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가 처음 미국에 발병한지 올해로 25주년을 맞았다.

종교적, 도덕적 이유로 에이즈에 대한 두려움이 지배했던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무려 1만2천명이 사망할 때까지 이 병에 대해 공식 언급을 하지 않았을 정도였으나, 그 뒤로 유명 무명의 인사들이 에이즈를 용감하게 공개하고 사회적 편견에 도전함으로써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놓고 사회 '통합자' 역할을 했다고 15일자 뉴스위크는 전하고 있다.

유엔은 전세계적으로 에이즈에 감염된 환자 수가 무려 4천3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이미 2천500만명 이상이 숨졌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지난 2003년 전세계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150억 달러 기금 조성 계획을 제창한 바 있다.

◇레이건, 에이즈에 '쉬쉬'= 레이건 대통령은 1981년 남성 동성애자(게이) 사이에서 처음 에이즈 감염 사례가 나타난 이후 4년여간 1만2천 명 이상이 사망할 동안 이 전염병에 대해 공개석상에서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1987년까지도 '에이즈'라는 용어조차 쓰지 않았다.

게이들은 특히 극우파들로부터 악마 취급을 받았으며, 레이건 대통령의 보좌관이던 팻 부캐넌은 1983년 "가난한 동성애자들이 자연과의 전쟁을 선포했으며, 이제 자연은 가공할 보복을 하고 있다"고 기고하기도 했다.

에이즈 감염자들은 가정, 직장, 학교에서 기피대상이었으며 의료 보험 혜택도 받지 못했다. 동성애자 권리 옹호자이자 작가인 래리 크레이머가 에이즈 감염자들을 위한 모금 운동을 벌였으나 불과 769 달러가 모였다.

◇ 언론도 몸사리기= 보수적이던 1980년대 미국 언론들도 에이즈 보도에 인색했다. 뉴욕 타임스는 1981~1982년 사이 새로운 치명적인 전염병에 대해 10건 미만의 기사만 실었으며, 그나마도 가독성이 떨어지는 간지에 넣었다. 뉴스위크도 1983년4월 까지 커버 스토리로 다루지 않았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성애자도 감염된 1982년 2월 '동성애자에게 종종 치명적인 질병이 여성과 이성애자에게도 발병하다'라는 제목으로 처음 보도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이 처음부터 에이즈를 본격적으로 다뤘으며, 그 결과 1987년 미국의 에이즈 대처 실패 사례를 다룬 유명한 책 '밴드가 계속될 때'가 발간됐다.

◇ 록 허드슨의 죽음= 미남 명배우 록 허드슨이 1985년 게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에이즈로 끝내 사망하면서 그때서야 미국민들은 에이즈를 처음으로 인식했다. 6년 뒤 농구 스타 매직 존슨의 감염은 '버젓하고 건강해 보이는 스포츠 스타'도 에이즈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후원=유명 여배우 테일러는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바로 잡기위해 공개석상에서 친구인 허드슨의 손을 잡아 주었다. 당시 타블로이드판 신문들은 허드슨이 '다이너스티'에서 린다 에번스와 키스한 것을 놓고 에번스의 감염 가능성을 추측할 정도였기 때문에 테일러의 이같은 제스처는 혁명적인 것이었다. 테일러는 에이즈 미국 재단의 대표 얼굴이 되었다.

◇ 발 늦은 할리우드= 에이즈가 TV 드라마로 처음 등장한 것은 1985년 '이른 서리'를 통해서였으며, 이마저도 검열관들은 주인공을 감염시킨 문제의 친구를 '악한'으로 묘사하도록 요구했다. 그 뒤 1991년 ABC 대표 드라마인 '서티섬씽'에 에이즈 감염자가 극중 인물로 등장했으며, 1993년 MTV '리얼 월드'에 23세의 감염자인 페드로 자모라가 출연, 청소년들에게 HIV를 소개했다.

영화는 TV 보다 늦어 1990년때 까지 에이즈 소재 영화가 없었다. 1993년 에이즈 감염자를 그린 영화 '필라델피아'로 남우 주연상을 수상한 톰 행크스는 "시기적으로 늦었다"고 고백했다.

◇ 빨간 리본 캠페인= 많은 게이들이 에이즈로 생명을 잃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본 일부 미국민들이 발병 10년만인 1991년 비로소 '빨간 리본' 캠페인을 통해 에이즈에 대한 사회의 각성을 촉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선각자 크레이머는 1만 명의 실의에 빠진 에이즈 환자들을 조직화해서 백악관, 월 스트리트를 상대로 시위를 벌이고 항의했다.

[워싱턴=연합뉴스 박노황 특파원, nh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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