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연합교회 이영대 목사는 자신이 동성애를 수용하는 이유를 체계적으로 밝혀주었다. 이영대 목사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반론을 제시하고 싶다.

첫째로, 이영대 목사는 성경이 금하고 있는 것은 동성애 자체가 아니라, 문란하게 표현되는 성적 행위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즉 동성애라 할지라도 "두 사람만의 진실되고 헌신적인 사랑의 관계에서 행해지는 성적 행위"라면, 문제될 것이 없으며, 문제가 되는 것은 다수의 상대를 대상으로 하거나 불순한 방법으로 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레위기 18:22과 20:13은 분명하게 동성애 자체를 금하고 있다. 로마서 1:26-27, 고린도전서 6:9, 디모데전서 1:10도 동성애 자체를 금하고 있다. 성경을 자신의 생각에 따라 억지로 해석하지 말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바를 이영대 목사는 인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성경 그 어디에도 동성애가 인정되는 경우를 발견할 수 없다.

둘째로, 이영대 목사는 만일 동성애가 "성 호르몬, 유전자 또는 뇌 시상하부 등 신체적 차이 때문에 동성애 취향을 타고났다면, 이것은 100% 선천적인 것이며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영대 목사가 인정한 것처럼, 동성애적 기질이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쉽게 판명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백번 양보해서 이영대 목사의 말처럼, 동성애가 선천적이라고 하면 결코 비난할 일이 못 되는가? 그렇다면 선천적으로 잘못된 방향을 가는 사람은 모두 비난받을 수 없는가? 사실 우리 인간은 선천적으로 죄성을 가지고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래서 음욕을 품는 것이 음욕을 품지 않는 것보다 우리는 더 자연스럽다. 우리는 시기하고 질투하고 남을 멸시하는 기질들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래서 바울은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로마서 7:23-24)라고 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짓는 모든 죄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죄성 때문에 죄를 짓는다. 선천적 이유로 지은 죄는 형사 법정에서는 무죄로 선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신앙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비록 우리 속에 죄악의 속성이 있어서 죄를 짓게 하더라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능력으로 죄악을 이겨내야 할 것이다.

셋째로, 이영대 목사는 성경에서 혹시 동성애를 금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오늘날 우리에게 성경의 모든 율법이 기계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법이 우리에게 적용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모두 구약의 모든 율법이 오늘날까지 우리에게도 적용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중에서는 영원히 변치 않는 도덕법이 있다고 믿는다. 살인이나 도둑질은 분명히 영원히 변치 않는 도덕법의 범주에 들 것이다. 그러나 몇몇 율법들은 이스라엘이라는 독특한 신정국가에게만 미칠 수 있는 법들과 제사와 관련된 법들이며, 이런 법들은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문자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법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 들어 있는 원리들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동성애는 어느 카테고리에 속할 것인가? 이것은 분명 도덕법의 범주에 든다고 볼 수 있다. 구약에서만 금지된 것이 아니라, 신약에서도 역시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로마서 1:26-27, 고린도전서 6:9, 디모데전서 1:10). 구약의 일부 법들이 오늘날에 우리들에게 문자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서, 동성애도 그 범주에 포함시킬 수 없다.

넷째로, 이영대 목사는 크리스천들은 “사회에서 버림받고 희생된 약자들에 대한 예수의 관심과 사랑”을 본받아, 동성애자를 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예수님의 외침을 반쪽만(듣고 싶은 쪽만) 들은 결과에 불과하다.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을 받아들이시고, 사회적 약자를 품어주신 것은 사실이다. 예수님은 심지어 창기도 받아주셨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계속해서 그 죄 가운데 거하도록 허용하시지는 않으셨다. 정죄하지 않으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권고하셨다. 예수님은 나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해서 왔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동성애자들을 보셨다면 분명 품으셨을 것이다. 그들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과 거리를 멀리하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 나온 동성애자들을 향해 예수님은 그들의 죄를 버리고 회개할 것을 요구하셨을 것이다.

다섯째로, 이영대 목사는 자신이 동성애를 수용하는 이유는 성경을 무시한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참 뜻을 발견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려는 동기에서 비롯되었다고 첨언하고 있다. 하지만 이영대 목사의 다른 기고문들을 읽어보면, 그는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성경 위에 자신의 생각을 세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으로 성경의 내용을 재단하는 우를 범하고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수많은 진보적인 교회에서 동성애를 수용하고 동성애자들을 성직자로 세우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결코 새롭고 낯선 일은 아니다. 인류는 항상 그래왔기 때문이다. 홉니와 비느하스 같은 제사장도 세워졌었다. 그리고 왕에게 아부하면서 거짓 평화를 말하는 선지자들도 세워졌었다. 성전을 통해 장사를 하던 아주 세속적인 제사장들도 세워졌었다. 돈을 주고받으면서 성직을 팔아먹던 시기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것들은 죄가 아니라고 말했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죄라고 정하신 것을 우리가 죄가 아니라고 우기는 우를 범치 않아야 할 것이다. 사실 죄는 죄에 대한 정의에서부터 흐려지면서 짓게 된다. 동산 중앙에 있던 선악과를 먹는 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사탄의 꾀임에 넘어갔던 인류는 어리석게도 계속해서 똑같은 속임수에 속는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까짓 과일 하나 먹는 게 무슨 죄가 되는가?” 할 수 있다. 하지만 죄의 여부는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이지, 내가 정할 일이 아니다.

영성은 하나님 앞에서 좀 더 신실하게 서려는 자세에서 증진될 수 있다. 죄의 경계를 자꾸 허물어가면, 무엇을 지킬 것인가? 술도 담배도 구원 받는 데 상관없고, 헌금도 신앙의 본질과 상관없고, 의롭게 사는 것도 구원과 상관없다 말하면서, 자꾸만 영성을 허물어 가면, 무엇이 남는가? 물론 기존의 기복적인 신앙이 잘못된 것에 대해서 지적하고 좀더 바른 이해를 도모하는 것은 옳다. 하지만 모든 것을 죄의 범주에서 밀어내게 될 때, 결국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모습만이 남을 뿐이다.

나는 동성애자의 인격과 신앙과 삶을 이해하길 원하며 그들도 같이 우리와 함께 신앙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것은 마치 도둑질하는 사람들도 우리가 포용하고, 함께 신앙 생활하기 원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도둑질하는 자가 도둑질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목사 노릇 하겠다고 하면 안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동성애자는 자신의 죄성을 깨닫고 죄에서 돌이키길 원한다. 나는 화도 잘 내고, 사람을 미워하기도 잘 한다. 하지만 결코 그것을 정당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기도할 때마다 나의 연약한 부분을 주님께 내어놓고 고쳐주실 것을 기도한다. 이런 기도의 대열에 함께 동참하기를 권고하고 싶다.

▲ 미국에서는 James Dobson 박사가 주도하는 Love Won Out이란 프로그램이 있고, 실제로 이를 통해서 많은 동성애자들이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이성애자로 변화되는 결과를 많이 가지고 있다.
실제로 동성애자들 중에서 이성애자로 변화된 사람들이 있다. 미국에서는 James Dobson 박사가 주도하는 Love Won Out이란 프로그램(http://www.lovewonout.com)이 있고, 실제로 이를 통해서 많은 동성애자들이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이성애자로 변화되는 결과를 많이 가지고 있다.

참된 영성은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하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시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변화받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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