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양농아인교회는 재개발로 인해 철거된 후 지금의 모습으로 새롭게 지어졌지만 건축에 들어간 대부분의 돈은 빚으로 남아 있는 상태였다. ⓒ뉴스앤조이 유헌

이번 주는 온양농아인교회의 심방기간이다.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한상희 목사는 오늘 심방 할 교인이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며 한 가정만 방문한다고 했다. 온양 근처에는 농아인을 받아줄 만한 교회가 없어서 농아인들이 먼 곳에서부터 이 교회를 찾는다. 한 목사는 "외국으로 이민 간 사람들은 몇 시간씩 걸려서라도 한인 교회를 간다고 하더라. 장애인들도 똑같다. 한 시간씩 걸리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 통하는 교회로 모인다"고 했다.

▲ 한상희 목사가 화상채팅 기능을 이용해서 장애인과 수화로 대화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유헌

심방을 가기 전에 한 목사님은 컴퓨터부터 켠다. 오늘 만날 부부가 집에 있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며 메신저를 가동시키고 화상채팅 기능을 실행시킨다. 잠깐 의아했지만, 전화 벨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람들임이 곧 생각났다. 다행히 부부는 집에 있었다. 목사님은 컴퓨터에 달린 작은 카메라를 보고 수화로 인사를 건넨다. 이 사람들과는 화면을 통해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했다.

하지만 컴퓨터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다른 가정은 어떻게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성경책을 들고 농아인 집사님 한 분과 길을 나선다. 교회를 나와 차를 타고 한참을 시골길로 달렸다. 포장이 덜 되어 있는 길을 30분쯤 갔을까? 도착한 곳은 어느 한적한 시골 농가였다. 조금 다른 점을 굳이 찾는다면 오는 길에 차에서 봤던 다른 농가와 달리 논이 갈아엎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농아인들이 교회에 모여서 부업을 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유헌

반갑게 맞아주는 부부는 둘 다 손으로 말을 했다. 외양간에서 소가 싸우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지만, 그 소음에 반응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 부부는 청각장애도 가지고 있었다. 다섯 명이 앉자 꽉 차는 방에서 기도로 예배를 시작한다. 눈을 감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다들 눈을 뜨고 수화로 기도하는 목사님을 보고 있었다. 찬송가도 함께 부른다. 반주도 없이 고요한 중에 울려 퍼지는 몸짓이 이들의 찬양이다. 수화로 보는 설교를 듣는다. 이따금씩 전화벨이 울렸지만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설교를 마친 뒤에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는 목사님의 눈시울은 젖어 있었고 찬송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찬송하는 목사님의 흐느끼는 소리를 이 부부가 듣지는 못했겠지만,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예배가 끝난 뒤 평소 교회에서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가 오간다. 당뇨가 심해져서 다리 아래쪽이 추워졌다는 남편은 간단한 농기구를 직접 제작해봤는데 주위에서 서로 만들어달라고 한다며 웃음으로 말을 이어가려 했지만, 작년에 농아인 사기단에게 1000만 원을 사기당한 이야기가 나오자 분위기는 금세 어두워졌다.

작년에 품삯으로 받았어야 할 300만 원을 아직까지 받지 못했다며 한탄은 이어졌다. 트랙터 부품이 안 와서 농사 준비가 더디다는 이야기를 하자 목사님이 나선다. 목사님이 수리점에 전화를 해서 요구사항을 대신 이야기했다. 목사님이 오셔서 다행이라는 분위기다. 심방을 마무리하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중학생 딸 둘이 학교에서 돌아왔다. 다행히 딸들은 장애가 없다. 목사님은 이 아이들도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연결되어 듣고 말하는 훈련을 받지 않았다면 장애를 이어 받았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 한 목사는 장애인을 만나면서 자신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유헌

교회로 돌아오는 길에 "장애인 인구가 200만이 넘는다고 들었는데, 실제로는 장애인들이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다. 20~30명 중에 한 명이 장애인이면 학교에서 한 반에 한 명 이상은 되었을 것 같은데, 왜 없었을까"라는 질문에 목사님은 장애인들이 밖으로 잘 다니지 않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장애인을 집 안에만 두고 밖으로 못나가게 해서 수화조차 배울 수 없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그나마 형편이나 의식이 좋아진 편이라고. "일반 사회에서 적응하기 힘들기 때문에 잘 나오지 않고 또 장애인들만의 집단이 형성되면 그곳에만 나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사회에는 영영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 같아서 몇몇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일반 학교로 보냈다. 물론 많이 힘들어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고 또 비장애인 아이들도 장애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한 목사는 덧붙였다.

목사님이 심방 간 사이에도 교회는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다. 한편에서는 아이들 공부방이, 또 다른 곳은 부업을 하는 어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물론 장애가 있는 부모의 자녀들도 어려서부터 이곳에서 언어훈련을 하고 수화를 배운다. 언어·청각 치료의 경우 사설치료기관은 비용이 많이 들어 저소득층 장애인들은 갈 수가 없다고 한다. 부업은 돈이 잘 안 되고 해서 한동안 하지 않았지만, 장애인들의 수입이 워낙 적어서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농어촌 지역에서 장애인이 일을 구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오늘 저녁은 삼겹살로 저녁만찬을 하는 날이란다. 식사시간이 가까워지면서 교회 안이 더욱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물었더니 목사님 말씀이 가관이다. "고기를 오랜만에 봐서 저러는 겁니다. 작년 11월쯤에 먹어보고 처음입니다."  만찬에는 시각장애인 사역과 지체장애인 사역을 하는 사역자들이 함께 했다. 그분들의 사정도 심각하긴 마찬가지였다. 재정적인 어려움은 물론이거니와 사역자 두 분은 각각 시각장애와 지체장애를 지닌 장애인이기도 했다. 농아인 교회의 한 목사 역시 건강이 좋지 않아 몇 달씩 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 장애인복지선교회의 시각장애자와 지체장애자 사역을 하는 목사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다. 이들은 주로 교단 차원의 지원을 받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뉴스앤조이 유헌
저녁 식사를 함께 했던 목사들은 장애인복지선교회라는 모임의 회의를 위해 왔다. 한 목사는 회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한 목사는 장애인 사역자들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교단에 여러 가지 지원 요청을 할 계획이지만, 회의 중에 오가는 말을 들어보면 낙관적이지는 않다. 장애인 체육대회를 열 계획인데 일정을 잡고 예산 세우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한다. 대회에 참가하려는 장애인은 많지만 재정, 숙소, 자원봉사자 문제 등 감당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어쩔 수 없이 지방에서 올라오는 인원을 줄여야겠다는 한탄이 나온다. 회의는 늦은 밤까지 계속되었다.

회의 중 쉬는 시간이 생겨 장애인에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물었다. 한 목사는 "장애인이라고 하면 뭔가 주고 도와줘야 하는 부담스런 존재로 생각했었다. 물론 그렇게 해주지도 못했다. 그렇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장애인을 만나면서 신앙적으로 내 인격체가 온전해지고 통합되고 있는 것을 느낀다. 인생에 있어서 만나야 하고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어떻게 지금의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묻는 질문에는 "대학시절 빈활(빈민현장활동)을 많이 다녔다. 가서 부업도 같이 하면서 교육하는 일을 했다. 전에 사역하던 교회도 산동네에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 간 것이었다. 빈활을 하면서 느끼게 된 것은 지방의 농촌사람들이 서울로 올라와서 이곳에 오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이 사람들을 돕는 일도 필요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은 농촌으로 가야 해결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 농아인 부부는 심방 온 목사님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들은 착하고 공부 잘하는 딸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시골의 순수한 가정이었다. ⓒ뉴스앤조이 유헌
온양농아인교회는 2003년 재개발에 의해 교회가 철거되어서, 지금의 장소에 교회가 새로 세워졌다. 교회는 농아인의 영혼 구원과 교육을 넘어서 지역사회를 섬기는 공간이 되고 있지만, 교회 건축 때문에 얻은 빚은 아직도 거의 갚지 못한 상태다. 게다가 목회자 생활비 평준화 정책이라는 교단 정책이 시행되면서 교회 살림이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한 목사는 "요즘 들어서는 가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젊었을 때는 가난한 상태 그 자체를 동경했었는데, 농아인들과 함께 살게 되고 나이가 들면서, 부를 얼마나 축적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자신이 얼마나 부유한 마음으로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한 뒤 '초대장'이라고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초대하는 글
삶을 신나게 만드는 일,
고단한 일상일지라도 미소 머금게 하는 일,
힘과 용기가 솟는 그런 일에 소중한 당신을 초대합니다.
채워질 줄 모르는 밑 빠진 항아리에 물을 붓는 것이 아니라,
단단한 시멘트 바닥을 뚫고 올라오는 민들레, 풀 한포기가 될 수 있도록
한 줌 흙을 보태는 일입니다.
아주 거대한 일은 아니나 지금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지요.
삶의 한자리를 밝고 따뜻하게 만드는 그 정도의 빛이 되는 일입니다.
꼭 하고 싶다고 마음먹었던 그 가슴속의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당신을 초대합니다.

문의: 010-3116-4819(한상희)
후원계좌: 농협 483012-51-048491(온양농아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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