군상이 우상이라는 규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우선 단군이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인가가 먼저 밝혀져야 한다. 하지만 역사학계에서는 여전히 단군은 신화 속의 인물로서만 존재하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단군 연구의 권위자로 자타가 인정하는 윤내현(단국대) 교수는 "우리는 단군의 후손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단군을 교주로 한 종교단체가 20여개에 이르고 단군숭배 관련단체가 130여개에 이르고 있으며 추종신도도 100만명에 이르는 현실은 단군상 설치가 종교성이 있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단군상이 설치된 좌대에 기록되어 있는 문구는 더욱 그것을 우상으로 볼 수 밖에 없는 강한 확신을 심어 주기에 충분하다. "... 이곳에 참배하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뿌리를 기억하며 홍익인간 제세이화의 큰 경건을 간직하고, 겨레의 얼을 되새겨 밝고 강한 민족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자..." 특히 이러한 설립취지문이 대종교의 경전인 천부경을 인용하고 있는데에서 더욱 종교적인 의도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남북화해와 교류의 물결 속에 단군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의도를 경계할 필요도 있다. 정부가 단군을 은근히 이용하여 남북한의 정치적인 거래를 심화시키려고 하는 것은 결국 자가당착에 빠질 뿐이다.

또한 이러한 단군상이 왜 공공장소, 특히 교육기관에 설치되어야 하며 이것이 특정한 사설단체이며 종교적인 단체에 의해 주도되어야 하는가도 여전히 명분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이 단체에 눈치를 보고 있으며 책임있는 정부로서의 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않고 있다는데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영주의 한 초등학교에 설치된 단군상도 처음 설치되는 과정에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발견된다. 이 학교의 교장은 교무회의에서 "학부모가 자기의 작품을 기증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은가"라고 교사들에게 묻었다는데 굳이 교사들이 반대할 명분이 있었을까? 나중에 알고보니 단군상이 설치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건이 벌어지고 난 후 이 교장은 정년퇴임하고 말았다. 그렇게 떳떳한 일이라면 교사들에게 왜 분명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또 이런 일들이 전국적인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설치되고 있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4.강제 철거밖에 없는가?
구속된 후 영주지역의 교회는 매일 저녁마다 돌아가면서 특별기도회를 가졌다. 이 기도회에서 한 설교자는 기독교 내부에서도 강제철거라는 방식에 교인들이 많이 동조하지 않는다고 아쉬워해 했다. 이처럼 현실적으로 교인들 사이에서도 강제철거 방식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이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이런 강제철거 방식이 전국적으로 일어나면서부터 새로운 단군상 설치가 주춤해진 것도 또한 사실이다. 한 독자가 말했던 것처럼 강제철거를 단순히 실정법 위반의 차원에서 볼 문제가 아니라 이것을 하나의 '퍼포먼스'로 이해하고 사회적 반향을 기대하는 행위라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방식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기독교는 타종교에 대해 배타적이라는 비판은 감수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 실정법 위반의 처벌도 감수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것에 대항하기 위한 보편성 있고 객관적인 논리의 개발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이를테면 "무조건 믿습니다" 하는 식의 신앙은 한 개인으로서의 신앙고백은 될지 몰라도 복잡한 현대사회에서의 설득력으로서는 웬지 궁색(?)하게 보인다.

기독교가 그렇게 광신적이고 무식한 종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이런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단군상은 애초에 통일되고 설득력 있는 논리로 저지했어야 옳았다. 이제라도 교계의 통일된 목소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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