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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 새 편집장으로서 인사드립니다
한국교회의 자정 노력을 선도하겠습니다
  • 김용민 (ad74@newsnjoy.or.kr)
  • 승인 2005.12.25 17:59
   
▲ 뉴스앤조이 김용민 편집장. ⓒ뉴스앤조이 신철민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새 편집장으로서 <뉴스앤조이>에 합류하게 된 김용민입니다.

세모가 되면 한 해 동안 여론을 휘감았던 뉴스를 차분하게 정리하고, 다가올 새해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하지만 올해는 황우석 교수 논란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결국 서울대 조사위원회는 황 교수가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에 낸 2005년 논문이 조작됐다고 결론내림으로써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이 사안은 어디로 어떻게 불똥이 튈지 가늠키 어려운 것으로서, 연초까지 그 파장을 이어갈 것 같고, 결말의 파급력 역시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간 황 교수는 난치병 환자들로부터 일반 국민에 이르기까지 '영웅 기대 심리'의 충족한 대안으로 부각됐던 터였습니다. 그러나 너무 지나쳤죠. 이런 기대가 일거에 무너지는 상황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명예와 권위의 바벨탑이 얼마나 무상한지를 새삼 느끼게 만듭니다.

<뉴스앤조이>가 그동안 '생각하며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각광을 받았던 이유도, 가공된 영성과 작위적 권위로 치장된 한국교회의 주류 지도자들의 허상을 벗겨낸 데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더 주목할 만한 것은 <뉴스앤조이>의 이런 저널리즘이 철학적 기반 아래 있었다는 점입니다. 저급한 선정주의가 아닌 치열한 시대정신과 건강한 영성에 기초해 있었기에 <뉴스앤조이>가 소위 돈 좀 있고 힘 좀 있다는 일부 세력으로부터 지독한 증오를 받으면서도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하며 6년의 세월을 만들어왔다고 판단합니다. 이는 이 신문의 영광이기 이전에, 한국교회의 앞날에 펼쳐진 희망의 징조라 판단하기에 더욱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고 모르시는 분은 통 모르시겠지만, 제가 <뉴스앤조이>의 새 편집장 직을 맡게 된 것은 대체로 이 신문에 대해 탐탁치 않아 한 분들에게는 더욱 반갑지 않게 다가갈 소식일 것 같습니다. 미국과 하나님을 동격으로 생각하는, 하나님의 전 앞에서 장사하는, 또 교회를 정치판으로 인식하고 있는 교회 지도자들과 분명히 선을 그어온 나름의 노선을 강조하다가 몇 차례 한국교회 주류 지도자들과 피차 불편한 기억을 남겨온 선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에게도 남겨진 그 상처난 추억을 상기하면서 펜대를 개인 감정에 의해 전용하는 유치한 행태는 삼가겠습니다. 그렇다고 기계적 중립 노선에 함몰돼 외부의 압력 또는 자기 검열로 언론인으로서의 핵심적 가치인 '관점'을 포기하는 일은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편집장으로서 독자 여러분께 약속을 드리고자 합니다. <뉴스앤조이>의 대중성을 보다 강화하겠습니다.

비판 언론의 정체성과 대중 언론의 속성, 어찌 보면 지향점이 상반되는 것이 아니냐고 보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언론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기독교 언론이 추구하는 대중성은 말 그대로 비목회자 집단들의 호응을 매개로 합니다. 결국 전략은 생활 현장에서 활동하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콘텐츠를 개발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 신문은 관점의 차별화로써 각광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내용상의 차별화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비목회자(소위 평신도) 층이라는 독자군 천착에는 미진했습니다. 앞으로 <뉴스앤조이>는 경쟁력 있는 콘텐츠 개발을 통해 크리스천 대표 사이트로 도약할 것입니다.

이를 위한 세부적인 '공약'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정보량을 대폭 확충하겠습니다.
돋보이는 뉴스를 선보이겠습니다. 이를 위해 편집국을 효율적인 취재 시스템으로 재편하겠습니다. 기획, 탐사보도를 확충하고 단신으로 처리해도 무방한 연합기관, 교단, 교회 관련 기사는 특별한 함의를 담지 않는 한 가급적 크게 다루지는 않겠습니다(배제하지는 않겠습니다). 또 이슈의 중심에 선 인물과의 인터뷰 뉴스량도 크게 늘리겠습니다. 뉴스의 현장에서는 속보 시스템을 가동하겠습니다. 기독교인들의 건강한 사회 의식을 함양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반 뉴스를 테마별로 가공해 매일 진상하겠습니다. 크리스천 대중 문화 관련 소식을 크게 늘리고, '참살이'를 위한 실용성 있는 정보 콘텐츠도 확대하겠습니다. 판갈이 횟수도 주말을 제외한 일일 3회를 원칙으로 하겠습니다.

둘째, 질 높은 뉴스를 공급하겠습니다.
'비판뿐만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는 뉴스'는 모든 언론이 지향하는 가치입니다. 그동안 <뉴스앤조이>가 설정한 의제는 한국교회의 건강성 회복이라는 진정성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판에만 그치는 의제라면 환부만 들춰내는 것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는 지적도 받아왔습니다. 대안까지 염두한 기사를 만들어내겠습니다. 교열, 편집 과정을 보다 엄격하게 하고, 편집자문단 체제를 실용적으로 정비해 운용하며, 명예훼손 및 저작권 침해의 우려가 없도록 법률적 침해 요소를 사전에 제어할 수 있는 자문 시스템의 구축도 선도할 방침입니다. 이로써 게이트 키핑 시스템의 획기적인 수준 제고를 기하겠습니다. 옴부즈맨 코너도 마련해 자기반성의 토대도 마련하겠습니다.

셋째,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겠습니다.
고품격 컬럼을 생산할 필진을 확보하겠습니다. 기독인, 비기독인을 가리지 않고 현재 한국교회에 대한 심도 깊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컬럼니스트들을 전진 배치해 건강한 의제 설정에 한 몫을 하겠습니다. 토론 문화도 바꿔가겠습니다. 지금 <뉴스앤조이> 토론 게시판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이고 생동감 넘치고 관심을 끌 수 있을지 연구하겠습니다. 독자들이 함께 영적인 공유와 상호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공간의 구성도 모색하겠습니다. 아울러 신학생들을 위한 별도의 섹션과 커뮤니티를 만들어 한국교회의 내일을 책임질 역군들을 위한 배려의 장도 마련하겠습니다.

넷째, 뉴미디어 진출을 준비하겠습니다.
<뉴스앤조이>는 '뉴스의 외연'을 확장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포털사이트 뉴스 공급을 서두르겠습니다. 아울러 방송 서비스도 확충할 것입니다. 특별히 제가 그동안 몸담아왔던 분야가 이 쪽이라 구상하는 바가 많습니다. 방송 서비스는 크게 영상과 음성 두 가지 분야로 나뉘는데, 먼저 영상 분야에 있어서는 품격 높은 기독교 교양 다큐멘터리, 세미 드라마 제작 등 부가가치 높은 콘텐츠를 제작하는데 역점을 두겠습니다. 또 음성 방송의 경우 CCM 등 기독교 대중성가 등으로 구성된 커뮤니티 라이브 음악 방송을 준비할 예정입니다. 그러면서 주요 이슈 현장의 속보를 전달하는 생방송 중계도 여러분들께 선사하겠습니다.

물론 나열된 여러 약속, 당장 어느 시점에 풀어내기보다는 순차적으로 역량이 닿는껏 호흡에 맞춰 나갈 것들이 다수입니다. 또한 독자 여러분의 호응과 성원이 뒷받침돼야 할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때론 발전을 위한 필요성이 큰 것들이 있을 경우 독자 여러분에게 당당하게 물질적 도움도 구하겠습니다.

황우석 교수의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 낸 MBC <PD수첩> 팀은 인격적 매도에 버금가는 비방에 직면했습니다. 그들의 취재 윤리상 문제점은 분명히 비판적으로 짚어야 할 대목이지만, 실체적 진실을 얻기 위해 경주한 그들의 원칙은 결코 훼손될 수 없는 가치라고 봅니다. '교회의 아픈 구석 드러내서 뭐가 좋냐?', '은혜가 안 된다'라는 실로 몰가치적인 오해와 편견 속에서도 <뉴스앤조이>가 잘 견뎌왔습니다. <PD수첩>과 많이 닮았습니다. <PD수첩>이 한국 과학계의 자정 노력을 선도해왔다면, <뉴스앤조이>는 한국교회의 자정 노력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겠습니다.

이제 한국교회의 현실을 놓고 '이대로 좋다'라고 이야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뉴스앤조이>의 끊임없는 문제 제기는 일단 한국교회 개혁의 당위를 공론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합니다. 이제 그 방안에 대한 심도 있는 해법 역시 <뉴스앤조이>가 제시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뉴스 생산 과정에 있어 전문성, 차별성 그리고 영성을 담는데 노력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지속적인 성원과 격려를 다시 한 번 당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뉴스앤조이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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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7
  • 줄과 추 2006-01-03 10:55:42

    극동방송의 pd님이랑 이름이 똑같네요!
    물질적인 후원은 부족하지만 이 땅에 주의 자녀들의 발걸음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나라 영역이 확장되길 기도하겠습니다.
    앞서 보이지 않는 헌신의 열매가 더욱 왕성하게 맺기를....   삭제

    • 사랑받는자 2006-01-02 00:22:09

      전화 거신거예요?

      받으신거예요?

      무지하게 진지 하게 생기셨네..

      웃긴 웃으세요?

      영향력을 발휘 하시는 분이 웃으셔야

      공동체의 분위기는 밝아 집니다.

      아침 조금 드셨다고 혹 뉴조 가라 앉히시건 아니시죠 아침부터..

      뉴조 헌금 합시다.

      새 편집장님을 위하여

      ㅎㅎㅎ   삭제

      • 머슴1 2005-12-31 19:13:23

        라디오21의 게시판에서 소식을 접하고 축하드립니다.   삭제

        • 허미연 2005-12-31 16:30:35

          이제 나열식의 선정적인 뉴스가 아닌 뉴스다운 뉴스를 접할 수 있게 되겠군요.
          아픔과 고통을 전하지만 그 안에 대안이 살아있어 희망이 되는 뉴스, 기대하겠습니다, 편집장님.
          아무쪼록 건강한 대한민국, 건강한 한국교회를 세우는데 크게 쓰임 받으시길 바랍니다.   삭제

          • 노틸러스 2005-12-30 07:47:12

            인사가 아니라 교회와 목회자들을 향한 선전포고 같군요!!
            "내가 칼을 휘두를테니 각오해라"라고 들리네요..
            어떻게 하면 기성교회를 깰까 고민하는 모습이
            꼭 이단이 하는 짓하고 똑 같아 보입니다...   삭제

            • 김정수 2005-12-29 19:54:25

              잘 참고 견뎌오셧습니다
              자리만 잘 펴시면 다가갈 사람이 저말고도 더 있을걸로 생각합니다.
              건승하시길 빕니다.   삭제

              • 바보 2005-12-28 13:09:05

                뉴조이 방향은 분명하고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있습니다마는
                다 떠나서 개교회의 분규사건에 대해서는 보조를 자제해 주시면 하는 부탁입니다
                서울의 대형교회나 교계 유명인사교회의 분규나 비리는 뉴스 가치가 있다고 사료됩니다마는 지방에 이름도 없는 교회들의 분규를 시시콜콜하게 다 보도하는 것으 ㄴ그 교회에도 유익이 안되고 안티 기독교 세렉이나 불신자들에게 비방거리가 될 분입니다
                일반 신문도 시시콜콜하게 다 보도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교회 분규의 특성사 ㅇ개신교의 제도상 쉽게 끝나거나 누가 옳고 그른지를 쉽게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기사화가 오히려 내부수습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많고 감정적이 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유익이 없으므로 좀 자제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삭제

                • 관전평 2005-12-27 22:50:17

                  제목: 갈빗대 문제
                  부제: 반론의 글을 보고

                  저의 글에 답글을 단 우리이브님이,
                  "갈빗대(히.첼라)의 번역을 2.000년 가까이 잘못 번역해온 사실이 이제야 표면에 나왔군요"라고 했습니다. 잘못된 번역이 표면으로 떠올라 제대로 고쳐지는 것이 바람직하겠지요. 가방 끈의 문제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2-3 세기 후부터라면 정말 기나긴 세월인데, 소위 말하는 가방 끈이 긴 사람들이 이렇게 방치해 두었을까 하는 마음이 되는군요.

                     반론의 글이 아니었다

                  반론으로 쓴 글이 아닙니다.
                  나 목사님이 "갈빗대[쩨라]"에서 아담이 자웅공동체란 근거를 둔 것은 잘못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나름대로 공부하신 분이시니 나름대로의 견해가 있다, 더욱이 "그 단어를 헬라어 성경으로 주전 2세기, 3세기에 번역을 하면서 그 단어를 갈비뼈로 번역을 했습니다"고 하심에 더 큰 무엇이 있으리라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성 목사님의 반론의 글을 보고,
                  저의 글을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저의 글의 본래 제목은 「갈빗대」이고, 부제는 「나요섭 목사 기사를 보고」입니다. 이것이 기사로 나오며 『제목: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부제: 나요섭 목사, 결국은 '갈빗대'문제』로 달라졌습니다. 보기에 따라서 부제의 『나요섭 목사, 결국은 '갈빗대'문제』가 나 목사님의 문제를 「갈빗대 문제」로 몰고 간다는 느낌이 되기도 하는군요.

                     가방 끈의 문제

                  「중보기도」란 용어 사용에 대해,
                  잘못되었다는 교단도 있고, 잘못이 아니라는 교단도 있습니다. 이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가방 끈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가방 끈이 길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는(딤전2:5), 성경 말씀을 넘어갈 수도 있는가로 고민하던 중에 나 목사님의 기사를 보고, 글을 썼지요.

                  "원래는 옆이다"....
                  「갈빗대」로 번역된 단어 [쩨라]는 먼저 글에 밝힌 대로 「갈빗대」로는 2회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원래는 옆이다"와 의미가 통할 수 있는 "편, 쪽, 곁"으로는 20회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사전에서 [쩨라]의 어원을 [짜라]로 밝히고 있습니다. 물론 사전의 권위도 따져야 하겠지만, 이런 것은 가방 끈의 문제도 되겠지요. 그렇지만 가방 끈이 짧은 사람이 만든 사전이 세계적으로, 지금까지, 보편적으로 사용되어지겠느냐 하는 점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차라리 [쩨라]가 기본어라고 한다면 [짜라]와의 관계는 끊어지겠지요.

                  조금은 답답한 것은....
                  사전이면 대단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렇지 못하군요. 그렇다면 소위 말하는 가방 끈이 긴 분들이 이런 잘못된 부분을 수정해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답답하구요. 나 목사님과 같이 자신들의 특별난 주장에서나 이런 사실들이 나오는 게 답답합니다.

                     갈빗대들 중의 하나

                  아담의 「갈빗대들 중의 하나」를 취했다고 했습니다.
                  「갈빗대」가 잘못된 번역이라면, 제대로 된 번역은 어떤 것일까요? "‘체라/차라’는 갈비뼈보다는 (모호하기는 하지만) 아담의 옆구리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더 나은 해석입니다"고 하셨는데, 「옆구리들 중에 하나」라고 해야 하나요? 아니면 「옆들 중에 하나」라고 해야 하나요? 성경의 용례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편, 골방" 그 어느 것도 사람의 몸에 적용하기는 힘들지요. 사람의 몸에 붙은 그런 기관이 없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20:10절에서 "타락하다"도 적용하기 힘들다고 보이구요.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
                  한마디로 뼈와 살이라는 말입니다. 골육지친(骨肉之親)이 되든, 최상급의 표현이든.... 나의 뼈와 살과 무관한 사람이 아니지요.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뼈들 중의 하나」이기에 아담이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의 환호를 지른 것이란 말입니다. 처음부터 하와의 뼈, 하와의 살이라면....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가 될 수 없다고 봅니다.

                  "체라/혹은 차라가 갈비뼈라고 치더라도 그럼 살은 어디서 나온 살일까요? 우리 말로 뼈라고 번역된 에쳄은 ‘본질, 육체’라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그럼 살은 어디서 왔느냐?
                  하나 하나 따지고 살핀다는 게 이렇게 어렵군요. 오늘 점심으로 "갈비를 먹었다"고 하는 사람은 남들이 먹고 버린 뼈다귀만 씹어먹고 왔겠습니까.... 그리고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갈빗대 하나」로 여자를 마드셨다고 했습니다(창2:22). 「갈빗대」로 살인들 못 만드시겠습니까.... 이렇게 따진다면, 흙으로 어떻게 뼈를 만들고, 살을 만들고, 피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흙으로 뼈만 만들어야지 어떻게 피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우리 말로 뼈라고 번역된 에쳄은 ‘본질, 육체’라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뼈"라고 제일 많이 사용되어졌습니다. [쩨라]의 「갈빗대」 경우와 같이 본다면, 본질/육체라는 의미는 무시될 수 있는 정도이지요. 그러나 사용 횟수로 의미를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번역의 문제

                  우리의 성경 번역이,
                  처음부터 원문에서 번역된 것이 아님은 누구나 다 압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같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성경은 다릅니다. 역본에서 번역한 것이 아니라 원문에서 직접 번역하였다고 하지요. "그 단어를 헬라어 성경으로 주전 2세기, 3세기에 번역을 하면서 그 단어를 갈비뼈로 번역을 했습니다"는 말씀은, 「갈빗대」를 뜻하는 그 헬라어에서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성경이 「갈빗대」로 번역하지 않았다면, 그 2, 3세기의 번역본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직접 번역하면서, 참고했다는 의미는 있겠지요.

                  원문에서 직접 번역했다는 성경들이,
                  [쩨라]를 「갈빗대」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다르게 번역한 성경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좀 일러주세요. 한 두 사람이 모여 성경을 번역한 것이 아닙니다. 나름대로 전공하신 분들이 모여 때로는 합숙을 하며, 한 절씩 합독을 하며 살피기를 수 차례 한다고 들었습니다. 문자적인 번역도 중요하지만 신학적인 문제도 아울러 고려해야 하기에 용어 선택에 어려움이 많다고 하시더군요. 이렇게 모인 성경번역 위원들이 결코 가방 끈이 짧은 사람들이라고 생각되지를 않는군요.

                     학문보다는 신앙이 우위가 되어야

                  동정녀....
                  말도 많고 탈도 많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신앙보다 학문이 우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영감을 믿는다면, 말이 많을 게 없습니다. 이사야 7:14절의 [알마]를 성령의 영감을 받은 마태가 [팔데노스]라고 했습니다(마1:23). 성령의 영감을 받아 누가는 그 처녀를 「사내를 알지(동침) 못한다」고 했습니다(눅1:34). 성경의 영감을 믿는다면, 말도 많고 탈도 많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갈빗대」 문제도....
                  남녀의 창조의 시차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창2:21-22). 이 사실을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딤전 2:13절에서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라고 다시금 확인하고 있습니다. 또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고전 11:8에서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다」고 했습니다. 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이 밝혀주는 사실은 "자웅공동체"로 동시에 창조된 것을 둘로 분리시켜 놓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굳이 「갈빗대」가 아니라도 "자웅공동체"가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의 영감을 믿는다면 "자웅공동체"를 말할 수 없다고 봅니다.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성기문 목사님의 "잠정적 결론"에서, "완전한 결론"을 기대했습니다.
                  "잠정적 결론"까지를 보고 나름대로 글을 써 놓고, "완전한 결론"을 보고 글을 마무리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결론"이 나오지 않아, 한 해를 보내며 이렇게 마무리를 해야 하겠군요.   삭제

                  • 관전평 2005-12-27 22:46:38

                    기사를 쓰는 사람은,
                    그래도 나름대로 많은 시간과 열정, 정성을 모아서 글을 씁니다.
                    비록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허접스러운 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 한마디 없이 폐기처분 해버리는 것은, 기사를 작성한 사람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봅니다.

                    최소한 소식은 주어야지요.
                    기사가 어떤 부분이 부족하고, 적합하지 않고, 등....
                    간단한 멘트로 기사화 되지 못하였음을 연락해 주는 것이 도리라고 봅니다.

                    이번 저의 기사는,
                    한 해를 마무리하려는 마음으로 기사를 올렸습니다.
                    "잠정적 결론"으로 끝맺을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서 "완전한 결론"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한 해의 끝자락에서 그 기대가 사라지기에.... 제 나름대로 마무리를 한 것입니다.

                    저의 글에서,
                    기사화 된 글과 그렇지 못한 글을 비교하시어,
                    그 문제점을 일러 주세요. 말 한마디 없이 버려져야 할 만큼....
                    그 두 글에서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어서요.... 여기에 전문을 그대로 올리지요.
                    독자들께서 보시기에 말 한마디 없이 버려져야 할 만한 문제점이 있으시면 좀 일러 주세요

                    이 문제가,
                    편집의 문제라고 여겨져 여기서 말씀드립니다.
                    취지에 멎지 않는 것이라면 삭제하셔도 좋구요.   삭제

                    • 주님기준 2005-12-27 18:30:24

                      (잘 헤아리시고..)

                      살전 5: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절에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잘 분별하시고 ...)

                      빌1: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마16: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욥 34:3,
                      입이 식물의 맛을 변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별하나니

                      겔 44:23,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



                      (분주히 확인하시고 ...)

                      행17: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확증하시고..)

                      롬15:28,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를 지나 서바나로 가리라


                      (공의롭게 ..)

                      레19:15,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치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호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찌며


                      (공정하게 ..)

                      신25:15,
                      오직 십분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십분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장구하리라

                      하나님이 주신지는 귀신도 알고 떤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주께 기도하지 않고 바라는 것이 없고 확신이 없으면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대한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증거라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cafe.daum.net/malachi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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