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자와 억눌린 자의 외침을 대변했던 주민교회 33주년 기념예배 전경 ⓒ뉴스앤조이 이승균
예배당 안에 난데없는 징소리가 울린다. 징소리와 더불어 예배당 안에는 가수 안치환이 부른 ‘광야에서’ ‘솔아 솔아 푸른 솔아’ 등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선율이 은은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평범한 교회에서 접할 수 없는 예배 분위기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2시간 동안 이어졌다. 이 낯선 풍경은 약자와 억눌린 자의 외침을 대변했던 성남 주민교회(이해학 목사) 설립 33주년 기념예배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다.

▲ 주민교회 촛불예식. ⓒ뉴스앤조이 이승균
1973년 3월 1일 한국 특수지역 선교위원회(위원장 박형규 목사)가 빈민선교를 위해 설립한 주민교회가 걸어온 33년은 여느 교회의 흔적과는 사뭇 다르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 하나님나라 성취를 추구해온 그들이기에 이날의 기념예배는 고통의 십자가를 어깨에 지고 골고다를 오르듯 비장함과 숙연함으로 채워졌다.

전도사 시절부터 주민교회와 운명을 함께하고 있는 이해학 목사(61)는 기념예배 석상에서 오늘의 주민교회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질서도 없고 예배 시간에 일찍 오지도 않고 출석을 잘하지도 않는 믿음 없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불의에 저항하고 민중과 아픔을 함께 하면서 선한 일을 실천했다.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가시면류관을 쓰신 예수님을 닮아가려는 사람들이다.”

▲ 주민교회 이해학 목사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명과 세상을 섬기겠다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승균
이해학 목사가 주민교회를 이끌며 1974년과 1976년 두 차례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된 것처럼, 주민교회는 당시 권력으로부터 집중적인 감시와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역경 속에 새로운 민주화의 시대를 맞이한 주민교회는 이제 지역 주민을 섬기는 생명공동체로 거듭나고 있다.

이날 교인들은 주민교회의 과거 행적을 돌아보며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회개, 그리고 다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명과 세상을 섬기겠다는 뜨거운 기도를 올렸다. 33년 동안 은총을 내리신 하나님께 33번 무릎을 꿇고 감사와 회개의 기도를 드렸으며, 앞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각오로 33송이의 꽃을 교회 상징물에 달았다.

▲ 33번 무릎을 꿇으며 드리는 회개의 기도 시간. ⓒ뉴스앤조이 이승균
33번 무릎을 꿇으며 드리는 회개 시간에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많은 교인의 감은 눈에는 물기가 어렸다. 이 목사도 과거 숨 가쁘게 뛰어다니면서 ‘나’ 만이 가장 일을 잘한다고 생각했던 교만과 깊은 묵상을 통한 ‘비움의 영성’을 놓친 것에 대해 뜨겁게 통회했다.

▲ 주민교회 이해학 목사. ⓒ뉴스앤조이 이승균
주민교회가 가난한 성남 사람들의 자립을 위해 설립한 신용협동조합과 생활협동조합이 이룩한 커다란 성과에 대한 소개, 어린이와 학생 청장년 여신도 남신도 대표들의 다짐도 이어졌다.

주민교회 33주년 기념예배는 이처럼 70년대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격동과 변화의 흐름을 하나하나 되새기며 2시간 만에 마무리됐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솟은 십자가를 자랑하는 거대한 교회도 이루지 못한 지나온 행적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 생명공동체로서의 더 큰 하나님의 역사를 일구어나가겠다는 신앙고백과 함께….

그리고 예배 끝 무렵 헌금시간, 이해학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33년 동안 한 번도 안 해본 얘기 오늘 한 번만 하겠습니다. 헌금들 많이 하세요. 주머니 탈탈 털어서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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