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의 실패한 사례가 단군상 설치였다. 길건너 교회, 죄우로 교회, 상하로 교회. 그렇게 많은 교회가 있었지만 공공교육기관에서 단군상이 설치되는 것도 모르고 있다가 설치되고 나니 철거로 맞선 현실이다. 물론 그 학교에도 교인은 있었을 게다.
  
우리 기독교계가 개교회주의 물양주의 성장 위주로 가는 과정에서 같은 교인끼리의 유대감은 강해졌을런지 모르지만 지역사회 연대감에서 틈이 생긴 게 분명한 현실이다. 물론 기독교계가 타종교 단체보다 사회활동을 많이 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기독교계의 세력이 거대해졌기 때문이고 사회적 책임의 요구가 증대해졌기 때문이다.

사후 약방문의 뒷통수를 치는 것보다 사전 예방 활동을 진력해야 할 것이다. 1교회 1학교 자매결연으로 학원복음화에 기여하면서 불우학생을 도우는 등 꾸준한 사회적 책임은 사소한 문제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을게다.
  
왜 단군상을 설치하는 사람들이 생기는가? 그들은 서양종교에 실망에서 우리 것을 찾고저 하는 대안으로 선택한 사람들이다. 단군상을 세우는 사람들의 종교의 자유는 실정법상 하자가 없다. 문제는 공공교육기관이라는 점이다. 이는 법치국가에서 범 교단차원에서 해당 교육기관을 상대로 합법적으로 해결해야지 파괴적으로 간다는 것은 오히려 우리 기독교 전도에 지장이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무조건적으로 당신 종교는 구원이 없고 미신 우상숭배라고 하면서 기독교만이 구원이 있다고 몰아친다면 부작용이 더 크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이 땅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면서 이웃과의 유대관계를 잘 맺으면서 우리의 언행을 통해서 과연 기독교가 타 종교보다 더 좋은 종교이다, 라는 점을 심어 주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비교우위가 되도록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파괴적 대안보다 차원 높은 창조적 대안을 우리 모두 모색해야 할 것이다.
  
순수한 종교적 신념으로 우상을 파괴해야 하는 충정으로 행동으로 옮겨 구소기소된 목사님들과 장로님의 충정은 충분히 이해를 하면서, 한편 그분들의 가정과 교회에 하나님의 가호가 있기를 바라고 조속히 해결되어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서 하나님 사업에 진력하시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간절하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